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그 시절의 메트로폴리탄 [왕경]
천년고도라 불리는 경주는 갈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도심을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에 걸리는 것이라곤 나즈막한 산들과 넓게 펼쳐진 들판들 뿐.
자동차로 휙 지나칠 때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것은 엎어놓은 엄마의 가슴처럼 볼록한 무덤들이다.
경주의 거의 모든 곳이 오랜 역사를 품고 있기에 모퉁이를 한 번 돌면 유적지, 유물들의 팻말들과 마주치게 된다.
가장 최근 경주에 갔을 때 들른 곳이 대능원이었다.
첨성대를 목표로 하고 갔는데, 바로 옆에 울룩불룩 거대한 능들이 솟아 있었다.
천마총, 금관총, 미추왕릉, 내물왕릉 등의 능 사이사이를 돌아 나오니 계림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계림 옆으로는 첨성대가 너른 벌판에 당당히
서 있었다.
첨성대를 두고 천문대라느니 선덕여왕이 제를 올리던 제단이었다느니 하는 설이 분분하지만 그 모든 설들을 잠시 뒤로 해도 좋을 만큼 첨성대는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월지궁, 안압지, 월성 , 분황사, 황룡사터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어 몇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아아, 눈을 감고 이것들을 떠올려 보면 한때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을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질 것도
같은데....상상력의 부재 탓인지 쉽사리 잡히지가 않았다.
관광 온 사람들을 지우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지우고, 관광지임을 알리는 팻말들을 지우면...
과거 계림 (신라의 옛 이름)의 수도였던 왕경(경주)의 모습이 오롯이 떠오르려나.
잠시 눈을 감아 보았지만 천오백년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질 않는다.
이번 주말에 다시 한 번 경주를 찾을 예정인데 이번에는 왕경의 모습을 제대로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으니...
왕경은 거대한 불탑뿐 아니라 황홀할 만큼 화려하고 눈부신 도시였다. 대궁의 웅장한 궁궐과 곳곳에 앞다퉈 세워진 대사찰들, 서른 개가 넘는
귀족 대가들의 금입택(지붕과 기둥에 금을 입힌 대저택)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원스레 뻗은 대로 위를 마차들의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황금처럼 빛나는 비단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물결치듯 오가고 있었다. -43
고구려 귀족이었던 진수는 화랑 김유가 이끌던 계림과의 전투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잡혀 김유의 노비 신세로 전락한다.
백제에서 숙부를 따라 계림에 왔다가 숙부와 헤어지고 그만 계림에 눌러앉게 된 소녀 정은 왕경에서도 손꼽히는 세도가이자 진골인 영명부인의
눈에 들어 가게 일을 맡고 있다.
정은 김유에게 진수를 가게에 데려다 쓰고 싶다고 말하고 이렇게 하여 진수, 정, 김유는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을 제대로 발견하고 누릴 새도 없이 고구려, 백제, 계림이라는 각국의 사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는 바야흐로 계림이 삼국 통일을 하기 직전의 소용돌이가 이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대궁은 물론이거니와 알천과 멀리 북천, 그 너머 들판까지 둘둘 말아 놓았던 그림을 펼치듯 한눈에 들어왔다.
동으로는 멀리 토함산의 줄기가 보이고 남으로는 남산이 유연하게 굽이치고 있었다. 왕경대로가 가르마처럼 놓여 있고 귀족들의 금입택과 잘 지은
기와집, 왕경민들이 사는 부락이 눈에 들어왔다. 왕경은 마치 눈이 내린 듯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166
통일을 위해 좀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선덕여왕이 분황사 건립에 이어 세운 황룡사 9층 석탑에 올랐던 경이가 본 광경이다.
통일 직전의 삼국은 모두들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계림 또한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음탕함으로 흘러 제어되지 않을 듯 보이면서 삼국 중
가장 약세로 여겨졌지만 결국, 통일을 이룬 것은 계림이었다.
선덕여왕 대에는 존경받는 출중한 장군인 김유신의 도움을 바탕으로 선도의 정수를 이어받은 화랑도의 충성과 기개, 당이라는 최강국과의 연합으로
어느 순간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혼란한 틈에도 번성한 당의 문물을 보고 무역의 길을 뚫겠다던 정이의 고집 때문에 진수, 정, 김유는 당으로 출발한다. 삼국의 사정을 잠시
미뤄두고 각자의 감정에 좀 더 깊이 빠지고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삼국 통일을 앞두고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깜빡이던 고구려, 백제의 운명이 이들에게도 느껴졌는지 셋의 감정은 갈길을 찾지 못하고
세차게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상황이 삼국을 대치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웃는 사람들은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단군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271
역동적인 그 시절의 메트로폴리탄, 왕경의 자취를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구려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요동,
장안의 자취가 남아 있는 중국 시안과 서시, 사막과 눈 덮인 산까지 직접 밟아보고 글로 완성한 작가의 집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날이 되면 생각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날을 ~)
경주를 밟을 때면 이 소설이 그려낸 왕경의 모습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마음으로 고대의 시간들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