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없음. 읽지 않은 분이 읽어도 무방한 서평임.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인도 출신의 헐리웃 영화감독이 있다. 1999년 《식스 센스》라는 영화로 전세계 수많은 영화팬들의 뒤통수를 때렸던 바로 그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이며 의문의 인물과 사건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마지막 반전을 한 방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식스 센스》 이후의 작품에서는 흥행과 평단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의 브랜드를 갖고 영화를 만드는 그를 나는 좋아한다.  

  《식스 센스》의 성공 이후 세계 영화계에서 반전 열풍은 결코 녹록지 않아 왔다. 같은 해에 제작된 《유주얼 서스펙트》를 비롯하여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반전(轉)영화들은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반전 신드롬'은 한국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쳐 《올드보이》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호기심'과 '놀라움', 그리고 '신선함'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의 연장선상에서 반전의 카타르시스는 존재한다. 

  비단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반전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장치가 된다.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을 좋은 느낌으로 읽었다. 공포와 미스터리는 여름에 만나야 제맛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가. 이에 독자를 우롱(?)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몇 권 읽어보길 소원했고, 절대 다수의 추천에 의해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내 손에 들어왔다. 이 한 권의 미스터리 소설은 미드계의 '24시'와 같은 대표성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미스터리물을 만날 때의 공식이란 게 있다. 절대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마지막은 허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반전물이 갖는 속성이다. 하지만 몇몇 범상치 않은 작품은 기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반전일까, 하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어 내려가지만 생각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이야기의 전복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잔잔한 멜로풍이 물씬 풍기는 제목과 표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내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컴퓨터를 가르치고, 경비일을 하며, 헬스클럽에서 몸 만드는 것이 취미인 나루세 마사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그는 지하철역에서 한 여인이 철도로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아사미야 사쿠라. 나루세는 사쿠라의 자살을 저지하며 그녀의 생명을 건져올린다. 우연으로 만난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나루세의 후배 기요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아이코가 자못 걱정된다. 며칠동안 헬스클럽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코가 걱정된 기요시는 선배 나루세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사망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나루세가 나선다. 과거 젊은 시절 탐정의 삶을 꿈궜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현시키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실타래와 같은 인물과 사건의 엮어짐. 도대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범인의 존재, 기억의 불확실성 등의 소재로 일관하는 1차원 수준의 평범한 추리소설을 거부한다. 작가 우타노 쇼고는 발군의 '서술 트릭'으로 독자를 놀려준다. 사건의 결과를 알기 전에는 절대로 인지할 수 없는 반전의 복선들을 이야기 곳곳에 배치한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나루세와 사쿠라의 내밀하게 가려진 현재성이 밝혀지면서 여태껏 흘러왔던 모든 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의 연결고리는 정리되기에 이른다.  

  제목이 독특하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제목은 소설의 서사를 생각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표지에 그려진 한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또한 내용과의 특별한 상관성과 우의성을 연결짓지 못한다. 제목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이며, 표지그림은 무엇을 이미지화한 것일까. 어쩌면 작가 우타노 쇼고는 소설의 첫장을 열기 전부터 독자에게 트릭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하여간 참 재미있는 작가다. 

  우타노 쇼고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다. 꽤 수준높은 트릭을 선보인 그의 실력을 감안하자면,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 듯싶다. 일본 내 '신본격 미스터리'의 1세대 작가라는 그의 외연적 존재성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은 틀림없다. 무더워지는 여름날, 잘 다듬어진 추리소설에 갈증을 느끼며 만난 우타노 쇼고.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나볼 기회를 기대하며 그에게 속았던 '쾌감'을 마음속에 잘 안착시킨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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