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그릴스, 뜨거운 삶의 법칙
베어 그릴스 지음, 김미나 옮김 / 이지북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민달팽이여!! 굴러라, 움직여라 ^^ [Bear Grylls 뜨거운 삶의 법칙]

 

"뜨거운 삶"이란 말이 와락 덤벼들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면...

그 말은 거짓이다.

 

매일 아침 일찍 식구들을 모두 다 내보내고 다시 자리에 드러누워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자세를 취하려는 내 모습이 거울에라도 얼핏 비칠 때에는 '꼭 달팽이 같군.'이라는 말이 자막처럼 저절로 떠오른다.

그것도 <라바>에 나오는 100t 짜리 달팽이 와 비교되면 다행이게.

라바의 달팽이는 근육이라도 짱짱하게 들어차 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까지 갖춘 멋진 달팽이인데 비해 나는 아무 생각없는 무뇌아같은 달팽이에나 겨우 비견될 만하다.

정녕 뜨거움이란 말의 진정한 뜻을 알던 때가 있기나 했을까?
무심히 멋진 인물의 사진이 새겨진 책 표지에 시선을 던지다, 잠시 "뜨거운 삶"이란 말에 시선을 주면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목과 표지에서 풍겨나오는 야생내음 물씬한 강렬함 때문에 아무 시름도 없고 걱정 근심도 없는 민달팽이가 잠시 "꿈틀"했다.

 

 

베어 그릴스는 이름만 들어본 사람이라 저녁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에게 슬며시 책을 보여 주며 물어봤다.

"이 사람 알아?"

"당연히 알지. 다큐멘터리도 찍었잖아. 유명했는데."

 

자연에 도전하고 야생에서 뒹굴고 하는 등의 프로그램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도 몇 번 보다 질려하던 참인데, 내가 베어 그릴스라고 알 턱이 있나.

유명하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책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더 볼 만할 건데? 책으로 보면 재미가 있으려나~" 하고 초치는 소리만 하는 남편이다.

 

민달팽이의 꿈틀거림이 영영 사라지기 전에 얼른 책을 읽었다.

역시 자전적 이야기는 생생함이 생명이다.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어린시절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전자는 속일 수 없는지, 그의 가족사진은 우월함을 물씬 풍기는 포스를 내뿜는다. 유명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왕족뿐 아니라 세계의 왕족들이 유학을 간다는 이튼의 졸업장이 있고 베일 속에 가려진 세계적인 소수정예 특수부대 SAS를 나온 일명, 엄친아.

계속 , 쭉 잘 나갈 것만 같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SAS의 훈련 도중 낙하산에서 떨어져 척추뼈가 조각나는 사고를 입었던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간신히 건강을 회복한 그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선물로 받아들였다.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진 그는 생계의 해결이라는 막중한 과제가 있었지만 에베레스트 산 원정에 도전한다.

 

병원 침대에서 세계의 꼭대기까지 가는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요약하자면 가는 곳마다 돌부리에 채여서 비틀거리는 여정이 떠오르곤 한다. (...)

"행운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412

 

이후 6년간 <인간과 자연의 대결>이라는 TV시리즈에 출연하여 진정한 야생의 맛을 보여주었고, 열한 권의 책을 썼다.

그 많은 분량의 생생한 경험담들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급류에 갇히기도 하고, 정글에서 화가 난 뱀에게 물리기도 하고, 산에서 거대한 낙석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기도 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늪지대에서 커다란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기도 하고, 북극에 있는 고원의 1,500미터 상공에서 주 낙하산을 끊어내고 보조 낙하산으로 내려와야 했을 때도 있었다. -463

 

그의 입을 빌어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의 이야기에서는 '뻐기는' 듯한 분위기의 말들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끝없는 도전과 험난한 여정 속에서 직접 체득한 뜨거운 삶의 이야기들만이 가득하다.

자신의 남다른 경험을 통해 인생에서 우위에 둘 것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돈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밑바닥 순위에 두는 것이 바로 다른 모든 것들이 성공적으로 굴러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누구보다 뜨거운 삶, 도전적인 삶을 경험했으면서도 평범하고 때로은 두려움도 느낀다는 베어 그릴스.

 

이 한 마디가 민달팽이의 미끈미끈한 점액질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자연으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새벽이 온다는 것이다."

민달팽이여!! 굴러라, 움직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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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레터스
헌터 데이비스 지음, 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좀 색다른 결로 느끼는 존 레논 [존 레논 레터스]

 

 

 

존 레논은 비틀즈의 멤버다.

나 자신은 비틀즈에 완전 빠진 팬은 아니지만 가끔 비틀스의 노래들을 들으며 마음의 울적함을 씻어내는 사람 중의 하나다.

<Hey Jude> 나 <Yesterday>, <Imagine>등의 비틀즈 명곡들로 그들과 교감한 것이다.

 

 

비틀즈의 리더였던 존 레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의 아내가 오노 요코라는 것과 노래를 감미롭게 부를 줄 안다는 것, 가끔은 "기인"같은 모습으로 평화를 외치며 독특한 활동을 펼쳤다는 것 뿐이다.

 

존 레논 레터스.

이 책은 꽤 두툼하고 자료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제목처럼 존 레논이 직접 쓴 편지, 엽서 등이 실려 있다.

 

지금처럼 컴퓨터, 이메일, SNS 로 소통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존 레논이 남긴 흔적들은 펜이나 타자기로 쓴 편지와 엽서 등에 남아 있다.

존이 작사한 노랫말과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시집 두 권이 있지만 그 외 그가 남긴 편지들은 수집되어 출판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비틀즈의 명성으로 봐서는 그의 유품, 유물 등은 경매에 내놨을 경우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존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의 허락을 받은 작가는 존이 남긴 편지들을 모았다. 그 외에 존 레논의 편지와 엽서, 메모 등은 다양한 경로로 여러 사람의 손에 남아 있었고, 얼핏 생각해도 그것들을 한 군데 모으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존 레논에게 직접 받은 것이라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것이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는 사정에 의해 다시 되팔기도 하고 도난당하기도 했으며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고 한다.

 

존 레논의 편지와 엽서는 비틀즈의 팬과 전 세계 박물관들이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작은 메모라도 매입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업적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서간체로서의 가치나 문학성도 있을까?

그것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극단적인 평이 소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존 레논은 문맹이라고 할 정도로 글 쓰는 솜씨가 엉망이다.....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큰 교육을 받았어야 했다.

 

라디오로 축구 경기 결과를 들으면서 테니슨, 브라우닝,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을 베낀 것 같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존 레논의 책과 편지글이 참 좋습니다. 존 레논의 글 역시 그의 음악처럼 유쾌하고 익살스럽고 광적이었다가, 동시에 애잔하고 솔직합니다. 존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탐구했고 글을 쓰면서 자아를 찾으려고 애썼죠.

 

[존 레논 레터스]에는 편지들의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시기별로 장이 나누어져 있다. 각 장별로 짤막한 소개글이 있다.

 

 

 

존 레논은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는 꽤 재능이 있었던 듯 보인다.

 

 

 

별 내용이 없어보이는 심부름 메모까지도 이제는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의 사생활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자료라 더없이 귀하게 느껴질 듯하다.

 

 

 

존 레논의 사인을 눈여겨 보았는데, 창의적이고 기발하다.

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린 듯한 사인이다.

이 외에도 오노 요코와 결혼한 후에는 둘이 한 몸인듯 붙어 다닌 것을 만방에 알리듯, 항상 사인에 "존과 요코"를 나란히 쓴 것도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글에서부터 가족과 친구들, 인도 여행 등 존의 사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편지들이 많다.

요코를 만나고 애플을 차리고 소송과 시비로 바람 잘 날 없던 시기를 보내기도 했던 때, 그리고 은둔자로서의 삶까지.

 

작가의 말대로 존 레논의 평전은 적잖이 발간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좀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평전이 한 사람이 살다간 인생과 그 안의 사건들을 둘러싼 갖가지 관점과 논쟁거리에 주목하는 서술방식을 택해 왔다면, [존 레논 레터스]는 미리 정해둔 결론이나 편견 없이 존 레논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518 

 

 

있는 그대로의 인간 존 레논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미미한 것이었고 그것은 어떤 선입견에 휘둘릴 "꺼리" 조차 없는 소략한 지식이었기에 이 책의 내용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올리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읽을 수도 있는 곳이기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조차 아무 생각 없이 적기가 꺼려진다.

지금 시대는 손편지가 아닌 이상은 모두 공개되고야 마는 세상이기에 존 레논 레터스에 실린 존의 글만큼 진정성을 띠는 , 그야말로 솔직한 내 글들이 남아 있을 여지가 줄어든다.

하긴, 진짜 속마음을 담은 글들은 일기나 손편지로만 전해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긴 하다.

유명인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은, 바로 내 자신을 나 스스로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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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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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그 시절의 메트로폴리탄 [왕경]

 

천년고도라 불리는 경주는 갈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도심을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에 걸리는 것이라곤 나즈막한 산들과 넓게 펼쳐진 들판들 뿐.

자동차로 휙 지나칠 때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것은 엎어놓은 엄마의 가슴처럼 볼록한 무덤들이다.

경주의 거의 모든 곳이 오랜 역사를 품고 있기에 모퉁이를 한 번 돌면 유적지, 유물들의 팻말들과 마주치게 된다.

가장 최근 경주에 갔을 때 들른 곳이 대능원이었다.

첨성대를 목표로 하고 갔는데, 바로 옆에 울룩불룩 거대한 능들이 솟아 있었다.

천마총, 금관총, 미추왕릉, 내물왕릉 등의 능 사이사이를 돌아 나오니 계림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계림 옆으로는 첨성대가 너른 벌판에 당당히 서 있었다.

첨성대를 두고 천문대라느니 선덕여왕이 제를 올리던 제단이었다느니 하는 설이 분분하지만 그 모든 설들을 잠시 뒤로 해도 좋을 만큼 첨성대는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월지궁, 안압지, 월성 , 분황사, 황룡사터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어 몇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아아, 눈을 감고 이것들을 떠올려 보면 한때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을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질 것도 같은데....상상력의 부재 탓인지 쉽사리 잡히지가 않았다.

관광 온 사람들을 지우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지우고, 관광지임을 알리는 팻말들을 지우면...

과거 계림 (신라의 옛 이름)의 수도였던 왕경(경주)의 모습이 오롯이 떠오르려나.

잠시 눈을 감아 보았지만 천오백년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질 않는다.

이번 주말에 다시 한 번 경주를 찾을 예정인데 이번에는 왕경의 모습을 제대로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으니...

 

왕경은 거대한 불탑뿐 아니라 황홀할 만큼 화려하고 눈부신 도시였다. 대궁의 웅장한 궁궐과 곳곳에 앞다퉈 세워진 대사찰들, 서른 개가 넘는 귀족 대가들의 금입택(지붕과 기둥에 금을 입힌 대저택)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원스레 뻗은 대로 위를 마차들의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황금처럼 빛나는 비단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물결치듯 오가고 있었다. -43

 

고구려 귀족이었던 진수는 화랑 김유가 이끌던 계림과의 전투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잡혀 김유의 노비 신세로 전락한다.

백제에서 숙부를 따라 계림에 왔다가 숙부와 헤어지고 그만 계림에 눌러앉게 된 소녀 정은 왕경에서도 손꼽히는 세도가이자 진골인 영명부인의 눈에 들어 가게 일을 맡고 있다.

정은 김유에게 진수를 가게에 데려다 쓰고 싶다고 말하고 이렇게 하여 진수, 정, 김유는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을 제대로 발견하고 누릴 새도 없이 고구려, 백제, 계림이라는 각국의 사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는 바야흐로 계림이 삼국 통일을 하기 직전의 소용돌이가 이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대궁은 물론이거니와 알천과 멀리 북천, 그 너머 들판까지 둘둘 말아 놓았던 그림을 펼치듯 한눈에 들어왔다.

동으로는 멀리 토함산의 줄기가 보이고 남으로는 남산이 유연하게 굽이치고 있었다. 왕경대로가 가르마처럼 놓여 있고 귀족들의 금입택과 잘 지은 기와집, 왕경민들이 사는 부락이 눈에 들어왔다. 왕경은 마치 눈이 내린 듯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166

 

통일을 위해 좀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선덕여왕이 분황사 건립에 이어 세운 황룡사 9층 석탑에 올랐던 경이가 본 광경이다.

통일 직전의 삼국은 모두들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계림 또한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음탕함으로 흘러 제어되지 않을 듯 보이면서 삼국 중 가장 약세로 여겨졌지만 결국, 통일을 이룬 것은 계림이었다.

선덕여왕 대에는 존경받는 출중한 장군인 김유신의 도움을 바탕으로 선도의 정수를 이어받은 화랑도의 충성과 기개, 당이라는 최강국과의 연합으로 어느 순간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혼란한 틈에도 번성한 당의 문물을 보고 무역의 길을 뚫겠다던 정이의 고집 때문에 진수, 정, 김유는 당으로 출발한다. 삼국의 사정을 잠시 미뤄두고 각자의 감정에 좀 더 깊이 빠지고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삼국 통일을 앞두고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깜빡이던 고구려, 백제의 운명이 이들에게도 느껴졌는지 셋의 감정은 갈길을 찾지 못하고 세차게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상황이 삼국을 대치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웃는 사람들은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단군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271

 

역동적인 그 시절의 메트로폴리탄, 왕경의 자취를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구려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요동, 장안의 자취가 남아 있는 중국 시안과 서시, 사막과 눈 덮인 산까지 직접 밟아보고 글로 완성한 작가의 집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날이 되면 생각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날을 ~)

 

경주를 밟을 때면 이 소설이 그려낸 왕경의 모습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마음으로 고대의 시간들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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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좀 떼지 뭐 - 제3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양인자 지음, 박정인 그림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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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심지 깊은 아이들[껌 좀 떼지뭐]

 

처음엔 제목을 "껌 좀 씹지 뭐" 로 잘못 알았었다.

그렇다면...이건 좀 불량스런 아이들의 회개 프로젝트, 뭐 그런 내용인가?

했더니, 정 반대의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향해 보내는 굳은 결의가 군데 군데 묻어 있는 단편이 넷 들어 있다.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조부모의 날" 행사 때 음악줄넘기 공연을 한다고 해서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행사 시작 시간은 11시였는데 10시 반쯤 도착했더니 모두들 준비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중앙 현관 외에 선생님들이 주로 출입하지만 학생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문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은 학생들의 공연이 있는 강당과 닿아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시간을 맞추느라 그 문 앞을 급하게 뛰어가자 한 선생님께서 그 아이를 불러 세우더니 "너, 왜 이 문 앞에서 뛰어 다녀? 오늘은 안 돼!"라고 엄한 말투로 훈계하시는 것을 들었다.

평소엔 자유자재로 다니는 곳인데 외부 손님이 오시니 아이들의 출입을 막고 게다가 뛰지 말라니.

복도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출입문 앞에서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일장연설을 하신다.

뻔하게 눈에 보이는 선생님의 단도리에 어쩌다 지켜보는 꼴이 된 내가 무안했다.

오늘 행사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시키겠다는 뜻은 알겠으나 저런 식의 훈계가 과연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으려나 싶었다.

 

[껌 좀 떼지 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되게 깔끔한 성격일 듯하고 고지식한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뒤로 선생님과 학생들은 ,억지 조금 부려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오죽하면 교장실을 "감옥 같다"고 표현했을까. 학교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학생은 중앙 현관 출입 금지, 매일 아침 방송 시간마다 각 반의 학교 청소 실태 보고, 등 이만저만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5학년 미나는 6학년 오빠에게 껌 씹는 모습을 딱 걸려버렸다. 교장실로 끌려가서는 교장 선생님의 수첩에 이름을 적히게 되었다. 이름을 지우려면 학교 안에서 껌이나 사탕, 과자 같은 걸 먹고 있는 사람 두 명을 잡아가야 한다.

너무하잖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미나는 2학년 아이를 잡아갈 수있는 찬스를 맞이했지만 2학년 아이의 친구가 "우리 친구한테 왜 그래?놔!"하며 구원의 손길을 뻗치자 봐주고 만다.

곧이어 문제 상황에 직면한 미나.

한 명이 두 명을 잡으면 두 명이 네 명을 잡아야 하고, 다시 여덟 명을...이러다가는 우리 학교 아이들 모두 봉사 활동을 하며 서로 잡고 잡아야 할지 모른다. 이런 걸, 계속해야 하는 걸까. -28

미나는 더 이상 껌 씹는 아이들을 잡지 않고 껌 떼기 봉사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껌 좀 씹는다고 교장 선생님한테 친구를 잡아가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마음먹었으니까!-31

 

아! 미나의 결심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이 짠 ~ 해졌다.

아직었지마 어리다고 생각한 초등학생이 이런 문제 상황에 직면해서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슬기로운 해답을 제시하다니.

마냥 자기 것만 챙기고 욕심 부리기만 하며 친구들에게 피해주는 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어른들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단단한 심지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품 외에도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심지 굳고 씩씩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 하지만 그 시기에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대면했을 때 상황을 헤쳐갈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도덕 시간에 배우는 잠 오는 윤리, 도덕보다는 생활에서 직접 부딪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 단계식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억지 쓰는 선생님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무언의 외침을 실어 보내는 아이들.

공을 주우러 들어갔다가 내일 치를 시험 문제지를 발견.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험지를 덥석 잡은 순간, 현장발각되었지만 발뺌하지 않고 용감하게 상황을 받아들인 아이들.

아이들은 비겁하지 않았다.

때로는 정정당당하게 선생님의 못난 모습에 항거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뒤 그것에 대한 벌도 수용했다.

밟으면 밟는 대로 쓰러지지 않고 생생한 모습으로 다시 되살아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푸릇푸릇한 미래가 보인다.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고 간접경험을 통해서 문제상황의 슬기로운 해결법을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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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록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조완선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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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비취록]

 

형암은 탐욕과 부패가 없는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소...예언서에 등장하는 진인이 나타나 새로운 이상 세계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던 것이오. 평소에도 형암은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사회적 약자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왔소.-268

 

세상을 전복시키려는 자들은 시대가 뒤숭숭한 틈을 타 재림한다. 사이비 종교를 따르는 이들은 공허한 이들의 마음을 파고든 교주에게 몰려들어 피리부는 사람을 좇는 쥐들처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절벽으로 첨벙첨벙 뛰어내린다.

때로는 전쟁보다도 테러보다도 더 무섭게 국가의 기강을 들고 흔드는 것이 바로 민심의 이동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다루어지지 않는 흉흉한 세상에서는 국가도 그 권위를 잃는다.

 

대학교수이자 고서감정 전문가 강명준의 사무실에 고서의 복사본  하나를 툭 던져놓고 간 사내가 있었다. 한문 필사본 "비취록"의 감정을 부탁하러 온 사내는 밑도 끝도 없이 "당신, 예언을 믿소?"라는 말을 던지고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논문표절시비에 휘말린 강명준은 고서에 밝은 학과장에게 잘 보여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비취록을 찾으려 하는데, 뜻밖에도 그 의문의 사내가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비취록"을 두고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던 용의자 또한 얼마 후 시신으로 발견된다.

한편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쌍백사에서 흘러나오는 갖가지 소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해광을 보낸 중허 스님은 해광의 입적이란 비보를 듣고 진상확인차 유정 스님을 보냈지만 그 또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쌍백사의 사건 또한 예언서 "비취록"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강명준과 오 반장은 뜻을 모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에 힘쓴다.

그들은 <정감록>의 사상으로 무장했던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으로부터 뻗어나온 <비취록>과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추종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해 '거사'를 준비하는 형암과 쌍백사 승려들의 실체에 점점 다가간다.

 

기존의 비결서와 조선 혁명가들의 명문장을 집대성하여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명료하게 제시했다는 책, <비취록>

오래전 예언서가 범상치 않은 총기를 지닌 한 사람에게 침투하여 "신념"을 가지게 했다.

썩어빠진 세상을 갈아엎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훌륭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국가에 더 울분을 느끼게 된다.

백성의 마음에 예언서가 깊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썩어빠진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소설에서는 한낱 종교세력의 모사 치고는 꽤 규모가 큰 '거사'내용이 드러난다. 쌍백사에 거취를 마련한 이들이 민족종교에 뿌리를 둔 종교세력인 관계로 그 대상이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일왕,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고위 관계자들, 친일파 후손이 발족한 단체인 일영회 회원이 되었다.

진짜 거대한 음모 세력이 우리 나라 내부로 눈을 돌린다면 ...하는 상상을 쉽지 않게 해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한때 온나라가 들썩였다. 조선조 역성혁명이 일어날 당시 <정감록>이 대유행하던 시절에 비견할 일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가 혼란할 수록 마음 기댈 데가 필요하다. 그 곳이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작가 조완선의 작품으로는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이후 간만에 접하게 되는 <비취록>이다. 추리적 기법과 역사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방식이 낯설지 않다. 역사를 기본으로 한 픽션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 책도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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