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탄생과 역사 [라면이 바다를 건넌날]
나는 세계 최고 라면 소비국인 한국의 국민이어서
라면을 허구헌 날 끓여먹는다.
어쩌다 보니 라면은 김치와 찰떡 궁합이 되어서
김치가 떨어질 날 없는 우리 식탁위에 함께 놓여 매콤한 맛으로 나의 혀를 중독시켜 버렸다.
라면 한 봉지를 뜯으면 물만 팔팔 끓여서 꼬불꼬불 라면을 쏙 집어넣고 4분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그 기다림이 싫으면 3분이면 끝나는 즉석 라면도 있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라면은 어렸을 적에도 맛있었지만, 지금 먹어도 맛있다.
가정주부가 되어서는 때때로 밥 대신 끼니를 해결해 주는 라면이 고맙기까지 하다.
라면에 대해서는 나쁜 점을 끄집어내기보다 찬양에 가까운 좋은 점 말하기가 더 쉽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라면은 좀 짜게 끓여 먹은 다음 날 얼굴이 좀 붓는 것 말고는 트집 잡을 일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은혜로운 식품 아닌가...
(이렇게 하여, 무늬만 가정주부인 나의 본색이 완전히 탄로나게 됨.)
어느 날은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먹고 있는데 평소 쓸데없는 질문 많기로 소문난 우리집 딸래미가
"라면은 왜 꼬불꼬불해?" 라고 물어봤다.
음, 뭐~ 튀겼으니까 꼬불꼬불해졌겠지? 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찾아봐~ 라며 등을 떠밀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어디선가 그 답을 한 세
가지 정도 들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나서는 이 머리를 마구 쥐어뜯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주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인스턴트 라면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다시 우리 나라로 들어오기까지의 삼국의 라면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라몐, 일본에서는 라멘, 우리나라에서는 라면이라고 불린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라면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두 인물, 오쿠이 기요스미와 전중윤의 라면에 대한 열정을 그려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 식탁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인스턴트 라면의 발명가 안도 모모후쿠와 동시대를 살았던 오쿠이 기요스미는 묘조식품을 세워 일본 최고로의
비약을 꿈꾸었다.
한편, 해방 후 체신부 행정관으로 일하던 전중윤은 동방생명의 부사장으로서 경영 능력을 널리 알리게 되고 제일생명 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꿀꿀이죽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식품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하여 삼양식품을 만든 그는 일본에서 라면제조기술을 배워오려 하지만 배타적인 일본 라면업계로부터 거절만 당하다가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를 만난다.
전중윤의 진심을 알아주고 한국을 머나먼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쿠이 기요스와의 만남은 파격적인 기술제휴로 이어졌고 오쿠이는 별첨스프의
비법을 선물로 전해주기까지 했다.
전중윤과 오쿠이 기요스미의 인연은 각 인물들의 '전기' 속 일화처럼 생생하게 읽힌다.
어찌 보면 그 생생한 대화를 소리로 옮겨다 놓는다면, 격동의 근대사를 다룬 라디오 드라마처럼도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이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작가는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일본인으로 자부하며,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의 탄생과 역사를 추적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한일 양국의 근대사 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의 경영 멘토링, 기업가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의 말미에는 라면에 관한 오해와 진실, 코너를 만들어두었다.
앞서 내가 궁금해 했던 라면의 면발이 꼬불꼬불한 이유도 명쾌하게 실려 있음은 물론이다.
라면의 초창기, 일본에서는 면에 양념을 가미해서 끓여먹다가 나중에 별첨스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을만큼 양이 많아졌고, 일본 라면과는 달리 매운 맛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맛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우리 라면의 문화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라면에 사활을 건 한국과 일본의 두 남자 이야기가 뜨끈한 라면 국물처럼 짜르르 마음 속에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