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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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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는 요새 TV에 무척 많이 나온다. 곧 있으면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도 진행할 모양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부럽다.

 언니는 아픈 독설을 날리지만 대단한 여자야!! 나의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었어. 책임져!!어쩔껴!!

 

오늘은 tvN에서 특강을 하더라. 주제어는 “드림워커”, “드림 에이지”다. 실제 나이나 정신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때가 드림워커가 되는 때이고, 그 때부터 나이를 매기면 드림 에이지가 된단다. 김미경 본인의 드림에이지는 35세부터 세어서, 그러니까 이제 14세란다. 보아도 14세의 드림에이지, 박지성은...20세쯤.

 

사실 그녀의 책 <언니의 독설>을 읽을 때는, 그래, 성공하고 나니까 글도 쓰고 자랑하고 싶을 만하네. 노력한 게 보이네. 정도의 책이구나 했다. 그리고 읽고 난 후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고민거리만 실컷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난 그 동안 참 깊은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더랬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애 둘 키우느라 너무 힘들어서. 변명거리는 많다. 애 둘 낳고 키우고 드디어 밤중 수유가 끊기면서 나는 불면의 밤에서 벗어났고, 불면증이 뭐지? 하면서 느긋하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불면의 밤을 며칠 지새우게 되었다.

내 불면의 밤은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다. 악몽도 꼭 꾸던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내 불면의 레퍼토리는 임용고시 면접 시험 탈락이다. 꼭 그 장면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 1차에 붙었다. 5명 뽑는 시험에서 4등으로 붙었더랬다. 그런데 2차 시험 세 가지 중에서 논술, 수업 실기를 잘 치르고 3일째 마지막 날, 면접 시험에서 그만...입이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듯이 그 면접 시험 문제는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서 잊히지도 않는다. <교사가 수업 외에 해야 할 일 5가지를 말하시오.>

아, 쉽네? 말라붙은 입 속에서 침을 끌어모아 혀에 윤기를 더하고서 세 가지를 죽 나열해갔다. 나 기간제 경력도 1년 넘게 있는 사람이거든? 내가 그 동안 고생했던 거, 다 선생님 되려고 해 온 거거든? 그러니까, 선생님이 할 일이 말이지...

그런데 네 번째에서 막힌 거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머릿속이 진짜 하얗게 텅 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2차에서 떨어졌다.

면접관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답답한 표정을 하는 나.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거미줄에 꽁꽁 묶여버린 한 마리 나약한 곤충.

<시시각각 다가오는 거미의 위협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해질 즈음이면 나를 옭아매던 그 공포는 사라지고 나는 5가지의 대답을 시원하게 끝내고 홀가분하게 시험장을 나선다.> 는 장면을 억지로 상상해내지 않으면 그 밤은 진짜 돌고 돌고 도는 불면의 밤이 되는 것이다.

 

그래, 김미경의 책을 읽고 내가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내 안의 깊은 우울도 슬며시 고개룰 드는지, 오늘 낮에 mbc에서 <廣大戰>이라는 판소리 명창 대회를 하는데, 심청가 심봉사 눈뜨는 대목도 슬프고 춘향이 옥중가 대목도 슬프고, 심지어 흥보가 박타는 대목도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판소리 장르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그렇게 다채롭게 깊숙하고 절절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토해내는 명창들도 대단하다.)

 그래서 <언니의 독설>은 서른 여덟을 맞이하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할 화두를 던져주긴 했으나, 어두운 기억, 불면의 밤을 시작하게 해주었기에 그렇게 좋게 인식되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TV특강 하는 걸 보니 독하게 살라는 책의 취지는 있었으나, 주제가 <꿈>으로 바뀌면서 무언가 희망을 전달해주는 기분 좋은 개념의 특강이어서 김미경 언니야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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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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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2권이 나온 지가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아직도 유효하며 잘 익은 막걸리마냥 마실수록 더욱 뒷 잔을 거푸 들게 하는 걸걸한 매력이 있다.

1권이 나왔을 때 친구들이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남도의 땅끝 마을 답사를 대학 졸업여행으로 기획했을 만큼 그 책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좋은 길라잡이의 역할도 했었다. 1권의 여흥을 이어받아 지금은 7권까지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 많은 답사 코스 중에서 2권을 골라 들었다.

2권의 답사 코스는 지리산 부근, 경주, 운문사 등 내가 사는 부산에서 가까운 곳도 있고 강원도 철원, 정선과 민통선 부근 철원 등 먼 곳도 있다. 그리고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아도 부산에서 접근하기 힘든 전라도 부안과 고부 등지도 2권 답사 코스에 실려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 책은 책장을 넘겨보면 그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가 본 곳과 못 가본 곳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때론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여행 앞머리에 슬쩍 띄운 농 하나.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모두 즐길 권리가 있는 탁족. 작자 미상의 <삼복탁족도>를 잘 설명한 유홍준의 글에는 잔잔한, 아니 포복절도할 해학이 녹아 있다.

여기서는 고고한 기품 대신 질펀한 물놀이의 흥겨움이 강조되어 있다. 세 쌍둥이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은 분명 보신탕일 것이며, 탁족의 경지는 발을 닦는 것을 넘어서 ‘기역받침을 지읒받침으로 바꾸는 차원’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탁족은 체모와 격식과 규범으로부터 홀연히 벗어나는 감성적 해방의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16

 

시작부터 한바탕 껄껄 웃음을 선사하신다.

 

위치 설정에서부터 다소 드라마틱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영남의 정자들 중에서 ‘농월정’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곳이다. 나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정자. 월연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너럭바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계곡 건너편 저쪽으로 바짝 밀어붙여 세워진 농월정은 유홍준의 호기로운 설명으로 내 기억에서 다시 끄집어내어졌다. 움푹한 바위 웅덩이에 안의마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쏟아부어 진달래 꽃잎이나 솔잎을 계절따라 띄우고 한바가지씩 퍼마셨다던 영남대 한문학과 학생들의 “풍류”를 나도 언젠가 한 번 실행해 보아야 할 텐데...

 

아쉬움을 뒤로 접고 호사스런 글솜씨로 나를 이끄는 유홍준 교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번에 만난 곳은 영주의 부석사. 나는 부석사를 여러 번에 걸쳐 만났다. 호젓하게도 거닐어 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도 걸어봤고, 아이들과 떠들썩하게도 다녀봤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석사는 새벽녘 호젓하게 걸었던 부석사이다. 새벽 이슬 내려앉은 어둑신한 사과밭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경건한 마음을 담고 올라선 경내에서 저절로 우러러 보여지던 무량수전. 그리고 살짝쿵 걸쳐진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장대한 산맥의 너른 품. 내 짧은 글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었는데, 유홍준 교수도 그러했는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한 편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무치는 마음. 그도 느끼고 나도 느낀 바로 그 마음이다.

 

내가 분명히 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유홍준은 곳곳에서 잡아내고 있다.

운문사며 석굴암 등등.

가까운 곳이라 자주 찾았던 곳인데도 내가 본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일제 시대의 해체수리와 1963년의 보수공사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게 하고 신라인의 과학에도 여러 발 못 미치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바보짓을 일깨우는 석굴암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했다.

석굴암이 아니라, 수굴암, 암굴암, 전굴암이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체험하고 싶다면 일독을 강추한다.

그리고 미학자의 안목으로 수려한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나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석불사 석굴의 조각을 보면서 그가 토해낸 감탄을 보라!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기품이 중심을 이루면서 10대제자상의 강렬한 리얼리즘이 포진하고 있는가 하면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의 문수·보현, 제석천·범천이 얇은 돋을새김으로 환상적·이상주의적 자태를 보여주며, 11면 관음보살은 여지없는 ‘미스 통일신라’로 석면을 뛰쳐나올 듯한 자세로 다가온다.....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내가 “보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아서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때의 경험이었다. -234

 

국토박물관에 지천으로 널린 볼거리, 느낄거리들을 맛깔나는 해설로 가득히 차려놓은 유홍준 교수의 책.

살아 있는 답사 안내서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터벅터벅 걸어... 멀고 긴 길을 걷게 되면 이 책 한 권을 (아니, 시리즈 모두를) 턱 하니 건네주고 잘 다녀오라고 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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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좀 하십니까
노성진 지음 / 멘토프레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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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좀 하십니까>

 

우스개 소리 하나가 떠오른다.

상과대학 한 강의실에 엄숙함이 감돈다. 중간 고사 당일, 조교가 바야흐로 시험 문제를 칠판에 적으려는 순간이다.

학생들은 이른바 “족보”에서 콕 집어 공부했던 그 문제가 나오길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다. 그 문제는 바로,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모두들 레이저를 쏘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염원을 모아 조교의 손 끝에 초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조교가 쓴 첫 글자는...“도..”

잇새로 장탄식이 튀어나온다. “아...망했다.”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학생들은 끈기 있게 쳐다보고 있다.

그러더니, 곧바로 눈썹 휘날리며 답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도! 대! 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물음의 명제가 나오면 그 물음에 “도!대!체!”를 붙여 읽는 습관이 들었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 이 책의 제목도 물음표이기에 붙여 읽어 봤다.

<도!대!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 전공의 대학에서 한 번쯤은 시험에 나왔을 법한 문제이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디자인 박사학위까지 받고 실무 경험도 다양한 백전노장 작가가 어느 날 대면하게 된 이 문제. 날카로운 비수의 날을 품은 그 질문 앞에서 우리의 작가는 성실함을 다해 답변해 주었다. 힐긋 던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 한 권이면 성실함을 넘어 우직함을 보여 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을 경원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미술 전공자들은 색채 감각, 균형감, 통찰력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옷차림 하나만 보아도 대번에 표가 난다. 내 친구 중에 다리가 유달리 짧은 미술 선생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단을 접어 입어도 다리 짧은게 표가 안나고 ‘나도 저렇게 입어봤으면...’싶을 정도로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한다. 내가 하면 촌스러울, 아방가르드하게 천연 염색된 물빛 머플러도 그녀가 색깔 맞춰 입은 티셔츠에 척 하고 두른 모습은 패션 화보의 정석,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노하우가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녀은 “그냥 되는 대로 입는 건데.”하고 쏘~쿨 하게 대답한다.

아~ 부러워라.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풀어놓은 술술 잘 읽히는 수필 형식의 글들을 읽어 보면 그들-미술 전공자들-의 노하우는 분명, 있긴 있는가 보다,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작가가 쓴 단어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말-풍윤함과 허허로움.

대조적인 뜻을 가진 단어들임에도 괜시리 묘하게 어울리면서 한 줄 안에 아울러 쓰이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공간 디자이너 노성진.

그의 글에서는 풍윤함과 허허로움, 그리고 인문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세련되고 자로 잰 듯 반듯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디자이너 라는 이름을 달았는데도 그의 이미지는 풍윤함과 허허로움의 사이에 있다.

 

광나루 한강변 작업실에서 양말을 벗어 맨발로 바닥을 밟고, 격식을 차린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주위를 말끔하게 치웁니다. 그리고 유리작업대 앞에 앉습니다. 이 방식은 나의 아주 오래된 버릇입니다.-36

 

테헤란로 부근의 대치동 뒷골목에 있던 오래된 양옥집을 카페‘하우’로 재탄생시킨 그가 감성노트에 남긴 글을 읽었을 때는 그가 건축 디자이너인지, 문인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그는 참으로 감수성이 대단한 사람이다. 꽁지머리 늘어뜨린 이외수만 감수성 있는 사람인가, 어디.

처갓집이 있는 여주 용담리에 몸 담았던 시절이 그대로 그에게로 와 안겨 체화되어서인지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흙을 품은 연필로 크로키를 그릴 줄 아는 그 사람,

 컴퓨터 작업은 안하고 종이 위에 결과물을 내놓는 그 사람,

 재능기부 프로젝트 ‘팀 10그룹’의 일원인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의 ‘인간다움’에 흠뻑 매료되었다. 그의 디자인에는 人이 들어 있다.

 

반질거리고 매끄러워야 디자인의 산물인 양 소비자를 현혹하고, 손재주나 쇼맨십이 재물로 연결되는 것이 예술가나 디자이너의 길인 듯 고착화되어 있는 현 풍토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181

라는 자기고백은 그의 겸손함이 지나친 대목이다.

 

국민 고향 하동과 에코뮤지엄의 본보기 담양에서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강남까지.

도시와 관련해서는 그의 인문학적 글쓰기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는 박학하다.

그의 집 개울 건너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인물, 논객 중의 논객, 김년오 선생을 그는 부러운 듯 말하지만, 내게는 그가 바로 김년오 선생 같이 매력 넘치는 이다.

칸딘스키, 아이웨이웨이, 매염방 같은 인텔리겐차를 소개하고, 장예모 감독이 이루어낸 인상 시리즈에서 컬처파워의 중요성을 말하는 그는 현재 우리 디자이너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집안·건의하며,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에 모두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모으고, 그것들이 현실화되도록 지켜나가는 초석이 되는 디자이너가 되라고 조언한다.

 

풍윤함과 허허로움의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나가는 그 사람.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제자랑에 요란 떨지 않는 그 사람.

도시와 인문학의 소통에 힘쓰는 그 사람.

그가 남긴 명언을 전한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은 하나이고,

그것들이 인간의 가치와 풍요를 위해

의도되었거나 상호 보완되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배웠습니다.-70

 

디자인 좀 하십니까?

그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즉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책을 내기까지 고민을 계속했다.

나는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대답하고,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헉~’하고 급습을 당한 듯 당황하게 될까?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같은 쉬운 질문에 당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전공을 살린 삶은 못 살더라도 집안 하나만큼은 당당하게 지켜내는 주부가 되겠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 작가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나는 그 중에서 人을 생각하겠다.

사람답게 사는 법.

혹시 또 알겠는가?

나도 책 한 권 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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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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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육사-정치냐, 정의냐...>

 

64를 육사라 읽는 순간 지옥행 열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소리칠 수도, 탈출할 수도 없다. 그저 몸을 맡길 뿐.

그렇다면, “같은 개라도 맹견이 되어 주마.” 조직 안은 지옥이니까. D현경의 홍보담당관 미카미는 과연 ‘정치’를 택할 것인가, ‘정의’를 택할 것인가.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중간층에서, 꼭대기에서 오늘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가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각각의 사람들 눈에 비치는 것은 똑같이 되비치는 하늘과 구름일 뿐이데, 사람들의 삶은 어찌 이리도 다를까.

그리고 각자가 품고 사는 생각은 어찌 이리도 다른 획을 그리고 있을까.

착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면 안되는 건가.

책장을 덮는 순간 무수히 날아드는 생각, 생각, 생각들.

사건이 끝나고 소설이 끝났다고 안심해선 안된다.

이 소설은 읽기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신체 추형 장애를 앓고 있는 딸아이 아유미의 가출로 정신 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던 D현경의 홍보담당관 미카미.

형사 생활 3년차에 홍보실로 발령받아 잔뜩 낙담했던 미카미는 1년만에 다시 형사부로 복귀했지만 올봄, 홍보실로 돌아가게 되어 잔뜩 심란해 있던 참이다. 형사부에서는 ‘전과’가 있는 자신을 내친 것이라 여겼지만 형사부로 그럴듯하게 복귀하기 위해서는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고, 홍보실 ‘자치’를 과제로 삼고 열심히 뛴다. 그러던 그에게 내려진 경무부장의 명령. “청장이 시찰하러 온다. 목적은 ‘64’ 같은 강력 범죄는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사 표현. 피해자 가족 위문 순서도 있으니 ‘64’유족의 동의를 얻으라는 것.”

 

‘64’ - 14년 전 그 날. 쇼와 64년(1989년) 1월 5일.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을 가리키는 기호로, D현경 관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었다. 몸값 2천만 엔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납치된 일곱 살배기 소녀는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직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청장의 64시찰을 기점으로 현경 내부에서 형사부와 경무부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을 미카미는 직감했다.

딸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답시고 미카미를 틀어쥐고 있는 경무과장의 명령대로 움직일 것인가, 아직 미카미가 마음속으로 기대고 있는 고향같은 곳, 형사부의 편에 설 것인가. 미카미는 갈팡질팡한다.

형사부는 왜 반란을 일으킨 것이며, 64의 유족 아마미야는 청장의 위문방문을 왜 거절한 것이냐. 청장 시찰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미카미 앞에 항상 걸림돌이 되는 한 사나이. 경무과 조사관 후타와타리. 그는 무엇을 위해서 미카미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건의 핵에 다가가려는 미카미를 자극하는가.

 

형사부와 경무부의 관계가 악화된 지금, 미카미는 누구의 눈에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비쳐질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독자적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한 미카미. 그 과정에서 나온 ‘고다 메모’라는 단서에 천착하기 시작한 미카미는 결국 64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청장 시찰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아내기에 이른다.

 

여기서 큰 사건 한 줄기는 일단락 되지만 64사건의 진실과 청장 시찰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된 미카미는 커다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과제는 바로 미카미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기자들과의 사투에서 미카미는 자기 자신이 설 ‘자리’라는 것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다. 경무부의 개도 아니고 ‘전과’라 낙인찍힌 전 형사부의 형사도 아닌 오직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자기 자신.

 

경무부와 형사부의 대치 과정 중에도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려던 그 순간, 형사부에서 날아든 소식은 ‘64’와 유사한 상황의 유괴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 이 사건이 벌어지면서 미카미는 더 이상 청장시찰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청장이 64시찰을 하러 내려오기로 되어 있던 이 시점에 64와 유사한 범죄라니. 미카미는 사건의 진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기자단과 보도협정 체결을 하고 이 사건에 대한 취재 및 보도를 당분간 자제하기로 한 대신, 기자단에게 보낼 정보를 얻으러 사건 현장에 동행하게 된 미카미. 홍보담당관으로서 사건을 ‘은폐’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와 마음을 같이 하는 그의 홍보 담당 동료들이 보도진들 앞에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동안, 미카미는 ‘정의’를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사건 발생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그 순간까지 미카미는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정의를 지키지만, 난데없이 날아드는 의문 하나. '정말로 정의는 존재하는가'.

 

정치를 위해 64사건의 치부를 덮어두고 사건 관련자인 고다를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을 사회의 밝은 빛으로부터 격리시켰던 경찰청 간부들.

미카미가 형사가 아닌 홍보담당관으로서 참여한 헤이세이 14년 12월 11일의 유괴 사건의 진실은 자작 사건도, 모방 범죄도 아니었다.

64의 망령에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죄책감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64의 진범을 찾아 경찰 앞에 내놓아 준 것이었다. 진범을 찾는 열쇠는 바로 미카미의 집에도 걸려오곤 했던 장난전화. 가출한 딸아이의 전화인줄 알고 희망을 걸고 있던 미카미는 그 집요한 전화가 64진범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고 아연실색한다. 그리고 딸아이를 찾으려는 마음을 놓아버린다. 64유족인 아마미야와 딸아이를 찾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묘하게 겹치는 순간이었다.

 

근속기간 12년의 베테랑 기자 출신인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치열한 기자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

미카미가 과연 맹견이 될지 손에 땀을 쥐며 읽어야 했던 전반부에서 새로운 유괴 사건이 일어나는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글을 한시도 눈에서 떼지 않게 만드는 굉장한 흡입력.

조직 사회에 몸 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조직 내에서의 밀고 당기기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직장의 신>을 참고해도 좋겠다. 라인을 잘 타야 출세한다는 말.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미래를 직장에 고스란히 투자하여 헌신해 온 직장인이라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내용이다.

정치를 할 것인지, 정의를 지킬 것인지. ‘어차피 개가 될 거라면 맹견이 되어주마’ 라고 부르짖던 미카미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 인간성.

 

64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부터 청장 시찰의 어두운 내막까지 미카미가 가려는 곳에 한 발 먼저 도착하여 캐묻고 캐묻던 미카미의 동기이자 경무과 조사관 후타와타리라는 사나이. 마지막 장면은 미카미와 후타마타리의 알 수 없는, 그러나 모든 것을 내포한 대화로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맺는다.

 

미카미도 걸음을 내디뎠다. 구두는 비등비등했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의 무게 역시 그러하리라.

 

완벽한 시나리오에 걸맞는 완벽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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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박경철이란 작가. 그리스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자못 진지하다.

 

어느 날, 단골 책방의 서가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라는 책을 읽고 20년간 가슴에 새겨 두었던 갈망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하게 되었단다.

20여년 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작을 모조리 구해 읽고, 또 읽었다던 그.

(책 말미에 실린 참고문헌을 봐도 몇 장에 걸쳐 소개될 정도로 니코스의 저작은 엄청난 양이다. 그 외에도 참고문헌이 많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는 겨우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맛만 보았을 따름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은 말했다.

이 책은 그 유홍준의 말을 참 착하게 실천한 책이 아닌가 싶다. 20여 년이나 그리스에 대해 애정을 갖고 공부한 후에야 떠나는 여행이니 말이다. 그 정도 공부했으면, 이제 그리스 여행 떠나도 되잖아~개콘 버전이다. ^^

 

많이 안다고 해도 글을 쉽게 쓰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어령 교수가 대단한 것도 자신의 꽉 찬 지식을 초등학생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의 글도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리스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싶어할 정도로 설명이 쉽고 재미있다. 그리스의 유구한 역사를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지도 않았고, 20여년 간 공부한 지식을 뽐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지렁이가 흙을 먹고 유기 양분을 섞어 토해놓듯이, 유익하게 토해놓은 것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충돌과 조화의 산물인 문명과 역사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나 그리스를 보는 눈이 뜨였다고 한다.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로마 신화>,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 올림픽.

 

그러나, 저자는 신화와 철학, 정치나 사회, 문학과 예술이라는 하나의 틀로만 바라본다면 그리스의 참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때 그리스 문명으로 찬란히 빛났건만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쇠잔한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의 심장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나는 조국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조국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은퇴한 한 약사가 권총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하느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시길! 자, 갑시다.”라는 조르바의 희망과는 반대로 여행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도 그리스의 현재인 것을.

 

저자는 20여년 간 경원해 마지 않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눈으로 날것 그대로의 그리스를 보고 느끼는 문명 기행을 기획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행 동안 항상 책에 붉은 글씨로 표현되어 나타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동행하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한쪽 어깨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유령을 걸머진 형상이랄까...

저자가 경원하던 그 사람이 궁금해져서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는데, 그 책의 끝에 카잔치키스가 생전에 준비해 두었던 묘비명이 적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멋진 말이다. 잠시 나의 묘비명도 이 김에 생각해 두련다.

 

크레타 방문에서는 그 유령 덕분에 크레타 섬의 택시 기사로부터 투어에 더불어 식사접대까지 받게 된 일화도 실려 있다.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321

 

 

2011년 겨울부터 시작된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고, 모두 10권의 책으로 엮어질 것이라 하니, 이 책은 기나긴 여정의 10분의 1에 해당된다.

 

책 표지엔 1권의 여정을 암시하는 듯 코리노스 양식의 기둥이 새겨져 있다. 대들보에 아칸서스 잎을 새긴 화려하고 장식적인 코린토스 양식의 신전 기둥.

 

 

 

 

 

그리스 문명의 모태였던 펠로폰네소스의 관문이기도 한 코린토스가 그리스 답사의 첫 번째 방문지이다.

 

 

코린토스, 네메아, 아르고스, 올림피아, 스파르타 등의 순서로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두루 둘러 보는 1권.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여행은 함부로 쏘다닐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운 동네 산책 가듯이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그렇게 허위허위 다녀올 것이 아닌 것이다. 지식을 꽉 채우고 마음으로 간절히 원한 다음에야 가서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 있지 싶다. ‘홍콩에 쇼핑하러 여행간다.’‘ 일본에 우동, 라멘 먹으러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온다.’ 이런 된장녀의 일상이 아닌 다음에야 푼돈 모아 큰 맘 먹고 여행을 가려고 하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저자의 그리스 기행에서 배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 이번 방학 때 터키 갔다 왔어.” “나는 중국 다녀왔어.” 한 줄로 끝나는 여행 자랑이 아니라 진짜 여행을 가는 방법.

여행을 갔으면 여행자로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네들과 동화되는 체험을 한 가지라도 하고 올 것.

유명 관광지만 둘러볼 것이 아니라, 작은 언덕 풀 한포기라도 그 나라만의 향취를 느껴 볼 것.

그런 자세로 여행을 떠난다면 나도 언젠가는 기행문다운 기행문을 한 줄이라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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