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사람이 죽으면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그 의식을 치를 때는 이미 영혼을 떠나고 없을지언정 빈 껍데기일 뿐인 육신이라도 부여잡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 회한, 혹은 오래도록 새겨둘 추억 같은 것들을 그 껍데기에나마 실어보내야, 그것 정도는 해야 조금은
마음 정리가 될 테니까.
스러져간 몸에 기대어 울고 울고 또 울며 많은 것들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애도의 의식을 하려는데, 사고로 잃은 사람들의 경우엔 간혹 그
"육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엔 "헛장"이라는 것을 지낸다고 한다.
빈 무덤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예를 표하는 형식이다.
아마도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도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을까...
바닷가 섬마을에 살던 아낙들은 배를 타러 나갔던 장정들이 도중에 수몰되어 버렸을 때, 헛장을 지내고 그 무덤을 쓸쓸히 쓸어본다고 한다.
죽은 모습을 확인 못해서 끝내 죽었다고 인정 못하는 마음들을 헛장의 묘에 빼곡히 심어 놓은 떼에다가 고스란히 실어놓고 조금씩 그 울분을
삭히는 것이다.
그들은 사고조차 바닷가 사람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회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에 가까운 사고의 회로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 너무나 갑작스럽게 혹은 뜻밖에도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싱크홀과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올 수 있을까.
안타까운 상황을 겪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후일담을 듣는 일만은...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인데.
해리 미용실의 그 남자는...끝내 기억을 놓아버렸다.
그리하여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도 놓아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조차 놓아버렸다.
어떡해야 하나.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약에 의존해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그 조각난 기억들을 다시 맞춰보려 노력하는 사이, 세월은 훌쩍 지나가
버렸는데...
'장사 쌀집' 아들 강태산은 부지불식간에 나이든 아버지를 트럭 사고로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을 넣어두는 상자 안에 고이 들어 있던 사진 뒷면에 쓰인 단 한 줄의 글씨.
'태산아, 꼭 여기를 찾아가라.'
유언과도 같은 그 한 줄의 글씨에 의지해서 태산이는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부산의 "해리 미용실"이었는데, 그곳에는 기억이 온전치 못하고, 누군가의 기일만 지내고 나면 며칠씩 앓아눕고야 마는
남자가 있었다.
고향에 남겨진 '장사 쌀집'의 유일한 후계자인 어린 태산이를 노리고 오촌 아저씨라는 사람이 나타나 쌀집을 마치 제집처럼 휘젓기 시작하는데,
태산이는 해리 미용실에 뭔가 남기고 온 것 처럼 자꾸 미진한 마음이 남아 있다. 열여섯 아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데 게다가 해리
미용실과 그 미용사가 꼭 쥐고 있는 비밀까지 풀어야 하다니.
비밀의 열쇠는 우연히도 '손으로 말해요' 동호회의 캠프에서 만난 변호사의 슬픈 이야기에 들어 있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친구는 미용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항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비행기 승무원이 꿈이었던 여자친구가 졸업을 하기도 전에 임신했고 아기를 낳은 다음 승무원이 되었다.친구도 파일럿이 되었고 결혼날짜를 잡은
둘은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여자친구는 마지막 비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공중 폭파였지요,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187
태산이는 다시 부산의 해리 미용실로 찾아가서 미용사를 만났다.
이제는 그 미용사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밀을 풀었기 때문이다.
태산이와 미용사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지만 따뜻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또다시 희망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
어쩔 수 없는 불의의 사고 앞에 부서지기 쉬운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 버린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만이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인가.
아직 어린 열 여섯 소년 강태산의 태산과도 같은 굳센 의지가 네버 엔딩,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방심하는 사이에 후룩 읽어버렸지만, 괜시리 코끝 찡한 감동을 안겨주는 성장소설이다.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진취적인 방식으로 끊임없는 일상을 이어나갈 태산이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부산의 모 대학병원 앞, 그곳에 해리 미용실과 참견쟁이 할머니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태산이와 해리 미용실의 미용사가 다시 만났듯이, 내일은 또 다른 희망의 태양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