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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ㅣ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오싹한 살인마와 2천년된 나무의 만남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이것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가 오랜만에 나왔다.
[이즈모 특급 살인]의 열혈 형사 요시키 다케시 시리즈와는 또다른 성격을 가진 미타라이 기요시를 만나게 되어 설렜는데, 내용이 후덜덜하다.
어둠 비탈의 식인 나무.
제목에서 "식인 나무"가 너무 크게 부각되어 처음부터 나무의 힘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시무시한 살인마의 존재를 잠시 제쳐두게 되었달까.
추석 연휴에 한 절을 찾았다가 700년 된 나무를 보았는데, 그 나무는 둘레가 3.1미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둠 비탈의 2천년 된
녹나무는 ...
나무 둘레가 가장 두꺼운 밑동 근처는 20미터 가까이나 된다고 소개되고 있다.
조몬, 야요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전국 시대를 지나 에도 시대까지...어마어마한 역사를 삼킨 나무는 기이하게도 수세가
약해지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기이한 괴수다. 이렇게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 거목의 무언의 압력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뒤틀리고 굽은 줄기를 보면 추악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기분도 든다. 이 뒤틀린 모습은 이 세상이 잠재적으로 가진 온갖 사악한 기운의 상징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괴이, 기태. 서양관의
모퉁이를 돈 그 순간부터 나는 그야말로 다른 차원의 어둠 속에 발을 내딛고 만 것이다. 바람이 멈췄다. 땅거미와 안개가 우리와 이 거목을 천천히
감싸 안으려 하고 있다. 나는 온몸이 가위에 눌릴 듯한 예감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웠다. -209
작가가 특히 심혈을 기울여 쓴 듯한 녹나무에 대한 묘사를 읽는 순간 바로 녹나무의 주술에 걸려들게 된다.
사람을 그대로 집어삼킬 수도 있을 정도로 뚫린 구멍,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봉인하고 있으며 바람결에 영혼들의 비명이 들릴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1984년을 현재 배경 으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의 사건들까지 연루되어 있다. 1945년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창이 하나도 없는 기이한 건물을 짓고 있는 남자 이야기로 시작될 때부터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하는 책이라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남자는 소녀의 두 눈알을 꼭 쥔 채 노래도 부르고 혼자 미친 듯이 춤도 추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점차 웃음이 사라져갔습니다.
투명하도록 아름답던 초록색 눈동자가 점점 부옇게 탁해져갔기 때문입니다. -10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살인마의 행동으로 강렬한 프롤로그를 연 이후, 간간이 섞여 들어 있는 참혹하고 끔찍한 시체의 묘사는 모두 어둠
비탈의 녹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어둠비탈의 서양관 지붕에 걸터앉아서 사람을 먹는다는 나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죽어 있던 남자, 그 나무 아래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고령의 여성, 43년 전에 그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참혹한 소녀의 시체...
사람의 오랜 역사를 한 자리에서 지켜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는 비밀을 다 안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구멍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사악한 정신의 집합체라는 공동의 묵인하에 사람들은 어둠비탈의 녹나무를 두려워하며, 녹나무에서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나무 자체에서 떨어져 사건의
핵심을 찾으려 했다.
이 나무에는 뭔가 있다고 다들 생각하며 아무도 손을 대지 않게 된 것이다. 살인마는 그것을 노린 것인지...놀랍고 중요한 비밀이 감춰져
있어도 절대 밝혀지지 않은 데에는 2천년 된 나무의 힘이 컸다.
인간의 한 맺힌 피를 빨거나 그 영적인 힘을 잔뜩 흡수하는 환경에 있는 나무는 왠지 몰라도 거대하게 큰다니까요. -213
물론, 나무의 주술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게 된 건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활약 덕분이다.
범죄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을 파헤치는 그의 활약이 정말로 눈부시다.
극한적으로 풍족해지면 어떻게 되는가. 좋은 음식에 질린 인간이 무엇을 하는가. -241
누구도 풀 수 없었던 비밀을 겨우 풀었지만 짠~ 하고 나서서 밝히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사건해결에 있어서는 다짜고짜 밀어붙이기를 잘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새빨간
거짓말도 불사하는 남자. 여자의 감정을 쥐뿔도 이해못하지만 묘하게도 여성들의 마음을 여는대 재주가 있는 남자,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뭔가에 신경을 빼앗기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성격의 남자.
그러나 사려깊은 행동으로 범죄에 연루된 사람의 앞날까지 내다보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 남자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스포를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이 이야기의 키워드 하나만 투척하고 사라지려 한다.
"유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