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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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의 이유는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이름 없는 자]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을 드디어 읽을 기회가 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오래전부터 실종되었다 다시 나타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범죄학과 행동과학의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가 쓴 소설이 현실에 기반한 것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상이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면 한 번쯤 글로 쏟아냄으로써 자신의 머릿속을 비워내는 작업도 꼭 필요한 일이었을 터.

어둠의 세계를 드나들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그 알 길 없는 그들의 마음 속을 한 번 끝까지 파헤쳐 보자는 마음이 강렬하게 몰아쳤을 것도 같다.

현실인지 가공의 세계인지 애매하여 머리를 갸우뚱하다가 점점 몰입하게 되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 속으로 온몸을 내던져 푹 빠져 있다가 책을 덮고나면 "실화였다" 라는 말에 마지막으로 녹다운 하게 된다.

믿을 수 없어~ 를 몇 번이고 연발하게 되는 놀라운 책.

 

이번 소설은 그가 쓴 작품들을 모두 아우르는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한다.

가출과 실종 문제에 대해 연구해오다가 데뷔작 [속삭이는 자]를 발표했고, 우연한 기회에 바티칸 '사면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혼의 심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원래목적에 따라 연구를 이어나가다가 가출 후 돌아온 10대 소녀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가출'을 경험해 보기도 한 후 [이름없는 자]가 탄생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조금씩은 또아리를 틀고 있을 '악의'를 건드려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잠재의식 속의 연쇄살인범 '속삭이는 자' 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밀라 형사는 '림보'라 불리는 실종전담반으로 이동하여 실종자들을 쫓고 있다. 대형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승진 기회가 주어지자 밀라는 주저 없이 림보 행을 택했다.  모든 게 보류된 상태로 자신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고 죽었는데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도배된 곳이라 "림보"라 불리게 된 실종전담반. 벽에 붙은 미제사건의 '피해자들' 수가 늘어날수록 일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줄어들기 때문에 림보에 합류하려는 사람은 없었는데 제 발로 지하 림보에 틀어박힌 밀라를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날 오래 전 실종된 사람들이 나타나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그 중엔 한 때 림보에 근무하다 홀연히 사라졌던 에릭 빈첸티도 모습을 보이는데...림보의 팀장인 스티프는 밀라에게 사이먼 베리쉬라는 형사를 소개해주며 사건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베리쉬는 한때 현장을 누비는 형사였으나 인류학을 공부한 후 취조나 면담조사 최고 전문가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

밀라와 베리쉬는 사건을 따라가다 '카이루스'라는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유일한 목격자이면서 카이루스의 희생자가 될 뻔했다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온 카밀라의 증언에 따르면 앰브러스 호텔 317호실로 자신을 인도하기 바로 직전에 전화상으로 카이루스는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새 인생을 살아보는 건 어때?"

비참하거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바로 악마의 유혹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치명적인 존재. 어둠의 주인이 '신도'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던진 일종의 미끼이자 약속은 한쪽이 허물어져 버린 약해빠진 인간들에게 너무나도 큰 보상으로 보이게 된다.

 

냉정한 판단력으로 범인을 마주대해야 할 주 인물인 밀라와 베리쉬는 또한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속삭이는 자" 사건 이후 어둠에 중독되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두려움과 어둠을 힘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길을 택한 밀라는 이 사건에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베리쉬 또한 어둠의 주인과의 과거사를 청산하는 데 적극적인 이유는 한때 증인보호프로그램으로 처음 만났던 실비아와 사랑에 빠졌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 때문에 비리경찰이 됐고, 왕따신세로 전락했으면서도 ...

그들의 연약한 마음이 어둠의 존재의 힘에 먹혀들어갈까봐 가슴 졸이면서도 어서 빨리 그 악의 존재와 대면하고 싶어지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초반, 어둠의 존재에게 조종당한 실종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연속 살인사건을 벌인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왜 이들은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좀처럼 그 원인이 드러나지 않아 경찰본부에서는 '테러'라 이름붙이기도 했다. 지지부진한 듯하던 사건이 밀라와 베리쉬의 연합으로 줄기를 잡아가게 되고부터는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단점을 드러내는 둘을 걱정하며 과연 이들이 카이루스를 이길 힘을 가지고 있긴 한 걸까? 계속 걱정하게 되었다. 밀라에게는 앨리스라는 딸이 있었고, 그 딸아이는 밀라의 가장 큰 약점이었기에 어둠의 손길이 앨리스에게 닥치게 되었을 때는 옆에 있는 이불이건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꽉 쥐게 될 정도로 긴장하게 되었다. 제발 앨리스만은...밀라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이 뻔했으므로...

 

사람이 약해질 때, 가장 쉽게 하는 생각은 어딘가로 떠났으면.

아니면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하는 것이다.

바로 그 생각을 교묘히 이용하는 어둠의 주인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하다"라고 인식하고 계속해나갈 때 지옥도와도 같은 현실이 펼쳐지게 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실종의 이유는 과거에서 찾아야 하고 그 과거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상처"로 발현된 것임을 직시하게 해 준다.

작가는 범인이 밝혀지게 되는 과정에 "헉"하고 놀라게 되는 충격적인 반전을 빠짐없이 준비해두었다. 한 번으로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더더욱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또 한 번 놀라게 되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공포와 전율까지도 느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안심하며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쫀쫀한 마무리.

최고의 긴장감으로 인해 끝까지 숨을 참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후속작을 예고하는 섬뜩한 결말까지.

어째 다 읽고 난 후에도 끝이 끝이 아닌 것만 같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강렬한 스릴러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아직 도나토 카리시를 만나지 못했다면 [속삭이는 자]를 먼저 읽고 [이름 없는 자]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밀라의 마음의 행로를 이해하고 이 책을 만나는 것이 훨씬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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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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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욕망이자 개방 지향적인 구조가 아닌가 싶다. -252

 

 사람들에게 삶의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비의를 전달해주는 존재, 우체부 같은 작가 윤대녕이 쉰 살의 문턱을 넘어서며 써낸 글들은 여러번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분명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데도 언뜻 언뜻 내 모습인 양, 내 마음을 거기에 얹어 읽어가게 된다.

스스로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거기 쌓인 더께들을 털어내자 장소에 불과했던 곳들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면서 선뜻 꺼내기 힘들었을 과거의 일들을 어렵게 불러낸 보람이 있었던 게지...나같은 일반 독자의 마음에 한 점 파문이 일게 만들 정도인 것을 보면.

 

 

작가이기에 이런 웅숭깊은 글이 나온 것인지, 쉰을 마주보며 썼기 때문에 깊이가 남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쉰이 되어도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뒤의 말은 쓰나마나 한 것이겠고, 작가이기에 라는 말은 그의 글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다소 낮잡아 쓰는 말인 것 같아 송구하다.

 

그가 불러모은 공간들은 다양하다.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 썼는지 마냥 신기할 정도이지만 작가는 그 일을 해냈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즐거움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공간인 부엌을 불러왔고,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공간으로서의 어머니를 "늙은 그녀"라 낯설게 부르며 기억하고 있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로 함축되는 공간인 영화관에서의 추억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었고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으로 도서관을 이름지었다.

 

과거와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사진 속 인물과 장소를 여봐란 듯이 들이대며 점점 내 앞으로 떠오른다.

사진 속 장면들은 대개 행복한 기억들을 담고 있으면서 나중에까지 꼭 잊지말아 줄 것을 조용히 강요한다.

아니, 그럼.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기억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 스스로 떠올리기 싫어 일부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기억의 어딘가에 우겨넣은 다음 꼭 걸어잠그고서 온몸으로 막고 서 있었던 그 기억은...다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뭐하게?

에이, 찾지 마.

그냥 잊어.

 

공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이 방법은 작가가 시도한 것인데, 함께 읽어나가면서 내 과거를 갈무리했던 방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영화관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봤다고 했던가? 거기서 애틋한 사랑의 기억도 함께 건져올렸다던가?

나 또한 혼자 영화보기를 즐겼던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부산 남포동의 국도극장에서 조조영화를 한 편 보고 학교 가서 수업을 들었거나 학교 수업 마치고 보수동 책방골목의 지하 만화방에 틀어박혀 순정만화에 폭 빠져 눈이 벌개지고 머리가 멍해질 즈음에야 머리를 들었던 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시절 참고서를 싼 값에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보수동 책방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무작정 전과목 참고서며 문제집을 사갔는데, 집에 가서 보니 너무나 시커먼 연필 흔적이 많이 있어서 교환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이 그 집 같고,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같아서 그만 골목 한복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 새 참고서로 바꾸었던 ...아주 옛날의,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 나는 이야기.

 

작가는 도서관에 대한 첫인상을 엄숙하고 권태롭고 음울한 사서의 표정 때문에 납골당같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첫인상은 비슷했으나 이유는 달랐다.

음식점을 하며 하루종일 붙어 있던 부모님은 싸우는 일이 잦았는데,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 그날도 역시 분위기가  쎄~ 한 것이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들어간 느낌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며 "도서관에 가 있어"라고 했다.

우당탕 퉁탕. 그릇 던져지는 소리와 엄마의 "악" 소리가 가방을 멘 채 몇 발짝 걸어나간 내 등뒤로 들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 도서관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엄마의 비명을 등뒤에 매달고 생전 처음 문을 들어서게 된 도서관은 너무도 고요했다.

차라리 소리치고 그릇들이 날아다니는 그 난장판에서 엄마를 꼬옥 안아주고 있을 걸.

두려우면서도 가책이 되는 그 마음을 부여잡고 내내 고요하고 약간은 어둑한 책의 그늘에 숨어 진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날의 기억은...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헤집어지자 더욱 아프고 쓰렸다.

과거의 삶을 꾹꾹 눌러 밟아놓고 아직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해 없었던 척, 숨죽여 살아왔던 내 비겁한 행동이 바늘 끝으로 툭 건드렸을 뿐인데 와르륵 쏟아져나오는 종기고름처럼 흘러나와 어느새 바닥에 흥건하다.

언젠가는 한 번쯤.

유약하게 삐익 삑 울고 있던 그 약하고 불쌍한 소녀를 찾아내서 토닥여 주어야지.

했는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인가.

 

이제 둑은 무너뜨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작가가 건드린 무언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몇 년 째 찾아가지 않고 있는 내 아빠. 지금 나의 그 무심함은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무서운 길을 혼자 허위허위 걸어가던 허깨비같던 어린 아이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상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건드려진 부위는 툭 째고 꽉 짜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발라두어야 한다.  그럼 가끔 호호~ 하고 불어 주면서 새살 나기를 기다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

 

그 영화관과 그 만화방과 옛날 살던 그 집과 도서관.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형되었을 그 공간들로부터 아련한 꿈과도 같았던 시절들을 복원하는 과정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삐그덕.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살짝 열린 문을 들어갈지 닫고 돌아설지는 다시 나의 몫이다.

무수한 고심 끝에 힘겹게 열고 보니 입맛이 쓰다.

다디단 사탕 하나 물고 ...힘을 내야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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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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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리로 떠난 너, 절대 부럽지 않아!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요즘 들어 뜨고 있는 개그맨 조세호의 유행어 ,

양 손의 두 손가락씩을 맞대 붙이며 "깔끔하게~"를 좀 촌스럽게 우물거리며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의 유행어 그대로 "깔끔하게"

유럽을 만날 수 있는 책.

평론가로 유명한 정여울이 글을 썼고, 공동기획, 사진제공한 곳은 대한항공이다.

어쩐지...

가까이 다가가 찍은 사진이라기보다는 멀리서 잡아낸 듯한 사진이어서 사람냄새나는 시끌벅적함과 따뜻한 온기는 좀 덜하지만 깔끔하고 멋지다!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여름 방학을 맞은 나는 매일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집안에서 부대끼고 있는데,

내 친구는 나이가 마흔이 넘었건만 방학을 즐기러 프랑스로 떠났다. 남편과 함께.

여행의 재미가 쏠쏠한지 페이스북에 둘의 애정행각이 실시간으로 뜬다. 일주일 넘게 나의 아침은  멋진 파리의 풍경과 그 안에서 노닐고 있는 파리 두 마리의 사진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떴음을 알리는 "띵동"소리로 시작한다.

아이가 없어 둘만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 둘이 미치도록 부러워지는 때가 바로 방학 때이다.

어스름녘의 개선문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만 찍었어도 작품으로 남았을 사진에 일명 "파리의 연인" 포즈-둘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여성의 한쪽 다리가 살짝 뒤로 올려지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모습-가 겹쳐진 모습을 올려 열심히 아이들에게 폭풍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의 일상을 한순간 정지 상태로 만든 이 둘을 내 어찌 가만두리오!!

나른한 오후의 뤽상부르 공원에 점점이 흩어져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만 있었어도 좋은 풍경 감상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을 터인데, 또 그 배경에다가 무슨 짓을 했냐 하면...

4인의 비틀즈가 런던의 애비로드를 일렬로 건너는 장면을 패러디하여 각목같은 몸에 각을 세워 단 둘이서 그 장면을 패러디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 푸하하~ 그냥 웃고 만다.

 

아~ 배아픔.

그러나 나에게는 너희들의 인증샷보다도 훨씬 세련되고 깔끔한 사진이 엄청 많이 실려 있고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곳곳을 벌써 갔다온 것처럼 뻐길 수 있게 빠삭한 설명이 곁들여진 이 책이 있단 말씀.

너희들의 한 줄짜리 페북 멘트보다도 더 우아한 글이 있고 유치찬란한 설정샷보다도 더 완벽한 유럽의 풍경들이 빼곡한 이 책으로 이 배아픔을 이길 수 있다고.

 

 

 

부러우면 지는 거다. 를 주문처럼 외며 한때 이상한 나라의 폴이 몸을 구불구불하게 흔들며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듯이 나 또한 유럽에 곧 빨려들어갈 듯한 기세로 책을 넘기게 된다.

그들의 여행 소식을 몰랐을 때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여행이란 것이, 여기 한국, 아니 부산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파리로 슝~ 날아가서 알려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저 신기루인 줄로만 알았던 오아시스를 만질 때만큼의 현실감을 가진다.

그래서 글자 하나, 사진 한 컷에 좀 더 집중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딱히 현실에 지쳐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면서 "여행"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는 순간 지표면에서 한 5cm 붕 떠서 다니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구름 위에 올라 앉아 지상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묘한 기분으로 즐기고 있었다.

초보부터 여행 숙련자까지 모두들 원하는 여행의 형태는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만 참고로 해도 훨씬 풍요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에 제격인 파리는 길을 잃어야 제맛이라는데...

 

정여울 작가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모은 미니어처들.

영광의 전리품이련가.

작은 소품들을 바라보며 그 때 그 장소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여행 하면 사진.

마법같은 풍경 속으로 안내해 줄 장소들이 또한 줄줄이 소개된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나폴리의 '산타루치아 해변', 그리스의 이아 마을 '파란 노을', 이탈리아 알베로벨로 '스머프집 트롤로', 위의 오른쪽 사진 속 그 장소-포르투갈의 포르투 '렐루 서점'...

사진만 찍어와도 행복하겠다.

여행 초보자만이 할 수 있는 순진한 말인가?^^

 

10개의 주제로 나눈 여행 방법 중에서 위대한 예술을 만나는 시간도 좋고, 달콤한 유혹을 느끼는 시간도 좋고, 그들처럼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내가 꿈꾸는 여행은 "바로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헤르만 헤세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헤세는 루가노 호숫가의 고용한 마을에서 '카사 카무치'를 발견하고 그 곳에 반하여 방 네 개를 빌렸다고 한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헤세의 그림에 여러 번 등장했던 그 곳을 실제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어느새 크게 자리잡았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선천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되었다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사사로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 무척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헤세의 세 여인 중 어떤 여인이 '카사 카무치'에 함께 살았는지도 궁금하고 그림들도 실제로 보고 싶다.

 

<사진 출처-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아~ 이 책 덕분에 당분간은 프랑스 여행을 아직도 열흘이나 남겨두고 있다는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이 다소 누그러진 채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떠난 친구야~

내일은 또 어떤 곳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서 밤에 잠도 못 이루고, 낯선 곳에서 물갈이도 할 것이며 눈 뜨면 걷게 되는 고된 일정에 힘들겠지만

부디 나 대신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와 주길 바란다.

눈과 다리는 피곤하겠지만 저벅저벅 걷는 동안 한가해진 정신에는 앞날을 살아갈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도록 하고, 오늘 날이 흐려 "몽 셍 미셸"을 제대로 못 보았다 투덜거리지는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오도록 하여라. (속으로는 아주 고소함^^)

 

담배 속에 니코틴이라는 화학적 성분이 들어 있다면, 파리의 공기 속에는 '파리진'이라는 특수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파리의 장소들]에 따르면, 이 '파리진'은 니코틴처럼 중독성은 있지만 유독성은 없는 물질이라고 한다. 파리진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마법을 지니고 있는 환상적 물질이다.-30

 

파리진에 이끌린 것인지  두 번째로 파리를 찾게 된 친구야!

돌아올 때는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나를 위해 책 한 권 사다 주지 않으련?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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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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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식 소소한 체험 [도쿄기담집]

 

 

 

소설가 하루키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가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체험을 꾸미지 않고 적은 글들도 나는 좋다.

[더 스크랩]이라는 어여쁜 에세이 책이 신기한 모양도 그렇고 흥미있는 내용도 그렇고 꼭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번에 나온 [도쿄기담집]은 표지에서부터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2종 커버 중에서 랜덤 발송이라는 신선한 발상!

내게는 핑크가 도착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모두 다 마음에 든다.

하루키의 글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글에서는 현실을 논하고 있어도 어딘가 거울 속에 비춰진 현실인 것 처럼 조금씩 일그러지고 적응되지 않는 뭔가를 느낄 수 있다.

[1Q84]에 나온 두 개의 달처럼. 하나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달이 그가 그리는 세계에서는 두 개인 것이 당연한 것으로 서술되자 끝내 '달 두 개의 세상은 이상한 것이다', 라며 반발하지 않고 기묘하게 동화되어 어느덧 그 세계를 자연스럽게 거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도쿄기담집]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꼈던 바로 그 기이함이 보다 구체적으로 눈앞에 드러난 책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겪은 소소한 체험들을 적는다, 는 식으로 서두를 뗀 하루키는 그야말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능청스러운 어조로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말투가 너무나 천연덕스러워서 어, 어쩌면 이런 일을 실제로 겪은 적이 있을지도...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며, 어쩌면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을 찾아보면 의외로 꽤 많을지도...라고 중얼거리게 되기도 한다.

하루키의 페이스에 말려 든 것일까?

 

우연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 <우연 여행자>, 서퍼인 아들을 잃고 해마다 아들을 잃은 하와이의 하나레이 해변에 찾아가는 엄마의 이야기 <하나레이 해변>, 24층과 26층의 계단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이 한참 후 센다이 역 벤치 앞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말로 기이한 이야기<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등 5편의 이야기가 하나 버릴 것 없이 존재감을 발휘하며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얇은 책이라 들고 다니기 부담이 없어 주말 나들이를 떠난 사이 읽으려고 챙겨 넣었었다.

주말 나들이를 떠난 곳은...빙상장.

더위를 싹 날려버릴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다.

아이들과 남편을 빙상장 안으로 들여보낸 후, 냉기가 빠져나와 꽤 소름돋는 추위를 간직하고 있는 대기실에 앉아 주섬주섬 책을 펼쳤다.

"기담"이라 너무 서늘한 무서움을 뿜어내면 어쩌나...빙상장의 냉기와 책에서 느끼는 한기로 얼어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사실 그렇게 오한 들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빙상장의 냉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서늘함을 간직한 이야기들.

얼음이 내뿜는 한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담을 읽는 재미가 완벽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더위에 찌든 몽롱한 정신으로 읽는 것보단 어깨 움츠려가며 정신 바짝 차리고 읽는 기담이 더 짜릿하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빙상장 한 켠에서 나를 쳐다보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가끔씩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려고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눈길에 조금의 두려움이 서려 있긴 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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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담담하려 애썼지만 울컥하는...[상실의 시간들]

 

태어날 땐 태어나느라고 고생이고, 살면서는 병들고 늙어가느라 괴롭고, 죽을 땐 죽느라고 무섭다. 고통만이 인생이다. -207

 

여러 번의 굽이굽이를 거쳐 이제 평탄한 언덕에 안착한 지금에 와서 내 인생이 어떠했나, 되돌아 보니 어지러웠던 그 때의 고통과 절망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 시절엔 숨이 막혀 꺽꺽 거리던 순간이 있었고 슬픔의 강에 빠져 죽을 것 같던 장면이 있었고 이걸 해내지 못하면 다시는 살아갈 힘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내 짝을 만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큰 걱정거리 없는 날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니 바싹 말라 있던 내안의 물줄기가 도도한 물살의 흐름을 타고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하여 꺾어진 80을 앞두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구나, 하며 배 두드리고 미소를 깨물며 살고 있는데, 내 앞에 사진앨범을 촤르륵 펼쳐보인 것처럼 나의 지난날의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리는 이 책이 나타났다.

 

아직은 "상실"을 얘기하기엔 내가 누린 행복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책을 읽기엔 시기가 맞지 않다고 느껴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가 슬그머니 들췄더니 착착...주인공 석희가 어머니의 49제를 치르고 그 이후로부터 99일까지, 그리고 한참 후의 일까지를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이야기에 나의 기억이 스며들어 한 몸이 되었다.

 

퇴역 군인인 아버지의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권위를 과시하는 스타일은 내 아버지의 모습과 판박이였고, 엄마를 잃은 경험은 그 형태만 다를 뿐이지 (분명 존재하면서도 함께 부대낄 수 없는 내 엄마)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뽑아다 놓은 것 같았으며, 세 딸들의 갈등은 지금 현재 내가 내 여동생 둘과 반목하고 있는 갈등의 그 지점, 바로 그것을 재현해 놓고 있었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커다란 설정이 앞에 놓이고 장례를 둘러싼 가족들의 반응이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49제 이후의 나날들이 하루하루...이어진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장례식을 치른 후에도 어머니 살아 있을 적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생을 이어간다. 신장이 안좋아 병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고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니 실질적으로 아버지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은 둘째인 주인공 석희다.

첫째와 셋째가 가끔씩 들러 훈수를 두는 사람이라면 석희는 아버지의 성질을 다 받아내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처리해주어야 하는, 말하자면 엄마의 대용품 노릇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 지긋지긋함, 내가 잘 안다.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언니 얼굴엔 한 점 악의도 없다. 말도 선량하고 착하기만 하다. 언니는 아버지를 지금보다 더 잘 모셔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니까, 자기 말이 완전히 옳고 바르다는 확신을 갖고 있겠지. 권하는 말을 하면 할수록 효녀가 되는 좋은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뭐란 말인가?저 말에 무슨 이유를 붙여 싫다고 대답한들, 결론적으로는 아버지를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악역이다. -263

 

혹시 나도 동생들의 눈에 이런, 선량하고 착하기만 한 언니로 비춰지는 것일ㄲ? 아마 그럴지도..

 

자애롭고 부성애 강한 아버지와 함께 단둘이 있는 것도 숨막힐 노릇일 텐데, 명령과 규율의 세계에 익숙하며 군림하려고만 하는 답답하고 고지식한 연금생활자인 아버지와 살려면 그 비위 맞추어 내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머니 사후 100일 정도의 꼼꼼한 기록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나는 아직 우리 가족 누구의 상도 치러보지 않았지만 황망하고 깜깜할 장례의 날들과 애도하는 49일이 지나고 나면 어떤 얼굴을 하고 살아갈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누군가와 마주대하며 그 때마다 어머니를 추억해야 할 일.

잔잔한 파도만이 가끔 왔다갔다 하던 일상에 폭풍같은 쓰나미가 몇 번씩 와 닥치곤 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어쩌면 석희네 집의 일을 나도 똑같이 답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담담한 이 서술 속에서 많은 비를 뿌릴 먹구름의 존재를 감지한 후부터는 절제된 감정의 이야기에 시도때도 없이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쩌면 우리 아빠도... 어쩌면 내 동생들도...

너무도 핍진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어, 말하자면 진실의 거울 앞에 서게 되어 거울을 깨버리고 싶은 충동,  자꾸 외면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용기를 내어 마주보아야 한다는 조용한 조언을 작가는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담담하려 애썼지만 울컥하는 심정...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동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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