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가 해답보다 크다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나른한 주말 오후엔 신선한 요거트에 넛츠, 베리 믹스 1봉지를 넣어 먹는 것만한 간식이 없다.

살풋 잠에 빠져 들기 쉬운 때에 오도독 씹어먹는 아몬드는 졸린 뇌를 깨운다.

이렇게 내가 즐겨 먹는 아몬드는 평소 "간식" 이상 의 어떤 의미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오늘, 이 책,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을 다 읽고 난 이후로는 색다른 의미로 떠올리게 될 거만 같다. 죽음의 언저리에 감도는 아몬드의 향기로.

 

1954년 6월 8일 화요일

젊은 경관 레오나드 코렐은 가정부의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주인 남자가 죽었는데 입 주변에 하얀 거품이 일고 집에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갓 서른이 넘어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앨런 튜링. 손톱 끝이 까맣게 변색되고 입가에 하얀 거품이 있었는데 시큼한 아몬드 향이 났다. 아마도 앨런 튜링은 실험실에서 냄비로 직접 청산가리를 만든 것 같았고, 거기에 사과를 담갔다가 한두 번 깨물어 먹은 것이 직접적인 사인인 듯 보였다.

 

이 책은 앨런 튜링의 전기도 아니고 그의 활약을 눈부시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책도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가 간과했을지도 모를 앨런 튜링의 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끄집어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표면적 주인공인 젊은 경관 코렐은 마치 앨런 튜링의 분신인 양, 수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어느 순간 드러내 보이고 있었고, 아직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한 '동성애'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앨런 튜링의 죽음에 자석이 반응하듯 이끌리고 있었다.

 

문학가이자 사회적 명사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금융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집안은 몰락을 향해 가고 있었고 어머니조차 정신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상태에 처하게 되자 대학을 버리고 경찰이 된 코렐.

그가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활동했고 코들리헤드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던 이모의 머리는 항상 짧았으며 유행과 상관없이 바지를 고집했다.

아직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이상하게도 앨런 튜링을 수사하면서 점점 앨런의 인생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코렐은 천재 수학자로서의 앨런, 동성애자로서의 앨런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대상을 바라보고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앨런이 세상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튜링은 대학에서 일하고 학위와 지위가 있고 전시에는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았지만 결국은 집에서 독극물이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앨런 튜링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앨런 튜링의 죽음에 대면한 코렐은 앨런의 주변 인물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앨런 튜링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험실, 기포가 남은 냄비, 독 묻은 사과...

퍼즐 조각을 맞춰 탐정소설에서처럼 제대로 추리를 하고자 했지만, 생전에 미스터리가 해답보다 크다, 며 추리의 과정을 즐겼던 앨런 튜링은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코렐이 파악한 바로는 앨런 튜링은 전쟁 중에 논리 기계를 발견했다. 그 기계는 전시 최고의 비밀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해 불가의 음악을 이해하는 기계". 튜링은 암호를 설계하거나 독파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를 이기는 것은 기계 뿐이다." 에니그마라 불리는 나치 암호 기계를 완전히 뒤집어 괴물같은 기계를 만든 앨런 은 마침내 전쟁에서 독일의 암호를 깨뜨리기 시작하고 비밀 통신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앨런은 전쟁의 좌절마저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끔찍할 정도로 허름한 복장에 유행을 따르지 않는 복장을 한 앨런. 초조하면 손톱을 무는 버릇이 있었지만 숫자와 논리 구조에 혼신을 다 빼앗긴 앨런.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정적들은 비열하게 복수했고 그 과정에서 앨런은 동성애자로 몰리고 서서히 무대의 중앙에서 사라져갔다.

 

기계와 지능 사이에 모순이 없다, 범인과 천재 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앨런 튜링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따라가 보았다. 스스로를 몽상가라 얘기하는 코렐처럼 앨런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으리라.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앨런 튜링 ),1912-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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