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오래오래 행복하게...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Reconstructing Amelia

 

인생이 지구와 같이 단단한 물체인 척,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인 척 해보자. 평범하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듯이...... -버지니아 울프,[파도]

 

주머니에 돌덩이를 넣고 천천히 물에 걸어 들어가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인생을 너무도 비관적으로 보았다. 평범하고 이성적인 이야기들로만 채워지지 않는 삶 속에서 너무도 괴로워하고 슬퍼하다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 버지니아 울프.

 

그러나,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뉴욕 명문 사립학교. 평소 품행방정하기로 소문난 모범생 아멜리아는 어느 날 옥상에서 떨어졌고, 옥상 벽에 쓰여진 ‘미안해요’라는 말로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받는다. 아멜리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통함에 싸여있던 엄마 케이트에게 날아든 한 통의 문자.“아멜리아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자, 이런 상황에서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지 않고 넘어갈 엄마가 어디 있으랴.

이 책은 아멜리아의 죽음에 대한 “재구성”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이다.

 

어디서부터 어그러졌는지 모를, 엄마와 딸의 관계.

뉴욕 최대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싱글맘인 케이트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딸과의 대화에 할애하는 시간이 버겁기만 하다. 엄마가 딸에게 소홀해진 사이, 딸은 생부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 혹은 성적 취향, 학교 클럽에의 가입 등 여러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용케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실비아와 학교 클럽 따위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둘만의 우정을 공고히 여기며 지내왔는데, 실비아는 남자친구에게 빠져서 아멜리아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 그러는 사이 아멜리아에게 뻗은 클럽에서의 유혹의 손길.

실비아 외에 아멜리아가 관심을 가지게 된 “딜런”이라는 아이 때문에 실비아 몰래 클럽 맥파이스에 가입하게 되었으나, 10대들의 비밀 클럽은 너무도 잔인했다. 회원들의 이름을 매기1, 매기 2 등의 이름으로 통일했고, 저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 배신의 대가는 아멜리아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 실비아에게 치러지므로, 아멜리아는 실비아를 위해 섣불리 빠져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속이 깊은 아멜리아는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섣불리 익명의 문자 때문에 생부에 대한 답을 강요하기도, 학교에서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힘들었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소통”

사랑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케이트는 아멜리아에게 생부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거짓말을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은 아멜리아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멜리아 또한 학교 생활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엄마인 케이트에게 얘기를 하지 않거나 약간의 거짓말을 더하여 말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실을 말하기를 꺼렸다. SNS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누는, 게이라고만 밝힌 동년배의 친구 벤, 학교 비밀 클럽에의 가입,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나마 아멜리아 자신의 성적 취향 등...

아멜리아가 케이트에게 슬쩍 퉁기기만 했어도, 혹은 엄마인 케이트가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는데...하는 안타까움이 읽는 내내 생각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과연, 아멜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누구였을까?

비밀 친구 벤? 학교의 가십 블로그 그레이스풀리의 운영자? 아멜리아의 신비로운 친구 “딜런”? 아니면 생부에 대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던 엄마 케이트? 아멜리아에게 생부에 대한 문자를 보낸 사람?

아멜리아의 죽음에 대한 재구성은 실로 단단하고 아귀가 맞게 얽혀 있어서 책장을 넘기고 넘겨도 쉽사리 대답을 내 주지 않는다.

 

10대들의 내밀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SNS 상의 대화라든지, 블로그의 글들은 정말로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아직까지는 문화충격이라고 봐 줄 수도 있겠으나, 우리 나라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서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로비도 마다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자살 소동”도 은밀하게 덮어두려는 학부모의 모습에서는 “명문대 지상주의”가 없는 곳이 없구나-하며 씁쓸한 웃음을 베어물기도....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던가. 이 작은 학교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온통 헤집어진 추악한 비리와 모순들, 그리고 어른 사회의 더러운 면만을 골라 집약해놓은 “클럽 맥파이스"의 해악에 도대체 이 사회는 무엇을 먹고 굴러가는 사회인지 탄식에 탄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살자가 추앙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그러나 아멜리아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하는 것이 판에 박힌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케이트는 그렇게 확신했다.-104

 

'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올바르고 똑똑한 아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면, 그 때 아멜리아에게 사실을 말하지 그랬어요, 케이트...'

뒤늦은 충고를 건네보지만 아멜리아는 이미 없고, 공허한 메아리만이 남았다.

나는 내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아직은 어린 딸이라 순진하게 엄마를 믿고 있는 아이. 그러나 언제 어느 때 엄마에 대한 불신이 싹틀지 모르고 조개처럼 모든 일에 입을 꽉 다물지도 모른다. 딸의 죽음 이후에야 애끓는 모성을 발휘하여 여기저기 진실을 찾아 헤매는 케이트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란 말이야...아이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면서 간섭하지 않기. 옆에서 지켜봐주고 필요할 때에는 도와주기.

개인주의 성향이 어릴 때부터 강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엄마와 딸의 유대가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는 정이 많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휴~하고 다른 때보다 깊어진 한숨을 내쉬어 본다.

상콤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딸, 조잘조잘 하루 일을 얘기하며 잠자리에 들어사까지 얘기의 끈을 놓지 않는 딸, 부쩍 살이 올라 탱글탱글해진 엉덩이를 통통 튕기며 날아가듯 걸어다니는 딸.

이런 내 딸을 지켜주고 싶다. 모든 악으로부터...그리고 오래오래 같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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