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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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겐야, 여정의 시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너무 멋진 책을 만나면 리뷰 쓸 일이 걱정이다.

흠뻑 빠져서 읽다 보면 내 정신이 어디로 가출해버리고 메모할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 어느새 끝이 보이면 , 어쩌나..

그때서야 후회한다.

진작 정신줄  붙들어 놓고 메모 좀 할 걸.

 

도조 겐야 시리즈 "~처럼 ~하는 것"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을 이제야 만났다.

최근작인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먼저 접하고 뒤늦게 시리즈를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남들 다 도조 겐야의 첫발자국을 좇아가며 느긋하게 흐름을 이어받아 읽어나갈 때, 나만 혼자 거꾸로 역류하고 있다.

뒤늦게 합류한 만큼 도조 겐야의 사건일지를 되짚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서도 역류를 해야만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현대인의 시각을 가지고, 냉철한 이성을 앞세워 읽으려 들었다간 괴이한 전승이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에 스며들지 못한다.

 

서기보다는 쇼와 몇 년 식의 연호가 더 어울리는 즈음의 시대, 청바지가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아 청바지차림의 사내가 낯선 시대에 꽤 잘 어울리게 청바지를 소화해내는 도조 겐야는 이야기를 수집하러 여행을 다닌다. 도조 겐야는 벌써 몇 권의 환상괴기소설을 쓴 어엿한 작가다.

이번에는 이름도 희한한 가가구시 촌이다.

버스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자쿠 연산을 바라보던 도조 겐야는 험준한 산의 형세에 눈을 떼지 못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에 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아까부터 승객들 중 누구하나 산을 보려 하지 않는 것 또한 으스스하다며 엄살을 부리는 사이, 버스는 '신령납치촌' 또는 '허수아비촌', '마귀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가가구시 촌에 도착했다.

시골마을의 도마야 의사를 만나 가가구시촌에 출몰한다는 염매에 대해 듣게 된 도조 겐야.

이 마을 갈림길이나 다리, 비탈 등 곳곳에 보이는 삿갓과 도롱이 차림의 인형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산신령의 신령한 모습이고, 마을 사람들이 가장 꺼림칙한 존재로 두려워하는 염매라는 마물 또한 삿갓과 도롱이 차림이라 좀 복잡하다.

이어서 가미구시가와 가가치가의 혼담 소동을 거쳐 신령납치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가가구시촌에 도착해서는 의사의 청으로 가미구시 새신집으로 같이 가서 지요의 생령 체험뿐아니라 렌자부로의 끔찍한 추억(렌타로의 신령납치)까지 들었다. 그러다 가가치 윗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무신당에 사기리 어르신을 만나러 갔다가 수험자의 목매단 시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도조 겐야는 마을 사람의 일원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일련의 살인사건을 냉철한 눈으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의 존재가 슬금슬금 도조 겐야의 냉정을 무너뜨리고 만다.

마귀 계통인 가가치 집안과 마귀 계통이 아닌 가미구시 집안이라는 대립하는 두 구가.

과거 어린 아이들이 몇이나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신령납치라고 해석하고 만다.

마을의 웃어른인 사기리 무당은 인습의 의례 중 죽으면 산신령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외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대를 이어 무당의 직을 이어받을 어린 사기리는 생령을 봐서 씌었다며 시름시름 앓기까지 한다.

도조 겐야가 이 마을에 도착할 즈음부터 잇따라 끔찍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그에 들러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오싹하고 소름이 끼친다.

 

마을 사람들조차 저물녘이 되면 일찌감치 집 안에 틀어박히고 해가 지고 나서 외출할 때는 여럿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곳. 이 마을은 길 양쪽으로 흙벽으로 막혀 있어 낮에도 어둑한 길이 있고 지장갈림길, 나없다길, 마주침오솔길 등 마을 자체의 지형이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이런 궁벽한 골목의 곳곳에 세워진 허수아비와 마귀 귀신 계통의 집안이 마을을 지배하고 있으니 어떤 기괴함이 전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지즈코가 겁먹은 목소리로 부르기 무섭게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슥, 슥, 뭔가가 바닥을 스치며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

어둠에 익숙해진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마룻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얼굴만 쳐든 지요가 팔다리를 전혀 쓰지 않고 온몸을 좌우로 구불구불 움직이며 기어오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이 기이한 광경이었다.

"아아악!"(...)

열일곱 살 먹은 소녀가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심불란하게 기어오는 모습은, 비록 친어머니일지라도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22

 

이야기의 시작에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던지고 시작하는 것이 이 작가의 수법인 것 같다.

충격과 공포의 기운이 사그러들기 전에 도조 겐야가 마을에 당도하여 마을 전체를 감돌고 있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여과 없이 전달해주면 꼼짝없이 주술에라도 걸린 듯, 발끝이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마을의 수수께끼는 무엇이며, 도조 겐야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결과적으로는 "그것"의 존재에 압도당하는 격이 되고 말았지만, 도조 겐야 환상방랑의 첫 시작치고는 꽤 강렬한  한 수 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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