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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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에서는 ‘지의 거인’으로 알려졌고, 국내에서도 그의 해박한 지식과 함께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서 무언가를 끝없이 습득하려는 그의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는 특정 학문에 몰두하고 있는 전문가이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교양인 혹은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 자신도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라는 식으로 자신을 표현했으니 아마도 큰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 같다.

 

그가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보다는 그가 어떤 지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보다 무언가를 습득하고 지식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에만 집중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를 제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그처럼 노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고,

그가 제시하는 방식으로도 읽기도 꽤 어려울 것 같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있어서의 ‘지식’은 기본적으로 ‘축적으로서의 지식’이고, 지식을 어떠한 관점에서 실천해야 하는지와 같은 철학적인 자세와 입장보다는 ‘지식’ 자체에 몰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과학적인 입장에서 지식을 바라보고 있고,

그런 입장으로 지식을 접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인문학과 관련된 분야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그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의 입장에 한편으로는 수긍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식의 접근과 축적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 지식들로 인해서 발생되는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심하고(혹은 언급하지 않고), ‘축적으로서의 지식’이 아닌 ‘전복의 지식(기존의 지식체계에 반하는 지식이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게 만드는 지식)’에 대해서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는 축적자로서,

그리고 지식에 대한 검토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잡은 것 같고, 그런 위치로서 보자면 그는 가장 탁월한 존재일 것이고, 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거나 관심이 가는대로 무언가를 읽어가는 것보다 그처럼 무언가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갖고 읽어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참고 : 생각해보면 그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자료를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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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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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알려진 책이고,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라며 건네받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나는 누구인가...’는 제목부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고, 옮긴이의 글과 저자의 서문, 그리고 목차 까지 순서대로 읽게 된다면 저자가 어떤 의도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읽어가면서 쉽게 구성하는 것에만 집중을 했는지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거나 오해를 하도록 만들어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게 생각이 들기도 하다.

 

저자는 학술 전문 저널리스트이고 꽤 활약 중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활약보다는 문제만 만들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책이 괜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 되었다.

 

저자는 원래는 철학을 전공하였지만,

철학이 갖고 있는 고리타분함과 시대에 뒤쳐져만 가고 있는 정체됨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고, 그런 실망감을 갖고 있던 와중에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이었던 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방식인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뇌 연구와 철학(그중에서도 공리주의)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논의는 다양한 학문에서의 논의를 종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문들 사이의 벽을 허물며 논의하는 다른 이들의 방식과는 조금은 벗어나 있다. 그는 뇌 연구가 마치 신천지를 발견한 것처럼 많은 의문들을 해명해줄 수 있는 분야이고 이 분야에서 모든 의문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밝혀낼 수 있다는 논조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며 그동안 철학이 갖고 있었던 사변적인 방식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철학이 갖고 있던 오류들을 과학(더 정확히 말하면 뇌 연구)을 통해서 교정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의 논의는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에서 악의적인 부분이 엿보이고 있다. 철학자들의 통찰력 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사회성이 부족하고 별종들이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뇌 연구자나 과학자들에 대한 삶을 설명할 때는 얼마나 투철한 연구 정신을 갖고 있는지와 얼마나 멋진 인물들인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악의적인 부분이 엿보이고,

그의 시각 또한 철학과 과학 그리고 그와 인접한 학문들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가 아닌 과학에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게 생각된다.. 철학과 기타 학문이 전면에 부각되는 경우는 어떠한 객관성을 제시할 수 없는 부분인 도덕이나 정의와 같은 부분을 논의할 때만 적극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고, 나머지 인식이나 통찰력 또는 감정과 같은 것을 논의할 때는 얼마나 철학이 뇌의 구조적인 측면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했는지를 비판하고 있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서부터 이미 그가 철학에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리라 생각은 들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철학을 격하시키면서 반대로 뇌 연구에는 많은 것을 해명할 수 있는 비술처럼 접근하고 있다. 물론 이정도 수준으로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가 악의적으로 접근했으니 이정도로 악의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은 그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인용하는 철학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는데, 그가 논의하는 철학들은 대부분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논의하는 철학이면서도 과학과 연결되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의 철학들만 선별하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결정적으로 꺼내는 철학적 통찰력은 대부분 공리주의에 한정되어서만 풀어내고 있을 뿐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크게 하지 않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저자는 ‘나’라는 존재를 사회적 존재 혹은 계급적 존재로 파악하는 맑스(마르크스)주의 또는 유물론의 논의는 전혀 다루지도 않고 있고, 최근의 철학적 흐름(흔히 말하는 68혁명 이후의 철학)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이 열정을 바치고 있는 과학과 뇌 연구 분야에 관련되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 선별하여 논의하고 있다. 그의 논의에도 지나칠 정도로 악의적이거나 철학자들의 의견을 간략화 시키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같은 내용은 그의 저작을 읽지도 않고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의식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고, 자주 언급하고 있는 니체의 논의들도 많은 부분을 왜곡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철학자들 대부분을 오해되기 쉽도록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혹은 직접 읽지 않고 개론서들을 읽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의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며,

그의 논의는 철학자들의 입장을 자신의 생각에 맞춰버리거나,

혹은 뇌 연구에 더 비중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을 분이다.

 

그가 젊을 때 열정적으로 읽어낸 책들과 토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열심히 읽은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보지도 않은 것 같다.

원서에는 참고문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서에는 참고문헌이 없어서 그가 과연 어떤 책들을 참고하며 논의를 했는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꽤 거창하게 시작하는 그의 ‘나’에 대한 탐구가 말미로 갈수록 내용은 산만하게 되고, 결론으로 가서는 얼렁뚱땅 혹은 장난하듯이 무심히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을 갖고는 어디서고 학술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기분 나쁜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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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향하여 - 에스프리 누보 총서 1
Le Corbusier 지음, 이관석 옮김 / 동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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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하여’는 근대 건축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저서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기존의 건축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도록 선동하고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건축과 관련된 이론서들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론서들과의 차이점을 확연하게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건축에 관한 문외한인 사람들도 읽어보면 어째서 파격적인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색다른 글쓰기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내용에서 그림들을 토대로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기본적인 입장은 산업사회(근대사회)는 이전의 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이고, 지금의 대량생산 사회에서는 기존의 건축에 관한 입장을 갖고 있어서는 시대에 뒤쳐질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쳐짐으로 인해서 더 많은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보다 혁명적인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고,

그 자신의 선언과도 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건축의 사고방식을 전달하고 있다.

 

마치 건축에서의 테일러주의 혹은 포드주의자와 같은 느낌이 들고,

건축을 더 이상 거창한 무언가를 짓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시야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혹은 건축의 가장 핵심에 다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핵심은 ‘쉼’이다.

 

특히 그는 새로운 도시계획의 필요성과 함께,

도시화와 노동자의 밀집화로 인한 주거(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품들의 대량생산과 같이 주택도 대량생산이 필요하고, 비행기와 자동차, 대형 여객선을 예로 들어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건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주거(주택)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1900년대 초에 주장한 그의 말에 여전한 설득력이 느껴질 정도이니, 당시로서는 그의 주장(또는 선동)이 매우 파격적이었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교육제도에 대한 집요한 비판은 커다란 논쟁을 만들어 냈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프랑스 인은 어떤 분야에 있던지 파격적인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는지 르 코르뷔지에도 매우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뜀뛰기를 하듯이 빠른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서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주장인지 선동인지 혹은 메모들의 묶음인지 헷갈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축과 관련된 사람들이야 보다 더 그의 의견을 잘 파악할 것 같지만,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의 글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도 읽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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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찰스 프레드 앨퍼드 지음, 이만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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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흥미를 끌게 만드는 제목과 함께,

그 흥미를 (조금은) 좌절시키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찰스 프레드 엘퍼드의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는 우리가 흔히 말하고 생각하는 ‘악’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는 탐구를 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고전들과 실제 있었던 (끔찍한)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실제 각종 범죄를 저질렀던 재소자들의 면담을 통해서 ‘악’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엘퍼드는 기본적으로 멜라니 클라인과 그와 관련된 연구자들의 이론적 틀을 갖고 ‘악’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개인적으로는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기도 하고, 저자인 엘퍼드도 클라인의 이론적 성향을 특별히 설명해주지도 않고 있어서 조금은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저자인 엘퍼드는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는 ‘악’에 대한 편견을 해체시키고 있고, ‘악’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두려움’ 혹은 ‘모호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기존에 우리가 상식처럼 생각하고 있는 ‘악’이라는 범위도 최대한 확장시켜서 ‘악’에 관한 새로운 입장을 갖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많은 것들이 악이고,

그 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남’ 또는 (‘지배’가 아닌) ‘받아들임’ 또는 ‘승화’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는 ‘악’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혹은 우리 자신이 ‘악’과 관련 없는 거리감을 갖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악’이 우리를 지배할 것 같다는 방식의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전반적으로 그가 면담했던 재소자들의 의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그 관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악’을 대했었고,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논하고 있다.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이론적으로 많은 부분 부족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읽어나가는 것에 조금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의 분석들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이해가 조금은 안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그가 밀그램의 연구 결과와는 달리 인간의 ‘악’한 행동이 하나의 구조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수동적인 입장만을 갖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 행동을 자발적으로도 할 수 있다는(즉, 능동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갖고 있을 그 ‘악’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보다 긍정적인 혹은 배출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색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논쟁의 여지가 많기도 하고, 그의 분석이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또한 최근 들어서 다양한 잔혹한 범죄들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악’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엘퍼드의 논의에서 그가 기본적으로 ‘악은 두려움이다’라는 논조로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결국 그는 ‘두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어째서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리고 두려움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그는 공포와 악이라는 것을 두려움으로 말을 바꾸는 것일 뿐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 : 번역자는 ‘향락의 전이’를 번역하여 엄청난 악명을 갖고 있는 분인데, 왜 악명을 갖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문장 번역이 엉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원본과 대조할 정도의 수준 있는 독자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꽤 알려진 학자인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이름을 (영어식의) ‘노버트 엘리아스’라고 성의 없이 번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엘퍼드의 책이 번역 및 출판되기 이전에 ‘문명화과정’과 같은 책들이 이미 번역되어 그의 이름을 (어느 것이 정확한지를 떠나서) 적절하게 기재할 수 있었는데도 저런 식으로 번역을 해버렸다는 점에서는 순전히 번역자의 성의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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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탐사와 산책 2
김석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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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게 되었고,

아마도 그 관심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관심 때문에 책방에 가게 되면 건축과 공간 그리고 디자인과 관련된 책들이 모여져 있는 곳을 들리게 되었고, 그곳에 꽂혀져 있는 책들 중 몇 개의 책들을 뒤적거리고 그 책들 중 가장 읽기가 쉬울 것 같은(혹은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구하게 되었다.

 

김석철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지 못하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그리고 글에 대해서도 잘은 모른다.

나름 유명하신 분인 것 같은데,

유명세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어차피 건축에 대한 문외한이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도 않지만.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은 그가 이것 저곳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으게 된 책이고, 그렇기 때문인지 조금은 건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의 글이기도 한 것 같다.

 

평소부터 그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축가들 그리고 20세기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탁월함을 보였던 건축가들의 대표작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그에 대한 비평을 찾아낼 수 있지만 전문적이고 세밀한 소개와 비평이기 보다는 일종의 관광가이드와 같은 소개로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 짓고 있다. 물론, 더 많은 것을 알려면 알아서 더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건축의 문외한이면서도 한두번 들어본 사람들도 있고,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어쩐지 한번 보았던 것 같은 건물들도 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통해서 조금은 그 건물에 대해서 그리고 20세기 건축에 대해서 조금은 달리 보이게 되는 것 같고, 지금도 걷고 있는 주변 건물들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자신이 어떻게 건축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솔한 글은 꽤 인상적이고, 간간히 건축가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의 그의 감동어린 회고를 읽을 때는 더 많이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도통 느껴지지 않고 있다. 그냥 일반 건물에 비해서 특이하다는 느낌이거나 멋지다는 느낌만이 들고 있을 뿐이다.

 

건축이 사회에 어떤 모습을 보여야(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각각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그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철학 또는 시각이 하나의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생각이든지 자신만의 입장을 갖고 그것에 대해서 항상 믿으면서도 의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꽤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은 건축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경제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경제적인 자유로움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았겠지만 꽤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부담감이 있는 사람들은 관심을 거두라고 말하는 뜻은 아니다. 그 경제적 부담감이라는 것이 없어질 때 얼마나 창조력이 발휘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참고 :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이후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하여’를 읽고 있는데, 김석철은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과 ‘주택(주거)’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혹은 건물의 건축 자체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게 된다면 르 코르뷔지에의 보다 중요한 점들을 놓치게 된다는 점에서 큰 실수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한국사회와 같이 주거와 주택과 관련된 부분이 매우 중요한 사회를 그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그가 놓친 것들은 매우 아쉬움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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