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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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동화가 전하는 마술 언어 [그림형제 동화전집]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우리 전래동화든 서양 명작동화든 어린 시절 아이들이 읽게 마련인 동화들에는 어떤 힘이 숨어 있기에 옛날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순화되고 저절로 미소를 띠게 될까?

이야기의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누구든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잊고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나 동화 속 이야기는 왕자나 공주 등 모두가 우러러 볼 만한 처지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언제나 행복한 삶을 구가하지는 않는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나가는 사람만이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대비시켜 놓고 보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교훈적 역할을 하는 "교재"로서 동화를 읽어왔다.

하지만 오직 권선징악을 전달하는 도구나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만이 동화의 효용일까? 

동화를 읽으며 또다른 문제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증폭시켜 새로운 동화읽기를 할 수는 없을까?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아름답게 포장되고 치장된 동화만을 읽는다면, 동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릴 것이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길로만 걸어가게 될 테니까.

 

 

아서 래컴 컬러 삽화, 본문 40

 

아서 래컴 컬러 삽화, 본문 23

 

 

이제까지 우리는 동화라고 하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라푼첼, 헨젤과 그레텔 등 꽤 유명한 동화들을 읽어왔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미화되고 순화된 내용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나 또한 생각해 왔다.

그림 형제의 동화전집은 뭐랄까...이야기가 짧고 간단하다 하여 글을 읽을 줄 아는 유아들에게 툭 던져 주기는 많이 껄끄럽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항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을 입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그림 형제 나름의 가필을 하였지만 되도록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원형을 살려서인지 조금 낯설다.

 

 

아서 래컴 컬러 삽화, 본문 30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볼까.

만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신데렐라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을 보면 생쥐들과 호박 마차, 그리고 도움을 주는 요정이 필수 주변 인물이다. 또한 "유리구두"도 뺄 수 없는 필수요소다. 계모와 새언니들은 심술궂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허용할 수 있을 만큼의 심술을 부린다.

하지만 그림동화에 실린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우는 신데렐라에게 비둘기들이 드레스와 비단 수를 놓은 신, 금신을 떨구어 주는 것이 다이고 호박 마차는 없다.

왕자가 작고 우아한 순금 구두를 들고 처녀를 찾아 다닐 때, 언니들은 각각 엄지발가락, 뒤꿈치를  끊어내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구두에 발을 끼워 넣은 채 왕자의 마차에 타고 가는, 다소 잔인하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중간에 새들이 노래로 피에 젖은 하얀 양말을 보라며 왕자를 일깨워주는 바람에 언니들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디테일 면에서 허황된 이야기로 감싸지 않고 낯설지만 이게 바로 진짜 이야기지,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 점이 여타의 동화와 다르다. 그림 형제가 채취한 이야기들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떠한 이념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문명의 기원, 가장 인간적인 심성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민속을 통해서 밝힌 그림 형제의 동화집은 그 모든 것을 위한 '마술 언어'로서 읽혀지고 있다. -14

 

 

그림형제는 동화 주인공과 같이 역정을 거치는 삶을 살아왔지만 정직, 근면, 성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희망 등으로 역경을 이겨냈다.

사회적 신분이 높지 않아서 수석으로 리체움을 졸업했지만 특별 허가를 받아 법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그림 형제. 불공평한 처사를 겪으면서 택한 전공인 법률이 이들 형제를 신화, 전설, 동화, 그리고 민속 등에 관심을 갖게 했다고 한다. 그들은 법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 풍속 등을, 그리고 민심의 동향을 잘 살펴야 한다는 지도 교수 사비니의 가르침 덕분에 민속, 신화, 동화에 대한 끈질긴 관심을 이어오게 되었다.  독일의 민족적 주체성을 바라던 당시의 사회 풍조, 민주적인 사회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시대적 변화에 편승하여 핍박받고 있는 가난한 서민, 민중들에 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문학적인 동화를 210편이나 모아 내게 되었고, 각 이야기에 붙인 주석은 민속학 연구의 토대가 되면서 최초의 '과학적' 민담집으로 남게 되었다.

 

그림 형제가 온 생애를 바쳐 수집하고 다듬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백설공주의 못된 왕비를 무조건 나쁘다고 지탄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했어야 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고 궁금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왕자들은 왜 그렇게 백마를 타고 돌아다닐까? (박신영,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차용) 같은 질문도 한 번씩 던져 볼 수 있는 일이다.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하면 거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록 그림동화집이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의 문명에 발맞추어 새로운 눈으로 동화를 보는 연습은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동화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사회전체를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각을 기를 수 있다.

확~ 다른 느낌의 신데렐라를 읽으며 놀라 자지러질 정도의 연령이 아니면 비교적 어릴 때부터 "원작" 그림동화를 접하게 해주어도 좋겠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누기에 딱~적당한 주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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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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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생, 고독사, 남의 일이 아니다. [나는 품위 있게 나이들고 싶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빙 둘러 모여 앉아 TV를 보면서라도 웃음을 나누는 따뜻한 가정.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 평범함에 가 닿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 명절에도 우울하게 들려오는 가족 동반 자살, 고독사 소식이 그 증거다.

애써 가족을 보듬어 안아 보려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 속 그림자 때문에 삶의 희망과 끈을 놓아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면 자연스레 내 가족에 시선이 돌려진다.

남의 일이려니...하며 뒷짐 지고 있기에는 고독생,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는 나의 생활 속에서 어느덧 늙은 부모의 안부를 챙기는 일이 한참 뒤의 순위로 밀려 나 있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는 설이나 추석 어름이면 더욱 그렇다.

전화 한 통 해서 안부 묻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저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연스레 노인복지 전문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와 60대 이상의 노년층에 대한 사례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우리 주변의 문제들은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담아 내고 있기에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더욱 상상 이상의 경악을 안겨준다.

황혼이혼을 감행하는 노년의 부부, 돈 달라고 부모 학대하는 자식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간병', '돈' 때문에 퇴직해도 18년을 더 일하는 노인들, 늙어간다는 것의 불안과 외로움을 파고든 상술에 당하는 노인들, 어떻게 사랑하며 놀아야 하는지를 몰라 성범죄를 저지르는 노인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가 낭만적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혹하지만 현실적인 충고를 서슴지 않는 것처럼 이 책 또한 은퇴 후의 일을 막연하게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시원하다 못해 뼛속까지 시린 아이스 버켓을 퍼붓는다.

 

100세 시대는 배우고, 일하고, 쉬는 것이 몇 번이나 반복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독사보다 더 가혹한 건 '고독생'이다. 죽음은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이기에 고독한 게 당연하다고 치자. 하지만 혼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고독한 삶이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절대적인 고독이며, 처절한 고독이다. -13

 

평균수명 80 세에 맞춰진 교육, 정년, 복지 등 국가정책의 큰 틀을 100 세 시대에 맞게 바꾸자는 프로젝트가 구상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개인도 변화해야 한다.

100세 시대에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슬로우의 기본 욕구를 전제로 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저자는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혼자 노는 '고독생'에서 벗어나 교류하라.

둘째, 가족 관계를 리모델링하라.

셋째, 80세까지 일하려면 '경력 모자이크'를 만들어라

넷째, 혼자 사는 기술을 익히되 '이웃'과 '마을'에 투자하라.

다섯째, '자기성찰'을 통해서 능동적인 삶을 기획하라.

 

 

사실, 밝고 따뜻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써서 100세 인생에 대한 설계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책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가 첫 장부터 심장이 벌떡 튀어나오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멋진 은발을 휘날리며 적절한 수입을 유지하는 편안한 노후를 "꿈"만 꾸었다가는 고독사, 고독생이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아직 한겨울의 쨍함이 남아 있는 이 때,  아이스버킷 맛을 보게 되면 안온한 기분에 취해 있던 정신줄을 재빨리 끌어당기고 싶어질 것이다.

'효도계약서' 혹은 부모자식간의 '효도 소송'을 다루었다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 채 막을 내렸던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공감을 자아낸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모두가 도외시했던 바로 그 문제, 부모자식간의 소통부재의 문제를 정면에 내세우면서 '이제는 똑바로 바라보고 다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임을  선전포고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간의 소통, 세대간 이해, 더 나아가 은퇴 후의 부모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지혜로운 노년을 위해 무언가를 더 쌓아두기 보다 현명하게 버리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이 책,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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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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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는 초기작도 대담하다 [형사의 아이]

 

한동안 미미 여사의 에도물에 빠져 있다 보니 [모방범], [솔로몬의 위증] 같은 현대물의 훈김이 그리웠었는데. 마침 초기작 [형사의 아이]가 발간되었다.

미미 여사는 언제부터 그렇게 재능이 출중했나, 했더니.

역시, 처음부터 훌륭했었던 거다.

비교적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형사의 아이]에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의 역량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년 탐정을 주로 내세우곤 했던 것도 [형사의 아이]에서 형사의 아들 준이 주인공으로 나선 것을 보면 그 맥락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도쿄 대공습으로 황폐화되었던 과거와 거품 경제로 번성기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사회 질서가 요동치는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범죄"와 "사회"의 맞물림을 잘 보여준다.

 

경시청 수사과에 근무하는 미치오는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준과 단둘만의 생활을 시작한다. 도쿄의 시타마치(옛 정취가 남아 있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셋집을 구하고 동시에 기적과도 같이 하나라는 나이 지긋한 베테랑 가정부도 얻게 되었다.

준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가정부 하나는 <컬렉터> 같은 옛날 영화도 많이 보는 호기심 많은 할머니다.

하나 할머니는 동네에 떠도는 소문도 물어다 주었다. 제방을 등진 단독주택에 혼자 사는 노인, 그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다...젊은 아가씨가 살해됐다는 소문이었다.

 

마침 그 때 시타마치의 강에서 토막 시체의 일부가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치오는 그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준은 잠 못들던 새벽, 우체통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갔다가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온다.

"시노다 도고는 살인자."

편지에는 달랑 한 줄 뿐.

 

준은 이 사건을 스스로 수사하겠다며 시노다 도고를 찾아 나서는데, 그는 '일본 화단의 이단아이며 이색적인 작풍으로 소개되고 있는 화가였다. 그리고 동네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인 바로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직접 시노다 씨를 만나고 그의 유명한 작품 <화염>을 눈앞에서 보게 된 준.

 

'숨이 멎을 뻔했다'는 관용구에서 진실을 발견했다.

그림을 올려다보는 준은 쇼와 20년 3월 10일 대공습 가운데 있었다. 뺨을 그슬리는 불길이 느껴졌다. 고함 소리가 들렸다. (...)

그 소리들이 불길한 중저음으로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달마 오뚝이가 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꼼짝 않고 내려다본다. -113

 

 

<화염>이라는 그림은 일본 대공습의 참혹했던 모습을 담고 있는 수묵화이고 준의 시선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과연 이 그림이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달마 오뚝이가 토막 살인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 미치오가 사건의 큰 전개를 따라 수사하고 있다면 준과 가정부 하나는 <화염>과 노화가 시노다 씨에게 집중하면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 내려고 애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영역에서 수사하는 것도 흥미있지만 미스 마플 같은 할머니 탐정 하나 또한 약방의 감초 같은 활약을 보여 준다.

 

끝부분에 가서 소시오패스 같은 범인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벌주기 위한 또 하나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하시길...

 

초기 장편에서도 충분히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미미 여사의 필력은 대담하다.

뒤로 갈수록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 속에 번화하는 사회 이면에 감추어진 청소년의 일그러진 가치관이 드러나고 경악할 만한 함정을 파놓은 인물에 그저 망연자실 할 뿐이지만...

미미 여사는 끝내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감추지 않는다.

아니, 독자에게 지독한 사건을 겪어내게 하면서 숨어 있던 양심을 끌어올리게 만든다.

범죄자에게도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을 보라, 너희들은 그 마음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이냐.

독설을 퍼붓지 않고 톡톡톡 이불 덮어 다독여 주는 훈훈한 마무리를 잊지 않는다.

사건의 진상이 여름날의 폭우에 와르르 허물어지는 토사처럼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한 순간에 쏟아져내리듯 밝혀지지만 끈기를 가지고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소년탐정의 끈기도 인정해줄 만하다.

오랜만에 미미 여사의 현대물을 읽었지만 역시나 그녀는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손에 잡은 책을 쉬이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녀의 전매 특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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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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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넘어서서 마음을 어루만지다. [시 읽어주는 예수]

 

복음서는 역사를 담은 것이 아니었나?

예수의 육성이 담긴 복음서를 살아 있는 언어 곧 시라고 말하는 것이 일단은 놀라웠다.

성경을 자세히 탐독하진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시편'도 있는 것 같았는데... 각 복음서마다 몇 장 몇 절로 표기가 되는 것도 그렇고, 줄줄 읽는 것을 보면 꽤 운율도 느껴지는 것이 시에 가깝다면 가까운 것 같았다.

저자는 고대 인도의 <베다>, 히브리인들의 [시편] 같은 경전을 보면 신에 대한 찬가는 시적 운율로 이루어져 있다면서 시와 종교의 연관 관계를 얘기한다.

신비롭고 경이롭고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세계는 시적 언어가 아니면 표현할 길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 언어가 사라진 자리를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산문적 언어가 차지하고 있는 시대를 반성하고 계산과 타산에 밝은 산문적 인생들이 종교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북적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보인다.

죽은 말을 토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을 토해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침묵을 사랑하는 예수를 '시 읽어주는 이'로 모셨다는 저자.

 

이 책에는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기는 동서양의 시가 담겨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살짝 걷어내고 본다면 이 책은 그저 자칭 "예수"라고 하는 이가 정성들여 시를 읽어주는 책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지하의 <님>, 틱낫한의 <서로 안에 있음>, 헬렌 켈러의 <행복의 문>, 임의진의 <마중물>, 에밀리 디킨슨의 <짧은 노래> 등 꼭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도 삶의 다양한 순간에 읽으면 일단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은 언어의 시들이 빼곡히 자리한다.

보통 시에 등장하는 "님"을 저자는 '하느님'과 연관시켜 보고자 하지만 나는 애써 그런 해석을 벗어나려 했다. 여기 있는 시들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마음 보듬기"의 차원에서 읽기 위해 저자의 해석 부분을 취사선택하여 보았다. 그러자 거부감이 서서히 옅어지면서 시 자체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언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둠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정현종, <경청> 중.-166

 

특히나 이 책에서 가려 뽑은 시들은 시보다는 잠언에 가까워서 어렵게 함축된 뜻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시를 읽으며 머리와 이마에 푸른 핏줄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스르륵 수월하게 읽어내는 사이에 슬픔이 저만치 사라지고 아름다운 꽃망울이 막 움을 틔우려는 찰나를 맞이하게 된다.

 

나도 이 작은 나비처럼

내 기쁨을 만들어가리

나비의 행복한 마음은 바위를

꽃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니.

-윌리엄 데이비스, <본보기>-256

 

내일 일을 염려하고 숱한 걱정으로 힘겨워할 때 부처의 염화미소는 대중들에게 이상하게도 커다란 힘을 불어 넣어준다.

나비의 행복한 마음이

바위를 꽃으로 만든다는 시를 읽으면서

한순간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고 만족을 맛보게 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격렬하게 성토하거나 휘몰아치는 듯한 격정으로 몰고가는 강렬한 시는 아니지만 여기 실린 잔잔한 시들은 현재의 "자족"을 꿈꾸게 한다.

뭐랄까, 아련한 자장가와 함께 내 머리 위에, 아픈 배 주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엄마의 "약손"같은 처방이 가득한 것이다.

 

[시 읽어주는 예수]라는 제목 때문에 읽기를 꺼려하는 이들이여, 기억하라.' 엄마의 약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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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학전사 1 - 이집트 신들의 문제를 풀다 와이즈만 스토리텔링 수학동화 시리즈
서지원 지음, 임대환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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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들과 수학의 신선한 만남[마지막 수학 전사]

 

 

 

와이즈만 수학동화는 언제나 진리이지만 이번 [마지막 수학 전사]  시리즈는 진리이면서도 무척 신선하다. 1편의 부제는 <이집트 신들의 문제를 풀다>이다.

서지원 작가는 헤세의 [데미안]에서 영감을 얻어 이집트 신들과 주인공 독고준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평범한 초등학생인 독고준이 인류에게 수학의 비밀을 알려 준 이집트의 신 호루스로 다시 태어나 자신에게 던져진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내용이다.

남성적 기운이 화르르 뻗치는 악의 화신 세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표지를 보면 "수학"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싶어진다.

엄마인 내가 아니라 아이가 그래야 할 텐데...^^

아이는 악의 화신임을 온몸으로 주장하는 세트의 모습이 무섭다고 한다.

여자아이의 눈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이번 수학동화에 연계된 내용은 초등 3학년부터 6학년에 걸쳐 나오는 분수와 소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제 4학년에 진학하는 울 딸래미는 통분과 소수점 등 아직 배우지 않은 부분에 가서는 "그게 뭐야?"라고 물어보기는 하는 등, 최소한의 관심을 보여주어서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어렵고 표지 그림이 무섭다고 아예 보지도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3학년 때 배운 분수 내용이 있어서 이야기의 첫단추는 쉽게 끼운 듯 싶다.

이집트 역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인 독고준의 아버지 덕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집트의 수학 책 <린드 파피루스>의 문제를 접하게 된 독고준.

 

아빠와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분수의 원리를 공부한다.

 

꿈에서 본 눈동자 그림 속의 분수들을 궁금해 하던 준은 통분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었지만 눈동자의 분수를 더해도 1/64 가 모자란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문제를 딸과 함께 풀면서 숫자 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 옆에 있던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접고 접고 접어서 끝에 1/64 이 남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이 작업을 통해 제곱의 개념과 곱셈의 개념의 차이점도 한 번 더 가르쳐주었다.

 

 

 

이제 1학년 올라가는 아들 녀석은 종이를 작게 작게 접는 게 신기했던지 옆에서 따라 접고 있었는데,

아직 누나가 배우는 심오한 분수의 세계에 오려면 멀었기에

다음과 같은 미션을 주었다.

 

 

크크. 삐뚤빼뚤. 1부터 64까지 숫자 쓰기를 시켰다.

 

수학동화를 읽으며 이런 활동 하는 것도 꽤 재미 있다.

 

 

독고준이 호루스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연관하여 이집트 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따로 만화로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덕분에 이집트 신들의 계보와 신화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볼 수 있다.

태양신 라의 후손들인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에 이어 호루스까지 연결되는 계보는 신들의 영역에 첫 발을 들인  기념 선물 같다.

이어 아우인 세트가 형인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황금관에 가둔 다음 시체를 산산조각 내 이집트 곳곳에 뿌린 것이며,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가 복수하려 하였으나 다시금 세트에게 한쪽 눈을 6조각으로 찢기게 된 사연이 펼쳐져 있어 신화의 세계에 풍덩 빠지게 된다.

 

호루스로 다시 태어난 독고준이 잃어버린 신의 능력을 찾으려면 이집트 신들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소수와 분수의 문제들이다.

과연 독고준은 진정한 호루스가 될 수 있을까?

 

자칫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분수와 소수 연산 문제의 원리를 깨우쳐 주는 수학동화여서 마음에 들었고, 이집트 신화를 빌어 와서 흥미를 업 시켰기에 더욱 아끼는 마음이 든다.

마지막 수학 전사 2편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간단하게나마 엄마와 함께 수학 활동을 했던 우리 딸은 정작 분수와 소수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이집트 신화에 더욱 관심을 쏟을 것인가?

^^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어도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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