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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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신히 깨지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 인간.[무게]

 

 

가만히 둘러보면 인간은 기실

간신히 깨지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시방 같은 봄 저녁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내주기 전 어느 일순

홀린 듯 물기 맺힌 눈 아니고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슈베르트를 깨뜨리다>-황동규 시 中

 

여기 담담하게 어느 은둔자의 고백을 써놓은 소설이 있다.

그 은둔자는 키 190, 몸무게 250, 쉰여덟의 전직 대학교수 아서 오프이다. 10년간 브루클린에 있는 집에서 거울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살아간다. 해가 지고 나면 밖은 어둡고 안은 환할 때 창문을 거울 삼아 제 모습을 겨우 비춰보곤 한다. 심미적인 이유 때문에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다. 치수를 파악해서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걷지 못하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아아! 일상의 무심한 언어들에서 길어올린 한 사람의 은둔생활이 이토록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것은, 젊디젊은 작가 리즈 무어의 세심한 관찰에서 나온 순수한 글들이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이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아서는 한 때의 설렘을 가져다 주었던 여인 샬린과 편지를 주고 받았었다. 그러면서 이제 샬린에게 자신의 현재 모습을 고백해야 하나...하고 망설이던 찰나, 샬린에게서 아들의 사진이 담긴 편지가 왔고, 이어서는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온다. 샬린에게는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켈 켈러라고 했다. 자신이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인 아서에게 아들을 부탁하기 위해 전화한다고 했다. “아이가 야구를 해요. 머릿속에 야구밖에 없어요.”

샬린의 전화를 받은 아서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우울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한 것처럼 조금 흥분해서는 샬린이 도착했을 때를 대비해서 자기 나름의 최대한 “무시무시한”일을 시작했다. ‘홈메이드’를 부르는 것. 7년 만에 이 집에 사람을 부르는 것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작고 가녀린 “소녀”처럼 보이는 홈메이드 욜란다가 도착했을 때, 아서의 심정을 보라.

욜란다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마법이 풀렸다. 내 맥박이 빨라졌다. 마음속에서 뭔가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49

 

샬린을 만날 첫걸음을 내딛은 다음은 아서의 한층 용감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서는 2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는 샬린에게 전화를 먼저 하는데, “전화를 잘못 걸었어요.”라고 대답한 사람이 샬린임을 깨닫고는 그녀가 술을 먹었거나 약을 먹었거나 아무튼 그 비슷한 상태라는 걸 이번에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슴이 저렸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요란스럽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감정의 서술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내 마음을 건너왔다.

그랬다. 샬린과 아서, 아서와 샬린은 서로 닮은 꼴이었다. 서로 가진 삶의 무게는 달랐을지언정, 그것을 견뎌내는 방식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속으로 삭이고, 한없이 안으로 안으로 꺼져들어가는 것이 닮았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편, 샬린의 아들 켈은 잘생기고 멋졌지만, 약물에 의존하는 약하디 약한 엄마를 가진 탓에 자신있게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없다면...”이라는 생각도 가끔 하긴 했지만, 엄마에게 못된 말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 엄마가 최고라고 생각한 부자 동네의 학교 펠린에 진학하여 멋진 여학생 린지와 사귀기도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어찌할 수 없다. 야구천재 켈 켈러. 야구로 성공하려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아이.

켈의 엄마 샬린은 죽음으로 마침내 외로움에 중독되어 있던 아서와 야구라는 희망에 중독되어 있는 아들 켈을 이어주게 된다.

 

켈은 아서에게, 아서는 켈에게 편지를 쓰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암시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거라는 말을 늘 듣고 살면서, 그 사실이 분명 진리라 해도 부당하다며 한탄했지. 하지만 얼마든지 상황을 달리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어. 내 얘기를 하자면, 내게는 오랫동안 누이처럼 지내던 사람이 있었어. 그녀의 이름은 마르티야. 그리고 딸로 삼을 만한 사람도 찾은 것 같아. 그녀의 이름은 욜란다. 언젠가 너도 욜란다를 만났으면 좋겠다.

(...)

현관문을 열고 편지를 우편함에 넣고 그 사랑스러운 붉은색 깃발을 세워놓았다.-384

 

아서는 아마 이제 조금쯤은 행복해질 것이다. 문을 닫아걸고 바깥 출입을 하지 않던 그가, 이제는 산책을 하고, 누군가를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20년만에 연락을 하게 된 샬린과의 기이한 인연을 통해 외롭던 삶이 살짝 부산스러워졌다. 식사초대 준비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욜란다와 함께 욜란다의 아기를 기다리는 일상적인 삶.

우편함 옆의 붉은색 깃발을 지나서 켈과 린지가 들어서면 아서의 집은 생기를 띠게 되리라. 외로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도 한 통의 편지와 전화로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다.

간신히 깨지지 않고 견디고 있다고 말한 시인의 말처럼, 모두들 각자의 무게를 지고 있으면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편함 옆에 붉은색 깃발을 세운 아서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서 우편함에 답장이 오기를 기다려 볼까나...

편지랑, 깨지기 쉬운 인생을 붙들어주는 힘으로 삼기에 적당한 장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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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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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오래 행복하게...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Reconstructing Amelia

 

인생이 지구와 같이 단단한 물체인 척,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인 척 해보자. 평범하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듯이...... -버지니아 울프,[파도]

 

주머니에 돌덩이를 넣고 천천히 물에 걸어 들어가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인생을 너무도 비관적으로 보았다. 평범하고 이성적인 이야기들로만 채워지지 않는 삶 속에서 너무도 괴로워하고 슬퍼하다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 버지니아 울프.

 

그러나,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뉴욕 명문 사립학교. 평소 품행방정하기로 소문난 모범생 아멜리아는 어느 날 옥상에서 떨어졌고, 옥상 벽에 쓰여진 ‘미안해요’라는 말로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받는다. 아멜리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통함에 싸여있던 엄마 케이트에게 날아든 한 통의 문자.“아멜리아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자, 이런 상황에서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지 않고 넘어갈 엄마가 어디 있으랴.

이 책은 아멜리아의 죽음에 대한 “재구성”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이다.

 

어디서부터 어그러졌는지 모를, 엄마와 딸의 관계.

뉴욕 최대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싱글맘인 케이트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딸과의 대화에 할애하는 시간이 버겁기만 하다. 엄마가 딸에게 소홀해진 사이, 딸은 생부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 혹은 성적 취향, 학교 클럽에의 가입 등 여러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용케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실비아와 학교 클럽 따위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둘만의 우정을 공고히 여기며 지내왔는데, 실비아는 남자친구에게 빠져서 아멜리아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 그러는 사이 아멜리아에게 뻗은 클럽에서의 유혹의 손길.

실비아 외에 아멜리아가 관심을 가지게 된 “딜런”이라는 아이 때문에 실비아 몰래 클럽 맥파이스에 가입하게 되었으나, 10대들의 비밀 클럽은 너무도 잔인했다. 회원들의 이름을 매기1, 매기 2 등의 이름으로 통일했고, 저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 배신의 대가는 아멜리아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 실비아에게 치러지므로, 아멜리아는 실비아를 위해 섣불리 빠져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속이 깊은 아멜리아는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섣불리 익명의 문자 때문에 생부에 대한 답을 강요하기도, 학교에서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힘들었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소통”

사랑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케이트는 아멜리아에게 생부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거짓말을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은 아멜리아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멜리아 또한 학교 생활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엄마인 케이트에게 얘기를 하지 않거나 약간의 거짓말을 더하여 말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실을 말하기를 꺼렸다. SNS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누는, 게이라고만 밝힌 동년배의 친구 벤, 학교 비밀 클럽에의 가입,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나마 아멜리아 자신의 성적 취향 등...

아멜리아가 케이트에게 슬쩍 퉁기기만 했어도, 혹은 엄마인 케이트가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는데...하는 안타까움이 읽는 내내 생각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과연, 아멜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누구였을까?

비밀 친구 벤? 학교의 가십 블로그 그레이스풀리의 운영자? 아멜리아의 신비로운 친구 “딜런”? 아니면 생부에 대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던 엄마 케이트? 아멜리아에게 생부에 대한 문자를 보낸 사람?

아멜리아의 죽음에 대한 재구성은 실로 단단하고 아귀가 맞게 얽혀 있어서 책장을 넘기고 넘겨도 쉽사리 대답을 내 주지 않는다.

 

10대들의 내밀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SNS 상의 대화라든지, 블로그의 글들은 정말로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아직까지는 문화충격이라고 봐 줄 수도 있겠으나, 우리 나라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서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로비도 마다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자살 소동”도 은밀하게 덮어두려는 학부모의 모습에서는 “명문대 지상주의”가 없는 곳이 없구나-하며 씁쓸한 웃음을 베어물기도....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던가. 이 작은 학교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온통 헤집어진 추악한 비리와 모순들, 그리고 어른 사회의 더러운 면만을 골라 집약해놓은 “클럽 맥파이스"의 해악에 도대체 이 사회는 무엇을 먹고 굴러가는 사회인지 탄식에 탄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살자가 추앙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그러나 아멜리아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하는 것이 판에 박힌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케이트는 그렇게 확신했다.-104

 

'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올바르고 똑똑한 아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면, 그 때 아멜리아에게 사실을 말하지 그랬어요, 케이트...'

뒤늦은 충고를 건네보지만 아멜리아는 이미 없고, 공허한 메아리만이 남았다.

나는 내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아직은 어린 딸이라 순진하게 엄마를 믿고 있는 아이. 그러나 언제 어느 때 엄마에 대한 불신이 싹틀지 모르고 조개처럼 모든 일에 입을 꽉 다물지도 모른다. 딸의 죽음 이후에야 애끓는 모성을 발휘하여 여기저기 진실을 찾아 헤매는 케이트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란 말이야...아이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면서 간섭하지 않기. 옆에서 지켜봐주고 필요할 때에는 도와주기.

개인주의 성향이 어릴 때부터 강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엄마와 딸의 유대가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는 정이 많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휴~하고 다른 때보다 깊어진 한숨을 내쉬어 본다.

상콤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딸, 조잘조잘 하루 일을 얘기하며 잠자리에 들어사까지 얘기의 끈을 놓지 않는 딸, 부쩍 살이 올라 탱글탱글해진 엉덩이를 통통 튕기며 날아가듯 걸어다니는 딸.

이런 내 딸을 지켜주고 싶다. 모든 악으로부터...그리고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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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nters - Yesterday Once More

 

 

 

 

 

 

 

 

 

 

 

고 1 때, 집안에 안좋은 일이 있었다.

나는 무지 암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없었으며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늘상 찌푸리고 다녔다.

내가 찾아간 곳은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단짝 친구였던 아이의 집.

초, 중학교는 같이 다녔으나,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하는 바람에 그 친구를 보려면 주말을 이용해 집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나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여러 위로의 말 대신에

카펜터스의 테잎을 조용히 건넸다.

나는 카펜터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없이 받아든 다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의 커다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넣고 듣기 시작했다.

잘은 알아들을 수 없는 팝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후렴구에서

"Every 샬랄랄라~ Every 워우워우~~"하는 부분이 들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Yesterday Once More

할 수만 있다면, 중학교 시절의 행복한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 1 그 때, 내가 마주해야 했던 그 상황으로부터 어쨌거나 회피하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어쩜 그렇게 노래의 가사는 내 마음을 딱 집어 얘기하고 있는지...

 

차분하고 잔잔한 음악에 실린 가사는 비록 영어라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어도,

카펜터스의 목소리는 나를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고.

비 오는 날도 듣고, 해가 쨍한 맑은 날에도 들었다.

자꾸만 되풀이 되는 후렴구는 그대로 나의 마음이 되었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목소리로 인해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하는 나의 상처.

그래서 이 노래는 반창고 같은 노래이다.

언제고 들어도 아픈 곳을 감싸 주고 다독여주는 노래.

전주만 나와도 나는 벌써 눈물을 닦고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한다.

반창고를 붙일 때는 눈물은 방해가 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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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 아리랑의 한 소절이다. 절로 흥이 나는 밀양 아리랑.

지난 주 우리의 당일 여행 코스는 밀양 아리랑길 나들이였다.

부산 화명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 밀양역에 도착해서부터 빡세게 걷기로 작정한 코스.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뒤돌아 앉아 있어서 가방만 보이는 아빠.

 

 

 아이들이 아직 어린 관계로, 아리랑길 1코스에서 주요 걷기 지점인 밀양읍성과 송도삼림 쪽은 발도 못 딛고 말았지만,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시작부터 밀양 아리랑을 들어서인지 몰라도 흥이 절로 나는 나들이였다.

기차 30분 소요, 밀양역 앞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걸려서 영남루에 닿았다.

 

 

영남루 올라가는 계단에서 밀양아리랑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과연~ 영남 제 1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넓디넓은 누각은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방이 탁 트여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게, 여기서 이대로 잠이 들고픈 마음이 절로 들었다.

나의 마음과 같은 부부가 한 쌍 있었는데, 누의 한 쪽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눈을 감고 앉아 바람을 느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는가? 싶었지만, 무릎에 책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왔다갔다 하고 있었기에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실례가 될 듯 하여 사진은 찍지 못했다.

 

 

밀양 아리랑의 흥을 제대로 느끼는 아이들.

 

 

영남루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연리지가 보였다. 연인들의 애정행각 때문에 예쁜 하트체어에 앉아 찍지는 못하고 옆에 서서 나무만...

 

 

 

영남루에서 5분 거리에 밀양관아가 있었는데, 마침 전통혼례 준비가 한창이었다. 검은 차일이 쳐져 있고, 그 밑에 병풍이 세워진 채 초례상을 준비하고 있었더랬다. 시간이 안 맞아 구경은 못하고, 옆에서 투호 놀이 시늉만 좀 하다 나왔다.

 

 

관아에서 나와 전통 시장 구경을 좀 하고, 영남루에서 내려다 뵈던 강에 있던 오리배 타기 체험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을 일로 오리배 타는 것을 꼽았던 아이들. 역시나 표정이 밝다. 생각보다 꽤나 스릴 있었다. 기우뚱 거리기도 하고, 가끔 가다 멈추기도 했으며, 저기 보이는 다리를 지나 멀리 나아갔을 때는 수초에 말릴 뻔도 하여 음~ 나름 스펙터클한 한 때를 보냈다.

 

 

 

전도연 거리

 

 

밀양은 역에서부터 전도연 주연의 영화<밀양>의 위세를 업고 영화촬영지를 곳곳에 표시해두고 있었는데,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8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오래된 건물들 틈에서 내  눈에 띈 것은 다름아닌, 헌 책방.

왠지 반갑고 정겨웠다.

전도연이 피아노 강습소를 했던 곳도 촬영지라고 번듯이 써놓았는데, 걸어오는 길이 피곤해서 찍을 여력도 없었다. 피아노 강습소 안에 전도연 실물크기 사진이 떡하니 서 있는 게 보여서 웃음~

 

 

 

기나긴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밑으로는 강을 둘러싼 곳에 조각공원이 보였고, 그날따라 구름은 어찌나 조각같이 풍성하고 아름다웠는지...

 

여행을 마무리하며 피곤한 다리를 저 구름 위에 올리고 쉬라는 듯이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우리를 쫓아왔다.

 

 

밀양은 밀양 아리랑과 아리랑길.

전도연의 영화 "밀양"으로 기억될 듯 하다.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고고~~

날 좀 보소~~날 좀 보소~~날 좀 보~~소~~

다음에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좀 더 험난한 코스인 아리랑길 2, 3 코스에 도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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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뇌 -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반하는 쾌감회로의 진실
데이비드 J. 린든 지음, 김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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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뇌> The compass of pleasure

 

원제는 쾌감의 나침반 쯤으로 이해되는데, <고삐 풀린 뇌>라는 재미있는 제목으로 탄생하게 된 책.

‘우리의 자유의지를 배반하는 쾌감회로의 진실’이라는 길고 긴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인 데이비드 J. 린든은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교수로 뇌세포와 기억에 대한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에 쾌감회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신경과학적, 생화학적으로 설명한 책.

아~~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꽤 두툼한 하드커버를 들추자 그림이 스르륵 흘러간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그림은 없다. 실험의 한 장면, 혹은 체계화된 도식들. 이거이거...학술지 번역해 놓은 거 아냐? 막, 막,,,의사 선생님들이 읽고 그러는 거?

잔뜩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움찔 움찔 손을 움직여 책장을 넘겨 본다.

촉감은 좋은데...

냐하하~어디까지가 본문이냐...책의 4분의 1은 참고 문헌이 차지하는 듯 싶다.

역시...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렇지만, 명색이 학문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금방 포기한대서야 말이 되나...하지만, 리뷰를 쓴댔자 내용 요약밖에 안되지 싶다.

일단은,,,내게 너무 멀고 먼 신경과학, 생화학의 분야이므로...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무지 재미있게 풀어 가고 있다.

방콕. 환락의 도시라 할만한 방콕에 처음 도착해서 툭툭을 타자마자 기사가 건넨 말을 인용하면서 쾌감의 종류를 줄줄이 나열한다.

“저...여자 필요하세요?”

“남자를 원하시는군요!”

“그러면...트랜스젠더?”

“싼 담배도 있고...조니 워커도 있는데요.”

“마리화나?”

“코카인?”

“야바?(필로폰 정제-옮긴이)”

“헤로인?”

“닭싸움 하는 데로 모실까요? 돈을 걸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을 거절하고 결국은 식사를 하고자 하는 저자의 대답에 운전사는 실망한 눈치다. 우와~ 방콕에 와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

남자, 사람.(혹은 여자, 사람) 이 원하는 쾌감의 거의 모든 것이 툭툭 운전사의 입을 빌어 다 튀어나왔다. 심리학자들이 흔히들 말하는 매슬로우의 욕구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이처럼 주루룩 나열된 것들을 바로 “쾌감”이라는 말 속에 넣는가 보다. 뇌의 깊은 곳에 감춰진 쾌감 회로. 저자는 이제부터 이것을 다섯 장으로 나누어 얘기한다.

 

1장에서는 쾌감 회로의 발견 과정과 그 신경학적 기초를 설명한다. 뇌심부에 자리한 복측피개영역(VTA)과 그 주위에 포진한 몇몇 영역들이 쥐, 원숭이, 인간의 쾌감에 관여하고,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이 쾌감회로의 연료 역할을 한다. 이 장에서 윤리성을 고려하지 않은 가장 지독한 실험의 예가 나오는데, “동성애자 남성으로부터 이성애적 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중격 자극” 이 바로 그것이다. B-19(우울증과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보통 지능의 24세 동성애자 남성)의 사례는 보는 동안 왠지 불편했다. 저자는 이 실험을 이렇게 비판한다.

개인의 성적 지향성을 ‘교정’하려는 뿌리 깊은 오만함, 정당하지 않은 뇌 수술이 지닌 의학적 위험성, 사생활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라고.

이렇게 윤리적 잣대를 간직한 채 연구를 바라보는 저자는 계속해서 연구의 성과를 얘기해 나간다.

 

신경계에서 선과 악은 하나이며, 우리가 어떤 경로를 취하든지 간에 쾌감은 우리의 나침반이다.-38

 

약물중독을 다루는 2장은 마약류에 그치지 않고 알코올과 니코틴 그리고 여러 정신병 약물들을 포함한다.

3장부터 6장까지는 음식, 섹스, 강박적 충동들, 고결한 쾌감 행동들이 어떻게 쾌감회로를 자극하는지 설명하고, 중독이란 개념을 약물중독에서 다양한 행동 중독까지 확대시킨다.

7장은 쾌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인데, 가장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장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뇌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고, “쾌감”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결국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성적 오르가슴의 쾌감, 헤로인 도취, 식사나 도박, 위험을 감지할 때 느끼는 전율, 포만감 등등...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려고만 들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이라면 “쾌감”과 “중독”을 분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쾌감의 먼 미래를 상상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쾌감에 관련된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법률적, 재정적 제도일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리고 그 문제는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쾌감이 도처에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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