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7년 2월
평점 :
'정권'과 '민주'와 관련된 두 권의 평전을 읽는 중이다. 4월이 지나면 반드시 5월이 온다. 강물의 발원지를 찾듯, 잊을 수 없는 인물에 대하여 곱씹어 본다.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잔인한 4월이 가고 계절의 여왕 5월도 하순에 접어 들었다. 1980년 5월18일 아침 대학교 정문에서 나는 탱크와 공수부대를 만났다. 34년이 지났다. 곧 10•26 의인들 합동추모식(김재규,박흥주,박선호,유성옥, 이기주,김태원)이 열린다.
1970년대가 끝나고 1980년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희망의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와 함께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끝장낸 것은 김재규였다. 그러나 1980년대도 군인이 나라를 계속 지배했다. 국민들은 김재규의 희생 뒤에도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그 덕분에 조금 더 진화된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살아 갈 줄 알았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반만 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이다. 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 라버려야 옳은 것이다. 국민성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만이 강력한 민족국가 건설을 이 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고 조세희(난장이가 쏘와올린 작은 공 저자)는 말한다. 김재규는 10•26을 민주회복 국민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국민혁명이 될 기반을 갖지 못했다. 10•26이 진정한 민주 회복 국민 혁명으로 승화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 이 사건을 군사 재판이 아닌 일반 재판으로 하고, 국민들이 김재규의 진의를 충분히 알도록 공개 재판과 언론 보도의 자유를 보장했다면 사태는 달라졌다.
김재규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 삼성공원 묘원에 있다. 그의 비석에는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으로 씌여져 있다. 하지만 '의사'와 '장군' 비문의 글자가 훼손되어 있다. 비석의 뒷면에는 그에 대한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광풍을 몰아 덮칠 때
한 줄기 정기를 뿜어
어두운 천지를 밝혔건만
눈부신 저 햇살 다시 맞지 못하고
슬퍼라만 사람 가슴을 찢는구나
아, 회천의 그 기상 칠색 무지개 되어
이 땅위에 길이 이어지리
김재규가 승리를 자신했던 역사의 제4심은 열리지 않고 있다. 고인이 된 의뢰인(김재규)과 70대 중반에 들어선 변호사(강신옥)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은 애착으로 존재하고 있다. 201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