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트롤 : 치질라의 역습 래트브리지 연대기 2
앨런 스노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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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스트롤 래트브리지 연대기 2[치질라의 역습]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박스트롤]은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였죠.

스톱모션 영화라고 해서 이목이 집중되었었는데요~

지난해에 영화와 책을 모두 패스하고 올해가 되어서야 [박스트롤]을 만나게 되었네요.

마녀도, 마법사도 안 나오는 새로운 판타지에서는 어떤 주인공을 만날까...

박스트롤이라는 신기한 주인공이 나오는군요.

수줍음이 많아서 상자 안에서 지낸다는데요. 기계로 된 것이면 무조건 관심을 보인다고 해요.

래트브리지 연대기 1을 보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구성은 아니라네요.

 

2권만으로도 충분히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삽화가로서의 실력도 정말 대단해서 이야기 자체보다도 드로잉에 눈길이 더 가더라구요.

애니메이션으로 탐낼만 합니다.

래트브리지에 사는 생명체들 중에는 치즈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는데요, 영국의 야생 치즈는 습지에서 살아요. 지능이 매우 낮으며 불쑥 나타나는 것이 있으면 당황합니다. 치즈들은 죽은 양보다도 잡기 쉬운 탓에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된다고 하네요.

제목에 나오는 치질라는 뭐냐구요?

여러 섬에 살고 있으며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룡이랍니다.

 

주인공 아서와 할아버지는 갑판에서 래트브리지 해상 세탁소 빨래 포장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휘날리는 무례한 빨랫감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록포스 백작부인이 기절하는 바람에 세탁소는 1만 그로트의 벌금을 내야 하게 되었어요.

일단 할아버지의 병을 먼저 치료하기로 한 이들은 병원으로 가서 의사를 만났는데, 기적의 '까만 물약'이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답니다.

하지만 까만 물약 수요가 많이 약이 부족한 지경, 벌금 낼 돈을 구해야 하는 래트브리지 해상 세탁소 사람들은 까만 물약 제조에 꼭 필요한 재료를 수입하기 위한 항해를 떠나기로 합니다. 1만 그로트를 위해~~

 

 

나이가 어려 승선을 거부당한 아서는 잠수함으로 밀항을 시도하는데, 겨우 도착한 배에는 실패한 치즈 상인이자 범죄의 고수, 아치볼드 스내처가 버티고 있었어요.

 

사기꾼으로 밝혀진 의사에 말에 따르면 까만 물약을 먹은 사람들은 치즈 중독에 걸린다나...

 

"그는 모두에게 그 약을 먹이면 치즈 수요가 높아져서 치즈 사냥은 합법화 되고, 그 역시 치즈 사업에서 부자가 될 거라는 기발한 생각을 했어요."-187

 

 

바다 위를 떠돌다 괴물을 맞닥뜨린 아서 일행은 괴물에게 삼켜진 채 섬에 도착하는데, 그 섬은 캐비지 섬, 그 섬의 여왕은 플로렌스라고 불렀어요.

이들은 스내처의 악랄함으로부터 치즈들을 구하기 위해 괴물을 활용하기로 하는데...

 

 

섬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괴물, 치질라의 맹활약~ 궁금하시죠?

 

아이들 이야기라고 만만하게 보았지만 우리 사회를 보고 있는 듯~ 어른들의 나쁜 짓에는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네요.

아서와 박스트롤, 그리고 캐비지 섬 일행들이 악한 무리들로부터 치즈와 섬을 지켜낼 수 있을지...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매력, 원작으로서의 매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펜으로 그려진 만큼 세밀한 묘사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어요.

귀여운 표정, 짤막한 멘트는 덤이구요.

아서와 래트브리지 세탁소 일행은 무사히 돈을 구해 세탁소를 다시 운영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는 흥미진진함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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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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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시간을 치유하는 사람들[종이약국]

 

뮈리엘 바르베르의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추천하는 책방 주인이라면 믿을 만하리라.

멋진 하이힐을 신었지만 자신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남자들과 쓸모 없는 관계를 맺던 여자가 책으로 피신하려다 엉뚱한 책을 집어들었을 때 (단 한 순간에 이 많은 것을 간파해내는 책방 주인도 대단하다!) 그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추천했다.

책을 읽는 틈틈이 푹 쉴 수 있고 어쩌다 눈물이 치솟을 수도 있다.

자신 때문에, 지난 세월 때문에.

하지만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지금 곧 그 남자 때문에 죽을 것 같아도 지금 죽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추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방 주인은 감정이 폭발해서 여자 손님에게 독선적인 말을 쏘아대고 그녀가 몸을 홱 돌려 나갔을 때 후회했지만, 그녀는 잠시 후 돌아와 그 책을 사 간다. 책방 주인의 조언이 그녀의 정곡을 찔렀고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몇 마디의 질문을 던지고 곧이어 처방을 해 주는 사람.

그는 병원을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의사가 아니다.

그를 만나려면 어디에 가야 하느냐고?

"종이약국"이란 서점으로 가면 된다.

이 종이약국이란 서점은 이름만 희한한 게 아니고 그 존재 자체가 특이하다.

센 강 위의 특이한 수상 서점, 종이약국. 그 곳에는 린드그렌과 카프카라는 이름의 고양이들도 있다.

책방 주인 페르뒤 씨는 의사들이 진단하지 못하는 감정들, 고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치유하고 싶었다.

룰루라는 이름의 화물선 한 척을 사서 직접 개조하고 무수히 많은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인 '책'으로 채웠다.

"너는 대부분의 사람이 숨기는 것을 꿰뚫어 보고 들을 수 있어. 사람들을 근심에 빠지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꿈꾸고 아쉬워하는 모든 것을 간파해 낼 수 있지."

페르뒤 씨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페르뒤 씨는 그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책을 처방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상처를 입고 자신의 동네로 이사온 카트린이라는 여인을 보고 슬픔을 뱉어내도록 울게 하는 책을 처방해주어야지 하는 자신을 보며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낀 페르뒤.

 

카트린에게 처방해 준 책 안에서 나온 편지 한 통을 읽은 뒤 페르뒤 씨는 영원히 정박해 있을 것만 같던 "종이약국"을 움직여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무엇을 향해 항해하는 것일까?

마음에 품고 있던 여인, 탱고를 정열적으로 출 줄 아는 여인, 마농을 찾아가는 길일까?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감동을 안겨준 유일한 책, <남녘의 빛>을 썼지만 베일에 싸인 작가 사나리를 찾아가는 길일까?

21년 동안 묵혀 두었던 편지를 다시 발견한 페르뒤는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의 자신을 벗어두고 해적과도 같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를 청산하러 나가는 길이라고나 할까.

[종이약국]은 [고슴도치의 우아함] 만큼이나 상처입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리게 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지닌 책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픔, 슬픔, 고통, 열등감이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될 때 나 말고도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그 고통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껴본 적 있는지.

페르뒤 씨가 헤쳐 나가는 여정의 끝에는 그를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 해방시켜 줄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황폐할 때조차 다른 이들의 아픔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페르뒤 씨는 항상 책과 함께 했고 남들을 위한 처방의 책을 언제 어디서는 한 번에 뽑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치유할 방법을 찾았을 때, 종이약국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신의 책을 만들기로 한다.

[감정의 백과사전]

그 백과사전에는 이런 내용이 실릴 것이다.

 

히치하이킹에 대한 두려움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자부심, 눈을 들지 못하고 발끝만 내려다보는 소심함, 내 발 모양새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런 모든 감정에 대해 말이죠.-32

 

때로는 잿빛 구름의 음울함, 때로는 탱고를 추는 무희처럼 온몸을 내던지는 정열, 물에 빠진 노루를 보고도 구하지 못하는 무기력함, 붉은 포도밭에서 트랙터를 모는 톰보이의 활기참...

 

감정의 백과사전에 실릴 단어들을 미리 맛보기 하라는 듯, 종이약국과 함께 항해하는 동안 넘실대는 감정의 파도들을 경험하게 된다.

상처 입은 시간들을 치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내 과거, 현재를 실어 같이 울고 웃다 보면 가슴 언저리에 꽉 막혀 있던 덩어리가 쑥 내려간다.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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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동양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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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은 말이 없되 다 생각이 있어 [녹색고전-동양편]

 

 

 

 

 

대자연은 말이 없되 다 생각이 있어

언제나 겨울 가면 봄이 온다네.

울긋불긋 온갖 꽃 마련해 두고

우르릉 천둥소리 울리기만 기다린다네.

 

                  -청나라 시인 장유병 <신뢰(新雷)>

 

한 해의 끝자락임을 끊임없이 깨우치는 칼바람이 매섭게 품을 파고든다.

봄, 여름, 가을의 변화무쌍함을 다 체험하고 이제는 다만 온몸을 웅크리며 '견뎌야지' 할 뿐이다.

어디 찬바람만 견딜 뿐인가. 올 한 해 나를 휩쓸고 지나간 많은 일들이 그저 지나가고 잘 마무리되기만을 빌며 세월의 으름장을 견뎌야 한다.

올해는 어디 무사하게 잘 지낼성 싶으냐~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란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세월의 말들은 결코 상냥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도 다 자연의 섭리. 물질의 순환.

 

우주로 보면 우리는 하나의 미세한 점에 불과하고 오랜 시간의 역사로 보면 수억겁 중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크고 넓고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만든 사람들에게 쓴소리 대신 너그러운 지혜의 말들로 마음을 녹여주는 글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즈음에 현실의 고단함과 복잡한 삶을 질타하는 매서운 글 대신 한없이 아량을 베푸는 듯한 통섭의 글을 대하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얼 그리 아둥바둥 잡고 살려고 하나...

그냥 내려놓으시게.

자연을 벗삼으시게.

 

 

환경 위기 시대에 '녹색 문학'을 꿈꾸는 저자의 글은 설교나 강론의 형식을 빌려 동양 고전 중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을 인용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동양 고전의 글들을 환경문제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거니와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에 동양 고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 더욱 큰 소득이었지 않나 싶다.

 

산림 훼손, 늘어만 가는 공해로 인해 제 2, 제 3의 지구가 필요한지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우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광활한 우주 속 백조자리 어딘가에서 지구의 '쌍둥이별' 케플러-4526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지구를 버릴 때가 아니다.

'인터스텔라'를 꿈꾸기 이전에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지구를 더욱 아끼고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동양 고전에서 길어 올린 명문장들이 알고 보면 우리네 마음가짐을 바로하라, 더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뜻임을 알고 보면 그 뜻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노자 [도덕경]의 유명한 구절 '상선약수'조차도 생태주의의 관점에서 읽으면 그 의미가 새롭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니 물의 이러한 미덕을 따르고 한 방울이라도 물을 아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환경 위기나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 <술이편>

공자께서는 낚시질은 하시면서도 그물을 쓰지 않으시고, 화살로 나는 새는 쏘셔도 나뭇가지에 앉아 잠자는 새는 쏘지 않으셨다.

 

공자의 성인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슬쩍 지나갔던 부분인데도 생태주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양이다.

그동안 공자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올려좋는 인간중심주의적인 태도를 지녔다며 오해한 이들에게, 저자는 자연을 대하는 공자의 생태주의가 드러난 부분이라며 한 번 음미해 볼 것을 권한다.

공자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에 결코 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말이다.

 

술을 너무 마시는 남편에게 술을 끊으라고 울며 애원한 아내가 있었다.

남편은 "내 스스로 끊을 수 없어 귀신에게 빌고 맹세해야 하니 술과 고기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주덕송>을 지은 유령이다. 술의 덕목을 치하하는 명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주덕송>은 환경 위기와 생태계 위기를 가슴에 겪고 있는 오늘날 자연친화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해와 달을 창으로 삼고, 광활한 천지를 집안의 뜰로 삼는다...

집 한 채 얻으려고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유령의 삶의 방식은 그야말로 쇼킹한 것이 아닐까.

"나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집과 방을 옷으로 여기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내 옷 속에 들어와 있는가?" 라며 집에서 옷을 벗고 자유스럽게 지내는 유령의 자유분방함이란...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어리석은 세상이여

마른 모기 마른 빈대

마른 어린아이들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에서는 "마른"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된다.

사회 생태학적 이야기로 발전시켜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에 대비시켜 보면 불합리한 세계질서에다 대고

"이 어리석은 세상이여!" 하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우주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자연이며 함께 생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동양 고전을 그냥 글줄로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할 지혜로 내놓은 점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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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맛집 - 이 시대의 셰프들, 그들이 사랑한 맛집을 맛보다
임선영 글.사진 / 상상출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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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장인들의 향연 [셰프의 맛집]

 

 

 

아이들이 꽤 크고나서부터 외식을 자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외식 패턴은 주말 점심, 자주 가는 맛집 몇 군데 중 한 곳을 골라 가는 것이다.

동네 맛집을 가본 다음 발걸음을 자주 하게 되는 곳이 단골이 된 까닭이다.

고기를 구워 먹거나 국밥을 먹거나 돈가스를 먹거나...

가끔 새로 생긴 맛집이 있다면 그 곳 맛은 어떤가 구경가는 것도 색다른 외식 일정 중의 하나지만

 대개는 가던 곳으로 또 향하게 되기 마련이다.

무슨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도 아니고 주인이 곰살맞게 굴거나 서비스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며 가격을 디스카운트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맛" 과 "분위기" 때문에 " 그 곳"에 간다.

우리 동네에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기도 한다.

내가 모르고 가던 곳이 또 어느 순간 "맛집"으로 유명해질 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곳을 방문하려면 발품을 팔거나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맛집이란, 많은 이들의 혀를 비롯한 오감을 만족시키기란 그래서 더더욱 힘이 들 것이다.

 

[셰프의 맛집]은 그야말로 "맛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대부분 그 밀집된 지역이 "서울"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서울에도 맛집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놀랍다. 동네의 쓰러져 가는 작은 식당, 이미 3대에 걸쳐 크게 이름을 드날리는 음식점, 개인이 이름을 걸고 하는 베이커리와 기업의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브랜드까지...

저자가 직접 가 본 식당들 이야기는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셰프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손맛과 마음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여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가는 식당과 요리사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음식의 맛은 가히 문화재라 할 수 있으나 아직 맛본 이들이 많지 않고 언제 바람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니 나는 이를 기록하여 대대손손 남기기를 원한다. 음식을 하는 마음과 재주를 지닌 이에게 이를 이어 주고자 이 황금수저를 전한다. 이 수저를 내밀면 아래 적힌 식당에서 음식을 맛보며 훌륭한 요리사의 지침을 얻을 수 잇을 것이다. 그 비용은 내가 먹은 음식의 값을 지불하면서 먼 훗날 누가 찾아오면 같은 음식을 대접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부디 황금수저가 좋은 주인을 만나 그 음식이 언젠간 사라져도 사람의 가슴 속에 기억되기를. 백 년이 지나도 그 음식의 맛과 가치가 재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황금수저에 얽힌 전설같은 기이한 이야기를 프롤로그로 하여 맛집 순례는 시작된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음식에 관해서는 내로라 하는 명인, 장인들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펼쳐진다.

 

 

포맷은 대개 이와 같다.

짤막하게 식당을 소개하는 글귀와 함께 식당 이름이 나오고

저자의 감상이 시의 형식으로 얹힌다.

 

음식 사진 또한 정성껏 실려 있어 정말이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아~ 이 책을 배고플 때 본다는 것은 고문이다!!

 

 

그 다음에는 위치와 운영 시간, 메뉴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그 식당만의 특징과 주인장과의 이야기 등이 사진 밑에 이어진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식당들의 황홀한 향연 사이사이에는 이 시대의 셰프들과의 만남이 있다.

막걸리와 한식을 사랑하게 된 경영학도 <수불>의 경영자 김태영

한식을 넘어 황홀한 맛의 축제를 요리하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예술을 요리하는 아티스트 <마누테라스>의 이찬오 셰프

미소만큼이나 편안하고 따뜻한 음식을 요리하는 대가 <목란>의 이연복 셰프

대박을 꿈꾸기보다는 성실한 매일의 행복을 꿈꾸는 베이커 <브래드랩>의 유기현 셰프...

 

최근 일명'먹방'이라고 하는 방송 대세 속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셰프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미디어에서 보는 그들의 겉모습 뿐 아니라 음식에 담긴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음식을 보며 멋진 표현을 해내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그저 눈 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치우기에 급급했던 나의 생활을 반성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 가며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내는 주부라서 힘들다고 할 줄만 알았지

그 음식 안에 가족을 위한 나의 마음을 오롯이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셰프나 음식을 내는 요리 장인, 명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음식을 대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음식 안에 계절을 담을 줄 알고 사랑을 담을 줄 아는 그들에 견주어 볼 때,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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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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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 탈출하다 [룸]

 

책을 검색해 보니 2010년 21세기 북스에서 출간되었던 책이다.

같은 책이 이번에는 21북스 출판 계열 아르테에서 새 옷을 입고 다시 나온 것이다.

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사람들의 품에 안긴 것은 이 책이 주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내용은 19살에 납치되어 7년간 작은 방에 갇혀 살아야 했던 여성과 그 여성이 낳은 아이 이야기이다.

24년간 지하 밀실에 감금된 채 엄마가 된 소녀의 충격 실화가 소설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보다는 감금된 세월이 짧고 피해자의 나이도 대학생 즈음이라 그 잔인함은 많이 덜어졌지만 그래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이 7년씩이나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갇혀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처음에는 다섯 살이 된 아들 잭과 함께 방에서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엄마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둘은 아침을 시리얼 100알 정도 세어 먹고 실뜨기 놀이, 도미노, 잠수함, 인형 놀이 등 많은 놀이를 한다.

너무 차분하고 일상적인 시간들이 이어져서 처음엔 이들의 특이성이 많이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손길은 "올드 닉"이라 불리는 남자 외에는 없고 모든 것을 그에게 부탁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생활임을 곧 알게 된다.

올드 닉은 밤에만 찾아오고 필요한 것을 전달해주며 일요일 선물을 놓고 간다. 그리고 갈 때는 쓰레기봉투를 가져간다.

잭은 엄마와 단둘이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5살 생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엄마의 젖을 빨고 신발은 신을 일조차 없고 바깥세상은 소파, 목걸이, 빵, 진통제, 비행기, 여자와 남자들 등등이 둥둥 떠다니니는 곳이라고 상상한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잭이 있는 방 안이 세상이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 몇 권 안 되는 책에서 읽는 모든 것은 환상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엄마는 가끔 우울해져서 아이를 하루종일 방치해 두는 때도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는 얘기 속에는 자신이 납치당한 과정과 탈출 시도, 잭을 낳을 때의 상황 등이 언뜻언뜻 비친다.

엄마는 잭에게 강한 애정을 보이며 올드 닉으로부터 잭을 숨기려다 잭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화가 난 올드 닉이 벌을 준답시고 사흘 정도 전기 공급을 끊어버리자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잭을 탈출시키려 한다.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는 올드 닉의 성향이 이 일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 턱인지...

밀실에서 태어나 밀실에서 자라난 소년 잭은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에 성공하고 엄마는 뒷마당의 헛간에서 구출된다.

"분재소년"과 납치감금된 채 살았던 엄마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밀려드는 방송 요청...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로 세상을 달구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은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미모의 젊은 어머니가 정원 헛간에 사는 괴물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한 결과 아이를 낳았다. 잭은 모든 것이 "좋다"라고 말하며 부활절 달걀을 좋아하지만 아직 원숭이처럼 네 발로 계단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되어 치료가 시급했다.

아이를 낳고 올드 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자비한 세상은 아이를 입양보내 학교, 친구, 잔디, 수영, 유원지의 놀이기구 등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잔인한 사람들.

 

어찌 보면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험한 일일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사회의 규칙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따라다니는 눈, 눈, 눈들...

시련은 있었지만 그래도 모자는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납치, 감금, 성폭행, 출산, 탈출.

아프고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가졌을 때, 그들은 앞으로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감금되었던 그 헛간. 코르크로 온통 뒤덮여 있었고 채광창만으로 빛을 감지해야 했던 그 공간을 바라보며 "안녕, 방아."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이제 어떤 험난한 파도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단련되었다.

키워드로만 보면 분명 자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해서 흥미 위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저자는 주인공들의 조용한 용기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닌, 힘이 들 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책으로서의 용도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의 눈으로 읽어내는 어른의 세상은 솔직하였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었고

천진난만했기에 더욱 비루하고 더러워 보일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옆자리를 지켜주려 한 엄마가 있기에 잭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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