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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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크는 중이라고 해두자. [미치도록 가렵다]

 

스윽, 스윽.

쓰으윽.

쓱쓱. 쓱쓱.

가려움이란 놈은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죽도록  참지 않은 이상에야 도무지 손을 대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증상이다.

한 번 손을 대면, 세상의 그 어떤 아닌 박치라도 따박따박 박자를 맞추어 긁어대게 되어 있다.

어우, 좀 시원해지는데...어디, 좀 더.

가려운 곳을 긁을 때의 쾌감은 곧바로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뇌신경의 황홀한 기분을 관장하는 곳에 딱 안착하여 연속행동을 명령한다.

곧 가려웠던 그 곳엔 손톱이 지나간 자국이 빨갛고 선명한 줄을 죽죽 그어댄 흔적이 남고, 박박, 아주 박박 긁은 곳엔, 때때로 한참 후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연약한 피부를 괴롭힌 후 맺히곤 하는, 핏망울이 어리기도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다손 치자.  사라졌겠거니 하고 잊을만하면 다시금 찾아오는 가려움.

 

[미치도록 가렵다]에서 "가려움"은 성장과 불안의 고통을 이르는 다른 말이다.

 

밉살맞고 볼품없는 꼴을 한 중닭은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나야 하기 때문에 맨날 가려운 거라고 했다. 스스로 부리를 부비고, 날개를 비비고, 목덜미를 비벼 대기 때문에 털이 듬성듬성하고 꺼칠해도 그네들은 지금 열심히 한 마리 튼실한 닭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리라.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이제 와  사실은 이야깃거리 축에도  끼지 않는 지난날을 소되새김질하듯 느릿느릿 반추해본다.  비록, 장대한 대하서사시 같은 이야깃거리는 없어도, 입술 지그시 깨어물면 배어나오는 비릿한 피내음같은 비린내가 풍겼어도,  나름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건너올 때는 자그마한 아픔을 느낄 정도는 겪었다.

그럴 때, 내 옆에 이 소설에 나오는 도서관 교사 수인 같은 멘토가 있었더라면...하고 생각해본다.

폭력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전학할 수밖에 없었던 도범과 수인이 서로의 손가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에서는 퉁퉁 부은 어린 수인의 손가락을 째고 고름이 나오는 그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해 버렸다.

 

병원을 나오며 엄마는 나보고 참 독한 년이라고 했어. 독했지. 그 때까지도 손가락 하나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엄마가 떠나는 것보다. -169

 

강북팸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짓찧었다는 말에 수인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입을 가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도범아, 고맙다. 이렇게 말해줘서."-174

 

보통의 꼰대들이랑 다른 화법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따분하거나 뻔하지 않은 어법을 구사하는 선생님. 아이들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고 어른입네 행세하며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 선생님.무 엇보다 명령하지 않는 선생님.

 

소설의 첫 장부터 형설중학교에 전학 온 도범이 맞짱 뜨려하는 분위기가 찐하게 전해져와서 보통의 학원액션으로 이어지나 보다 했는데, 영 방향을 잘못 잡고 말았다.

도범은 연이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 년에 한 번 꼴로 전학을 다니는 바람에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아버지는 다짜고짜 강도범을 "강도 범"으로 모는 주위 사람들과 똑같이 도범을 향해 매를 휘둘렀지만, 도범이가 어릴 때부터 꼬박꼬박 써온 일기장을 읽은 후에 도범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흔히 비행청소년의 뒤에는 어그러진 가정이 있을 뿐이라는 흔한 공식을 벗어난 도범의 이야기에 또 한 번 기존의 청소년 문학과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수인이 사서교사를 맡으면서 독서회도 함께 맡게 되었고, 방과후 교실 혹은 동아리를 신청하지 않은, 나머지 아이들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모이게 되는데..

 

어떻게든 폭력의 무리에 가담시키려는 양대호 무리에 말려들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는 강도범,

책읽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이담,

내뱉지 못한 수많은 말들 탓에 놀림을 당하자 가방 속에 망치 송곳 칼 등을 넣어다녔던 해머,

이들이 품고 있는 가려움들을 수인은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낸다.

 

아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감싸안는 다정다감한 사서교사 수인. 학교 안에서는 새로 부임한 형설중의 오래된 도서관을 교무실로 이전한다는 혁신적인 안을 내놓으면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을 벌여 놓아 사면초가인 상태에 처하고, 학교 밖에서는 스펙 쌓기의 강박으로 외국 유학을 결정한 약혼자 율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

 

어찌할거나.

그래, 모두 다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해두자.

크고 있는 중이라고 해두자.

 

그만하면 됐어. 잘 하고 있어.

이 한 마디는 죽을 때까지 가려움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혹여나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들이나, 시원한 막걸리에 신김치 한 조각 척 걸친 후에야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신산한 삶을 간직한 이들은 "무에, 그리 호들갑 떨 일들이라고.."하며 코웃음 칠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길을 물으며 쉬어갈 수 있는 책이 필요하고, "그래, 그래" 하고 고개 주억거리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있는 곳이 필요한 이들은 목신들이 접수하여 놀이터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울울창창한 숲 속에 위치한 도서관 이야기에 노곤하게 녹아들 것이다.

저마다의 성장을 응원하는 따스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남기며 끝맺는다.

 

그 뒤야 뉘가 알리,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스윽스윽 스윽슥

쓰윽쓰윽 쓰윽쓱

쓰윽쓰윽

장단맞춰 가려운 곳을 긁는 손길이

잘도 리듬을 탄다.

부디 그 리듬이

호박고지를 뒤집고 산나물을 펼쳐 널며 모깃소리 같은 노랫소리를 흘리는,

수인의 어머니 노래처럼

가려움을 잘 치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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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7-1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도록 가렵다> 리뷰 완료
 
고교 입시
미나토 가나에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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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를 짓밟아버리자! 라니...[고교입시]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은 처음인데 [고백]이라든지 [모성]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이번 [고교입시]가 무척 기대되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어 생생한 학교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시철이 끝나면 일명 SKY에 진학한 학생들의 명단이 커다란 플래카드로 내걸린다.

우리 학교는 이런 인재를 배출한 학교입니다, 하고 자랑하는 듯이.

일본에서는 입시 제도가 대입이 아니라 고입에도 적용이 된다.

도쿄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 유명 대학 합격자의 이름이 줄줄이 학교 1층 복도에 쓰여져 있는 현립 다치바나다이이치 고등학교, 일명 이치고.

이 소설은 바로 이 이치고에 진학하려는 중3 학생들이 고교입시를 치르는 날을 전후한 48시간의 이치고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입시를 짓밟아버리자" 라니...

어떤 식으로 입시가 짓밟히는지 확실히 지켜보겠어, 라는 목적의식을 불태우며 책을 읽으려는데, 어쩔~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사실, 기억력의 두께가 얇아도 너무 얇은 나는...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인물 관계도]에 의지하여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많은 인물들, 특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기도 한 교사들 각자의 이력서를 써놓고 소설을 시작했다는 작가의 노력때문인지 중간 쯤부터는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하여 앞으로 되돌아가는 횟수는 줄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열 명이 넘는 교사들이 등장하며 각각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펼치는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되는 소설이기에 자칫 산만할 수도, 집중을 못 할 수도 있었는데 작가는 각각의 교사들에게 나름의 개성을  적절하게 부여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

확실히 학교의 사정이란 것이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거개일반인 모양인지, 틀에 박힌 행동이나 대사만을 나열하는 마네킹 같은 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치고 OB인 교사들 대부분은 이치고에 합격한 후 책상을 내다버리는 전통에 대해 떠들어대며 그저 자랑이나 하고 교가를 열창하며 소란만 피울 뿐인 한심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성공인가 실패인가로 나누는 척도가 될 정도로 중요한 시험일.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치고의 시험 전날 교사들은 모여서 시험 감독에 대한 회의를 하고 고사장으로 쓰이는 교실을 점검하던  중 칠판에 커다란 모조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입시를 짓밟아버리자!>

검은 먹물로 휘갈겨 쓴 편지였다.

 

시험이 엉망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치는 그 시각, 인터넷에서는 이치고 입시에 관련하여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이 속속 채워지고 있었다.

 

<최종 목표가 고교 합격이라니, 열다섯 살에 인생을 정하는 거냐?>

<이치고 나와서 백수. 그래도 부모는 자랑한다>

<학력을 자랑하는 건 인생의 절정이 이미 지난 인간. 현재의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은 과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촌철살인의 글들인데, 사건의 추이를 좇느라 대충대충 읽어나간 것이 미안해지는 중이다.

 

벽보 발견에 이어 한 교사의 휴대폰이 칠판 위에서 발견되는 등 불안요소가 드러나지만 시험은 강행되고 드디어 시험 당일.

시험이 끝나갈 무렵 한 여학생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실격이라는 주의를 받은 여학생은 호흡곤란으로 양호실로 옮겨진다.

<휴대전화는 교실 반입 금지. 착신 여부에 관계없이 커닝으로 간주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실격 처리함>이라는 주의 사항을 모두 붙여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여학생의 고사장에 붙은 주의사항에서는 "실격처리"라는 말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 여학생은 현의원의 딸이었다.

자칫 문제가 불거지면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상황.

난데없이 여학생의 어머니와 동창회장이 학교에 난입하자 책임자인 교장, 교감은 일처리를 뒤로 미루려고만 하고, 채점을 맡은 교사들은 일단 채점을 끝내놓고 사건의 추이를 살피려 하는데...

답안지 한 장이 없다!!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함께 한 줄씩 올라오던 촌철살인의 글들은 인넷네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이치고 입시를 지켜보는 무수한 이들의  글들이었다. 그 와중에 시험문제가 실시간으로 유출되고 있었다는 후덜덜한 사건까지 겹치게 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시험 당일 학교에 오면 안되는 이치고 재학생 이시카와 에리나가 발각되자 교사들은 에리나에게 사정 청취를 하고,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범인들의 자백을 통해서 "이치고 입시"를 짓밟으려는 사람들의 진짜 이유가 밝혀진다.

 

[고교입시]는 씁쓸한 현실을 고발하는 통쾌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면서 "어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주동자의 자백과 동시에 컴퓨터 화면에 <벚꽃 지다>를 입력하자 인터넷상의 댓글들이 우수수 벚꽃 지듯  사라지는 장면.

입시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들의 헝클어진 마음을 한없이 여린 핑크의 벚꽃잎들이 살포시 덮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것이...반창고가 될 수 있을까?
일이 터지면 막기에 급급하고 미봉책을 내놓으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책임감 없는 어른들의 모습이 또다시 나오지 않을까,,,걱정했는데.

인생이 끝장나버린 것 같은 입시에 대한 아픈 기억을 다시 불러내긴 했지만,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깨끗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진짜 어른"을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선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고스란히 되물려주려는 나쁜 어른들이 수두룩하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줄 게 없어 도보행진에 나선 단원고 아이들.

진상규명은 뒷전이고, 특별법 공방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묵묵히 도보행진을 위한 발걸음을 뗀 아이들은 그저 뭐라도 할 수 없을까 하여 행동으로 나선 것일 뿐일 텐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진상규명이다. 특례 따위!"

 

진심으로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아이들의 메시지에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아직 인생의 찬란한 시기,화려한 벚꽃을 피울 시기를 맞이하지 못한 채 입시라는 광풍에 꺾여 버리고 만 이치고의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는 퍼포먼스를 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책임감 있는 "어른" 이 있었다.

그리하여 앞날에 대한 희망이라도 엿볼 수 있었는데,,,

우리의 단원고 학생들에겐 아직 희망의 빛이 드리우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어떤 반창고로도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상처들.

노란 리본의 물결이 부디 그 여린 가슴들에 찰랑거리며 가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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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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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실을 철저하게 애도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삶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중이다.

텀벙텀벙 건너 뛴 계단도 있고, 잠시 주춤하였는데 꽤 오래 머물게 된 계단도 있다.

젊은이다운 호기를 부리다가 뾰족구두 뒤축이 계단에 걸려 삐그덕, 와장창 무너져 내렸을 때처럼 엄청 넘어지고 깨지면서호되게 앓았던 적도 있다.

기고, 앉고, 서고, 걷고, 뛰고.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해 온 어린 아이가 이제 중년이 되었다.

계단은 이미 많이 지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다.

세상은 너무도 살기가 어려운지  "힐링"에 열광하거나 쉽고 가볍게 삶의 단계를 통과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렇지만 한바탕 가슴앓이를 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실컷 웃을 때는 웃어야 한다.

대충 얼버무리고 뭉개려다가는 뒤에 몰아서 겪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나는 아직 이것을 겪어보지 못하여 정신적 성숙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만치 그 "상실"의 아픔을 겪게 해줄 계단이 보이고 있는데 마냥 시간아 느리게만 가라...하고 빌고 있는 중.

 

마침 맞은 시기에 예방접종 맞는 기분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정을 딱 끊어야 합니다."라고 법륜 스님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놓아버려야 더 이상 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떠난 사람에 대해 좋은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집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오욕칠정이 들끓는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이렇게 산뜻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일정 기간의 장례기간동안 의식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자각하고 자신을 추스르게 된다.

그러나 머리로는 정리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던 그 사람과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네의 "49제"라는 상징적인 애도의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과의 관계의정도에 따라 기간은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애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줄리언 반스는 문학 에이전트이자 평생의 문학적 동지였던 아내 팻 캐바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글로 남겼다.

그의 글은 열기구를 열망하는 19세기 실존 인물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사진가 나다르의 이야기로 득특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3부에서 아내를 잃은  비탄, 애도, 슬픔을 두루 경유하는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글 전체를 통틀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구절.

 

그래서 기분이 어떠냐고?

가령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왔다면 어떨까. 기분이 그러한데, 무슨 이유로 그러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 -127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상실감이 손에 잡힐듯이 전해져 온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자유를 대변하는 기구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라고 했다.

사랑의 시작이야 어떠했건 간에 사랑의 끝은 바람과 날씨에 좌우되는 열기구처럼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나는 단순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134

 

아내와의 사별 이후 5년간 숙성된 "애도"는 독특한 간명함을 품은 채 세상에 나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함께 흘릴 거라 예상했지만 나의 사랑은 아직 "진행형"이라 그의"애도"에 공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커다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아직 오르지 않은 저 너머의 계단에 도사리고 있을 상실의 아픔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죽음"에 대한 의미 또한 내게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의 죽음, 더불어 나의 삶도 반추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완전한 소멸은 아닐진데...

법륜 스님의 말처럼 죽은 사람에 대한 정은 딱 끊어야 할 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죽음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연장하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줄리언 반스가 마음 속에 그의 아내를 품어왔기 때문에 아내를 쉽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내면화함으로써 새로운 계단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

한 두 시간의 숙고와 한 두 줄의 요약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책을 덮으면서 아주 오랜 동안 여운이 남았다.

아마도 이 생을 마칠 때까지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질문.

생과 사의 경계는 아득히 멀지만 , 아직 인생 반도 못 살았지만, 때때로 허공에다 던지게 될 질문 하나 품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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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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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술 라디오]

 

마술같은 책이 라디오의 애잔함을 잔뜩 머금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병아리의 삐약거리는 소리를 내던 노란 종이는 샛노란 병아리가 볏이 나고 부리가 튼튼해지며 퍼드덕거리는 날개에 힘이 생긴 닭으로 성장해갈 때 털빛이 퇴색해가는 것처럼 점점 옅어진다. 정혜윤의 마술에 빠져들어서 이야기를 따라 울고 웃다가 병아리가 닭으로 변해가는 것을 책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이제는 닭이 알을 낳을 시간이다.

 

지직, 지직.

안테나를 세워 주파수를 맞춘 다음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손도, 눈도 꼼짝 않고 귀만 열어 놓았었다. 귀는 말랑말랑했으며 베개에 닿은 한쪽 귀는 따뜻하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잡아놓은 라디오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풍문으로 들었소, 하고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이야기들을 내 귀로 흘러들게 했다.

그렇게 흘러든 이야기들엔 슬픈 사연도, 기쁜 사연도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소리로만 접했을 때, 마음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의 화폭은 엄청나게 커진다.

눈으로 보는 풍경은 TV의 사양에 따라 흑백일 수도, 컬러일수도, 16인치일수도, 50인치일 수도 있지만, 소리로 듣는 풍경은 내 멋대로이다.

작은 프레임에 가두고 싶은 슬픈 이야기들은 작아지고, 넓고 깊은 울림을 가진 이야기들은 작게 상상해도 점점 커진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내 이야기를 밖에다 대고 하는 것에 서툴렀다.

그나마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곳은 하얀 여백으로 들어찬 일기장 뿐.

그러면서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만 가려 했던 내 무거운 어깨를 쓰윽 잡아 일으켜준 것은 라디오 속 이야기들이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라디오에서 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 가식적인 옷을 벗어던진 채 정혜윤의 책 속에서 다시 나타났을 때, 왠지 모르게 따뜻한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 귓바퀴에 고여들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의 내 자세 때문이기도 하지만...눈물이 두 볼을 , 턱을 적시지 않고 귓바퀴에 고여들었을 때 그 차갑고 축축한 느낌을 내가 많이도 그리워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이제는 왠만한 일에 끄떡도 않는 천하장사 아줌마가 되어 이런 일은 이렇게 저런 일은 저렇게 넘겨버릴 수 있는 강심장이 되었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 유리의 심장을 가졌었는지.

라디오가 들려주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그렇게 눈물겨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쪽 귀를 베개에 댄 채 누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댔는지, 다음 날 아침이면 베갯잇에 하얗게 말라붙은 소금자국이 이불에 그린 오줌지도처럼 선명하게 그 흔적을 드러내었었다. 참, 민망하기도 하지.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처럼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주자, 나는 "소녀"로 되돌아갔다.

끝도 없이 연결되며 뒤집어도 뒤집어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이야기 주머니를 장착한 정혜윤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도깨비였던 것이었다.

도깨비의 장난 중에 말끝을 잡아채어 똑같이 따라하는 재미난 장난이 있었지.

나는 그 도깨비가 되어 정혜윤의 말을 따라하고 곱씹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녀가 던진 질문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따라말하며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접어넣었다.

왜? 나와 어느 한구석이 통하는 누군가와 만나면 나도 이런 질문을 던지며  길고 긴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

 

어부는 어떻게 부모의 부재 같은 슬픈 과거, 쓸쓸한 과거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고마움을 간직하고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었을까?-78

 

내게 진짜 어두운 것은 심연이 아니고 표면이고 얕음이에요. 두려운 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얕음이죠. 제 인생의 질문 중 하나예요. 어떻게 깊어질 수 있으려나? 어떻게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186

 

카뮈가 자신의 젊은 날 맨 처음 쓴 글에 '안과 밖'이란 제목을 단 이유는 뭐였을까? '안'이 '밖'을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을까?-281

 

여러 가지 이유로 편집되어서 결코 방송에 나가지 못한 이야기.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고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마술라디오에 들어 있다.

티켓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사랑했으나 끝내 잡아두지 못하고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청춘의 이야기.

<유리 동물원>을 함께 보았던 첫사랑을 배신한 한 남자가 '요리 없이 사랑 없다'는 말에 요리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경영난으로 지금은 문을 닫은 통영의 '이문당 서점' 과 기이한 인연을 쌓은, 글귀를 가슴에 새긴 장승 깎는 노인 이야기.

탈출을 꿈꾸는 아들 빠삐용을 생각하며 울먹이는, 제주도에서 만난 한 낚시꾼 이야기.

버섯에 부채질하는 시장상인을 비롯해서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라며 웅성웅성 파도타기처럼 말을 이어가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이 있는 시장 이야기.

 

 

단 한 번도 자기 목소리로 말해 보지 못한 것 또한 비참한 일이라고 했던가.

내가 살아온 동안의 이야기도 결코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텐데...

나는 내 목소리로 말해보지 못했다.

이제 정혜윤의 마술에 걸렸다는 핑계로 내 이야기를 한 번 만들어볼까 한다.

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오늘밤은 마술에 걸린 행복한 기분으로 불면의 밤을 꼬박 새게 생겼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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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다르게 사물을 보는 독특한 시인의 눈 [시인의 사물들]

 

무작정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댄다고 글이 되는 건 아니더라.

그동안 “우공이산”의 어수룩한 늙은이처럼 무턱대고 흙을 져 나르기는 했지만 이 산을 깎아다가 저 산에 퍼다 나르는 일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리창을 기어오르려다 주르륵 미끄러지고 마는 파리처럼 헛고생 한 건 아닌가,,,자괴감이 든다,.

혹시나

일기를 매일 쓰지 않아서 정리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떠다니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글이 되어 나갈 준비를 하고는 있었더라.

그걸 조금씩 뭉쳐서 끄적였더니 먼지털이에 뭉친 먼지들이 탈탈 털려 나가듯이 싹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는 지더라.

그랬더니 이제는 다른 욕심들이 차곡차곡 쌓이더라.

너의 내면이 깨끗해졌으니 다른 걸 채워넣어라, 아우성을 해대더라.

물을 채우고 채우다 그만 무거운 물의 무게를 못 이겨 터져버린 비닐봉지처럼  뭔가가 꽉 차기는 했는데...터지고 나니 그것을 여미지 못해 허둥거리는 내 모습.  한 번 찢어진 잔해를 수습해서 다시 채우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

너는 무엇이냐, 깨진 물동이냐.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서 있었더라.

 

그래, 다른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나, 한 번 들여다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전혀 이어지지 않을 법한 것들을 이어 붙여 생각의 편린들을 멋들어지게 쌓아올리는 시인들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이란 부제를 가진 [시인의 사물들]

이 책은 내게 어떤 비답을 내려줄까.

진지하게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갔다.

52인의 시인들은 어떤 사물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갈까.

 

시인들은 을 살고 있었다.

독특한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고

많은 것이 그들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며

때로는 욕망하는 것들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아!

불쑥불쑥 날아드는 택배처럼 시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어떤 사물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없는 생각을 짜내보기도 했다.

아니, 아직은...내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보다.

모래성을 쌓아보지만 이야기는 성이 되지 못하고 이내 허물어져 버린다.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것을 보면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앞으로 내민 발은 반쯤 구부리고 뒤의 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은 아(丫)자 모양을 해서 살금살금 다가가면 손은 잡았다 싶은데, 나비는 날아가버린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아연히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는...

손끝에 잠깐 스쳤던 날개의 푸드득거림,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버린 허탈감. 다소 멋쩍기도 하고, 은근히 화도 나는 소년의 그 마음을 알겠는가. ([책 읽는 소리] , 정민, 205p)

 

글을 쓰는 요체를 터득할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이 상태. 나비를 잡다 놓친 소년의 마음이 바로 이럴 것인가.

시인들이 특히나 애정하는 사물들을 불러 와서 깊고도 넓게 탐색하고 나서야 한 꼭지의 글이 탄생한다는 것은 겨우 알아챌 수 있겠다.

시인의 시가 아닌 산문을 한꺼번에 모아 읽는 황홀한 경험.

52인의 인생이 남긴 문양이 오돌도돌 내 손 끝에 느껴진다.

 

디테일들은 밖으로, 통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거나 더 추악하거나 때론 상상보다 더 절절해서 그걸 듣는 누군가에겐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쉽게 가려지거나, 윤색되거나 다른 질감으로 변질되곤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체 구조와 진실성은 그 딭일들이 그것들 자체로 온전히 작용하고 반목하면서 촘촘하게 형성되는 법이다. 소위, 깊이라는 건 그렇게 드러난다. (...)

나는 세계의 구석들에 숨어 있는 죽은 디테일들을 바라보는 탐정이 되어보려는 것이다. -강정, <돋보기>

 

‘마지막 하나’까지 철없던 내게 마음을 주었던 애인처럼, 돈 없던 내게 술을 사주던 친구처럼, 자기 하나 내던져 다양한 상황들을 만족시키던 성냥만큼 대단한 물건은 없었는데. 편리하고 편안한 틈에서 무언가 잊고 지냈던 기억이 살아날 듯한데. 갑자기 성냥이 그리운 밤이여. 마지막 하나를 품고 싶은 시간이여. 찾아봐도 없는 성냥이여. -정영효 <성냥>

 

저 끝에는 당신이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저 흑심의 끝을 본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그것은 사라지기 전까지 깜깜하게 빛난다.

뭔가를 써야 하는, 그래서 연필을 깎고 있는 이의 간절한 마음처럼 연필의 세계란 저렇게 깜깜한 것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연필의 흑심. -여태천, <연필>

 

어느 곳에고 닿는 곳마다 저마다의 생각이 잘 펼쳐지려면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해야만 하는가.

가방, 휴대전화, 구두, 야구공, 신문, 사전, 술병, 우산, 자동차, 잔...

나도 추리소설의 명탐정처럼 삶의 구석에서 요긴한 것 하나를 건져올리는 시인의 눈이 갖고 싶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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