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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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겐야, 여정의 시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너무 멋진 책을 만나면 리뷰 쓸 일이 걱정이다.

흠뻑 빠져서 읽다 보면 내 정신이 어디로 가출해버리고 메모할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 어느새 끝이 보이면 , 어쩌나..

그때서야 후회한다.

진작 정신줄  붙들어 놓고 메모 좀 할 걸.

 

도조 겐야 시리즈 "~처럼 ~하는 것"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을 이제야 만났다.

최근작인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먼저 접하고 뒤늦게 시리즈를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남들 다 도조 겐야의 첫발자국을 좇아가며 느긋하게 흐름을 이어받아 읽어나갈 때, 나만 혼자 거꾸로 역류하고 있다.

뒤늦게 합류한 만큼 도조 겐야의 사건일지를 되짚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서도 역류를 해야만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현대인의 시각을 가지고, 냉철한 이성을 앞세워 읽으려 들었다간 괴이한 전승이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에 스며들지 못한다.

 

서기보다는 쇼와 몇 년 식의 연호가 더 어울리는 즈음의 시대, 청바지가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 청바지차림의 사내가 낯선 시대에 꽤 잘 어울리게 청바지를 소화해내는 도조 겐야는 이야기를 수집하러 여행을 다닌다. 도조 겐야는 벌써 몇 권의 환상괴기소설을 쓴 어엿한 작가다.

이번에는 이름도 희한한 가가구시 촌이다.

버스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자쿠 연산을 바라보던 도조 겐야는 험준한 산의 형세에 눈을 떼지 못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에 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아까부터 승객들 중 누구하나 산을 보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으스스하다며 엄살을 부리는 사이, 버스는 '신령납치촌' 또는 '허수아비촌', '마귀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가가구시 촌에 도착했다.

시골마을의 도마야 의사를 만나 가가구시촌에 출몰한다는 염매에 대해 듣게 된 도조 겐야.

이 마을 갈림길이나 다리, 비탈 등 곳곳에 보이는 삿갓과 도롱이 차림의 인형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산신령의 신령한 모습이고, 마을 사람들이 가장 꺼림칙한 존재로 두려워하는 염매라는 마물 또한 삿갓과 도롱이 차림이라 좀 복잡하다.

이어서 가미구시가와 가가치가의 혼담 소동을 거쳐 신령납치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가가구시촌에 도착해서는 의사의 청으로 가미구시 새신집으로 같이 가서 지요의 생령 체험뿐아니라 렌자부로의 끔찍한 추억(렌타로의 신령납치)까지 들었다. 그러다 가가치 윗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무신당에 사기리 어르신을 만나러 갔다가 수험자의 목매단 시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도조 겐야는 마을 사람의 일원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일련의 살인사건을 냉철한 눈으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의 존재가 슬금슬금 도조 겐야의 냉정을 무너뜨리고 만다.

마귀 계통인 가가치 집안과 마귀 계통이 아닌 가미구시 집안이라는 대립하는 두 구가.

과거 어린 아이들이 몇이나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신령납치라고 해석하고 만다.

마을의 웃어른인 사기리 무당은 인습의 의례 중 죽으면 산신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외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대를 이어 무당의 직을 이어받을 어린 사기리는 생령을 봐서 씌었다며 시름시름 앓기까지 한다.

도조 겐야가 이 마을에 도착할 즈음부터 잇따라 끔찍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그에 들러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오싹하고 소름이 끼친다.

 

마을 사람들조차 저물녘이 되면 일찌감치 집 안에 틀어박히고 해가 지고 나서 외출할 때는 여럿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곳. 이 마을은 길 양쪽으로 흙벽으로 막혀 있어 낮에도 어둑한 길이 있고 지장갈림길, 나없다길, 마주침오솔길 등 마을 자체의 지형이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이런 궁벽한 골목의 곳곳에 세워진 허수아비와 마귀 귀신 계통의 집안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으니 어떤 기괴함이 전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지즈코가 겁먹은 목소리로 부르기 무섭게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슥, 슥, 뭔가가 바닥을 스치며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

어둠에 익숙해진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마룻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얼굴만 쳐든 지요가 팔다리를 전혀 쓰지 않고 온몸을 좌우로 구불구불 움직이며 기어오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이 기이한 광경이었다.

"아아악!"(...)

열일곱 살 먹은 소녀가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심불란하게 기어오는 모습은, 비록 친어머니일지라도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22

 

이야기의 시작에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던지고 시작하는 것이 이 작가의 수법인 것 같다.

충격과 공포의 기운이 사그러들기 전에 도조 겐야가 마을에 당도하여 마을 전체를 감돌고 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여과 없이 전달해주면 꼼짝없이 주술에라도 걸린 듯, 발끝이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마을의 수수께끼는 무엇이며, 도조 겐야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결과적으로는 "그것"의 존재에 압도당하는 격이 되고 말았지만, 도조 겐야 환상방랑의 첫 시작치고는 꽤 강렬한  한 수 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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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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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된다.[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사람이 죽으면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그 의식을 치를 때는 이미 영혼을 떠나고 없을지언정 빈 껍데기일 뿐인 육신이라도 부여잡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 회한, 혹은 오래도록 새겨둘 추억 같은 것들을 그 껍데기에나마 실어보내야, 그것 정도는 해야 조금은 마음 정리가 될 테니까.

스러져간 몸에 기대어 울고 울고 또 울며 많은 것들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애도의 의식을 하려는데, 사고로 잃은 사람들의 경우엔 간혹 그 "육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엔 "헛장"이라는 것을 지낸다고 한다.

빈 무덤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예를 표하는 형식이다.

아마도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도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을까...

 

바닷가 섬마을에 살던 아낙들은 배를 타러 나갔던 장정들이 도중에 수몰되어 버렸을 때, 헛장을 지내고 그 무덤을 쓸쓸히 쓸어본다고 한다.

죽은 모습을 확인 못해서 끝내 죽었다고 인정 못하는 마음들을 헛장의 묘에 빼곡히 심어 놓은 떼에다가 고스란히 실어놓고 조금씩 그 울분을 삭히는 것이다.

그들은 사고조차 바닷가 사람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회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에 가까운 사고의 회로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 너무나 갑작스럽게 혹은 뜻밖에도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싱크홀과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올 수 있을까.

안타까운 상황을 겪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후일담을 듣는 일만은...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인데.

 

해리 미용실의 그 남자는...끝내 기억을 놓아버렸다.

그리하여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도 놓아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조차 놓아버렸다.

어떡해야 하나.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에 의존해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그 조각난 기억들을 다시 맞춰보려 노력하는 사이, 세월은 훌쩍 지나가 버렸는데...

 

'장사 쌀집' 아들 강태산은 부지불식간에 나이든 아버지를 트럭 사고로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을 넣어두는 상자 안에 고이 들어 있던 사진 뒷면에 쓰인 단 한 줄의 글씨.

'태산아, 꼭 여기를 찾아가라.'

유언과도 같은 그 한 줄의 글씨에 의지해서 태산이는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부산의 "해리 미용실"이었는데, 그곳에는 기억이 온전치 못하고, 누군가의 기일만 지내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고야 마는 남자가 있었다.

고향에 남겨진 '장사 쌀집'의 유일한 후계자인 어린 태산이를 노리고 오촌 아저씨라는 사람이 나타나 쌀집을 마치 제집처럼 휘젓기 시작하는데, 태산이는 해리 미용실에 뭔가 남기고 온 것 처럼 자꾸 미진한 마음이 남아 있다. 열여섯 아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데 게다가 해리 미용실과 그 미용사가 꼭 쥐고 있는 비밀까지 풀어야 하다니.

비밀의 열쇠는 우연히도 '손으로 말해요' 동호회의 캠프에서 만난 변호사의 슬픈 이야기에 들어 있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친구는 미용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항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비행기 승무원이 꿈이었던 여자친구가  졸업을 하기도 전에 임신했고 아기를 낳은 다음 승무원이 되었다.친구도 파일럿이 되었고 결혼날짜를 잡은 둘은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여자친구는 마지막 비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공중 폭파였지요,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187

 

태산이는 다시 부산의 해리 미용실로 찾아가서 미용사를 만났다.

이제는 그 미용사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밀을 풀었기 때문이다.

 

태산이와 미용사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지만 따뜻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또다시 희망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

어쩔 수 없는 불의의 사고 앞에 부서지기 쉬운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 버린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만이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인가.

아직 어린 열 여섯 소년 강태산의 태산과도 같은 굳센 의지가 네버 엔딩,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방심하는 사이에 후룩 읽어버렸지만, 괜시리 코끝 찡한 감동을 안겨주는 성장소설이다.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진취적인 방식으로 끊임없는 일상을 이어나갈 태산이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부산의 모 대학병원 앞, 그곳에  해리 미용실과 참견쟁이 할머니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태산이와 해리 미용실의 미용사가 다시 만났듯이, 내일은 또 다른 희망의 태양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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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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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다가 보고 싶다[해변빌라]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일에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것은 대부분 감정을 기저로 하여 만들어진다.

일이라는 것이 만들려고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맡기면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사건의 흐름을 좇기보다 감정의 흐름을 좇는 것이 더 이해하기 빠른 경우도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을 모두 좇아야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감정의 흐름을 좇는 편이 ...아니, 처음부터 감정을 따라 오라는 듯한 작가의 의도가 명백히 보이기에 그저 정신을 느슨하게 풀고 편하고 느긋하게 따라가기로 했다.

 

여기, 유지라는 소녀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부터 느껴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뻥 뚫린 채 남겨두어야 하는 소녀.

피아노를 치며 현의 움직임과 그 현들의 떨림에 온 세상을 다 던져넣고서야 겨우 제 존재 하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소녀는 어느날, 과학실에서 새로 들어온 인체모형을 자랑하듯 어루만지는 생물선생 이사경 앞에서 옷을 벗어던진다. 맨몸으로 서서, '나 여기 있어요'라며 침묵 속에서 맹렬히 부르짖는다.

" 왜 그랬니?"

유지를 추궁하던 작은 고모 이린은 실은, 유지의 친엄마였다. 그럼, 아버지는?

절대 아버지의 실체를 밝히지 않으려 한 이린에게는 아는 남자가 많았다.

이사경은 아버지의 존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었고 과학실에서의 그 사건 이후 어찌된 일인지 유지는 이사경의 아내 백주희, 그들의 아들 연조,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과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피아노 치는 데 재능이 있었지만 함께 미래를 꿈꾸던 남자 오휘와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날 때부터였던가, 팔이 무거워지면서 음악가로서의 꿈도 내려놓게 된 유지는 황량한 바닷가 동네의 해변빌라에 살면서 <피아노호텔>이라는 교습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폐해수욕장에 있는 작은 카페 '해변의 가능성'에는 여러 사람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유목들이 쓸려왔다 다시 쓸려가는 것처럼, 모래 무덤이 쌓였다가 은빛 물결에 스러져 가는 것처럼.

 

유지로부터 뻗어나간 사람들의 관계는 슥슥 그려지지만 희미하다.

무엇 하나도 확실한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나 히말라야의 동굴에서 생을 마치듯이, 그는 이곳 페루의 해변까지 도망쳐오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이 하늘가에서 살듯, 그는 바닷가에서 살고 있었다. 바다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중.

 

복잡한 생각, 엉킨 실타래들은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 앞에선 그 힘을 잃는다. 거대한 철썩임 앞에서 그저 마음을 비우고 바라만 보게 된다. 바다가 주는 형이상학, 광막함과 무한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인가.

유지는 해변빌라에 산다. 폐해수욕장에 자주 들르고 '해변의 가능성'의 인연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서서히 차오르겠지.

 

문제를 괄호 속에 담아두고, 타자와는 가능한 한 부딪치지 않고 돌아서 가고,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세상과는 최소한만 연루되고, 이야기를 억제한 채 감정과 시간이 가만히 흐르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작가의 말

 

남의 인생이라고 그저 아무렇게나 바라보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다.

생을 마주하는 또 다른 자세 하나를 유지로부터, 해변빌라와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와 슈베르트의 [ 피아노 소나타]와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를 몰라도 왠지 그 음률이 어디선가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맡기게 된다.

피아노와 해변에 와닿아서 부서지는 파도의 조화로운 소리가 이 소설을 꽉 채우는 것 같다.

바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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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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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주류는 뭐고, 비주류는 뭐냐.

검사, 경찰 이런 권력의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이 "버젓한 직업"이라고 인정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고, 뒤가 구린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흥신소 탐정이나 뒷골목 깡패들과 한패인 사채업자들, 전과를 몇 개씩 주루룩 달고 있는 수감자들은 비주류인가.

잠시 발끈해보지만, 세상의 눈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확실히 나뉘는 법이다.

아무리 '나는 비주류는 아니야.'라고 발뺌하고 싶어도 엄연히 기준과 잣대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비주류의 연애라는 제목에서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계절도 가을인데, 왠지 코트깃 올리고 외롭게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비주류의 연애란, 태생적으로 비극을 품고 있기 마련.

처음 시작부터 상쾌하고 아름답지는 않다.

 

발목까지 물이 찬 아파트의 욕실에 벌거벗은 여자가 둥둥 떠 있다.

창백한 속살, 물의 출렁거림에 따라 흔들리는 긴 머리칼.

뭘까. 이 이야기는. 이 여인의 죽음은 어떤 사건과 이어지는 것일까.

 

7년 사귄 여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성욱은 실연의 아픔을 사그러뜨리기 위해 영화관으로 갔다가 웬 여자에게 눈길이 꽂힌다.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 성욱이란 남자의 여자친구는 현재 검사이고, 시험을 포기한 채 출판사에 취직하여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를 찍어내는 일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성욱은, 그렇다. 비주류 인생에 합류한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한껏 우울에 젖어 있다가 처음 만난 여자를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워보기라도 하려는 듯 오지랖을 펼친다.차갑고 도도한 얼굴이지만 웃을 때는 눈가가 초승달처럼 변하는 여자. 그녀를 위해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진짜 사나이가 되어 난생처음으로 깡패와 싸웠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에서 내리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죽는 것까지 눈앞에서 보았다. 소심한 그가 평생 기억에 남을 일생일대의 호쾌한 한 장면을 만든 날, 수정이라는 여자는 그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수정이라는 여자는 마음 속에 독기를 품은 여자다.

 

우릴 우습게 생각했지?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고, 죽는다고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하찮은 인간들이라 생각했겠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 하찮은 인간에게도 나름의 한 방은 있다.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겠다. -120

 

보통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공식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소설은 로맨틱 요소가 들어 있고, 아주 돈 많은 부자도 나오지만 신데렐라의 이야기 공식으로는 이어붙일 수 없는 구성을 이룬다.

왜냐? 주인공이 비주류 인생이니까.

수정이라는 여자는 사기 전과를 가진 여자이고 성욱은 검사, 변호사의 대열에 끼지 못한 고학력 인텔리이다. 그들 사이에 어찌하다 끼어들어 사건의 흐름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맡은 이 또한 잘나가는 검사가 아니라, 경찰 일을 하다 선배의 죽음으로 좌절을 맞이한 흥신소 탐정이다.

어쩐지 비주류 드라마를 쓰는 노희경 작가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지만, 이 작가가 달리는 노선은 주로 하드보일드 액션인 듯하다.

교도소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의 복수를 위해 사채업자의 아들에게 접근한 독한 여자 수정, 그 수정에게 연심을 품은 소심한 남자 성욱. 이들이 엮어나가는 달달한 로맨스는 럭셔리한 벤츠가 아니라 바퀴 하나가 빠진 채 덜그럭거리는 수레다. 사채업자의 아들이 벌인 사업은 겉으로는 체형관리를 해주는 번듯한 사업장이었지만, 사실은 약을 유통하는 곳이었고, 이들의 비밀을 알아챈 수정의 언니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뭣도 모른채 끼어들어 어둠의 세계를 접하게 된 성욱은 수정을 위해 소심함을 벗어던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룬다.

 

이젠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사귀는 것보다 스스로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

나는 변화를 간절히 원했으나 진정한 변화란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317

 

잘 빠진 벤츠의 세계가 제공되는 멋진 드라마에 익숙해진 눈으로서는 좀 거친 배경에 별 매력 없는 (주류들이 누리는 경제력, 권력, 외모 등의 매력을 말한다.)주인공들이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가 그다지 세련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인생들이 실제 인생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비주류 연애 블루스에 몸을 맡긴 성욱의 모습이 더이상 초라해보이지 않고, 탈피의 과정을 거친 한 마리 나비의 비상을 보는 것과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달까.

레이먼드 챈들러의 "비열한 거리" 운운하며 주인공을 구상했다는 작가의 말에 기대가 컸었나 싶지만, 나름 가슴을 적시는 남자의 "연심"을 볼 수 있었던 것에는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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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오리야!
카인 브람슨 지음, 김경연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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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얘, 오리야!]

 

 

11월 14일까지던가. 석촌호수에 러버덕이 전시되는 기간이.

부산에 살고 있어서 거기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회자되고 있는 "러버덕"의 소문은 바람결에 실려 내게도 전해져 왔다.

전세계 16개국을 돌며 평화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러버덕에 버금가는 사랑스러움을 머금은 오리 그림책이 내 앞에 있다!!

 

심지어 이 오리는 말도 하고 뛰어놀기도 하며 친구도 사귄다.

웬만해선 귀여움의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는 무뚝뚝한 아줌마이지만 이 오리에게는 아줌마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봐, 진정해. 이건 아이들 읽는 책이라고!!

하지만 너무 귀여워서 저절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 손을 보라.

아이에게 넘겨주기가 아까워서 책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있어봐, 엄마 좀 보고. "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오리가 아니라 엄마와 아이의 사이를 갈라놓는 오리다. ^^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사르르 녹게 만드는 절대지존의 애교덩어리, 아기 오리.

옆에 가서 마구 부벼주고 싶고,  맛있는 것 입에 넣어주고 싶고, 꼭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는다.

이렇게 헤실헤실 마음이 풀어지니 석촌호수의 러버덕이 왜 사랑과 평화의 메신저인지를 알겠다.

게다가 [얘, 오리야!]의 오리는 한 술 더 뜨니 ...

한참을 빠져 있다가 겨우 딸내미한테 넘겨 준다.

아쉬운 마음에 쩝, 입맛을 다신다.

 

 

우리 3학년짜리 딸내미가 읽기에는 너무 아동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왠걸 푹 빠진 눈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고양이를 보고 오리라고 부르는 아기 오리.

고양이는 그런 오리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쫓아다니며,

 

 

이렇게 애교 필살기를 마구 마구 쏘아대는 오리에게 빠지지 않을 자, 누가 있으리..

 

 

결국, 고양이는 "꽥꽥!" 거리고,

 

 

오리는 "야옹!" 하는 사태가 일어나기에 이른다.

 

 

아,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우리 채원이는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림을 쓱쓱 따라 그리더니, 옆에다 무어라고 써 놓았다.

 

진정한 친구란?

친구를 생각하는 친구

친구를 미워하지 않는 친구

친구를 진정 마음으로 대한 친구

매일 절친으로 친한 친구(이건 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그냥 둔다^^)

이렇게 대하는 친구가 진짜 친구!

 

 

오리와 고양이가 서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친구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했다는 것이 대견하다.

아직은 절친의 소중함을 잘 모르겠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거리들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스러운 오리와 고양이의 어설픈 첫걸음처럼 친구 사귀기에 있어서 거리낌 없이 먼저 다가가는 아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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