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다듬어진 성장소설의 매력을 청소년보다 오히려 어른이 더 많이 얻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내 믿음은 일생에서 가장 빠르고 많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대한 성인과 청소년의 상이한 이해와 기억에 기초한다. 청소년에게 그 시기는 가장 복잡하고 힘든 시간이면서도 불가해한 '현재'라면, 성인에게는 이미 지나갔지만 가슴 한 켠에 소중히 자리잡고 있는 가해한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고 괴로웠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성장기가 갖는 오묘한 비밀이리라.

  성장소설은 독자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문학계의 아이콘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데미안』과 『양철북』이 그랬고, 『어린왕자』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랬으며, 『연금술사』와 『리버보이』가 또한 그랬다. 한 인간이 성장하며 겪는 꿈과 희망, 성취와 좌절을 통해 얻는 개인의 보편적 깨달음, 곧 자기실현이라는 가치를 제시하는 성장소설의 감동은 매우 농밀하다. 과거를 안고 현재를 깨닫고 미래를 소망하는, 요컨대 일차원의 모든 시간대의 가치를 아우르는 성장소설의 아름다움을 나는 결코 멀리 할 수가 없다.

  한국 문단계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김형경과 성장소설이 만났다. 그녀의 최신작 『꽃피는 고래』는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빠를 잃은 한 소녀의 상실과 이를 회복하며 한 단계 성장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이다. 열일곱의 나이에 크나큰 상실감에 허둥되는 소녀 니은이의 아픈 현실에 아빠의 고향인 처용포 마을에서 듣게 되는 바다와 고래의 이야기가 씨줄처럼 엮여 있다. 작가 김형경은 한 소녀의 상실과 번민과 회복의 네러티브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문체로 그려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니은이는 열일곱 살 소녀다. 엄마와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혼자 남게 된 니은이는 방황한다. 부모의 죽음 후 아빠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처용포 마을로 가게 된다. 초반, 니은이의 상실감은 심각하게 그려진다. 가장 친한 친구 나무에게 화를 냈던 것도, 그래서 나무가 떠났던 것도,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들르는 손님이 다들 미운 것도, 결국 편의점 유리창을 깨고 쫓겨났던 것도, 어울리지 말아야 할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도, 무기력하고 건조한 삶을 지속했던 것도, 그 모든 분노와 불만, 고독과 번민은 바로 상실감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니은이의 방황은 처용포에서의 경험, 곧 두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희석되기에 이른다.

  그곳에서 평생 고래잡이의 삶을 살아온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집을 운영하는 왕고래집 할머니를 만난다. 장포수 할아버지로부터 '바다'라는 절대적 공간과 '고래'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깊이를 배우게 된다.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통해서도 삶의 원리를 알아가게 된다. 또한 영호언니가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니은이는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니은이는 깨닫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실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이 소중한 깨달음의 연장에서 엄마가 강아지를 잃고 이십년년간 울지 못했던 것, 왕고래집 할머니가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돌보는 것, 장포수 할아버지가 뒷산에 나무를 심는 것까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얘기한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떠나보내면서 '기억'할 때에 비로소 온전한 상실이 완성된다는 것을. 또한 바로 그것이 좋은 떠나보냄의 공식이라는 것을. 시간은 흘러간다. 인간 의지의 바깥영역에 존재하는 시간의 일관된 흐름은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르며 묵묵히 흐른다. 이 도도한 시간의 일차원에서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소설 속에서 니은이가 상실의 아픔을 다듬고 그것을 기억으로 치환시켜 가슴으로 밀어넣는 모습이 압권이다. 니은이의 가슴속에 봉인된 '그' 기억은 훗날 또 다른 인간을 성장시키는 밀알이 될 것이리라.

  앞서 언급했지만 아름다운 성장소설 한 권은 비단 아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깊이있는 사유와 소중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라고 상실의 아픔은 계속된다. 떠나보내는 것, 이해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 조합을 메타포하여 한 소녀의 성장기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 김형경의 문장력이 인상깊다. 한마디로, 참 따뜻한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08-07-0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날려요~^^

다윗 2008-07-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이 쌓아주시는 '땡스투', 너무 감사드립니다. ^^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소설이 갖는 매력을 나는 사랑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혼합되어 있는 역사소설은 진실과 상상력 사이의 오묘한 긴장감이 화학작용되어 매우 맛난 문장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우리네 역사를 담고 있는 한국역사소설의 그것은 더욱 풍요롭고 매력적이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 그랬고,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이 그랬으며, 신경숙의 『리진』도 그랬고, 김훈의 『남한산성』 또한 그랬다. 중국 청나라 때의 대학자 장학성(章學誠)이 언급한 '칠실삼허(七實三虛)'의 논리적 배율을 굳이 인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소설 속에 내재된 작가의 상상력을 음미하는 것은 과히 매혹적이다.

  소설가 심윤경을 좋아한다. 그녀는 불과 단 세 편의 장편소설로 한국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괄목함은 발군의 문장력과 계속된 진화로 대변되는 그녀의 강렬한 존재성에 기인한다. 한국에서 심윤경 만큼 이쁘고 다듬어진 문장을 구사하는 소설가는 드물다. 또한 매 작품마다 신선한 주제와 새로운 기법으로 높은 폭의 진화를 꾀하는 소설가는 더욱 드물다. 내가 심윤경을 사랑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후 2년을 주기로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를』을 발표하며 평단과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가 심윤경은 금번에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의 신작 『서라벌 사람들』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신라시대의 정치와 종교,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재창조한다.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을 모자이크식으로 배치하여 '서라벌'이라는 정신적·시대적·지역적 동일성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아하고 맛깔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지증왕의 부인이었던 연제부인의 이야기 「연제태후」가 연작의 전면에 배치된다. 신라가 결코 제후국이 아니었건만, 작가는 지증왕의 양물이 한 자 다섯 치에 이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연제부인의 거대한 존엄성을 부각하고자 신라를 제후국으로 지칭한다. 신라국 본래의 토속신앙을 사수하고자 하는 연제태후와 대국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신흥종교 불교의 포교를 강화하려는 아들 법흥제와의 대립은 강한 긴장을 준다. 이러한 신라 토속신앙과 불교와의 첨예한 대립적 긴장은 다섯 편의 단편을 모두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각 단편은 모두 비슷한 완성도를 가지며 연작으로 엮여 있다. 그중 백제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무열왕 김춘추의 이야기인 「변신」이 자못 인상적이다. 골품제라는 특유의 신분제 속에 신라의 강함과 약함이 함께 내재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를 김춘추의 번민과 고통으로 그려내고 있다. 성골이 아니었던 김춘추의 태생적 한계, 모두 성골이었던 선왕들의 자취가 남겨진 월성(서라벌 궁궐)의 구조적 형태들, 그리고 인위적으로 성골이 되고자 했던 김춘추의 '변신'이 잘 묘사되어 당시 서라벌이 처한 정치적·사회적 아이러니를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심윤경은 당시의 신라인들을 매우 역동적이고, 정념적이며, 희열적인 사람들로 묘사했다. 남녀가 상하관계로 가름되지 않고, 여성의 성적 발현이 제압되지 않으며, 남녀의 섹스가 국가의 기강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 여겼던 바로 그 시대를 심윤경의 활자는 매우 유쾌하고 신비스럽게 그려냈다. 연제부인과 박이차돈, 선덕여왕과 무열왕, 김유신과 원효대사 등 신라의 초특급 슈퍼스타들을 현재의 시공간적 감각으로 불러내 재창조한 심윤경의 상상력은 단연 발군이다.

  정열적이고, 야하고, 역동적인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이 재창조한 천오백여 년 전의 왕국 신라는 과히 '열정의 제국'이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 모든 성질의 파토스가 살아숨쉬는 서라벌의 정념적인 형상화와 그 시대 그 사람들의 네러티브는 매우 유쾌하고, 너무 강렬하며, 심히 화려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역시 심윤경이다. 한마디로, 참 잘 쓴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뒷북소녀 2008-06-2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땡스 투~ 보내요^^

다윗 2008-06-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님. ^^ 오히려 제가 땡스~ ^^

프레이야 2008-07-0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이리 잘 쓰셨대요, 다윗님 ^^
날이 이제 더워져요. 햇빛 쨍쨍한 날입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구요.
저 이 소설 읽고 있어요.^^

다윗 2008-07-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지요? 심윤경 작가를 꽤 좋아해서요. 흥미있게 읽으시고 좋은 서평 올려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서평의 평점에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독자로서 읽은 책에 대한 호오를 기준화시켜 별점을 매기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리라. 보통 범작은 세 개, 수작은 네 개, 걸작은 다섯 개를 부여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화다. 나름대로 짜다고 생각하는 내 별점지수는 최근 그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어 일관되지 못한 그래프를 그리곤 했다. 그러던 터에 앤드루 숀 그리어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만났다. 이 한 권의 감동적인 소설은 최근 일관성을 잃어가던 내 별점지수를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별점을 하향평준화시키며 내 가슴의 설계도를 바꿔버렸다.  

  표지에 그려진 어린아이의 비쥬얼이 예사롭지 않다. 눈빛이 자못 강렬하다. 어린아이지만 결코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의 눈빛. 과연 저 눈빛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표지 속 아이의 눈빛은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서사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모든 외면적 뒤바뀜 속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의 내면적 고독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은 이 한 권의 소설이 어떤 감동을 선사할 지 암시하는 이미지 메타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고백의 이야기다. 평생을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 여인이 몰랐던 자신의 비밀에 대한 고백의 메시지이다. 소설 속 화자인 막스 티볼리는 일흔 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만나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여인 앨리스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새미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자신의 고백을 남긴다. 이야기의 뒷부분, 막스가 자신의 연인이었는지 모르는 앨리스와 아버지인지 모르는 새미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담담히 고백하는 모습은 비극이면서도 행복이 존재하는 처절한 비극이다.  

  이야기는 총 4부로 가름된다.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막스는 앨리스와의 이별을 겪는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났다 헤어지는 반복되는 막스와 앨리스의 굴곡진 사랑은 막스의 외모와 정신 수준이 일치하는 30대 중반에 이르러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죽도록 사랑한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하여 매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막스는 얼마나 기적같은 행복을 누렸을까. 하지만 그 행복도 몇 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앨리스가 다른 남자에게 떠나면서 또다시 비극의 곡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어린아이의 몸으로 평생지기 친구 휴이와 함께 앨리스와 새미 앞에 나타나는 막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의 가슴 아픈 비극적 이야기는 지독하기 그지없는 한 남자의 사랑의 테마이기에 가슴이 메어진다. 

  소설 속에는 앨리스에 대한 막스의 굵직한 사랑의 방향성 외에도 두 가지 사랑의 방향이 함께 존재한다. 평생지기 친구로서 막스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끝내 완성했던 휴이의 막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앨리스의 첫사랑으로 매우 희미하게 서사 속에서 꿈틀거리는 휴이에 대한 앨리스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친구 막스를 향한 휴이의 사랑은 일생토록 흔들림 없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자신의 죽음으로써 집대성시킨다. 마지막 휴이의 자살은 친구 막스가 앨리스와 새미 곁에서 일생의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희생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웅숭깊은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적 외모가 거꾸로 흘러가는 어리둥절한 소재를 갖고 이토록 가슴 저린 서사를 완성시킨 작가의 연금술이 인상깊다. 작가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의 본질은 시간의 구속성 위에 있는 상위 가치라는 것을. 세세하게 짜여진 시간의 체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구속됨은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시간의 흐름을 구분짓는 경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영원하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과연 우리네 인간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하고 요동치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의 웅숭깊은 사랑의 테마는 이와 같은 소중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흔히 범상치 않은 로맨스를 이뤄가는 연인들에게 사용되는 문장이지만 이토록 사랑의 본질을 잘 드러낸 표현도 드물다. 진정한 사랑에는 국경은 물론 시간도 없고, 과학도 없으며, 논리와 이성도 없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다. 사랑의 내면성은 그 어떤 외연적 요소들의 침입을 거부한다. 만약 사랑이라는 우주의 위대한 본질적 가치가 다른 비본질적 분자들에 의해 흐려졌다면 신은 결코 인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모성애'라는 아가페적 현현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 그것은 사랑 그 자체로서 완전하다. 

  시간과 외모를 위시한 수많은 외연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한 여인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갈증한 막스의 사랑이 심히 지독하다. 아주 색다른 이야기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테마를 들려준 앤드루 숀 그리어의 작업에 내 머리는 잠시 정지했고, 내 가슴은 다른 설계도로 수정되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의 홍보문구에 매우 적확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매혹>. 유려한 말솜씨와 화려한 문체로 전개되는 한 남자의 뒤틀린 인생 이야기 『막스 티볼리의 고백』. 이 소설은 심히 매혹적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없음. 읽지 않은 분이 읽어도 무방한 서평임.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인도 출신의 헐리웃 영화감독이 있다. 1999년 《식스 센스》라는 영화로 전세계 수많은 영화팬들의 뒤통수를 때렸던 바로 그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이며 의문의 인물과 사건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마지막 반전을 한 방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식스 센스》 이후의 작품에서는 흥행과 평단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의 브랜드를 갖고 영화를 만드는 그를 나는 좋아한다.  

  《식스 센스》의 성공 이후 세계 영화계에서 반전 열풍은 결코 녹록지 않아 왔다. 같은 해에 제작된 《유주얼 서스펙트》를 비롯하여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반전(轉)영화들은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반전 신드롬'은 한국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쳐 《올드보이》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호기심'과 '놀라움', 그리고 '신선함'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의 연장선상에서 반전의 카타르시스는 존재한다. 

  비단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반전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장치가 된다.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을 좋은 느낌으로 읽었다. 공포와 미스터리는 여름에 만나야 제맛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가. 이에 독자를 우롱(?)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몇 권 읽어보길 소원했고, 절대 다수의 추천에 의해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내 손에 들어왔다. 이 한 권의 미스터리 소설은 미드계의 '24시'와 같은 대표성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미스터리물을 만날 때의 공식이란 게 있다. 절대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마지막은 허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반전물이 갖는 속성이다. 하지만 몇몇 범상치 않은 작품은 기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반전일까, 하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어 내려가지만 생각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이야기의 전복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잔잔한 멜로풍이 물씬 풍기는 제목과 표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내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컴퓨터를 가르치고, 경비일을 하며, 헬스클럽에서 몸 만드는 것이 취미인 나루세 마사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그는 지하철역에서 한 여인이 철도로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아사미야 사쿠라. 나루세는 사쿠라의 자살을 저지하며 그녀의 생명을 건져올린다. 우연으로 만난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나루세의 후배 기요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아이코가 자못 걱정된다. 며칠동안 헬스클럽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코가 걱정된 기요시는 선배 나루세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사망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나루세가 나선다. 과거 젊은 시절 탐정의 삶을 꿈궜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현시키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실타래와 같은 인물과 사건의 엮어짐. 도대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범인의 존재, 기억의 불확실성 등의 소재로 일관하는 1차원 수준의 평범한 추리소설을 거부한다. 작가 우타노 쇼고는 발군의 '서술 트릭'으로 독자를 놀려준다. 사건의 결과를 알기 전에는 절대로 인지할 수 없는 반전의 복선들을 이야기 곳곳에 배치한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나루세와 사쿠라의 내밀하게 가려진 현재성이 밝혀지면서 여태껏 흘러왔던 모든 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의 연결고리는 정리되기에 이른다.  

  제목이 독특하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제목은 소설의 서사를 생각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표지에 그려진 한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또한 내용과의 특별한 상관성과 우의성을 연결짓지 못한다. 제목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이며, 표지그림은 무엇을 이미지화한 것일까. 어쩌면 작가 우타노 쇼고는 소설의 첫장을 열기 전부터 독자에게 트릭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하여간 참 재미있는 작가다. 

  우타노 쇼고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다. 꽤 수준높은 트릭을 선보인 그의 실력을 감안하자면,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 듯싶다. 일본 내 '신본격 미스터리'의 1세대 작가라는 그의 외연적 존재성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은 틀림없다. 무더워지는 여름날, 잘 다듬어진 추리소설에 갈증을 느끼며 만난 우타노 쇼고.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나볼 기회를 기대하며 그에게 속았던 '쾌감'을 마음속에 잘 안착시킨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붉은 손가락』으로 처음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미스터리소설의 아이콘답게 예기치 못한 반전과 가슴 두근거리는 이야기로 독자를 몰아치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용의자 X의 헌신』도 이러한 히가시노표 브랜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사 이래 최초로 3개 부문 베스트 1위를 기록한 초유의 화제작', '2006년 나오키상 수상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6년 최고 화제작' 등의 강렬한 수식어구를 달고 있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지만 미스터리답지 않은 진한 감동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네 명의 중심인물이 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열고 닫으려 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딸과 함께 사는 이혼녀 야스코. 옆집에 사는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 이시가미의 대학동기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사건 담당형사인 유가와의 친구 구사나기. 네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 살인사건을 둘러싼 두뇌게임을 펼친다.  

  야스코는 이혼한 후에도 계속된 공갈과 협박으로 자신과 딸을 괴롭히는 전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옆집에 살며 평소 야스코를 흠모했던 이시가미는 살해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야스코 모녀를 도와 사건을 은폐한다. 천재적인 두뇌로 철두철미하게 한치의 오차 없이 사건을 은폐하는 이시가미에게 대학동기 유가와와 경찰 구사나기의 집요한 접근과 도전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기존의 일본 추리소설이 갖고 있는 전형성과는 맥을 달리한다. 잔인함과 엽기 호러 등의 그것과는 다르다. 살인사건을 은폐하고 파헤치는 두뇌게임의 외연적 설정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웅숭깊은 사랑과 헌신의 테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막바지까지의 모든 추리와 설정은 전부 <거짓>이 된다. 소설의 말미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농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진정한 사랑은 지독한 헌신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수고와 헌신의 결핍은 온전한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다. 이시가미가 야스코에게 보내준 일방적이고 지독한 헌신의 대가, 그리고 이시가미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수하는 야스코. 과연 그녀는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의 헌신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걸까. 서사의 반전과 소설의 주제,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존재성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문구는 이 소설의 가장 적확한 제목이리라. 

  거짓의 이야기로 몰고 가다가 생각지 못한 전복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기술.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순간에 미스터리물을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전환시키는 마술. 더욱이 뛰어난 흡입력으로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발군의 스토리텔링. 이 모든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는 요소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