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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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또르르 머리 굴리다 패함 [그랜드 맨션]

 

또르르 머리 굴리려다 작가에게 된통 당했다!

"이야기의 구성을 교묘하게 뒤틀어 트릭을 만드는 '서술트릭'의 대가 오리하라 이치." 라고 역자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는데도 가볍게 무시했다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모두 7편의 단편 중 첫 번째 단편을 읽으면서 "아, 신선하다."하며 눈빛을 빛냈고 다음 번에는 속아넘어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이쯤에서 두 손을 들고 메모를 시작했더라면 ~하고 후회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무슨 기억력을 믿고 그 많은 맨션 주민들을 그냥 스르륵 흘려보냈던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단편을 읽으면서는 감히 맞붙어 보겠다는 호언장담이 쑥 들어가 버렸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며 허점을 쑥 파고드는 작가에게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7번의 반전을 겪으면 혼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정신 혼미.  

 

 

 

 

이 심상치 않은 표지 사진을 보라.

 

 

선명하게 대비되던 빨강과 파랑이 어느새 색채가 지워진 채 머릿속에서 엉켜버린다.

 

 

아파트보다 조금 나은 낡은 4층짜리 공동주택, 그랜드 맨션.

본사에서는 그랜드 맨션이 노후 건물이라 해체할 계획이었으나 마지막까지 이전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이 남아 있어서 공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랜드 맨션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유아학대, 가정폭력, 연금 부정수급, 전화사기...그야말로 현대 일본이 안고 있는 어둠, 또는 병적인 문제가 이 공동주책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335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당연히 퇴거하고 노령화된 입주민 중 몇 명은 자연사해 입주민 수는 점점 줄었다. 초조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면 모든 집이 비어 팔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랜드 맨션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진짜 원인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랜드 맨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뉴스의 사건사고 단골 메뉴들임에 틀림없다.

 

202호의 사와무라 히데아키는 실직한 상태인데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아내가 집을 나간 후로 왠지 윗층의 소음이 견딜 수 없어졌다. 술 냄새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는 윗층 여자에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말하자 "얌전히 시킬게요."라고 대답한 뒤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서 히스테릭한 비명이 들린다. "이 새끼들, 죽고 싶어!" "입 다물어. 다물라고, 죽여버린다!"

사와무라는  위층 아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빙빙 돈다. "때렸더니 조용해지고 냄새가 난다."

오싹한 사건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말 때문에 위층 여자에 대한 혐의가 짙어진다. 과연...범인은?

 

단편 중 1편 <소리의 정체>에서부터 작가에게 말려버린 후에는 술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이후 계속 반복되는 말에 집중해가며 읽었다. 작가가 반복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유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역자의 팁을 백퍼센트 반영한 것이다.

그랜드 맨션의 민생 위원을 맡고 있는 전직 공무원 다카다 에이지가 노령자들의 안위를 위한다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소식을 주워모으고 있지만 역시 그로써는 한계가 있는지 스쳐지나가듯 했던 인물들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맨션 주민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해달라는 다카다 에이지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밝히기를 꺼리는 관리인의 실랑이가 자주 펼쳐지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관리인"이 사실은 둘이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기 일쑤다. 요컨대 현란한 말재주와 어물쩍 넘어가는 반복되는 구절에 트릭을 다 숨겨놓았는데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꼭 잡고 있어야 할 정신줄을 놓게 된다는 말이다. 그랜드 맨션 1관, 2관, 3관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 한다.

105호의 노망난 늙은이 다가 이네코의 깜빡깜빡하는 증상이 저절로 전염되는 듯하다.

 

아~ 끔찍하지만 다시 또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중독성 있는 반전의 반전.

 

 

결국, 이 책을 두 번 읽어야 했고 두 번째에는 메모 필수라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작가에게 덤벼보리라 하는 각오로 읽으면서 사건 중심으로 읽어나갔지만  당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심히 읽어나가면서 죽자 사자 메모했지만 속아넘어가는 과정을 되새김질하는 기분은 역시 씁쓸했다.

패배감을 복기하는 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다음에 이 작가의 책이라면 또다시 손을 뻗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또르르 머리 굴린다고 나름 굴렸지만 결국엔 패함.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그저 즐기기를 권하는 바이지만 메모를 준비하고 야심차게 트릭에 도전하겠다는 이가 있다면, 감히 도전해 보시라고...거기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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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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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목련흉가로...[밤의 이야기꾼들]

 

여름밤에는 역시 괴담, 기담 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제맛이다.

불을 꺼놓은 방에 모여 앉아서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소름돋는 이야기를 듣는 맛이란...

 

어린 시절에는 이런 시간이 제법 있었다. 오랜만에 친척 언니, 오빠를 만나면 "이리 와봐~" 하면서 끌고 들어가 불을 끄고 분위기를 한껏 돋운 다음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몸이 토막난 시체가 독 안에 들어있다가 범인과 마주했을 때 갑자기 "바로 너!" 하고 일갈했다든지...깊고 깊은 산골의 으슥한 길을 가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로 시작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가만 앉아 있다가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오금이 저려왔다.

화장실을 자꾸 가고 싶은데 화장실에서 뭔가가 손을 흔들며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하고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넬까 싶어 오줌을 참기도 했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었다.

[월간풍문]이라는 잡지사의 기자 둘이-"나"와 대호 선배-서 목련흉가로 취재를 갔다.

어둠과 고요 속에 놓여있는 의자에 형광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이 도착하여 의자에 앉으면 그 테이프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으로 누군가가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 이제 모두 모였으니 올해의 '밤의 이야기꾼들'을 시작하겠습니다."

 

노인의 말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명의 이야기꾼들이 차례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울 시내의 폐가, 자정, 암흑 속에 둘러 앉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이름의 비밀 모임.

긴장과 스릴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쳐진 상태에서 오소소 소름돋는 이야기들이 하나둘 꺼내어진다.

 

거슬리는 목소리의 여자가 들려주는 잃어버린 물건과 난쟁이 이야기에서  

사이코 여자의 해괴한 짓거리인지 도플갱어의 출현인지 모르게  애매모호하게 끝맺어진 정신과 의사의 고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어느새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억양의 남자가 들들려주는 "홈, 스위트 홈"  이야기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라는 노래를 들으면 꼭 생각날 것만 같다.

한때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빨간 마스크"이야기의 재해석판 또한 생생하고 끔찍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정재영 주연의 영화 <이끼>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의 저주 이야기 "눈의 여왕" 결말은 사랑 이야기로 귀결된다.

'밤의 이야기꾼들'의 규칙과 전통은 처음 참석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참석한 "나"는 어느새 마음 속에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홉 살 여름, 어두운 밤, 미친 듯이 내리던 폭우로 물이 불었던 계곡에서 겪었더 그 날의 일을 ...

 

마지막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는 결코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 이야기 아닌가. (혼자 중얼거리면 정신병자로 오인받기에 딱 좋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얼굴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이야기할 대상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다.

꼭꼭 숨겨두었던 묵직한 덩어리를 밖으로 뱉어내는 그 행위만으로도 이미 그 덩어리의 무게는 훨씬 덜어진다.

아줌마들의 수다든, 직장인들의 뒷담화든.

이야기를 뱉어낸다는 행위는 스스로 정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다.

어떤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후세에 전달한다는 거창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잡담 수준의 이야기라도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속이 후련해지도록 일단 비워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쌓일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머리끝이 쭈뼛 솟는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서늘한 바람이 땀으로 젖은 등줄기를 시원하게 식히고 지나간다.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

때론 너무 평범해서 지나칠 수도 있지만 속을 파고들면 괴담이나 기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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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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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살인마와 2천년된 나무의 만남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이것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가 오랜만에 나왔다.

[이즈모 특급 살인]의 열혈 형사 요시키 다케시 시리즈와는 또다른 성격을 가진 미타라이 기요시를 만나게 되어 설렜는데, 내용이 후덜덜하다.

어둠 비탈의 식인 나무.

제목에서 "식인 나무"가 너무 크게 부각되어 처음부터 나무의 힘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시무시한 살인마의 존재를 잠시 제쳐두게 되었달까.

추석 연휴에 한 절을 찾았다가 700년 된 나무를 보았는데, 그 나무는 둘레가 3.1미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둠 비탈의 2천년 된 녹나무는 ...

나무 둘레가 가장 두꺼운 밑동 근처는 20미터 가까이나 된다고 소개되고 있다.

조몬, 야요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전국 시대를 지나 에도 시대까지...어마어마한 역사를 삼킨 나무는 기이하게도 수세가 약해지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기이한 괴수다. 이렇게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 거목의 무언의 압력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뒤틀리고 굽은 줄기를 보면 추악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기분도 든다. 이 뒤틀린 모습은 이 세상이 잠재적으로 가진 온갖 사악한 기운의 상징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괴이, 기태. 서양관의 모퉁이를 돈 그 순간부터 나는 그야말로 다른 차원의 어둠 속에 발을 내딛고 만 것이다. 바람이 멈췄다. 땅거미와 안개가 우리와 이 거목을 천천히 감싸 안으려 하고 있다. 나는 온몸이 가위에 눌릴 듯한 예감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웠다. -209

 

작가가 특히 심혈을 기울여 쓴 듯한 녹나무에 대한 묘사를 읽는 순간 바로 녹나무의 주술에 걸려들게 된다. 사람을 그대로 집어삼킬 수도 있을 정도로 뚫린 구멍,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봉인하고 있으며 바람결에 영혼들의 비명이 들릴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1984년을 현재 배경 으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사건들까지 연루되어 있다. 1945년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창이 하나도 없는 기이한 건물을 짓고 있는 남자 이야기로 시작될 때부터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하는 책이라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남자는 소녀의 두 눈알을 꼭 쥔 채 노래도 부르고 혼자 미친 듯이 춤도 추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점차 웃음이 사라져갔습니다. 투명하도록 아름답던 초록색 눈동자가 점점 부옇게 탁해져갔기 때문입니다. -10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살인마의 행동으로 강렬한 프롤로그를 연 이후, 간간이 섞여 들어 있는 참혹하고 끔찍한 시체의 묘사는 모두 어둠 비탈의 녹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어둠비탈의 서양관 지붕에 걸터앉아서 사람을 먹는다는 나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죽어 있던 남자, 그 나무 아래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고령의 여성, 43년 전에 그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참혹한 소녀의 시체...

 

사람의 오랜 역사를 한 자리에서 지켜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는 비밀을 다 안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구멍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사악한 정신의 집합체라는 공동의 묵인하에 사람들은 어둠비탈의 녹나무를 두려워하며, 녹나무에서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나무 자체에서 떨어져 사건의 핵심을 찾으려 했다.

이 나무에는 뭔가 있다고 다들 생각하며 아무도 손을 대지 않게 된 것이다. 살인마는 그것을 노린 것인지...놀랍고 중요한 비밀이 감춰져 있어도 절대 밝혀지지 않은 데에는 2천년 된 나무의 힘이 컸다.

 

인간의 한 맺힌 피를 빨거나 그 영적인 힘을 잔뜩 흡수하는 환경에 있는 나무는 왠지 몰라도 거대하게 큰다니까요. -213

 

물론, 나무의 주술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활약 덕분이다.

범죄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을 파헤치는 그의 활약이 정말로 눈부시다.

 

극한적으로 풍족해지면 어떻게 되는가. 좋은 음식에 질린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 -241

 

누구도 풀 수 없었던 비밀을 겨우 풀었지만 짠~ 하고 나서서 밝히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사건해결에 있어서는 다짜고짜 밀어붙이기를 잘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새빨간 거짓말도 불사하는 남자. 여자의 감정을 쥐뿔도 이해못하지만 묘하게도 여성들의 마음을 여는대 재주가 있는 남자,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뭔가에 신경을 빼앗기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성격의 남자.

 

 

그러나 사려깊은 행동으로 범죄에 연루된 사람의 앞날까지 내다보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 남자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스포를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이 이야기의 키워드 하나만 투척하고 사라지려 한다.

"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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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 인간사랑 중국사 3
쑨리췬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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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품격 [중국 고대 선비들의 생활사]

 

 

솔잎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멧새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학이 우는 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빗방울이 섬돌에 듣는 소리, 창문에 눈 내리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그지없이 맑지만 책 읽는 소리가 제일이다.  -송의 예사, <경서당잡지>, 56

 

 

오래된 중국의 역사에서 "선비"는 다양한 변천을 겪어왔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과연 어느 시대의 "선비"를 콕 집어 말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답부터 말하자면 선진 시대부터 청까지...선비의 거의 모든 역사를 아우르는 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긴 역사 속의 선비들이 다 들어 있다.

 

선비는 고대 중국의 지식인에 대한 일종의 호칭이다.  선진 시기에 선비는 젊은 남자, 군사, 각급 귀족을 통칭한 것이었는데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의 통일 등을 거치면서 각각 의미를 조금씩 달리 하게 되었다.

중국 고대 선비의 구성은 복잡하다. 선비는 독립된 계급이 아니었으며 관리와 민간인 사이에서 위아래로 다 통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활동은 문화 전파와 사회관계의 활성화를 촉진시켰다. 선비들의 내부 구성의 복잡함과 직업의 다양화는 그들의 생활수준과 생활 방식을 서로 다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인품과 덕성, 그리고 성격도 제각각 다르게 만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군자, 지자, 재주꾼, 심지어 변절자까지... 중국 고대 선비 및 그들의 사회생활에 관한 연구는 중국 사회와 중국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중국 고대 선비는 역사에 대한 강한 사명감과 우환의식을 품고 있으며 정치 참여를 천직으로 여겼다. 정치적인 이상을 실현하고 개인적인 생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벼슬살이를 했던 선비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춘추 전국시대에는 정치가, 사상가, 군사전문가, 문학가 등으로 분화해서 살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강렬한 사명감과 적극적으로 벼슬길에 나서려는 정신은 고대 선비들의 뛰어난 품격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중국 고대에 도가의 이상적인 인격과 유가의 이상적인 인격은 선비들이 추구하는 인생, 가치, 그리고 행동과 생활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유가와 도가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상적인 인격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보완하면서 선비들의 정신세계에 평형을 이루게 했으니, 뜻을 이루면 세상 사람을 두루 구제하고 여의치 않으면 홀로라도 자기 수양을 했다. 유가와 도가가 추구하는 서로 다른 이상적인 인격은 선비들의 생활을 더욱 다양하고 개성 있게 했으며 생활의 내용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1장 에서 중국 고대 선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쳤으니 이제 고대 선비들의 품격과 처지를 직접적으로 알게 해 주는 고대 선비의 생활로 넘어간다.

 

2장 에서는 선비들이 느꼈던 독서 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소개되고, 책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서, 베끼기와 보관 등에 관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들의 부지런한 정신과 노력으로 중국 문화가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을 느낄 수 있다.

 

 

3장 에서는 선비와 벼슬길 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벼슬길의 역사적 변천을 볼 수 있고,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이 누리는 전려대전, 은영연, 어사, 석갈등도 소개되어 있다. 지금의 고시 열풍에 비견할 만한 옛날의 과거 제도의 명암을 진짜 제대로 살펴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비추어 보고 현명하게 앞날을 내다보게 한다.

 4장, 선비의 의와 식에서는 선비의 복식, 음식, 술, 차, 약 등 흥미로운 부분이 꽤 들어 있다.

 

선비의 생활사 중에서 가장 솔깃하며 따라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부분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의 식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대 선비의 이름으로 명명된 요리나 반찬, 음식에 관한 전설 등이 나와 있어 음식의 문화사를 접할수 있다.

두부, 만두, 줄과 순채국, 소주의 맛있는 음식인 줄과 순채국, 농어회, 위진 시기 은둔한 은사들이 좋아했던 청정반, 소식의 동파육과 동파갱 등등...

선비라면 이 정도는 ~^^

5장-선비의 주거와 행동, 6장-선비의 회합과 결사, 7장 선비와 금기서화, 8장 선비와 청루의 여자

제목만으로도 선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9장 은 중국 고대 선비들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위진 시대 선비들 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귀적의'歸適意 -문제를 생각하고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자기의 간절한 뜻에 맞는지부터 출발하여 일단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조금도 주저함 없이 다른 계획을 세운다.-로 귀결되는 생활관이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마음과 뜻에 맞는 개성적인 생활방식은 고대 선비들에게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선비들이 생활에서 멋을 중시했으며 생활에서의 품위를 염두에 두고 각자의 생활을 개성화하고 다양화했다.

 

 

 

유유자적 자연에 은거하면서 책을 벗삼고 가끔 술도 마시고 시도 짓는 선비는 수많은 선비들의 삶의 모습 중 일부에 해당함을 알았다. 

진정한 선비의 품격을 이해하게 되었고 옛 중국 선비들의 생활 모습이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식인이 가야 할 길은 올곧은 옛 선비들이 걸었던 길이라는 역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선비의 품격"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복장을 선비답게 갖추고 하루종일 앉아서 책만 읽는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말이다.

군자, 대장부, 성인 등 선비의 품격을 제대로 체득한 사람을 일컫는 이 단어들은 단어 이상의 문화와 사상을 담고 있는 것임을 알겠다.

선비의 생활사 안에 너무나도 많은 모습이 담겨 있어 놀랐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짧게 요약한 내용으로 이 책의 많은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명나라 진계유, [소창유기] <집경>-339 인용하며 마친다.

 

 

솔숲에 오두막 지으니,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이 문을 막아서네.

푸른 숲 속을 한가롭게 거니니,

꽃잎이 옷을 적시네.

섬돌에 가득한 싱그러운 풀,

차 달이는 연기 몇 가닥,

눈에 보이는 것은 봄날의 풍광,

귀에 들리는 것은 꾀꼬리 노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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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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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연 [나는 누구인가]

 

2014년 9월 5일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일차적 답변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네모반듯한 이력서와 그 이력서 어느 한 켠에 붙어 있는 단정한 나의 사진이다. 한 때는 그 이력서를 꽉 채우기 위해 살았다.

영정사진도 아닌데 "얼음!" 한 것 같은 표정 없는, 아니 영혼 없는 얼굴이 붙어 있는 이력서는 말 그대로 나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역사는 나의 출생과 성장과정, 장점과 단점, 학력관계 증명을 비롯한 각종 증명들이 줄줄이 적혀 있는, 겉껍데기 역사다.

이제까지 그 겉껍데기 역사를 짊어지고 험난한 세상에서 한때나마 직업을 갖고 돈이라는 것을 벌었으며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이력서에 적힌 나의 발자취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단정하게나마 찍혀 있던 내 얼굴은 그 때 그 시절의 빠릿함을 잃었다.

직장인으로 어엿하게 살던 그 때는 그나마 매일 집을 나서며 "나는 누구인가?"비스무리한 의문을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질문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나" 아닌 다른 " 역할" 들만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크게 내세운 책을 보았을 때, 꼭 읽어보고 싶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한 인문학 공개강좌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는데, 1회는 "동양고전" 편이었고 2회는 "서양고전" 편이었으며 이번 3회가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이다.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제일 고민해야 할 인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어떻게 살아야 할까?""어떻게 죽느냐?"

이 세 가지 과제는 '진선미의 인문학'이라 부르며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이다.

 

이 책에서는 인문학의 과제  세 가지 중 두 가지- 1부에서 "나는 누구인가?", 2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국내 학자-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이태수, 정용석, 최진석-는 물론이고 슬라보예 지젝 같은 세계적인 석학이 강연한 내용들이 원고로 정리되어 책으로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지혜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기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으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단일 주제를 파고들 수 있어서 무척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석학들의 지혜를 조금씩 엿보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향연을 누려보자.

 

자본주의가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돈을 얻기가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게 됩니다. (...)

인간의 동물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인간적일 수 있습니다. 동물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는 고귀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리적인 것을 거스르는 일, 사랑, 연대, 공감입니다. -강신주

 

현대인을 이해하는 세 가지 화두 : 몸, 돈, 사랑

백수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자신의 몸을 믿고 생명의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면, 디지털 문명이 가져다주는 앎의 해방을 마음껏 누리는 그런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미숙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살펴 보며 이제 겨우 고민을 시작하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열띤 어조로 말하는 서강대 교수 최진석을 만났다.

그는 <장자>의 윤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진짜 접촉해야 할 것은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사건이고 감각이라며 따금하게 일침을 놓는다.

인문학의 부흥이라고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뭐하나. 책에 적혀 있는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찌꺼기에 불과한 것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유연하듯이,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유연하다는 알듯 말듯한 비유 또한 진정한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 번쯤 꼭 깊이 사유해보아야 할 말이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반쯤 뜨고 책을 읽어가던 나를 바짝 일으켜세웠다.

 

인문학의 첫 출발은 나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다.

나를 제대로 성찰한 다음 할 일은 나를 제대로 알고 인문학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제대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머리 꼭대기가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읽고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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