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연 [나는 누구인가]
2014년 9월 5일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일차적 답변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네모반듯한 이력서와 그 이력서 어느 한 켠에 붙어 있는 단정한 나의 사진이다. 한 때는 그
이력서를 꽉 채우기 위해 살았다.
영정사진도 아닌데 "얼음!" 한 것 같은 표정 없는, 아니 영혼 없는 얼굴이 붙어 있는 이력서는 말 그대로 나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역사는 나의 출생과 성장과정, 장점과 단점, 학력관계 증명을 비롯한 각종 증명들이 줄줄이 적혀 있는, 겉껍데기 역사다.
이제까지 그 겉껍데기 역사를 짊어지고 험난한 세상에서 한때나마 직업을 갖고 돈이라는 것을 벌었으며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이력서에 적힌 나의 발자취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단정하게나마 찍혀 있던 내 얼굴은 그 때 그 시절의 빠릿함을 잃었다.
직장인으로 어엿하게 살던 그 때는 그나마 매일 집을 나서며 "나는 누구인가?"비스무리한 의문을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질문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나" 아닌 다른 " 역할" 들만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크게 내세운 책을 보았을 때, 꼭 읽어보고 싶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한 인문학 공개강좌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는데, 1회는 "동양고전" 편이었고 2회는 "서양고전" 편이었으며
이번 3회가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이다.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제일 고민해야 할 인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어떻게 살아야 할까?""어떻게 죽느냐?"
이 세 가지 과제는 '진선미의 인문학'이라 부르며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이다.
이 책에서는 인문학의 과제 세 가지 중 두 가지- 1부에서 "나는 누구인가?", 2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국내 학자-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이태수, 정용석, 최진석-는 물론이고 슬라보예 지젝 같은 세계적인 석학이 강연한 내용들이 원고로
정리되어 책으로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지혜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기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으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단일 주제를 파고들 수 있어서 무척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석학들의 지혜를 조금씩 엿보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향연을 누려보자.
자본주의가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돈을 얻기가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게 됩니다.
(...)
인간의 동물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인간적일 수 있습니다. 동물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는 고귀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리적인 것을 거스르는 일, 사랑, 연대, 공감입니다. -강신주
현대인을 이해하는 세 가지 화두 : 몸, 돈, 사랑
백수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자신의 몸을 믿고 생명의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면, 디지털 문명이 가져다주는 앎의 해방을 마음껏 누리는 그런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미숙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살펴 보며 이제 겨우 고민을 시작하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열띤 어조로 말하는 서강대 교수 최진석을 만났다.
그는 <장자>의 윤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진짜 접촉해야 할 것은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사건이고 감각이라며 따금하게 일침을 놓는다.
인문학의 부흥이라고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뭐하나. 책에 적혀 있는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찌꺼기에 불과한 것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유연하듯이,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유연하다는 알듯 말듯한 비유 또한 진정한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 번쯤 꼭
깊이 사유해보아야 할 말이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반쯤 뜨고 책을 읽어가던 나를 바짝 일으켜세웠다.
인문학의 첫 출발은 나를 아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다.
나를 제대로 성찰한 다음 할 일은 나를 제대로 알고 인문학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제대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머리 꼭대기가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읽고 배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