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죄의 목소리
시오타 타케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비앤엘(BNL)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교토에서 선대부터 이어온 양복점을 운영하는 소네 토시야는 어머니 방 서랍에서 수상한 카세트테이프와 노트를 발견한다. 노트에 적힌 제과회사의 이름 ‘깅가’와 ‘만도’를 본 토시야는 31년 전 일본을 뒤흔든 미제 사건을 떠올린다. 범인 집단이 대형 식품회사들을 갈취 목적으로 협박하다 홀연히 자취를 감춘 사건으로, 피해 기업 중에 ‘깅가’와 ‘만도’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자 ‘깅가·만도 사건’ 당시 협박에 사용된 어린아이의 기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토시야, 자신의 목소리였다. 토시야는 평생 양복만 묵묵히 만들며 살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가족이 엄청난 사건에 관련됐을지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에 휩싸인다. 토시야는 아버지 친구인 홋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두 사람은 소네 집안과 ‘깅가·만도 사건’의 관계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다이니치신문 문화부 기자인 아쿠쓰 에이지는 사회부의 ‘악마’로 불리는 사건부장의 호출을 받는다. 미해결 사건을 조명하는 연말 특집의 특별취재팀에 지명된 것이다. 그에게 떨어진 사건은 ‘깅가·만도 사건’. 범인집단이 독극물을 넣은 식품을 빌미로 7개 회사를 협박하며 일본 사회를 독극물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사건이었다.
아쿠쓰는 빠져나갈 도리 없이 사건부장이 지시하는 대로 범인집단의 뒤를 쫓고, 31년 전 감춰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존재의 모든 것을’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마음에 들어서 작가의 전작 중 이 소설 또한 높은 완성도라는 말에 찾아 읽게 됐다. 이것 말고는 따로 번역된 게 없기도 했고. ‘존재...’보다 훨씬 괜찮았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아주 약간은 있었지만 흠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불만스러운 부분 정도? ‘존재...’ 보다는 여러 가지로 더 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존재...’와 비슷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미결 사건이 있고,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 그 사건을 파헤치게 되는 (서로를 모르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해당 사건을 촘촘히 따져보고 조금씩 드러나는 (당시에는 놓쳤던 부분을 알아내거나, 시간이 지나니 입을 열기도 하는 등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어떤 식으로 뒤쫓는지 꽤 인상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사건을 다시 살펴보는 사람이 기자라는 점도 동일(이번에는 젊고 ‘존재...’는 은퇴를 앞뒀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르지만)하고.
문제 풀이-범인 찾기 과정만 놓고 본다면 (물론, 그것 말고도) ‘존재...’보다 더 긴장감과 긴박감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트 노벨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라이트 노벨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존재...’에서 다뤄진 청춘 남녀의 유치한 풋사랑 또는 추억놀이에 비해서는 여러 가지로 좋은 점들이 더 보인다.
다만, 그동안 기자로서의 자의식이 거의-전혀 없던 사람이 급작스럽게 투입된 사건에서 너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런 변화되는 부분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존재...’에서 등장하는 중년 기자의 뒤늦은 추적이 더 괜찮게 보이기도 하고.
달리 본다면 언론에 몸담고 있는 속물들이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수없이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급변이 얼핏 이해된다는 측면도 있긴 하다. 특종이라는 것에 눈이 돌아가면 (맛이 가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봤으니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기자들의 모습은 얌전하고 점잖은 축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실을 추구하다보면 본인의 생각과 본심이 드러날 때도 있으니 오히려-어쩌면 더 사실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쪽을 그리 잘 알진 못하니 이런 모든 생각이 그저 편견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언론이든 기자든 알권리 어쩌고 하는 것들의 본성이라는 게 굶주린 사냥개 이상은 아니라고 보고 항상 절반만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슷한 모양새면서 다른 부분도 분명하게 있는 이 소설과 ‘존재...’를 잘 섞어낸다면 더 대단한 게 만들어지진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작가의 노력과 능력에 달렸으니 다음에는 각각의 장점을 잘 다뤄내면서 어떤 식으로 성숙할지 조금은 기대하게 된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고 꽤 난리가 났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도 잘 모르면서 일본에서 벌어진 시효도 지난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고 읽진 않았지만 소설을 밑바탕으로 어떤 식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이 소설은 그 나름대로 말끔하게 사건을 정리해내고 있다. 내몰려지고 괜히 휩쓸린 이들의 서글픈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다뤄내고 있다. 그 주변에 대한 관심이 특히 인상적이다.
덮어져 있던 진실이 꺼내지고 그로 인해서 예기치 않게 일상을 위협받게 된 가해자며 피해자인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 걱정과 근심이 잘 느껴지면서 이 소설은 ‘존재...’에 비해서는 좀 더 젊은 혈기와 패기? 혹은 진실과 정의라는 것이 바로 세워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 믿음? 과 같은 것이 더 느껴졌다. 그런 게 있으며 가능하다는 양보할 수 없다는 감정이 꽤 컸다. 그래서일까? 그런 게 거의 사라진 ‘존재...’를 생각하면 세월의 흐름? 혹은 어떤 심정적인 변화가 생기게 된 뭔가가 있었는지 작가의 관심-내면-생각이 많이 달라진 느낌도 든다. 자연스러운 변화일까? 그게 아니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끝까지 진실을 쫓으려는 기자와 반대로 어느 순간에 그걸 멈춰버리는, 어떤 부담과 근심에 서둘러 마무리 지은 남성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누가 더 올바르냐는 걸 따지는 게 아닌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그리고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꽤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 부분이 무척 눈에 들어오고 나란 사람은 거기에 끝까지 매달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소설은 ‘존재...’와도 비슷하게 남겨진-휘말린 사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시선을 무척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고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이자 빼어난 능력 혹은 시선이지 않을까? 싶다.
무관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관련된 것도 아닌, 이게 다시 들쑤셔지면 자신의 삶과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쳐 어떤 식으로도 손해를 줄 수 있다는 걸 (절대 도움이 되진 않으리란 걸) 아주 예민하게 다듬어내고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
그런 점들이 있어 ‘존재...’와 비슷하면서도 꽤 다른 모양새고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둘을 겹쳐서 읽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떼어 놓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당연히 있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 진실을 내팽개쳐두는 것, 그걸 끝까지 뒤쫓는 것,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과 어느 정도는 만족하게 되는 최선이라 할 수 있는 결말까지 역작이라 말할 수 있을 완성이었다. 아주 끈질긴 완성이었다.
”『죄의 목소리』는 실제 사건 내용과 그 추적 과정을 놀랍도록 실감 나게 써 내려간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소재로 했지만 미스터리 소설의 정통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실제 취재 과정을 착실하게 따라간다. 많은 이들에게 기묘한 인상을 남겼던 ‘여우 눈을 한 남자’의 몽타주, 어린아이에게 녹음시킨 협박 테이프, 71통의 협박장과 81통의 도전장……. 사건이 남긴 흔적을 치밀하게 취재하여 사실 그대로 옮겼다. ‘구리코·모리나가 사건’을 아는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더없이 흥미로울 것이고, 사건을 모르더라도 이 거대한 사건 자체가 주는 압도감에 푹 빠지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은 사건 이면에 방치된 사람들의 ‘삶’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조명했다는 것이다. 범인 집단이 자취를 감춘 후 사건은 잊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작가는 ‘어쩌면 이런 삶이 있었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세상에 알려진 사건 이후의 이야기, 잊히기 쉬운 사건의 그림자, ‘미래’를 바라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사람과 삶’의 의미가 진하게 남는다.“
#죄의목소리 #시오타타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