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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스럽게 읽혀지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최근에 발표한 미국 문학 작품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가장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코맥 매카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은데, 성서에 비견될 정도로 호평일색이라 조금은 의무감으로 읽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인지 썩 괜찮게 읽혀지면서도 생각 이상의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그저 ‘과연 9/11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와 ‘미국의 정신적 공항상태가 꽤 컸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작품의 배경은 아마도 핵전쟁 이후의 세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지만 코맥 매카시는 모든 것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고, 명확한 설명은 해주지 않고 있다. 그저 그곳은
모든 것이 어둡고,
춥고,
자주 비가 내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곳이고
그 고통만이 남겨진 공간을 그리고 희망이 없는 공간을 남자와 소년이 끊임없이 걷(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코맥 매카시의 글은 대화와 설명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있고,
시점은 엉켜있으며,
현실과 환상의 구분은 모호하다.
남자와 소년은 있지만 어째서 여자는 없는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진 않고 있다. 추측을 하도록 하고 있고, 남자와 소년 그리고 그들의 고난에 많은 은유와 의미 부여가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고, 특별한 의도를 부여하기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절망과 고통, 희망 등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만이 들 뿐이다.
간간히 남자는 회상에 잠기고 있기는 하지만 큰 의미를 갖고 있는 회상이기 보다는 지독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한 혹은 과거는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다른 풍경이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참혹함을 보다 더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
어둡기만 한 세계 속을 그들은 끝없이 걷고 있을 뿐이고,
그들은 잠시 안락함을 누리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순간은 불안감을 수반하고 있을 뿐인 안정일 뿐이고, 다시 그들은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불을 운반’한다는 목적으로 그들은 이동하고 있지만 그저 조금 더 안락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느낌만이 들게 될 뿐이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그 불이라는 것이 하나의 희망일지도 모르고,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은 약간의 설명을 해주고 있으면서도 그 설명에 큰 설득력을 갖도록 노력하지는 않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는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의 그들은 하나의 고정된 혹은 정지된 공간에서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끝없이 이동하고 있을 뿐인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동일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상황들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는 고통스러운 여정만이 있을 뿐인 그들의 여행으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 피로 때문인 것 같다.
묘사는 때로는 매우 세밀하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묘사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흐릿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재를 머금은 비로인해 눈이 젖어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듯이 책장 속 모든 것들은 뚜렷하기 보다는 어둡고 흐릿하다.
번역자도 언급했듯이 ‘코카콜라’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명칭이 언급되지 않고 있고, 소년과 남자의 ‘이름’조차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저 두려움, 고통과 같은 어두운 감정과 기분에 작품은 집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괴로움을 말함으로써 삶을 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작품일 것이고, 희망이 없는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을 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절망을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코맥 매카시는 그 절망과 고통을 더욱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게 묘사를 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희망을 보다 더 희망있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지루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조한 글을 담아내고 있고,
간략한 대사들과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세부적인 묘사는 회색 빛 풍경을 보다 진하게 선사하고 있다.
9/11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알고서야 조금은 더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희망 없음을 통해서 희망을 꿈꾸는’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는 것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단순하게 말해서 9/11 없이도 이 작품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 고통을 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들게 되는 것 같다. 고통이 없는 희망은 없고, 삶은 괴로움과 고통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희망은 희망으로서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삶이 희망을 하지 못하는 삶이 과연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