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로메 유모 이야기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냉정과 열정사이>를 비롯한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 이것들의 공통점은 저자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책이 얇디얇고 크기가 작으면서도 양장본이라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아침>은 208쪽에 1만원, 바나나와 연을 끊게 된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146쪽에 7천원이다. 쉽게 읽히며 그저 쿨하기만 한 일본책들에 난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살로메 유모 이야기>도 일본책의 요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223쪽에 달하지만 글씨도 크고 띄어쓰기도 많이 해 두세시간 만에 읽었는데, 책 가격은 무려 12,000원이다. 속에 컬러사진이 잔뜩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비싼 가격을 뒤로하고 책에 관해 소개를 하자면, 이 책은 역사에서 조명받는 사람들을 나나미가 변명해주는 내용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 그는 일년 안에 돌아온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려 10년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는 자신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고 변명을 한다. 그에 대한 아내의 항변, “오디세우스가 표류했다는 곳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관능적인 지중해, 그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뛰어나며...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뿐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사막이였다면 저 역시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었다고 믿었겠지요(22쪽)”
저자는 이런 식으로 폭군 네로와 악녀로 알려진 살로메, 시이저를 죽인 브루투스 등을 변명하며, 베아트리체에게 넋을 잃은 단테에게 아내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부부가 되어 살다보면 제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도 그 매력의 태반을 잃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베아트리체 역시 단테의 아내가 되었더라면 영원한 여성, 고귀한 행위와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48쪽)”
그녀의 상상력은 책 전반에 걸쳐 발휘되는데, 발랄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 대목은 마지막 단편인 ‘지옥의 향연’이다. 여기에서는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의 이유가 되었던 헬렌,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나오는데, 그들의 얘기도 재밌지만 지옥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이 갔다. 천국은 하는 따분한 사람들이 가는 곳, 지옥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지옥 생활의 즐거움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까닭은 속세의 선남선녀가 일탈행동을 일삼을까봐 그런 거란다.
내가 아는 이 중에서도 기도만 하고 행실은 그다지 바르지 않은 이가 있었다. 기도할 때는 눈물까지 흘리지만 매우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그는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천국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기도만 하겠구나 싶었고, 내가 갈 곳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가서 그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운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깜찍한 생각도 했었는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그것도 유명한 사람이 그러니까 반가웠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주신 조선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