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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그녀는 요새 TV에 무척 많이 나온다. 곧 있으면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도 진행할 모양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부럽다.
언니는 아픈 독설을 날리지만 대단한 여자야!! 나의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었어. 책임져!!어쩔껴!!
오늘은 tvN에서 특강을 하더라. 주제어는 “드림워커”, “드림 에이지”다. 실제 나이나 정신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때가 드림워커가 되는 때이고, 그 때부터 나이를 매기면 드림 에이지가 된단다. 김미경 본인의 드림에이지는 35세부터 세어서, 그러니까 이제 14세란다. 보아도 14세의 드림에이지, 박지성은...20세쯤.
사실 그녀의 책 <언니의 독설>을 읽을 때는, 그래, 성공하고 나니까 글도 쓰고 자랑하고 싶을 만하네. 노력한 게 보이네. 정도의 책이구나 했다. 그리고 읽고 난 후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고민거리만 실컷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난 그 동안 참 깊은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더랬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애 둘 키우느라 너무 힘들어서. 변명거리는 많다. 애 둘 낳고 키우고 드디어 밤중 수유가 끊기면서 나는 불면의 밤에서 벗어났고, 불면증이 뭐지? 하면서 느긋하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불면의 밤을 며칠 지새우게 되었다.
내 불면의 밤은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다. 악몽도 꼭 꾸던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내 불면의 레퍼토리는 임용고시 면접 시험 탈락이다. 꼭 그 장면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 1차에 붙었다. 5명 뽑는 시험에서 4등으로 붙었더랬다. 그런데 2차 시험 세 가지 중에서 논술, 수업 실기를 잘 치르고 3일째 마지막 날, 면접 시험에서 그만...입이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듯이 그 면접 시험 문제는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서 잊히지도 않는다. <교사가 수업 외에 해야 할 일 5가지를 말하시오.>
아, 쉽네? 말라붙은 입 속에서 침을 끌어모아 혀에 윤기를 더하고서 세 가지를 죽 나열해갔다. 나 기간제 경력도 1년 넘게 있는 사람이거든? 내가 그 동안 고생했던 거, 다 선생님 되려고 해 온 거거든? 그러니까, 선생님이 할 일이 말이지...
그런데 네 번째에서 막힌 거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머릿속이 진짜 하얗게 텅 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2차에서 떨어졌다.
면접관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답답한 표정을 하는 나.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거미줄에 꽁꽁 묶여버린 한 마리 나약한 곤충.
<시시각각 다가오는 거미의 위협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해질 즈음이면 나를 옭아매던 그 공포는 사라지고 나는 5가지의 대답을 시원하게 끝내고 홀가분하게 시험장을 나선다.> 는 장면을 억지로 상상해내지 않으면 그 밤은 진짜 돌고 돌고 도는 불면의 밤이 되는 것이다.
그래, 김미경의 책을 읽고 내가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내 안의 깊은 우울도 슬며시 고개룰 드는지, 오늘 낮에 mbc에서 <廣大戰>이라는 판소리 명창 대회를 하는데, 심청가 심봉사 눈뜨는 대목도 슬프고 춘향이 옥중가 대목도 슬프고, 심지어 흥보가 박타는 대목도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판소리 장르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그렇게 다채롭게 깊숙하고 절절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토해내는 명창들도 대단하다.)
그래서 <언니의 독설>은 서른 여덟을 맞이하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할 화두를 던져주긴 했으나, 어두운 기억, 불면의 밤을 시작하게 해주었기에 그렇게 좋게 인식되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TV특강 하는 걸 보니 독하게 살라는 책의 취지는 있었으나, 주제가 <꿈>으로 바뀌면서 무언가 희망을 전달해주는 기분 좋은 개념의 특강이어서 김미경 언니야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