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사물을 보는 독특한 시인의 눈 [시인의 사물들]
무작정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댄다고 글이 되는 건 아니더라.
그동안
“우공이산”의 어수룩한 늙은이처럼 무턱대고 흙을 져 나르기는 했지만 이 산을 깎아다가 저 산에 퍼다 나르는 일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리창을
기어오르려다 주르륵 미끄러지고 마는 파리처럼 헛고생 한 건 아닌가,,,자괴감이 든다,.
혹시나
일기를
매일 쓰지 않아서 정리되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떠다니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글이 되어 나갈 준비를 하고는 있었더라.
그걸
조금씩 뭉쳐서 끄적였더니 먼지털이에 뭉친 먼지들이 탈탈 털려 나가듯이 싹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는 지더라.
그랬더니
이제는 다른 욕심들이 차곡차곡 쌓이더라.
너의
내면이 깨끗해졌으니 다른 걸 채워넣어라, 아우성을 해대더라.
물을
채우고 채우다 그만 무거운 물의 무게를 못 이겨 터져버린 비닐봉지처럼 뭔가가 꽉 차기는 했는데...터지고 나니 그것을 여미지 못해 허둥거리는
내 모습. 한 번 찢어진 잔해를 수습해서 다시 채우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
너는
무엇이냐, 깨진 물동이냐.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서 있었더라.
그래,
다른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나, 한 번 들여다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전혀 이어지지 않을 법한 것들을 이어 붙여 생각의 편린들을 멋들어지게 쌓아올리는 시인들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이란 부제를 가진 [시인의 사물들]
이
책은 내게 어떤 비답을 내려줄까.
진지하게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갔다.
52인의
시인들은 어떤 사물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갈까.
시인들은
삶을
살고 있었다.
독특한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고
많은
것이 그들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며
때로는
욕망하는
것들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아!
불쑥불쑥
날아드는 택배처럼 시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어떤 사물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없는 생각을 짜내보기도 했다.
아니,
아직은...내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보다.
모래성을
쌓아보지만 이야기는 성이 되지 못하고 이내 허물어져 버린다.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는 것을 보면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앞으로 내민 발은 반쯤 구부리고 뒤의 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은 아(丫)자 모양을 해서 살금살금 다가가면 손은 잡았다 싶은데, 나비는 날아가버린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아연히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는...
손끝에
잠깐 스쳤던 날개의 푸드득거림,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버린 허탈감. 다소 멋쩍기도 하고, 은근히 화도 나는 소년의 그 마음을 알겠는가. ([책
읽는 소리] , 정민, 205p)
글을
쓰는 요체를 터득할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이 상태. 나비를 잡다 놓친 소년의 마음이 바로 이럴 것인가.
시인들이
특히나 애정하는 사물들을 불러 와서 깊고도 넓게 탐색하고 나서야 한 꼭지의 글이 탄생한다는 것은 겨우 알아챌 수 있겠다.
시인의
시가 아닌 산문을 한꺼번에 모아 읽는 황홀한 경험.
52인의
인생이 남긴 문양이 오돌도돌 내 손 끝에 느껴진다.
디테일들은
밖으로, 통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거나 더 추악하거나 때론 상상보다 더 절절해서 그걸 듣는 누군가에겐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쉽게
가려지거나, 윤색되거나 다른 질감으로 변질되곤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체 구조와 진실성은 그 딭일들이 그것들 자체로 온전히 작용하고 반목하면서
촘촘하게 형성되는 법이다. 소위, 깊이라는 건 그렇게 드러난다. (...)
나는
세계의 구석들에 숨어 있는 죽은 디테일들을 바라보는 탐정이 되어보려는 것이다. -강정, <돋보기>
‘마지막
하나’까지 철없던 내게 마음을 주었던 애인처럼, 돈 없던 내게 술을 사주던 친구처럼, 자기 하나 내던져 다양한 상황들을 만족시키던 성냥만큼
대단한 물건은 없었는데. 편리하고 편안한 틈에서 무언가 잊고 지냈던 기억이 살아날 듯한데. 갑자기 성냥이 그리운 밤이여. 마지막 하나를 품고
싶은 시간이여. 찾아봐도 없는 성냥이여. -정영효 <성냥>
저
끝에는 당신이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저 흑심의 끝을 본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그것은
사라지기 전까지 깜깜하게 빛난다.
뭔가를
써야 하는, 그래서 연필을 깎고 있는 이의 간절한 마음처럼 연필의 세계란 저렇게 깜깜한 것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연필의 흑심. -여태천, <연필>
어느
곳에고 닿는 곳마다 저마다의 생각이 잘 펼쳐지려면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해야만 하는가.
가방,
휴대전화, 구두, 야구공, 신문, 사전, 술병, 우산, 자동차, 잔...
나도
추리소설의 명탐정처럼 삶의 구석에서 요긴한 것 하나를 건져올리는 시인의 눈이 갖고 싶다.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