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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꽤 알려진 책이고,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라며 건네받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는 제목부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고, 옮긴이의 글과 저자의 서문, 그리고 목차 까지 순서대로 읽게 된다면 저자가 어떤 의도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읽어가면서 쉽게 구성하는 것에만 집중을 했는지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거나 오해를 하도록 만들어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생각이 들기도 하다.
저자는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이고 꽤 활약 중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활약보다는 문제만 만들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책이 괜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 되었다.
저자는 원래는 철학을 전공하였지만,
철학이 갖고 있는 고리타분함과 시대에 뒤쳐져만 가고 있는 정체됨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고, 그런 실망감을 갖고 있던 와중에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이었던 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방식인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뇌 연구와 철학(그중에서도 공리주의)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논의는 다양한 학문에서의 논의를 종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문들 사이의 벽을 허물며 논의하는 다른 이들의 방식과는 조금은 벗어나 있다. 그는 뇌 연구가 마치 신천지를 발견한 것처럼 많은 의문들을 해명해줄 수 있는 분야이고 이 분야에서 모든 의문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밝혀낼 수 있다는 논조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그동안 철학이 갖고 있었던 사변적인 방식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철학이 갖고 있던 오류들을 과학(더 정확히 말하면 뇌 연구)을 통해서 교정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의 논의는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에서 악의적인 부분이 엿보이고 있다. 철학자들의 통찰력 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사회성이 부족하고 별종들이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뇌 연구자나 과학자들에 대한 삶을 설명할 때는 얼마나 투철한 연구 정신을 갖고 있는지와 얼마나 멋진 인물들인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악의적인 부분이 엿보이고,
그의 시각 또한 철학과 과학 그리고 그와 인접한 학문들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가 아닌 과학에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게 생각된다.. 철학과 기타 학문이 전면에 부각되는 경우는 어떠한 객관성을 제시할 수 없는 부분인 도덕이나 정의와 같은 부분을 논의할 때만 적극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고, 나머지 인식이나 통찰력 또는 감정과 같은 것을 논의할 때는 얼마나 철학이 뇌의 구조적인 측면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했는지를 비판하고 있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서부터 이미 그가 철학에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리라 생각은 들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철학을 격하시키면서 반대로 뇌 연구에는 많은 것을 해명할 수 있는 비술처럼 접근하고 있다. 물론 이정도 수준으로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가 악의적으로 접근했으니 이정도로 악의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은 그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인용하는 철학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는데, 그가 논의하는 철학들은 대부분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논의하는 철학이면서도 과학과 연결되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의 철학들만 선별하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결정적으로 꺼내는 철학적 통찰력은 대부분 공리주의에 한정되어서만 풀어내고 있을 뿐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크게 하지 않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저자는 ‘나’라는 존재를 사회적 존재 혹은 계급적 존재로 파악하는 맑스(마르크스)주의 또는 유물론의 논의는 전혀 다루지도 않고 있고, 최근의 철학적 흐름(흔히 말하는 68혁명 이후의 철학)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이 열정을 바치고 있는 과학과 뇌 연구 분야에 관련되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 선별하여 논의하고 있다. 그의 논의에도 지나칠 정도로 악의적이거나 철학자들의 의견을 간략화 시키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같은 내용은 그의 저작을 읽지도 않고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의식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고, 자주 언급하고 있는 니체의 논의들도 많은 부분을 왜곡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 대부분을 오해되기 쉽도록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혹은 직접 읽지 않고 개론서들을 읽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의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며,
그의 논의는 철학자들의 입장을 자신의 생각에 맞춰버리거나,
혹은 뇌 연구에 더 비중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을 분이다.
그가 젊을 때 열정적으로 읽어낸 책들과 토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열심히 읽은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보지도 않은 것 같다.
원서에는 참고문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서에는 참고문헌이 없어서 그가 과연 어떤 책들을 참고하며 논의를 했는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꽤 거창하게 시작하는 그의 ‘나’에 대한 탐구가 말미로 갈수록 내용은 산만하게 되고, 결론으로 가서는 얼렁뚱땅 혹은 장난하듯이 무심히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을 갖고는 어디서고 학술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기분 나쁜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