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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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평의 평점에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독자로서 읽은 책에 대한 호오를 기준화시켜 별점을 매기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리라. 보통 범작은 세 개, 수작은 네 개, 걸작은 다섯 개를 부여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화다. 나름대로 짜다고 생각하는 내 별점지수는 최근 그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어 일관되지 못한 그래프를 그리곤 했다. 그러던 터에 앤드루 숀 그리어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만났다. 이 한 권의 감동적인 소설은 최근 일관성을 잃어가던 내 별점지수를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별점을 하향평준화시키며 내 가슴의 설계도를 바꿔버렸다.  

  표지에 그려진 어린아이의 비쥬얼이 예사롭지 않다. 눈빛이 자못 강렬하다. 어린아이지만 결코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의 눈빛. 과연 저 눈빛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표지 속 아이의 눈빛은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서사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모든 외면적 뒤바뀜 속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의 내면적 고독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은 이 한 권의 소설이 어떤 감동을 선사할 지 암시하는 이미지 메타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고백의 이야기다. 평생을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 여인이 몰랐던 자신의 비밀에 대한 고백의 메시지이다. 소설 속 화자인 막스 티볼리는 일흔 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만나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여인 앨리스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새미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자신의 고백을 남긴다. 이야기의 뒷부분, 막스가 자신의 연인이었는지 모르는 앨리스와 아버지인지 모르는 새미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담담히 고백하는 모습은 비극이면서도 행복이 존재하는 처절한 비극이다.  

  이야기는 총 4부로 가름된다.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막스는 앨리스와의 이별을 겪는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났다 헤어지는 반복되는 막스와 앨리스의 굴곡진 사랑은 막스의 외모와 정신 수준이 일치하는 30대 중반에 이르러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죽도록 사랑한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하여 매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막스는 얼마나 기적같은 행복을 누렸을까. 하지만 그 행복도 몇 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앨리스가 다른 남자에게 떠나면서 또다시 비극의 곡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어린아이의 몸으로 평생지기 친구 휴이와 함께 앨리스와 새미 앞에 나타나는 막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의 가슴 아픈 비극적 이야기는 지독하기 그지없는 한 남자의 사랑의 테마이기에 가슴이 메어진다. 

  소설 속에는 앨리스에 대한 막스의 굵직한 사랑의 방향성 외에도 두 가지 사랑의 방향이 함께 존재한다. 평생지기 친구로서 막스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끝내 완성했던 휴이의 막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앨리스의 첫사랑으로 매우 희미하게 서사 속에서 꿈틀거리는 휴이에 대한 앨리스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친구 막스를 향한 휴이의 사랑은 일생토록 흔들림 없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자신의 죽음으로써 집대성시킨다. 마지막 휴이의 자살은 친구 막스가 앨리스와 새미 곁에서 일생의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희생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웅숭깊은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적 외모가 거꾸로 흘러가는 어리둥절한 소재를 갖고 이토록 가슴 저린 서사를 완성시킨 작가의 연금술이 인상깊다. 작가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의 본질은 시간의 구속성 위에 있는 상위 가치라는 것을. 세세하게 짜여진 시간의 체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구속됨은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시간의 흐름을 구분짓는 경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영원하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과연 우리네 인간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하고 요동치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의 웅숭깊은 사랑의 테마는 이와 같은 소중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흔히 범상치 않은 로맨스를 이뤄가는 연인들에게 사용되는 문장이지만 이토록 사랑의 본질을 잘 드러낸 표현도 드물다. 진정한 사랑에는 국경은 물론 시간도 없고, 과학도 없으며, 논리와 이성도 없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다. 사랑의 내면성은 그 어떤 외연적 요소들의 침입을 거부한다. 만약 사랑이라는 우주의 위대한 본질적 가치가 다른 비본질적 분자들에 의해 흐려졌다면 신은 결코 인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모성애'라는 아가페적 현현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 그것은 사랑 그 자체로서 완전하다. 

  시간과 외모를 위시한 수많은 외연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한 여인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갈증한 막스의 사랑이 심히 지독하다. 아주 색다른 이야기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테마를 들려준 앤드루 숀 그리어의 작업에 내 머리는 잠시 정지했고, 내 가슴은 다른 설계도로 수정되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의 홍보문구에 매우 적확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매혹>. 유려한 말솜씨와 화려한 문체로 전개되는 한 남자의 뒤틀린 인생 이야기 『막스 티볼리의 고백』. 이 소설은 심히 매혹적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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