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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평점 :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를 다시 읽을 때는 발표 순서대로 하려고 했다.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아주 틀리진 않았고. 그런 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가장 먼저 접했던 사건-이야기를 가장 나중에 다시 읽게 됐다. 일종의 역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번역 출판이 이뤄진 다음에 접하게 되어 별다른 느낌은 안 들지만 “평생 한 시리즈만 집필해온 끈기의 작가이자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답게, 2004년에 시리즈 ‘시즌 2’의 개막을 알린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의 출판 이후 두 번째 작품인 《지금부터의 내일》이 탄생하는 데는 장장 십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면 이 시리즈에 어떤 의미를 둔 사람이라면 얼마나 기다림이 길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을 이어가며 이 사건-내용 이후 다음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미완결의 완성이라는 것을, 제대로 된 끝맺음이 아니라는 아쉬움이 깊어진다.
작가는 이걸 끝으로 삶을 마감하리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속편을 생각하고는 있었다지만 어쩐지 이게 최종적인 끝맺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완성과 완결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의도대로 다음 이야기가 더해져도 상관은 없지만 이걸로도 충분한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묘한 기분도 든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다음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걸로 마무리 되는. 그럼에도 이뤄내는 완결을. 진짜 묘하다. 이 시리즈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엄청난 주목을 이끌어내진 못하고 있고, 아마도 일부 열렬한 애독자만 있을 것 같지만 항상 그리고 자주 잊지 못할 것 같고,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세월과 함께 쇠락해가는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 어느새 오십대에 접어든 탐정 사와자키는 사무실 문을 노크할 의뢰인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 날 중년의 은행 지점장이 탐정사무소를 찾아와 한 여자의 뒷조사를 의뢰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의뢰받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여자가 이미 사망했음을 알게 되지만, 의뢰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사와자키는 의뢰인이 근무하는 은행을 찾아갔다가 갑작스럽게 복면강도와 마주치는데…….
소설의 진정한 재미, 그것만을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라고 작가 스스로 자신했을 만큼 《지금부터의 내일》은 바로 다음 페이지조차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칙적이고도 박진감 넘치는 플롯을 통해 놀라운 소설적 재미를 자아낸다. 한 사건이 꼬리를 물듯 다른 사건과 이어지고, 실종과 추적이 쉴 새 없이 갈마들어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 것. 빼어난 플롯은 불필요한 수사가 철저히 배제된, 단단하고도 스타일리시한 문장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나는 문장을 읽고 싶어서 사와자키 시리즈를 기다린다”라는 미야베 미유키의 애정 어린 고백, “대사에 취하고 이야기에 매혹되었다”라는 한 독자의 서평은 한 치의 과장도 없음을 통감하게 된다.”
시리즈를 접해봤다면 익숙한 등장인물들이 간혹 등장해 반가움을 느끼면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점점 덩치가 커지는지 읽는 맛이 여전히 있다. 그리고 작가의 사망을 알고 있어 이걸로 끝이라는 섭섭함과 씁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이것으로 이 시리즈의 다시 읽기는 끝났다. 좀 더 곱씹으며 읽었어야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짧은 시기에 두 번을 읽었으니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낀다. 다음에 다시 읽을 생각을 할까? 아마도 그럴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부터의내일 #それまでの明日 #하라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