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장인들의 향연 [셰프의 맛집]

아이들이 꽤 크고나서부터 외식을 자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외식 패턴은 주말 점심, 자주 가는 맛집 몇 군데 중 한 곳을 골라 가는 것이다.
동네 맛집을 가본 다음 발걸음을 자주 하게 되는 곳이 단골이 된 까닭이다.
고기를 구워 먹거나 국밥을 먹거나 돈가스를 먹거나...
가끔 새로 생긴 맛집이 있다면 그 곳 맛은 어떤가 구경가는 것도 색다른 외식 일정 중의 하나지만
대개는 가던 곳으로 또 향하게 되기 마련이다.
무슨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도 아니고 주인이 곰살맞게 굴거나 서비스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며 가격을 디스카운트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맛" 과 "분위기" 때문에 " 그 곳"에 간다.
우리 동네에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기도 한다.
내가 모르고 가던 곳이 또 어느 순간 "맛집"으로 유명해질 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곳을 방문하려면 발품을 팔거나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맛집이란, 많은 이들의 혀를 비롯한 오감을 만족시키기란 그래서 더더욱 힘이 들 것이다.
[셰프의 맛집]은 그야말로 "맛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대부분 그 밀집된 지역이 "서울"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서울에도 맛집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놀랍다. 동네의 쓰러져 가는 작은
식당, 이미 3대에 걸쳐 크게 이름을 드날리는 음식점, 개인이 이름을 걸고 하는 베이커리와 기업의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브랜드까지...
저자가 직접 가 본 식당들 이야기는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셰프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손맛과 마음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여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가는 식당과 요리사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음식의 맛은 가히 문화재라 할 수 있으나 아직 맛본 이들이 많지 않고
언제 바람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니 나는 이를 기록하여 대대손손 남기기를 원한다. 음식을 하는 마음과 재주를 지닌 이에게 이를 이어 주고자 이
황금수저를 전한다. 이 수저를 내밀면 아래 적힌 식당에서 음식을 맛보며 훌륭한 요리사의 지침을 얻을 수 잇을 것이다. 그 비용은 내가 먹은
음식의 값을 지불하면서 먼 훗날 누가 찾아오면 같은 음식을 대접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부디 황금수저가 좋은 주인을 만나 그 음식이 언젠간
사라져도 사람의 가슴 속에 기억되기를. 백 년이 지나도 그 음식의 맛과 가치가 재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황금수저에 얽힌 전설같은 기이한 이야기를 프롤로그로 하여 맛집 순례는 시작된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음식에 관해서는 내로라 하는 명인, 장인들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펼쳐진다.

포맷은 대개 이와 같다.
짤막하게 식당을 소개하는 글귀와 함께 식당 이름이 나오고
저자의 감상이 시의 형식으로 얹힌다.
음식 사진 또한 정성껏 실려 있어 정말이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아~ 이 책을 배고플 때 본다는 것은 고문이다!!

그 다음에는 위치와 운영 시간, 메뉴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그 식당만의 특징과 주인장과의 이야기 등이 사진 밑에 이어진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식당들의 황홀한 향연 사이사이에는 이 시대의 셰프들과의 만남이 있다.
막걸리와 한식을 사랑하게 된 경영학도 <수불>의 경영자 김태영
한식을 넘어 황홀한 맛의 축제를 요리하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예술을 요리하는 아티스트 <마누테라스>의 이찬오 셰프

미소만큼이나 편안하고 따뜻한 음식을 요리하는 대가 <목란>의 이연복 셰프

대박을 꿈꾸기보다는 성실한 매일의 행복을 꿈꾸는 베이커 <브래드랩>의 유기현 셰프...
최근 일명'먹방'이라고 하는 방송 대세 속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셰프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미디어에서 보는
그들의 겉모습 뿐 아니라 음식에 담긴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음식을 보며 멋진 표현을 해내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그저 눈 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치우기에 급급했던 나의 생활을 반성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 가며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내는 주부라서 힘들다고 할 줄만 알았지
그 음식 안에 가족을 위한 나의 마음을 오롯이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셰프나 음식을 내는 요리 장인, 명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음식을 대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음식 안에 계절을 담을 줄 알고 사랑을 담을 줄 아는 그들에 견주어 볼 때,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