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스베르그와 성난 군대의 대결 [죽은 자의 심판]

8월의 더위도 한참인 때, 겁 없이 해운대로 피서를 떠났다.
많은 짐들의 한가운데, 한손에 들기도 힘든 부피의 [죽은 자의 심판]이 끼어들어 있었다.
추리소설 한 권으로 더위와 싸워보자는 심산도 있었고, 온몸으로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책의
표지를 자랑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역시 표지는 비채가 갑이지 않은가?^^)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아이들과 남편은 시원한 바닷물의 일렁임 속으로 뛰어들어갔고
돗자리 하나만큼의 자리와 파라솔 하나의 그늘에 감사하며 나는 주섬주섬 짐을 한쪽에 챙겨놓았다.
뜨거울 줄만 알았는데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 이럴 때는 독서가 최고지.
마침 옆자리의 가족 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책을 펼쳐들고 있었기에 나도 경쟁적으로 [죽은
자의 심판]을 꺼내들었다.
처음엔 파라솔에 기대어 읽었는데, 자세가 불편해서 점점 기울어지더니 어느새 누운 채가 되었다.
두 눈 가득 파고들어오는 눈부신 태양과 검은 글자들의 호우 속에서 겨우 단어를 찾고 문장을
이어가면서 힘겹게 두 팔로 [죽은 자의 심판]을 치켜올렸지만 점점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책 속에 빨려들어갔다.
열기와 햇볕을 다 이겨내고 안전요원의 호루라기 소리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데 일등공신을 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아담스베르그 형사의 됨됨이다.
파리 강력계형사 아담스베르그는 비둘기 무리 가운데서 절뚝거리는 놈에 눈길이 절로 가는 실로
마음이 따스한 남자다.
남들은 사건의 정황과 얄팍한 증거를 대며 범인을 물색하지만
아담스베르그는 남다른, 희한한 눈으로 남들이 놓친 증거를 찾아내어 빈틈없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빵조각으로 아내를 죽인 노인 사건, 클레르몽 그룹의 회장이 차 안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사건
등이 헨젤과 그레텔이 남기고 간 빵조각처럼 흩어져 있었지만 그 빵조각을 따라가면 이 책 속의 핵심 사건, <오르드벡의 성난 군대>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담스베르그는 갑자기 픽 쓰러져 잠드는 수면과다 환자, 어류 특히 민물어류에 바삭한 동물학자,
비상식량을 사러 슬그머니 사라지는 허기증 환자, 동화와 전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늙은 왜가리를 닮은 친구, 백포도주를 입에 달고 사는 천재
같은 부하 형사들과 한 팀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사람, 속에 능구렁이가 열 댓 마리는 들어있을 것 같은 사람,
오지랖이 가장 넓은 사람, 사소한 단서 하나 특히 영상 기억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아담스베르그다.
자신의 딸 리나가 오르드벡의 성난 군대를 보았다면서 곧 몇몇 사람이 죽을 거라는 한 여인의
제보에 홀린 듯 다가가는 아담스베르그. 나름 전설의 권위자인 부하 당글라르의 말에 의하면 난리를 피우고 다니는 늙은 군대는 멀쩡한 군대가
아니라고 한다. 말들도 기마병들도 전부 해골 같고 팔다리가 일부 떨어져 나갔다. 사납게 울부짖으며 이승을 떠도는 반쯤 썩어 문드러진 죽은 군대.
성난 군대의 '표적'이 된 사람들은 군대가 나타난 그 다음 주면 목숨을 잃어요.
길어야 3주밖에 못 살죠. 성난 군대의 '표적'이 된 사람들은 사기꾼이나 영혼이 썩은 사람, 착취자, 부패한 재판관, 살인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저지른 죄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죠.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성난 군대가 직접 나서서 그런 놈들을
심판하는 겁니다. -58
눈앞에 산재해 있는 사건들을 밀쳐두고 그는 오르드벡의 본느발 길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다 무너져 가는 옛 농장에 사는, 여관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백작 부인
레온을 만났다.
레온은 리나가 예언한 대로 성난 군대가 끌고 갔다며 이름을 언급한 사람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아담스베르그는 레온으로부터 오르드벡 헌병대의 책임자 에므리의 얘기와 동네사람들이 탐탁지 않아 하는 방데르모 가문의 리나와 리나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오르드벡의 성난 군대가 본느발 길을 달린 환영을 본 리나라는 여자의 말을 믿는다면, 앞으로
여러 명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이 된다.
피비린내 나는 연쇄살인의 서막이 서서히 막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군대가 신경 쓰이는 건 아니야 , 제르크. 그런 식으로, 아니 어떤 식이건
누군가 나한테 갑작스런 죽음을 예고하러 온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지."-61
아담스베르그가 오르드벡에 내려오자마자 만난 레온 부인은 헌병대 책임자 에므리의 말에 의하면
어린 시절 자신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자, 나비의 날갯짓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했다. 에므리는 이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지으려 하지만 레오는
타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곧 레오는 나비의 날갯짓을 목격한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
범인은 노파의 머리를 바닥에 짓이기고, 총을 쏘고, 잔인한 사냥용 화살촉으로 오줌 누는 사람의
목을 관통한다...
아주 미약한 영상 실마리에서 커다란 전체 사건을 유추해내는 능력자 아담스베르그는 레온 부인이
믿는 나비효과를 따를 것인가?
이미 예견된 살인이 연이어 일어나고 사람들은 더욱더 성난 군대의
매니 앨르캥 두령이 나쁜 놈들을 처단하는 거라며 두려움에 떤다.
아담스베르그와 그의 부하들은 신변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범인이 파놓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들면서 엉뚱한 이를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한 번에 사건이 해결되면 그것도 재미없긴 하다.
또한 어수룩한 매력을 발산할 기회를 꼭 잡아주시는 아담스베르그 형사의 인간미에 웃음이 슬며시
지어진다.
생선 더미를 분류하는 선원들은 너무 작은 생선과 해초덩어리와 필요 없는 것들은
골라 물속에 던져버리고 누구나 아는 쓸모 있는 형태들만 간직했다. 아담스베르그는 그와 반대. 머릿속을 채우는 내용물들 중에서 정상적인 요소들은
버리고 비정상적인 파편들만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446
어쩜 좋아.
아담스베르그의 약간은 비뚤어진 접근 방식이 너무 좋다.
어떠한 외압도, 크고 거대한 돈과 권력의 무게도
슬쩍 비껴 나아갈 줄 아는 그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오르드벡에 전해 내려오는 성난 군대의 전설을 이용해 민심을 동요시키고
그 와중에 진짜 표적을 없애려고 했던 범인도 대단하지만
비정상적인 파편, 즉 엘로, 설탕...같은 작은 단서만으로 사건의 핵심을 파악한 아담스베르그의
화끈한 반전이 더욱 불볕더위에 대적할 만한 마무리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