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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는 꿈이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내게는 소박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간절하고도 특별한 꿈이 있다. 신께서 가장 최초로 만드신 공동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푸른 초장이자 쉴만한 물가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을 건설하는 것이다. 행복하고, 안정감을 얻고, 평온하고, 쉼을 누릴 수 있는 곳, 바로 <가정>이라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공동체를 <행복>의 수식어로 완성하고자 하는 꿈, 다시 말해서 작은 천국이라 할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의 실체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한 가정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보다 구체적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수많은 아동심리학자들은 안정감있는 양부모 아래서 평온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부유하거나, 가문이 좋거나, 구성원이 많은 것이 아닌, 아빠와 엄마가 싸우지 않고 아이들 앞에서 언제나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에 대한 정갈한 정의라는 것이다. 비록 돈이 없다 할지라도, 가문이나 뼈대가 특출나지 않더라도, 몇 대에 걸친 많은 구성원이 함께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양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싸우지 않으며 담대하게 서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의 일차적 요건이라는 그들의 목소리에 나는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2006년 한국 문단은 그녀의 해라고 할 정도로 찬란한 활약이 돋보였던 작가 공지영은 신작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질문한다.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비일반적인 가족의 얘기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 투영시켜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세 번의 이혼 경력을 지닌 엄마, 각기 다른 아빠를 둔 세 명의 성이 다른 아이들, 유명 작가를 엄마로 둔 자녀들의 고심 등의 평범치 않은 특별한 가족상을 통하여 가족의 의미와 부모의 존재감을 잔잔하면서도 유쾌하게 얘기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의 역사는 가족의 의미를 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강조하는 경직된 의미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지옥같은 대학입시제도와 세계 1위의 이혼율까지 합쳐진 나머지, 한국의 가족행복지수는 OECD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공지영이 용기있게 그려낸 자기 자신의 자전적 가족상은 공지영 개인의 고백을 넘어선, 이 땅에 수없이 존재하는 우울하고 파괴된 가족상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아빠와 엄마로부터 동시에 안정된 사랑의 영양분을 공급받는 정상적 부모 가정이 아닌 비정상적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를 말이다.
공지영이 말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사유한다. 공지영은 소설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전제조건으로 두가지를 언급한다. 가족은 반드시 <관심>과 <믿음>을 포함한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내게 귀를 기울여주고 나를 믿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라는 것을 말이다. 동일 유전자를 가진 것, 동일한 말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어떤 사물 어떤 상황에 대해서 아주 비슷한 경로로 반응하고 있는 것 등은 핏줄로만 가족의 의미를 한정하는 외연적 접근일 수 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동질감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랑의 관심과 절대적 믿음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깊이있게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에 웅숭깊은 가치리라.
제목을 탐구한다. 제목 <즐거운 나의 집>은 소설속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맞딸 위녕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문구가 아닐까? 즐거운 집이지만 가족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는 외롭고 고독한 즐거움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가족의 의미를 함의한 <집>이라는 명사를 수식하는 소유격에 오직 자신에게만 한정된 단수형 <나의>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아닌 <나의> 집은 즐거움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한 동질성의 추구가 가족 구성원 모두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위녕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제목 <즐거운 나의 집>은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말하는 공지영표 가족의 의미를 간결하게 함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뛰어난 가독성으로 가벼움과 무거움, 유쾌함과 잔잔함을 교차시켜 새로운 가족의 의미에 접근하는 작가 공지영의 노력에 만족감을 누린다. 더욱이 자신의 가족사를 생동감있게 활자화한 기백과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라는 명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용기와 고백을 부연하는 작가후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지지한다. 더욱이 내게 절대적 목표이자, 꿈의 실체인 <행복한 가정>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새롭고 특별한 각도로 접근할 수 있께 한 작가 공지영에게 나는 심히 매료되었다. 언젠가 훗날에 내 아이들의 입에서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명문구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때에는, 이 소설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지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상상을 하면서 읽은 후의 좋은 느낌을 재확인한다.
행복이란 건 말이다. 누가 물어서 네,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건... 죽을 때만이 진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거야. 살아온 모든 나날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p. 105>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세상에는 많은 서열이 있고 많은 점수가 있어. 네가 잘하는 것,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 그걸 하면 돼... 대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p. 224>
그런데 수화기 너머 아빠를 느끼고 그리고 머릿결로 엄마의 손길을 느끼는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감정을 체험했다. 그것은 행복이었다. <p. 305>
성모마리아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구세주를 낳았기 때문이 아니란 걸 엄마는 그제야 깨달아버렸다. 달빛 아래서 엄마는 거실 바닥에 엎디었지. 그녀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그 아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그냥, 놔두었다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모성의 완성은 품었던 자식을 보내주는 데 있다는 것을. <p.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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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