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때 지난 얇디 얇은 이 자기계발서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경위가 매우 흥미롭다. 어느 모임에서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술에 의지(?)하여 자연스럽게 소유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다음 날 숙취의 과정에서 주인장에게 돌려준다는 당연한 약속을 하였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새삼 느끼는 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흥겨운 일이라는 것이다. 선물, 책여행, 이벤트 등의 투자 없는 독서의 맛은 심히 달짝지근한 것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겠다. 

  개인적으로 과학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신분증은 차치하더라도 생물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한 자로서 진화론이 지닌 방대한 오류와 비과학성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진화론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있다. "결국 살아남는 종은 강인한 종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종도 아니다. 종국에 살아남는 것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과학은 빛의 속도에 비유될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정치와 문화와 경제와 사회 등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변화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형국이다. 작게는 애인의 애정 수준이나 회사 상사의 컨디션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지도자의 교체나 세계화의 속성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변화의 물결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이런 거센 변화의 물결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개인마다의 인과적 열매가 달라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현재적 나침반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만족하며 매너리즘에 편승하는 것으로는 이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과거 조상들이 설파했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가 정답이 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전의 시대와는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도에 확연한 차이가 나고 있기 때문에 21C의 사회에서 안주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과 동일한 상대적 의미를 함의한다. 다시말해서 작금의 시대에는 조금 빠른 것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많이 빠른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선을 내게 돌려보면 이에 대해 나 자신 또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집과 교회와 직장에서,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서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의 목소리에 얼마나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가를 사유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의 삶의 편린들을 곱씹으며 과거와 현재에 철저하게 안주하려 했던 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부인하기 힘든 것이다. 영어, 독서, 연애, 다이어트, 신앙 등 수많은 내 삶의 목적어들을 상기하면서 동시에 겸허한 마음으로 자아를 탐구하게 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지극히 작은 분량을 통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상을 농밀하게 그리고 있다. 생쥐 2마리와 꼬마인간 2인의 변화하는 '치즈'에 대한 상이한 탐구방식을 매우 흥미있게 얘기하는 이 작은 우화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적응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과 그런 삶을 지향하고자 할 때에 변화를 주도하는 '치즈'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안주하는 삶 속에서 삶의 시계추를 과거와 현재에 구속시킬 것이냐, 아니면 변화에 대한 열정적 적응을 통하여 미래를 향하게 할 것이냐의 선택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변화>라는 단어를 깊이 사유하며, 동시에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머리속에 그리며 사색의 연못에 잠시 잠겨본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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