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아우름 4
주철환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65일 만날 사람이 있나요?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자신의 지갑에 돈 대신 365일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가득 들어 있다면?

뭐, 돈이 365장 들어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주철환 PD가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이란 부제를 단 책을 냈다.

<퀴즈 아카데미>,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의 유명한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로 주철환을 기억한다.

약력을 보니 그의 인생경력은 좀 화려하다.

국어교사, 방송 PD, 대학 교수, 방송사 사장, 편성본부장 등을 거쳐 현재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인연"을 주제로 책을 냈다 해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두루 많은 사람들을, 나보다 많이 만나보았을 것이 확실! 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인간 관계라고 하는데, 그 인간 관계라고 하는 것이,

사람 생긴 모양 각기 다르듯이 각양각색으로 흐르다 보니

이렇다 하게 메뉴얼을 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다.

하지만 보통 원활하게 인간관계를 경영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의 지혜를 모아 볼 수는 있다.

주철환 PD또한 혼자 힘으로 인연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기 보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나누어 주는 차원에서 이런 책을 낸 것 같다.

그는 비교적 온건하게, 친절하게, 따뜻하게 살았기 때문에 축복 받은 사람이며, 365일 매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한다.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 해보고,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그렇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친구"란 존재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좋은 친구를 만들려면 시비지심보다 측은지심을 가질 것이며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빈말이라도 진심이 담기면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상대가 원하는 '거리'를 배려하라, 잘 먹고 잘 써야 한다 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절실한 팁들이 속속 소개된다.

 

 

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상담을 하러 학교에 갔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우리 아이가 요즘 장난이 부쩍 심해져서..."라고 서두를 꺼내니

담임 선생님께서 "그렇지요?"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나는 속으로 '어헛, 이건 뭐지? 너무 격하게 공감 해오시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아무리 장난이 심한 아이라도 1학년 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좀 더 부드럽게 말을 꺼낼 수도 있었을 터인데...이 선생님은 공감과 배려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분이 아닐까? 하며 잠시 의아해 했다.

곧이어 수첩을 꺼내 드시더니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한 달 정도 하는 동안 잘못을 저질러 벌을 주었던 때를 기록했다며 주루룩 나열하셨다.

"오늘 아침에도 혼났는데,,,보자, 적힌 건 세 건 밖에 없네요?"

"..."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집에서 인성교육을 잘 못 시킨 말썽쟁이 아들을 학교에 보낸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솔직담백한 것은 좋으나, 선생님. 너무 돌직구를 날리시면 이미 첫째 아이 때 예방주사를 맞은 둘째 아이의 엄마라도 상처를 받는답니다...

 

동시에 나 또한 내가 편하게 느낀다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에게 서슴없는 '돌직구'를 날리며 그들에게 상처 준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주변에 있는 많지 않은 친구들을 나도 모르는 새 내가 떠나가게 만들지는 않았나.

나는 과연 사람들이 "친구"로 기꺼이 삼고 싶어하는 사람인가. 등등...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귀여운 표지의 인형들은 끊이지 않는 친구의 인연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도, 그런 친구를 만드는 것도.

다 내 할 탓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자가 필요한 시간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우주의 얕은 꿀팁!

같은 말들이 넘실대고 있다.

"얕은" 것이 미덕이 되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자칫하다 '얕은' 것만을 좇는 세태에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괜히 인문학인가.

나를 제대로 알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넋놓고 그저 좋다며 따라가다 보면 진짜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서양고전, 동양고전을 쓰윽 훑어보면 어려운 말 투성이라 마음 둘 곳이 없다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노자의 '무위자연', '무위'라는 말은 묘하게도 위안이 된다.

깊이 파고들어 보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진정한 '무위'는 아닌 것이 확실한데도

'게으름',나태'와 연관지어 생각하기가 쉽다.

과연 노자는 게을러지기 쉬운 나에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줄 것인가?

 

노자를 들여다보기 전에 저자는 '무위'란 무엇인가를 쉽고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도가를 이야기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무위적이라고 오해를 할 수 있는데, 그 '무위적'인 것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못박아 둔 것이다.

철학적으로 유위와 무위는 분명히 구분된다. 하지만 유위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노력이 무위 안에 가미되지 않으면 무위는 나태가 되거나 엉망진창이 된다. 그러므로 무위 안에 유위적인 활동이 있어야 한다.

 

정신이 활딱 깨나게 명확한 답변이다.

 

저자는 철학책을 철학적 시선으로 읽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도'를 실체가 아닌 본질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말이 쉽지 실체니 본질이니 하는 것들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바로  외부의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지적 체계에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결국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만이 천하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라며, 일반 명사가 아닌 고유 명사로 존재하라고 충고하는 저자의 말이 새롭게 나를 일깨운다.

 

혼자 공부해서는 노자의 구문만을 파악할 뿐이었는데,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철학적 사유들을 생활 속 예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집 대신 차를 사고 잘게 쪼개진 조직 속에서 일개 부품 하나로만 존재하는 현대인들에게

자기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는 지혜를 나눠주는 노자 철학.

분명 얕지 않은 현묘한 도를 논하고 있으며 깊이감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강의 형식으로 너무 어렵지 않게 풀어 쓴 글이라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현장에서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생한 강의를 들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가 해답보다 크다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나른한 주말 오후엔 신선한 요거트에 넛츠, 베리 믹스 1봉지를 넣어 먹는 것만한 간식이 없다.

살풋 잠에 빠져 들기 쉬운 때에 오도독 씹어먹는 아몬드는 졸린 뇌를 깨운다.

이렇게 내가 즐겨 먹는 아몬드는 평소 "간식" 이상 의 어떤 의미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오늘, 이 책,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을 다 읽고 난 이후로는 색다른 의미로 떠올리게 될 거만 같다. 죽음의 언저리에 감도는 아몬드의 향기로.

 

1954년 6월 8일 화요일

젊은 경관 레오나드 코렐은 가정부의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주인 남자가 죽었는데 입 주변에 하얀 거품이 일고 집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갓 서른이 넘어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앨런 튜링. 손톱 끝이 까맣게 변색되고 입가에 하얀 거품이 있었는데 시큼한 아몬드 향이 났다. 아마도 앨런 튜링은 실험실에서 냄비로 직접 청산가리를 만든 것 같았고, 거기에 사과를 담갔다가 한두 번 깨물어 먹은 것이 직접적인 사인인 듯 보였다.

 

이 책은 앨런 튜링의 전기도 아니고 그의 활약을 눈부시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책도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가 간과했을지도 모를 앨런 튜링의 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끄집어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표면적 주인공인 젊은 경관 코렐은 마치 앨런 튜링의 분신인 양, 수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어느 순간 드러내 보이고 있었고, 아직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한 '동성애'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앨런 튜링의 죽음에 자석이 반응하듯 이끌리고 있었다.

 

문학가이자 사회적 명사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금융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집안은 몰락을 향해 가고 있었고 어머니조차 정신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상태에 처하게 되자 대학을 버리고 경찰이 된 코렐.

그가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활동했고 코들리헤드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던 이모의 머리는 항상 짧았으며 유행과 상관없이 바지를 고집했다.

아직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이상하게도 앨런 튜링을 수사하면서 점점 앨런의 인생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코렐은 천재 수학자로서의 앨런, 동성애자로서의 앨런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대상을 바라보고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앨런이 세상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튜링은 대학에서 일하고 학위와 지위가 있고 전시에는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았지만 결국은 집에서 독극물이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앨런 튜링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앨런 튜링의 죽음에 대면한 코렐은 앨런의 주변 인물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앨런 튜링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험실, 기포가 남은 냄비, 독 묻은 사과...

퍼즐 조각을 맞춰 탐정소설에서처럼 제대로 추리를 하고자 했지만, 생전에 미스터리가 해답보다 크다, 며 추리의 과정을 즐겼던 앨런 튜링은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코렐이 파악한 바로는 앨런 튜링은 전쟁 중에 논리 기계를 발견했다. 그 기계는 전시 최고의 비밀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해 불가의 음악을 이해하는 기계". 튜링은 암호를 설계하거나 독파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를 이기는 것은 기계 뿐이다." 에니그마라 불리는 나치 암호 기계를 완전히 뒤집어 괴물같은 기계를 만든 앨런 은 마침내 전쟁에서 독일의 암호를 깨뜨리기 시작하고 비밀 통신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앨런은 전쟁의 좌절마저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끔찍할 정도로 허름한 복장에 유행을 따르지 않는 복장을 한 앨런. 초조하면 손톱을 무는 버릇이 있었지만 숫자와 논리 구조에 혼신을 다 빼앗긴 앨런.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정적들은 비열하게 복수했고 그 과정에서 앨런은 동성애자로 몰리고 서서히 무대의 중앙에서 사라져갔다.

 

기계와 지능 사이에 모순이 없다, 범인과 천재 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앨런 튜링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따라가 보았다. 스스로를 몽상가라 얘기하는 코렐처럼 앨런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으리라.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앨런 튜링 ),1912-19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좀 많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사람들의 서재가 궁금하다면...[책이 좀 많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은 말 그대로 책방 주인이다.

"책방" 이라고 하면 "서점"과는 또 다른 어감을 품는다.

좀 더 정서적으로 다가 가기 쉽고 편안한 느낌.

부산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입 속에서 되뇌어지기 때문에 "책방"이라고 하면 헌책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버스만 타면 금세 도착하는 보수동이었어도 바로 옆 남포동과 중앙동, 국제시장 거리가 일명 '번화가'였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 꽤 책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보수동 책방 나들이를 자주 하지 못했다.

순진하고 허름한 행색의 나를 누가 잡아 채갈 일은 없었겠지만 어린 마음에 괜히 어른들이 겁주는 말에 속아 보수동을 코앞에 두고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는 못하고... 그저 "꿈의 공간"으로 치부하곤 했던 그 시절.

<슬램덩크>,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만화책 시리즈나 참고서 등을 살 때 재빨리 들러 필요한 것만 사고 얼른 자리를 뜨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 때는 억센 사투리를 뱉어 내거나 먼지털이로 총총 책을 털어내는 무뚝뚝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새학기에 참고서를 사러 가면 또 인파가 얼마나 모여드는지.

사람 우글거리는 곳 자체를 싫어했던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조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그 골목에 발을 들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때 좀만 더 용감했더라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바닥 한 뼘만큼만 더 컸더라면, 어느 구석의 책방 하나에 들어가 주인 아저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진정 원하는 책을 찾아달라고 말이나 붙여보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억센 말투 뒤에 숨어 있는 다사롭고 살가운 마음을 읽고 "책방" 속으로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 같은 분을 만나 더 깊고, 넓은 책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중에 크면 꼭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누비며 맘껏 책 냄새를 맡으리라 했었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보수동 갈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 그렇게 몸 사리며 멀리하려 했던 남포동, 국제시장의 화려함에 빠져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먹거리를 즐기는 것으로 끝내게 되었다.

 

그럼, 문학 소녀 비스름한 흉내를 내던 나는 어디서 책을 고르고 사곤 했던가?

역시 나같은 사람은, 작고 조용한 책방, 순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학생들을 챙겨주곤 하는 주인이 있는 책방과 궁합이 맞았던 게다. 내 수줍음을 품어주는 주인 아저씨가 좋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단골 책방을 만들어 놓고 그 곳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용돈이 들어오면 한 권, 한 권.

초등학생일 때는 지경사의 책들을 많이 골랐고, 중고등학생일 때는 역시나 추억의 이름, "삼중당" 문고를 하나씩 사서 읽는 것이 낙이었다.

이광수의 <유정>, <무정>,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등 한국 문학을 섭렵한 뒤에는 책 뒤의 목록을 보고 외국 문학까지도 사들였고 좀 뒤에는 두툼한 "범우사"에도 도전했다.

책을 사는 게 녹록치 않을 때는 집 앞 "대여점"을 활용했는데, 박경리의 <토지> , 일본 대하소설 <대망>, 최명희의 <혼불>등 웬만한 시리즈는 거기서 다 빌려 읽었다.

이사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정이 들었던 대여점 아저씨와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대여점을 개척하러 간 길에,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끼리 친척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만난 것이 어찌나 반갑던지...^^

휴우~ 반납하지 않고 책을 떼어먹었더라면 어쨌을까...하는 마음에 잠시 철렁하기도 했다는 것은 비밀!!

 

그렇게 모아둔 책은 결혼과 동시에 이별!

지금의 서가에는 내 새로운 취향을 반영한 책들이 주루룩 꽂혀 있다.

 

일본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를 읽으며 품었던 의문.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개인의 책을 매입하는 고서점, 혹은 "책방"이 있을까?

보통은 개인이 책 몇 권을 싸가지고 헌책방에 가서 파는 형태가 아닌가?

 

이 책의 저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씨는 2011년 500권 정도의 책을 처분하고 싶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너무 사랑하여 아파트 전체를 서재로 쓰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계속 사들이기 위해서 있던 책을 처분하고 다른 책을 들이려 했던 '괴짜'였던 것이다.

아~ 우리 나라 헌책방서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긴 책을 좋아하는 애서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책에서 개인의 사연이 적힌 메모나 글들이 발견되는 것은 부지기수일 것이고...장서를 위해 책을 처분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겠지.

논어 이불과 한서 병풍을 둘러 치며 한겨울을 보낸 간서치도 있었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통임을 알려주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면서 더 많은 애서인들을 만나본 윤성근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이 정도까지...라고 하며 읽을지라도 결국에는 책을 사랑한다는 점 하나로 많은 것이 용서되는 이 책 덕후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젖은 책 다림질하는 노자 덕후, 한옥 책 거실을 만들어 놓은 오지 방랑자,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천천히 책 읽는 바리스타, 애묘와 애서를 동시에 즐기는 수의사,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수학 교사...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책 수다를 제대로 떠는 것을 한바탕 읽고 나니 지금의 내 서재에도 이야기를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직은 책이 좀 많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날, 내게도 처분할 책이 500권 쯤 쌓이게 되면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그 누군가는, 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3-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 제대하고 나서 부산 보수동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대학 졸업 전까지 부산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보수동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후회 되요. 그 ‘누군가’에 절 포함시켜주세요. 책 이야기 좋아합니다. ^^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만약에" 가 빚어내는 인생 [허즈번드 시크릿]

 

 

시작은 평범했다.

고수 사오기, 이사벨 머리 자르기, 화요일에 에스터가 언어장애 치료를 받는 동안 발레 학원에서 폴리를 데리고 있어줄 사람 구하기, 등의 자질구레한 일을 머릿속에 넣고 사는 세실리아. 그녀는 그저 세 딸을 둔 학부모에 진공 포장 용기를 판매하는 타파웨어 사에서 시간제 근무로 일하는 판매원일 뿐이었다. 참, 그녀의 곁에는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하지만 언제나 가족을 알뜰하게 보살피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전형적인 가장인 남편 존 폴 도 있었지.

하지만 어느날 다락에서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라고 쓰여진 편지를 발견한 뒤, 아니 그것을 읽은 뒤, 그녀의 일상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남편은 정말 엄청난 "비밀"을 그 편지에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테스는 친 자매보다 가까운 사촌 펠리시티가 자신의 남편 윌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막 전해들은 참이다.

코끼리만큼 뚱뚱했지만 '얼굴은 예쁜 뚱보'였던 펠리시티가 자존감을 잃고 있을 때 용기를 준 것은 테스였다. 그런데 6개월 전에 갑자기 40킬로그램을 뺀 뒤에 엄청난 미인으로 거듭난 뒤 가장 처음 한 일이 자기 남편 윌과의 스캔들을 터뜨리는 것이었다니.

멜버른에 살던 테스는 시드니의 친정으로 아들 리엄을 데리고 돌아간다. 세인트 안젤라 초등학교에 아들을 보낼 생각이었다.

시드니로 돌아온 테스는 바람핀 남편에게 대항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한때 사귀었던 남자이자 현재 세인트 안젤라 초등학교의 체육 선생님인 코너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존 폴, 세실리아, 테스는 알고 보니 세인트 안젤라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복잡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은 찬찬히 살펴보면 이 초등학교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

 

세인트 안젤라 초등학교에서 현재 비서일을 하고 있는 레이첼은 아픈 과거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딸 자니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인 열 여덟 살에서 시간이 멈추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니는 목이 졸린 채 발견되었고 그 옆에는 어떤 증거도 되어주지 못하는 묵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니 크롤리가 살아 있었다면 여행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춤을 추고, 요리를 하고, 울고, 웃고, 텔레비전을 많이 보고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99

 

레이첼은 아직까지도 자기 딸의 살해범을 잡지 못했지만 딸의 영상이 담긴 비디오테잎에서 코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를 범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테잎은 증거가 되지 못했다. 진작에 살인범을 잡을 수 있었더라면 레이첼이 엉뚱하게 코너를 향해 적의를 불태우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하여 코너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차를 들이밀었다가 세실리아와 존 폴의 어린 딸 폴리를 다치게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인생은 무나 두부 자르듯 딱딱 네모지게 떨어지지 않는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변수들이 있게 마련이고 "만약에..."라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들기도 한다.

다소 어지럽게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는 가운데 그들을 연결한 보이지 않는 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전반부에서 빵 터진 남편의 비밀을 품은 세실리아가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술술 이야기는 이어져나간다.

 

만약에 이 비밀이 새어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꽁꽁 숨어 있었더라면...

 

하지만 기어이 상자 속에서 나오고 만 비밀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엮이게 만들면서 때로는 속시원하게 뭔가를 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삶을 더 꼬이게도 만들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얽힌 실타래가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정리되면서 지금껏 등장했던 많은 인물들의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되지만

역시나 이 소설의 묘미는 마지막에 있다고 보아야겠다.

전반부에 터진 남편의 비밀은 그저 "서막"에 불과한 것이었다!!

 

 

비밀을 움켜쥔 자의 시시각각 변하는 혼란한 마음 상태.

세실리아의 왔다갔다 하는 마음은 '만약, 내가 남편의 이런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할까?"를 한 번 시뮬레이션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만약에~"의 향연들은 정답이 없는 이 인생에서 회피하려고만 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해준다.

사소한 행동들이 훗날 커다란 사건의 발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만약에" 들은 비밀을 만들어야 할지,만들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그저 판도라에게 물어보자. -536

 

영원히 비밀로 남겨두었을 때와 밝혔을 때. 두 가지 상황의 인생극장을 맛보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마지막의 반전은 추리소설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반전이 될 수 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