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크는 중이라고 해두자. [미치도록 가렵다]
스윽, 스윽.
쓰으윽.
쓱쓱. 쓱쓱.
가려움이란 놈은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죽도록 참지 않은 이상에야 도무지 손을 대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증상이다.
한 번 손을 대면, 세상의 그 어떤 아닌 박치라도 따박따박 박자를 맞추어 긁어대게 되어 있다.
어우, 좀 시원해지는데...어디, 좀 더.
가려운 곳을 긁을 때의 쾌감은 곧바로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뇌신경의 황홀한 기분을 관장하는 곳에 딱 안착하여 연속행동을 명령한다.
곧 가려웠던 그 곳엔 손톱이 지나간 자국이 빨갛고 선명한 줄을 죽죽 그어댄 흔적이 남고, 박박, 아주 박박 긁은 곳엔, 때때로 한참 후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연약한 피부를 괴롭힌 후 맺히곤 하는, 핏망울이 어리기도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한다손 치자. 사라졌겠거니 하고 잊을만하면 다시금 찾아오는 가려움.
[미치도록 가렵다]에서 "가려움"은 성장과 불안의 고통을 이르는 다른 말이다.
밉살맞고 볼품없는 꼴을 한 중닭은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나야 하기 때문에 맨날 가려운 거라고 했다. 스스로 부리를 부비고,
날개를 비비고, 목덜미를 비벼 대기 때문에 털이 듬성듬성하고 꺼칠해도 그네들은 지금 열심히 한 마리 튼실한 닭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리라.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이제 와 사실은 이야깃거리 축에도 끼지 않는 지난날을 소되새김질하듯 느릿느릿 반추해본다. 비록, 장대한
대하서사시 같은 이야깃거리는 없어도, 입술 지그시 깨어물면 배어나오는 비릿한 피내음같은 비린내가 풍겼어도, 나름 이 시기에서 저 시기로 건너올
때는 자그마한 아픔을 느낄 정도는 겪었다.
그럴 때, 내 옆에 이 소설에 나오는 도서관 교사 수인 같은 멘토가 있었더라면...하고 생각해본다.
폭력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전학할 수밖에 없었던 도범과 수인이 서로의 손가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에서는 퉁퉁
부은 어린 수인의 손가락을 째고 고름이 나오는 그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해 버렸다.
병원을 나오며 엄마는 나보고 참 독한 년이라고 했어. 독했지. 그 때까지도 손가락 하나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엄마가 떠나는 것보다.
-169
강북팸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짓찧었다는 말에 수인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입을 가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도범아, 고맙다. 이렇게 말해줘서."-174
보통의 꼰대들이랑 다른 화법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따분하거나 뻔하지 않은 어법을 구사하는 선생님. 아이들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고 어른입네 행세하며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는 선생님.무 엇보다 명령하지 않는 선생님.
소설의 첫 장부터 형설중학교에 전학 온 도범이 맞짱 뜨려하는 분위기가 찐하게 전해져와서 보통의 학원액션으로 이어지나 보다 했는데, 영
방향을 잘못 잡고 말았다.
도범은 연이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일 년에 한 번 꼴로 전학을 다니는 바람에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아버지는
다짜고짜 강도범을 "강도 범"으로 모는 주위 사람들과 똑같이 도범을 향해 매를 휘둘렀지만, 도범이가 어릴 때부터 꼬박꼬박 써온 일기장을 읽은
후에 도범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흔히 비행청소년의 뒤에는 어그러진 가정이 있을 뿐이라는 흔한 공식을 벗어난 도범의 이야기에 또 한 번 기존의 청소년 문학과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수인이 사서교사를 맡으면서 독서회도 함께 맡게 되었고, 방과후 교실 혹은 동아리를 신청하지 않은, 나머지 아이들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모이게
되는데..
어떻게든 폭력의 무리에 가담시키려는 양대호 무리에 말려들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는 강도범,
책읽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이담,
내뱉지 못한 수많은 말들 탓에 놀림을 당하자 가방 속에 망치 송곳 칼 등을 넣어다녔던 해머,
이들이 품고 있는 가려움들을 수인은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낸다.
아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감싸안는 다정다감한 사서교사 수인. 학교 안에서는 새로 부임한 형설중의 오래된 도서관을 교무실로 이전한다는 혁신적인
안을 내놓으면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을 벌여 놓아 사면초가인 상태에 처하고, 학교 밖에서는 스펙 쌓기의 강박으로 외국 유학을
결정한 약혼자 율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
어찌할거나.
그래, 모두 다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해두자.
크고 있는 중이라고 해두자.
그만하면 됐어. 잘 하고 있어.
이 한 마디는 죽을 때까지 가려움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혹여나 굴곡진 삶을 살아온 이들이나, 시원한 막걸리에 신김치 한 조각 척 걸친 후에야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신산한 삶을
간직한 이들은 "무에, 그리 호들갑 떨 일들이라고.."하며 코웃음 칠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길을 물으며 쉬어갈 수 있는 책이 필요하고, "그래, 그래" 하고 고개 주억거리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있는 곳이 필요한
이들은 목신들이 접수하여 놀이터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울울창창한 숲 속에 위치한 도서관 이야기에 노곤하게 녹아들 것이다.
저마다의 성장을 응원하는 따스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남기며 끝맺는다.
그 뒤야 뉘가 알리,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스윽스윽 스윽슥
쓰윽쓰윽 쓰윽쓱
쓰윽쓰윽
장단맞춰 가려운 곳을 긁는 손길이
잘도 리듬을 탄다.
부디 그 리듬이
호박고지를 뒤집고 산나물을 펼쳐 널며 모깃소리 같은 노랫소리를 흘리는,
수인의 어머니 노래처럼
가려움을 잘 치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