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밀실에서 탈출하다 [룸]

 

책을 검색해 보니 2010년 21세기 북스에서 출간되었던 책이다.

같은 책이 이번에는 21북스 출판 계열 아르테에서 새 옷을 입고 다시 나온 것이다.

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사람들의 품에 안긴 것은 이 책이 주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내용은 19살에 납치되어 7년간 작은 방에 갇혀 살아야 했던 여성과 그 여성이 낳은 아이 이야기이다.

24년간 지하 밀실에 감금된 채 엄마가 된 소녀의 충격 실화가 소설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보다는 감금된 세월이 짧고 피해자의 나이도 대학생 즈음이라 그 잔인함은 많이 덜어졌지만 그래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이 7년씩이나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갇혀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처음에는 다섯 살이 된 아들 잭과 함께 방에서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엄마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둘은 아침을 시리얼 100알 정도 세어 먹고 실뜨기 놀이, 도미노, 잠수함, 인형 놀이 등 많은 놀이를 한다.

너무 차분하고 일상적인 시간들이 이어져서 처음엔 이들의 특이성이 많이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손길은 "올드 닉"이라 불리는 남자 외에는 없고 모든 것을 그에게 부탁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생활임을 곧 알게 된다.

올드 닉은 밤에만 찾아오고 필요한 것을 전달해주며 일요일 선물을 놓고 간다. 그리고 갈 때는 쓰레기봉투를 가져간다.

잭은 엄마와 단둘이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5살 생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엄마의 젖을 빨고 신발은 신을 일조차 없고 바깥세상은 소파, 목걸이, 빵, 진통제, 비행기, 여자와 남자들 등등이 둥둥 떠다니니는 곳이라고 상상한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잭이 있는 방 안이 세상이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 몇 권 안 되는 책에서 읽는 모든 것은 환상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엄마는 가끔 우울해져서 아이를 하루종일 방치해 두는 때도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는 얘기 속에는 자신이 납치당한 과정과 탈출 시도, 잭을 낳을 때의 상황 등이 언뜻언뜻 비친다.

엄마는 잭에게 강한 애정을 보이며 올드 닉으로부터 잭을 숨기려다 잭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화가 난 올드 닉이 벌을 준답시고 사흘 정도 전기 공급을 끊어버리자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잭을 탈출시키려 한다.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지 못하는 올드 닉의 성향이 이 일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 턱인지...

밀실에서 태어나 밀실에서 자라난 소년 잭은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에 성공하고 엄마는 뒷마당의 헛간에서 구출된다.

"분재소년"과 납치감금된 채 살았던 엄마의 이야기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밀려드는 방송 요청...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로 세상을 달구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은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미모의 젊은 어머니가 정원 헛간에 사는 괴물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한 결과 아이를 낳았다. 잭은 모든 것이 "좋다"라고 말하며 부활절 달걀을 좋아하지만 아직 원숭이처럼 네 발로 계단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되어 치료가 시급했다.

아이를 낳고 올드 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자비한 세상은 아이를 입양보내 학교, 친구, 잔디, 수영, 유원지의 놀이기구 등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잔인한 사람들.

 

어찌 보면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험한 일일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사회의 규칙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따라다니는 눈, 눈, 눈들...

시련은 있었지만 그래도 모자는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납치, 감금, 성폭행, 출산, 탈출.

아프고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가졌을 때, 그들은 앞으로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감금되었던 그 헛간. 코르크로 온통 뒤덮여 있었고 채광창만으로 빛을 감지해야 했던 그 공간을 바라보며 "안녕, 방아."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이제 어떤 험난한 파도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단련되었다.

키워드로만 보면 분명 자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해서 흥미 위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저자는 주인공들의 조용한 용기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닌, 힘이 들 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책으로서의 용도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의 눈으로 읽어내는 어른의 세상은 솔직하였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었고

천진난만했기에 더욱 비루하고 더러워 보일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옆자리를 지켜주려 한 엄마가 있기에 잭은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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