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연애 블루스]
주류는 뭐고, 비주류는 뭐냐.
검사, 경찰 이런 권력의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이 "버젓한 직업"이라고 인정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고, 뒤가 구린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흥신소 탐정이나 뒷골목 깡패들과 한패인 사채업자들, 전과를 몇 개씩 주루룩 달고 있는 수감자들은 비주류인가.
잠시 발끈해보지만, 세상의 눈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확실히 나뉘는 법이다.
아무리 '나는 비주류는 아니야.'라고 발뺌하고 싶어도 엄연히 기준과 잣대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비주류의 연애라는 제목에서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계절도 가을인데, 왠지 코트깃 올리고 외롭게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비주류의 연애란, 태생적으로 비극을 품고 있기 마련.
처음 시작부터 상쾌하고 아름답지는 않다.
발목까지 물이 찬 아파트의 욕실에 벌거벗은 여자가 둥둥 떠 있다.
창백한 속살, 물의 출렁거림에 따라 흔들리는 긴 머리칼.
뭘까. 이 이야기는. 이 여인의 죽음은 어떤 사건과 이어지는 것일까.
7년 사귄 여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성욱은 실연의 아픔을 사그러뜨리기 위해 영화관으로 갔다가 웬 여자에게 눈길이 꽂힌다.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 성욱이란 남자의 여자친구는 현재 검사이고, 시험을 포기한 채 출판사에 취직하여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를 찍어내는 일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성욱은, 그렇다. 비주류 인생에 합류한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한껏 우울에 젖어 있다가 처음 만난 여자를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워보기라도 하려는 듯 오지랖을 펼친다.차갑고
도도한 얼굴이지만 웃을 때는 눈가가 초승달처럼 변하는 여자. 그녀를 위해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진짜 사나이가 되어 난생처음으로 깡패와
싸웠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에서 내리던 사람이 트럭에 치여 죽는 것까지 눈앞에서 보았다. 소심한 그가 평생 기억에 남을 일생일대의 호쾌한 한
장면을 만든 날, 수정이라는 여자는 그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수정이라는 여자는 마음 속에 독기를 품은 여자다.
우릴 우습게 생각했지?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고, 죽는다고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하찮은 인간들이라 생각했겠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 하찮은 인간에게도 나름의 한 방은 있다.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겠다. -120
보통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공식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소설은 로맨틱 요소가 들어 있고, 아주 돈 많은 부자도 나오지만 신데렐라의 이야기 공식으로는 이어붙일 수 없는 구성을 이룬다.
왜냐? 주인공이 비주류 인생이니까.
수정이라는 여자는 사기 전과를 가진 여자이고 성욱은 검사, 변호사의 대열에 끼지 못한 고학력 인텔리이다. 그들 사이에 어찌하다 끼어들어
사건의 흐름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맡은 이 또한 잘나가는 검사가 아니라, 경찰 일을 하다 선배의 죽음으로 좌절을 맞이한 흥신소
탐정이다.
어쩐지 비주류 드라마를 쓰는 노희경 작가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지만, 이 작가가 달리는 노선은 주로 하드보일드 액션인 듯하다.
교도소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의 복수를 위해 사채업자의 아들에게 접근한 독한 여자 수정, 그 수정에게 연심을 품은 소심한 남자 성욱. 이들이
엮어나가는 달달한 로맨스는 럭셔리한 벤츠가 아니라 바퀴 하나가 빠진 채 덜그럭거리는 수레다. 사채업자의 아들이 벌인 사업은 겉으로는 체형관리를
해주는 번듯한 사업장이었지만, 사실은 약을 유통하는 곳이었고, 이들의 비밀을 알아챈 수정의 언니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뭣도 모른채 끼어들어
어둠의 세계를 접하게 된 성욱은 수정을 위해 소심함을 벗어던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룬다.
이젠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사귀는 것보다 스스로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
나는 변화를 간절히 원했으나 진정한 변화란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317
잘 빠진 벤츠의 세계가 제공되는 멋진 드라마에 익숙해진 눈으로서는 좀 거친 배경에 별 매력 없는 (주류들이 누리는 경제력, 권력, 외모
등의 매력을 말한다.)주인공들이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가 그다지 세련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인생들이 실제 인생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비주류 연애 블루스에 몸을 맡긴 성욱의 모습이 더이상 초라해보이지 않고, 탈피의 과정을 거친 한 마리 나비의 비상을 보는 것과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달까.
레이먼드 챈들러의 "비열한 거리" 운운하며 주인공을 구상했다는 작가의 말에 기대가 컸었나 싶지만, 나름 가슴을 적시는 남자의 "연심"을 볼
수 있었던 것에는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