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로마 제국 쇠망사 - 한 권으로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나모리 시게나리 엮음, 한유희 옮김 / 북프렌즈(시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 제국 쇠망사>(총3권, 1776~1788)를 가나모리 시게나리가 한권으로 엮었다. 하지만 세계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로마사의 고전이니 최고의 역사서니 하는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광인이었다는 네로 황제나 영화로 종종 소개되는 검투사에 대한 약간의 말초적인 관심뿐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꼭짓점 역할을 하며 웅장하게 서있던 콜로세움이나 무너져버린 폐허일망정 로마의 번영을 느껴볼 수 있었던 포로로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다 관심 밖이었던 로마사를 통해 서구의 문화에 대한 약간의 교양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주황색 표지를 넘기자 로물루스 형제로부터 시작된 로마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2200년 이상 유지되었던 로마의 역사를 한권으로 엮다보니 다분히 연대기적인 성격이 강했다. 몇 년에 누가 뭘 했고, 어떤 전투가 있었고 하는 식의 내용이 연표처럼 줄을 선다.
 로마사, 그것도 건국 초기의 내용은 전혀 문외한이니 그런 나열이 의미 있게 다가오지 못한다. 로마에 박식한 전문가들이야 에드워드 기번의 원문을 읽었을 테지만 로마사에 고만고만한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건국 초기의 세세한 전황이 제대로 와 닿을지 의문이다. 전문가에게는 너무 쉽고, 일반인에겐 너무 방대한 서술방식이 아닐까.

 하지만 책장이 조금씩 넘어갈수록 역사서가 갖는 묘한 매력이 드러나는 것 같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진보와 퇴보의 방향을 결정짓는 키워드들을 하나둘 씩 발견하게 된다.
 권력, 명예, 돈, 여자(남자) 할 것 없이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불렀고 자신의 생명마저도 위협했다. 무소불위의 자만은 상대방을 자극해 전쟁과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쾌락은 인간의 열정을 피폐하게 했으며 국민을 지치게 만들었다.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어 자신을 공격했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현실의 기틀위에 번영을 누리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혁명을 통해 기존을 틀을 깨부수며 급변했던 시기도 있었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는 이런 점이 역사를 회고하게 만드는 이유이지 싶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역사는 반복을 멈추지 않았고 인간의 욕망도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의 역사는 인간욕심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 명맥을 같이 했다. 전쟁과 폭동, 기아와 질병, 살인과 방화, 우리의 욕심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여전히 위태로우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라는 이름에 깔려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들어앉은 욕심의 부피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나간 역사가 말해주듯 모든 시작은 인간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시작되었으므로.
 파란만장했던 로마의 역사 앞에 아슬아슬했던 우리 현대사가 자꾸만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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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를 대놓고 차별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차츰 깨달아 갔다. 나는 늘 하나의 풍경인 것 같았다." (p19)  
   

 그는 스스로를 '풍경'으로 묘사했다. 유심히 보지 않고는 그 존재감마저 모호한 연극무대의 소품이 되어 버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부족할 청소년 시기를 장애와 씨름하며 보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골형성부전증을 앓았다. 약간의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졌고 몇 번의 골절과 수술을 거치면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들어간 재활원에서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보살핌으로는 결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재활원에서 고등부로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특수시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했고 힘겨운 싸움 끝에 진학에 성공했다.

 일반 고등학교는 재활원이나 특수학교와 같이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물론 아니었다. 평범한 공간 속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동안 누려왔던 편리함과 외부적 지원을 스스로 벗어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주변의 시선과도 직접 맞닿으려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에 당당하게 맞섰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별난 시선과 싸우며 세상과 부딪혔다. '슈퍼 장애인'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였고 모든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친구 명륜이를 통해 알게 된 인간관이 인상 깊다. 공부에는 별 관심도 없고 게임과 운동밖에 하는 것이 없어 보였던 그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 혹은 그 이외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람 사이의 융화는 머릿속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와 지식을 몸에 익히거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한 헌신과 배려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세상에 대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헌신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일수록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명륜이와 함께 보낸 고교 생활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했고, 사람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p106)  
   

 그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던 고등학교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드넓은 캠퍼스와 수많은 건물을 오가는 대학생활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장애인에게는 모든 것이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움직였다.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나 '이동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를 계기로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들어갔다. 이 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와 나의 부모가 져야 할 전생의 '업'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 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 치료사나 사회복지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장애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등이 전 세계의 장애인 운동과 사회과학적 연구들이 성취한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p129)  
   

   
   "그랬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장애인이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생물학적 손상은 이미 그 자체로 몸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결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손상된 몸에 부여된 사회적 차별을 극복한다는 의미였다. 전공 책을 옆에 끼고 다니고, 높은 학점과 토익 점수를 따서 '정상적인 사회'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장애 학생들은, 그때야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다." (p139)  
   

 그는 자신의 장애를 또렷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닌, 비장애인의 구분되는 수직적인 관계도 아닌 그저 '장애인'일 뿐이었다.
 장애에 대한 그의 자각은 그 어떤 선언보다 가슴깊이 와 닿는다.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건 노인이건, 학벌이 높든 낮든,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마주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희망이 현실을 왜곡할수록 자신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져갔고 급기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져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결국 과거나 미래, 상대방과 비교하며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만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 '현실'이라는 가르침이 날카롭게 날아온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장애인들의 각성에도 불고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이방인 취급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불행 속에 갇혀 지내는, 항상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특별한 존재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시선이 장애인을 더욱 움츠려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를 더욱 고립되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분리된 특수교육은 그들의 사회진출을 영원히 차단할 뿐만 아니라 (일부겠지만)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나 회계부정도 여전히 존재한다. 재활원 방문을 개인의 선량함을 과시하는 공연장으로 이용하는 곳도 적지않다.
 우리는 사랑으로 나서는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우월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순과 비합리를 숨기기 위해 은연중에 장애인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너와 나, 혹은 장애인에 대해 더 이상 둘러말하지 말자. 장애인은 장애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마주하자. 장애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일종의 각성제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회의 벽을 과감하게 깨뜨린 그에게도 아무런 갈등이나 회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자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제는 제법 '잘나가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싶어 하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회적 차별과 장애인의 인권을 외치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의 벽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의 중첩된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은 그 모든 것에 일정한 책임감은 느끼지만 어느 것에도 공감하지 않은 채 서로를 회피하고 있었다. 장애인인 나는 일반적인 이십대로서의 삶에 공감하지 않으려 했고, 대학을 다니는 이십대의 나는 장애인인 내 존재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태도는 내가 그 모든 정체성이 겪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했지만, 어떤 정체성도 진심으로 살아낼 수는 없게 했다." (p256)  
   

 어쩌면 쿨함과 쫀쫀함, 장애인과 비장애인, 슈퍼 장애인과 인간 김원영 사이에서 선 그의 갈등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지 싶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면을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부른 이유를 철저하게 통감하게 된다. 장애 문제를 떠나 인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나와는 열 살 가까이 어린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크고 우람해 보인다. 그의 앞길에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열린 마음을 우리 사회에 기대해본다.


* p.s
 참, 그의 책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여섯 개로 구분된 각 장이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엮여있어 부드럽게 이어진 언덕처럼 자연스럽다. 한두 가지 소소한 일상의 끈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이 여느 글 못지않다.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독서 때문인지 글을 꾸려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번잡하지 않은 글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고 자유롭지 못했던 육체는 정신의 자양분이 되어 글로써 날아다녔다. 그의 정신 못지않게, 그의 글에서 또 한 번의 감동을 맛본다.
 화이팅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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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난해하다...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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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옛날에 한번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자고 일어나니 바퀴벌레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던 주인공의 이야기로 기억되는데 읽기는 수월했지만 이해는 어려웠던, 꿈틀거리던 벌레의 기괴함만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읽었던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통해 고전에 대한 철학적 주석을 듣게 되었다. 여기서 설명한 철학적 의미를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 고전이 갖고 있는 철학사적 의미라든가 이야기 속에 감춰진 속뜻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이런 자신감으로 카프카의 <변신>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하지만 카프카의 문체가 그런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모호한 문장들이 책읽기를 방해한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긴 문장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책읽기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실패인가. 알 수 없는 암호문처럼 다가왔던 <변신>은 페이퍼를 채운 긴 문장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변신>을 수도 없이 읽었다며, 그 깊이와 감흥을 이야기했던 책이 기억난다. 하지만, 난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좋고 나쁨도 없이 그저 어지럽고 혼란스러움만이 남았을 뿐, 벌레로 변한 자신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그럴싸한 추천 글도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는 이런 고전 앞에서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까지 보인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절벽 앞에 와 닿은 느낌이랄까. 카프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판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내 독해력 수준을 판결 받는 것처럼 어쩔 줄 몰랐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글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마찬가지. 번역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이 또한 '모르쇠'가 대부분인 것을 보아 번역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카프카 자체의 문제일지 모른다는 '건방진' 생각마저 든다.
 그는 상당히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반발을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카프카는 그의 억압된 정서를 글을 통해 표현했고 그래서 소심하고 나약한, 외부의 권위와 힘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약한' 인간상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설명을 듣자니 그의 난해함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물론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모호한 <변신>과 난감한 <판결>을 뒤로하고 다시 <시골의사>에 도전해본다. 하지만 역시...
 책은 <학술원에의 보고>, <굴>, <법 앞에서> 로 계속 이어지지만 난해함으로 끊겨버린 맥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아, 카프카여! 그대는 나에게 라면 받침대나 취침용 자장가 역할밖에 할 수 없단 말인가. 부릅뜬 그의 눈이 내 심금을 긁고 간다.
 문득 어느 과자 광고의 카피가 생각난다.
 "아 ~ ○○○, 언젠간 먹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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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폭력사회 - 폭력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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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볼프강 조프스키는 말했다. 인간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를 형성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질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만드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유지하는 것이지 않던가! 기존의 질서에 방해되는 일탈자를 구별해내기 위해 규율이 만들어졌고 공익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사람들을 억압했다. 가중되는 억압은 폭력으로 변형되어 우리를 짓눌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이 필요했다. 결국 육체적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와 질서가 폭력을 만들었고 이것이 다른 폭력을 유도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특히, 폭력의 해방구로서의 질서가 아니라 질서의 강요로 인해 폭력이 태어났다는 말이 인상 깊다. 오랜 시간 버텨온 우리사회의 금기를 들켜버린 것 같은 조바심마저 들게 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법률과 무기가 만들어졌지만 이 또한 거대한 조직에서 소수에게 행할 수 있는 폭력의 한 종류는 아닐까. 본인의 자유 의지와 상과 없이 타인의 논리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지 싶다. 순간, 무감각하게 살아온 우리의 일상이 억압과 폭력으로 둘러싸인 것 같이 느껴진다.
 또한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도 폭력을 유도하는 원천이며, 그 결과라고 말한다. 불완전한 육체에 영속성을 주기 위해 각종 문화가 탄생되고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것만 같은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자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탈바꿈해 버린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던 것들이 어쩌면 폭력의 잔영일수도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와 아침에 타고 왔던 자동차 역시 노동이라는 집단폭력의 한 결과물일수도 있고 가족 간의 따뜻한 대화역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는 사실!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기계처럼 일했지만 사소한 잘못에도 생활을 위협받았다.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동료와 후배들은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고 책상위에 수북이 쌓인 문서는 모처럼 잡은 가족 나들이를 방해했다. 회식은 침대에 몸을 맞추듯 주어진 금액을 넘지 않아야했고 보이지 않는 눈치는 술잔은 무겁게만 만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조금은 과장되게 보일수도 있지만) 일상이 어쩌면 거대한 폭력의 한 조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물론 이런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이면에 감추어졌을지 모르는 폭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책은 폭력의 원리를 기본으로 무기, 격정, 불안, 고문, 광기, 사형, 전투, 사냥, 학살, 파괴 등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차분하게 분석한다. 폭력의 원인과 결과, 여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고통을 차례로 설명하고 인간 심리 깊숙이 숨어있는 무의식의 습관들을 철저하게 까발린다.
 각종 계략과 무기, 고문을 통해 사람을 죽이고 신체의 일부를 유기했다. 사형과 전쟁이라는 공인된 살인을 통해 군중을 자극했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폭력 레이스는 내 감각을 무디게 점점 만든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저자거리의 휴지조각처럼 하찮게 느껴지고 그 의미마저 모호하게 다가온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불편함이 눈을 거북하게 만들었고 잔혹한 폭력 영화에 열광하는 오늘날처럼 내 몸의 심장도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멈출 줄 모르는 폭력의 홀로코스트에 현실이라는 완충재가 없었다면 책읽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폭력의 인과관계와 그 잔혹함이 무섭게 느껴진다. 어쩌면 과거 우리의 정치사도 이러한 길을 걸어왔기에 남의 일처럼 흘려들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협박과 폭행, 감금과 고문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아 왔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우리를 괴롭혔고 대화와 절차를 무시한 주먹구구식의 행정이 세상을 뒤덮었다. 이렇게 삐뚤어진 톱니바퀴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것 역시 폭력이다.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미군과 중동지역의 관계를 연구하는 전쟁 전문가나 인간의 폭력성에 관심을 갖는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인간 이면에 감추어진 폭력성을 관찰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불안, 절망, 고통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해봄으로써 폭력의 영향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싶다. 물론 이런 체계적인 접근도 폭력의 근원적인 원인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확대되는 것을 막아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나친 하드코어는 책 읽는 목적을 의심케 했다. 피가 낭자하고 사지가 날아가 버리는 참혹함이 일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심지어 폭력의 잔혹함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확인하고 끄집어내는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인문학, 조금은 낯설고 생소한 부분도 있었지만 자칫 평범하고 무의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삶의 부분들을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보는 토대가 될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이해관계에만 집중했던 신경을 좀 더 넓은 곳으로 확장시켜보면 어떨까. 언덕에 올라 숲을 보듯 인문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인문학의 진정한 힘은 일상과의 적당한 거리감에서 오는 통찰에 있지 않을까 싶다.


- p.s.
 번역의 매끄러움은 늘 감탄스럽다. 번역이나 외국어에 특별한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이 좋은 번역인지 느끼게 된다. 저자의 의도를 넘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최대한 낮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역자의 능력이라 보고 싶다.
 <폭력사회>는 외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과 깊이가 책 전반에 가득한 것 같다. 저자의 냉철한 분석력도 돋보이지만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 전달해놓은 번역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두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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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4-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리뷰 괜히 읽었는데요. 사고 싶어집니다.
 

읽자, 읽자.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책과 마주하는 시간을 늘리자.
아니, 늘려야 한다.

오늘 알라딘에서 <폭력사회>라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제목의 책이 한권 배송됐다.
책 아래엔 [알라딘증정] 도장이 , 뒤에는 [비매품/서평단]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얼마 전에 '알라딘 서평단'으로 선정되었고, 4월부터 일주일에 한두 권씩 신간서적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 놈이 오늘 도착했다.
평소에 소설이나 산문집을 주로 읽은 터라 인문학 관련 도서는 조금 생소한데
이렇게 받고 글까지 써야 된다고 하니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일은 벌어졌으니! 어쩌면 이를 통해 내 인문학적 시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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