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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나라 시에라리온은 내게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하여 그 나라가 겪은 참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약 5백만 명의 작은 나라이자, 평균 수명이 25~35세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나라이며, 인구 대비 신체 장애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그리고 인구 대비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정보가 머리속 기억 저장소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에라리온이 그런 프로파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동기에 있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10년의 내전에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과 인권 말살이 이 작디 작은 국가에서 십 여 년이 넘도록 일어난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책 표지>
열두 살의 나이. 과연 열두 살의 내 초상은 어떠했을까? 영원히 정지해 있는 내 삶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 본다. 열두 살이면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다. 동네 개천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잡고, 공을 차고 놀며, 팽이 돌리기와 딱치치기에 몰두했던 열두 살의 초상이 떠오른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이스마엘 베아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인간이라는 동일한 종족으로 동시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외면하듯 나의 열두 살과 그의 열두 살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상대적인 차이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의 차이이자,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한 어린 소년의 처절한 아픔이요, 상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군과 반군의 수 년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시에라리온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이 되었다. 정치적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의 머리를 베고, 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전부 불태우고, 아들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강간하도록 강요하고, 시끄럽게 운다고 갓난아기들을 반 토막을 내고, 임신한 여자들의 배를 갈라 아기를 끄집어내 죽이는 등 인간으로서, 아니 짐승이라도 할 수 없을 만한 짓들이 일어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른들의 엽기적이고 광기 어린 행태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두려움의 데드 수치를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황폐한 영혼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소년병>이라는 것이 조직되어 아이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살육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에라리온은 지옥 중에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처참하다.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이스마엘과 그 친구들의 기나긴 여정은 뜻하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피폐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총과 칼로 무장한 소년병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부모와 이웃을 죽인 원수들 밖에 없다. 가는 곳마다 총을 난사하고 칼을 휘두르는 어린 아이들의 생생한 장면을 읽어 내려가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일렁거리며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라면 시에라리온에 태어난 것.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이길 포기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몸 속에서 들끓는 전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극히 어린 나이에 못 볼 것을 보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야만 했던 이스마엘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하여 아픔과 상처, 회복과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스마엘은 AK-47을 들고 사람 죽이는 일이 물 마시는 일보다 쉬운 것이라 외치며 환호한다. 더 나아가 지치고 상처받은 심신을 위로받고자 코카인과 마리화나 등의 마약을 친구로 벗삼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옥같은 곳에서 구원받고, 치유받으며,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이스마엘을 아껴주고 보듬어준 간호사 에스더를 통하여 이스마엘은 <사랑>이라는 인류 최대의 가치를 경험하게 되고, 점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스마엘에 대해 에스더가 보여준 관심과 사랑은 이스마엘이 안정감을 누리고 회복할 수 있는 추동이 되면서 따뜻하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잠시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생각의 시선을 돌린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단 3년 사이에 400만 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잔인한 전쟁을 겪은 나라. 이 전쟁으로 제조업 시설의 절반과 철도의 75% 이상이 파괴된 폐허의 나라. 1961년 연간 1인당 소득이 82달러로, 당시 가나의 1인당 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 하지만 그 이후 40여 년의 시간차를 넘어 GDP 2만불,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그 어떤 칼이나 총으로 위협받지 않고 두 발 뻗고 잠 잘 수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행복지수를 부여했던가? 열두 살의 어린 소년 이스마엘이 겪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말살을 목도하며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는 내 자신을 동시에 목도한다. 그리고 새삼 감사를 사유(思惟)한다.
비단 시에라리온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곳은 적지 않다.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가난과 기근으로, 또는 질병과 무지의 이유 등등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좁게는 우리 주변의 질병과 가난과 장애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 넓게는 시에라리온을 위시하여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외민족들까지 제법 인간답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을 돌아보고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음은 자명하다.
<인권>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권은 그 어떤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것이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라는 의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인간이 함께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평화를 이루고 지향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평화, 그리고 단지 우리 시대만이 아닌 영원한 평화를 말이다. 우리가 이 작은 행성에 공존하고 있는 이상, 같은 공기를 마시며 동일하게 2세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인간>들이란 사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바로 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생각하자. 이 권리는 절대 명제다.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인간도 이 명제의 카테고리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는 개인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이자, 동시에 신이 인류에게 질문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직 인간만이 이런 아름다운 지구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과 특권을 선사받은 유일한 종족이기 때문에 이 절대 명제를 완성키 위한 생명수 또한 인간 자신에게 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나에게 하늘이 자기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는 말을 걸어준다고 하셨다. "언제나 하늘에 모든 것에 대한 답과 설명이 있단다.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혼란이든, 뭐에 대해서든 말이다." 그날 밤 하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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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