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냉정과 열정사이>를 비롯한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 이것들의 공통점은 저자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책이 얇디얇고 크기가 작으면서도 양장본이라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아침>은 208쪽에 1만원, 바나나와 연을 끊게 된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146쪽에 7천원이다. 쉽게 읽히며 그저 쿨하기만 한 일본책들에 난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살로메 유모 이야기>도 일본책의 요즘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223쪽에 달하지만 글씨도 크고 띄어쓰기도 많이 해 두세시간 만에 읽었는데, 책 가격은 무려 12,000원이다. 속에 컬러사진이 잔뜩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비싼 가격을 뒤로하고 책에 관해 소개를 하자면, 이 책은 역사에서 조명받는 사람들을 나나미가 변명해주는 내용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 그는 일년 안에 돌아온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려 10년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는 자신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고 변명을 한다. 그에 대한 아내의 항변, “오디세우스가 표류했다는 곳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관능적인 지중해, 그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뛰어나며...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뿐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사막이였다면 저 역시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었다고 믿었겠지요(22쪽)”


저자는 이런 식으로 폭군 네로와 악녀로 알려진 살로메, 시이저를 죽인 브루투스 등을 변명하며, 베아트리체에게 넋을 잃은 단테에게 아내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부부가 되어 살다보면 제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도 그 매력의 태반을 잃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베아트리체 역시 단테의 아내가 되었더라면 영원한 여성, 고귀한 행위와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48쪽)”

그녀의 상상력은 책 전반에 걸쳐 발휘되는데, 발랄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 대목은 마지막 단편인 ‘지옥의 향연’이다. 여기에서는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의 이유가 되었던 헬렌,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나오는데, 그들의 얘기도 재밌지만 지옥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공감이 갔다. 천국은 하는 따분한 사람들이 가는 곳, 지옥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지옥 생활의 즐거움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까닭은 속세의 선남선녀가 일탈행동을 일삼을까봐 그런 거란다.


내가 아는 이 중에서도 기도만 하고 행실은 그다지 바르지 않은 이가 있었다. 기도할 때는 눈물까지 흘리지만 매우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그는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천국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기도만 하겠구나 싶었고, 내가 갈 곳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가서 그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운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깜찍한 생각도 했었는데,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그것도 유명한 사람이 그러니까 반가웠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주신 조선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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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1-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무슨 증정문구 같아요. 기분 좋은데요?

부리 2005-01-2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조선인님! 기분 좋다니 저도 좋습니다. 토요일날 뵈요!

노부후사 2005-01-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부리님. 서평을 상당히 부지런히 쓰시네요. 이러다 마태님을 추월하겠습니다.

부리 2005-01-2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님/설마요^^ 전 겨우 다섯편인데요

숨은아이 2005-01-26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읽고 싶어졌다!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강준만의 <희생양과 죄의식>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고초를 겪은 사람들의 얘기다. 기가 막힌 사연들이 쭉 나열되어 있지만, 저자의 다른 저작들을 통해 다 한번씩 들은 얘기라 강준만의 팬인 나로서는 좀 지루했다. 이 책은 연대별로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시대에 관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내고 고초를 가하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고문-->빨갱이 시인--> 사형 혹은 투옥--> 남은 가족들 풍비박산.


다른 사연도 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최근에 밝혀진 수지김 사건만 예로 들어보자. 수지김 사건은 사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살인사건에 불과했지만, 남편은 그걸 간첩이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고 구라를 쳤고, 사건에 목말라있던 안기부는 그걸 간첩 사건으로 대서특필한 것. 이유는? 수지김이 왠지 스파이스러운 이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사건의 결과 그 가족들은 다음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가족들이 안기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게 된 이후의 일이다.

-어머니: 실어증을 얻었고, 10년 뒤 사망.

-큰언니: 전매청에서 해고당함--> 정신이상까지 생겨 그해 겨울 사망.

-큰언니의 남편: 술로 세월을 보내다 이듬해 교통사고로 뇌수술--> 폐인생활

-오빠: 술에 의지해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여동생: 이발소 문 닫음, 남편에게 이혼당함--> 울화병과 노이로제에 시달림

-다른 여동생: 수지김의 동생이란 게 알려져 남편에게서 쫓겨남.

-또 다른 여동생: 동생임이 탄로나 남편에게 상습적 폭행--> 산으로 들어감

-조카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자퇴, 취업도 못함. ‘간첩의 씨앗’이라며 버려진 아이도..


이 사건은 나중에 조작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가족이 잃어버린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억울한 간첩을 만드는 국보법은 없어져야 하고, 있더라도 적용만큼은 신중해야 하지만, 이놈의 나라가 어디 그런가. 술먹고 농담 한번 했다가 몇 년간 징역을 살아야 하는 나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그런 나라가 우리가 살았던 나라다.  책에 나온대로 “한국 국민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심은 반민주적인 정권의 정치적 자산이었으며, 그 공포심은 수구기득권 세력에겐 요술방망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술방망이의 위력이 많이 퇴색된 지금도 그 방망이에 기대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은 어인 일일까? 이 책은 나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읽어야 효과가 있을 듯 싶다. 거기에 더해 민주화를 외친 학생들이 주사파라고 했던 박홍, 아버님은 언제나 잘했다고 지금도 주장하는 박근혜, 친북좌익이 400만이 된다고 말하는 조갑제,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사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국보법 폐지를 적극 반대하는 모 의원, 그리고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젊은 극우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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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1-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이라는 이름만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데, 더구나 반공법이라니... 난 수지김 사건을 님의 리뷰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설령 내가 신문을 보고 나서 조작된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해까지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힘의 폭력과 무지의 폭력,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지금부터 바꾸어가야겠죠. 반공법은 분면 페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특권적 권한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가진 자를 위한 보신이 아닌,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보살핌이어야 할 것입니다. 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숨은아이 2005-01-2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안법도 보안법이지만, 언니가 누구냐는 것 땜에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남편들은 또 뭐래요.

부리 2005-01-26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저도 좀 웃기는 사람들이다 싶었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자기가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 거겠지요, 라고 이해했습니다...우리가 참읍시다^^
열린사회의 적님/안녕하세요? 강준만의 팬이신 듯하니 저와는 코드가 맞군요. 수지김 사건을 제 리뷰 때문에 아셨고, 그로 인해 반공법-보안법이겠지요? 반공법은 81년에 폐지되었어요-폐지를 더 생각하게 되셨다면 제가 리뷰 쓴 보람이 있는 거네요. 보람을 느끼게 해주셔서 제가 감사^^

하얀마녀 2005-01-26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들이 읽는다고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게 더 속상해요.

부리 2005-01-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그래요, 그들은 일단 부인하고 보겠지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요.

하루(春) 2005-01-2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읽어보고 싶은 맘이 굴뚝 같네요. 큰일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요.
 
세상 종말 전쟁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미 작가들은 왠지 찬란한 아우라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보르헤스도 그렇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 그런 사람의 작품만 소개된 탓인지 모르지만, 남미 작가들의 글들은 난해하고, 쉽게 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세상종말전쟁> 역시 그랬다. 1천페이지를 넘는 분량이긴 해도, 다 읽는데 열흘 정도나 걸린 건 좀 길다. 그러고보니 책을 처음 샀을 때도 이 책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어 나중으로 미뤘고, 막상 손에 쥐기까지는 7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문장도 어렵지 않고 내용도 선지자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토벌하려는 군대와 한판승부를 벌이는 게 다인데, 왜 그렇게 읽기가 버겁고 진도가 안나갔을까?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1) 선지자: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선지자는 말고 행동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킨다. 먹는 것도 남보다 덜먹고, 자는 것도 덜 잤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를 숭배했고,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사람을 통해 저자는 타락한 종교에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공금횡령을 하고, 인도네시아 지진을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목사가 우리나라 대형교회를 이끌고 있지 않는가. 책에서 가톨릭은 선지자를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이단이 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하느님을 믿는데 꼭 한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는가? 왜 우리나라 교회는 공금횡령에 성폭력에 탈세에 세습을 한 목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일까? 장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 그거 믿는다!”고 떠드는 것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알고보니 무슨 종교를 믿더라, 이랬을 때 훨씬 더 그 종교에 대한 끌림을 느낀다고.


2) 기자: 책에 나오는 기자는 정치꾼과 협잡하여 거짓 기사를 쓰고, 자기 한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자신이 기사로 매도했던 남작에게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파렴치함을 보인다. 이걸로 보아 저자는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것 역시 남의 일만은 아니다. 온갖 음모론을 유포하고, 왜곡된 기사를 쓰고, 권력과 유착해 일신상의 영달을 꾀하는 기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잘 나오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3) 사소한 딴지: 785쪽에 ‘땅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라는 대목이 있다. 아니 어떻게 배를 깔고 눕는가? 이거 말고도 오자가 여러개 보여 눈에 거슬렸다.


막판에 갑자기 포르노 수준의 묘사가 있어 적잖이 당황했고, 읽는 것이 어려웠던만큼 다 읽고 난 후의 기쁨은 매우 크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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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1-2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미 작가는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어요. 다른 정서때문인데, 그래도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겠죠? 삼십대 후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panda78 2005-01-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안으로 바르가스 요사의 책이 몇 권 더 나온다고 합니다. ^^
(근데 배깔고 눕는다고 안 그러나요? ^^;;;; )

마냐 2005-01-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엣...1권 중간 읽다 그만둔 책이군요. 순전히 이리저리 치여서 말임다....첨에 넘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한참 흥미진진해지는데, 못 다 읽어서 아쉬웠는디..흠흠. 덕분에 다시 시작해보렴다..언젠가..말임다. ^^;; 그나저나, 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이 없던가요? 흠흠...도전의식이 쬐금 생김다. ^^;;

부리 2005-01-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기자의 부패를 다룬 소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탈세 사건 때 그만둔 중앙일보 기자분-오동명 씨죠 아마-이 쓴 다큐 말고는... 마냐님 화이팅
판다님/배깔고 눕는다가 좀 쓰이는 말인가요? 음, 전 너무 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나봐요
여우님/앗 님에게도 남미작가가 어렵습니까? 여우님도 남미 출신이신가봐요^^
 
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난 장정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소설은 딱 하나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독서일기>도 재미있게 읽었고, 우리 사회의 금기와 싸우는 것에도-마음 속으로만-지지를 보냈다. 읽을 책이 꽤 밀려있었음에도 ‘장정일 단상’이란 소제목을 단 <생각>을 출간되자마자 주문을 했고, 단숨에 읽어버린 것도 다 장정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책 역시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이나 공부는 어떤 권리를 얻기 위한 패스포드일지는 몰라도 결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38쪽)”며 김희선과 최지우를 변명해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이하늘과 베이비복스와의 싸움을 그린 대목은 나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하늘이 당당히 막말을 하게 된 근저에는 남성/여성이라는 차별 구도 외에 장르 간의 우월의식도 개입되어 잇다. 흔히 래퍼는 기성질서에 반항적이며 지적인 아티스트고, 댄스음악은 머리가 빈 애들이나 하는 질 낮은 음악이라고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162쪽)]

바람 피우는 배우자가 상대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 죄책감의 발로라는 세간의 속설에도 저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억눌려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마음껏 뛰놀며 물을 마시고 풀을 뜯었으니, 지금 그 사람은 행복한 거다. 그래서 부드러워지고 여유만만해진 것이다”


저자의 여러 주장들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 책을 읽은 느낌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예전에 ‘행복한 책읽기’라는 곳에서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이하 ‘화두’)>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의 1부인 ‘아무 뜻도 없어요’의 상당부분이 거기 나왔던 것을 재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286쪽 중 무려 85쪽이 그 책의 재탕인데, 저자로서는 <화두>는 자신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책을 읽은 독자인 나는 책의 30% 가량을 손해본 거다. 여러 잡지에 실은 걸 모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글을 다른 책에서 보는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저자가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재확인한 것 이외에, 원래 안사려고 마음먹은 <장정일의 삼국지>를 사기로 했다는 점이 이 책의 수확이다. 저자는 책 마지막 부분, 무려 서른쪽에 걸쳐 자신이 삼국지를 쓰게 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그의 다른 주장처럼 장정일이 새로 삼국지를 쓴 이유에 공감하고, 그의 새로운 해석이 어떨지가 궁금해졌다. 재탕 80쪽에 자기가 쓴 책선전이 30쪽,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내가 장정일의 팬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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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삼국지.. 저도 고민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점수를 얻네요.

happysf 2005-01-2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뜻도 없어요"의 1/3 가량이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겹치는 것을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에 나왔던 "아무 뜻도 없어요"의 단상이 너무 좋아서 한권의 독립된 단행본으로 내자는 독자와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출간된 책이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가 없었다면 <생각>도 없었던 것이지요. 장정일의 단상만을 따로 모은 책에서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중복된 부분만 빼버린다면 그것도 모양은 조금 이상해지겠지요. 원래는 책의 앞부분에 "전영잡감"이나 "삼국지 시사파일"과 마찬가지로 일부의 원고가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중복되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만, 그 부분을 삭제하고 단상이 씌어지게 된 과정을 단상 속에 포함시킨 것은 저자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릴케 현상 2005-01-2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어쨌든 화두를 안 읽었으니 이 책을 사는 데 무리는 없겠군요...^^

코마개 2005-01-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내게 거짓말을 해봐 아주 좋아해요. 전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거하러 오기 직전에 빼돌렸답니다. 발칙한 상상력과 가부장에 대한 개무시가 맘에 들더군요

happysf 2005-01-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뒤늦긴 했지만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생각>의 "아무 뜻도 없어요" 중에서 상당 부분의 원고가 중복된 점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지만,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으신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부리 2005-01-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sf님/앗 페이퍼도 읽으시나봐요? 막상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미안하네요.... 저야 뭐 중복된 부분 외의 내용이 너무 훌륭해서, 책값이 아깝진 않습니다.
강쥐님/사실 저는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때리는 대목에서... 독서일기를 통해 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이해했습니다만, SM은-제 이니셜이기도 하지만-제겐 좀 안맞습니다....
자명한산책님/그럼요. 아주 재미있답니다^^

꾸움 2005-07-0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대체 뭐하고 살았나 그 동안..ㅡㅡ
장 정일 이라는 이름을 사실.. 요기서 지금에서야 처음 보았습니다.
민망스러움을 금하지 못하며
조용히.. 총총총... 사라집니다.
아흐..ㅜ.ㅜ
 
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김소진 문학전집 5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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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의 팬들에게는 이런 비교가 턱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김소진과 유재하는 비슷한 점이 많다. 난 그 둘을 모두 저세상에 간 후에야 알았고, 그들의 작품을 뒤늦게야 읽으면서 일찍 감을 아쉬워했다. 유재하의 명곡 '지난날'의 일부다.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일까
가슴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덧없는 듯 쓴웃음으로 지난온 날들을 돌아보네]
그는 이 노래에서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이며, "다시 못올 그날들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김소진은 단편성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어찌보면 그리 아름다울 것도 없는 옛 추억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다른 면도 있다. 난 유재에게서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성을 느끼지만, 김소진은 천재로 군림하기보다는 마치 다정한 이웃 같은 생각된다. 유재하의 노래들이 애절하기 그지 없다면, 김소진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따뜻함'을 노래한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있자면 각박한 이 사회 속에도 희망이 살아 숨쉬는 듯하다. 전집 두권을 통해 '탁월한 단편작가'임을 내게 입증해준 김소진의 세 번째 소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도 그런 따스함에 기초해 씌어진 듯하다. 거기 실린 짧은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소설이 안팔린다고 고민하는 소설가에게 '필화사건'을 일으켜 2쇄를 찍게 해준 후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들을 잔뜩 끼워놓고 "그 책 좀 읽으라"고 닥달하는 남편 등 우리 사회의 민초들이 엮어내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에이, 이게 뭐야?"라고 하는 소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내사랑 또또'가 그랬다-소설 하나하나가 워낙 재미있어서 맘잡고 읽다보니 하룻밤만에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점은 있다. 큰맘 먹고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을 산 게 작년께인데, 벌써 세권을 읽어버렸다는 것. 한권은 산문집이니 작가 김소진을 느낄 수 있는 책은 이제 겨우 두권이 남았다. 그리고 그의 책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잽싸게 다 읽고 그를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남은 책들을 아껴 읽음으로써 오래도록 그와 만나야 할까. 한권 한권 읽어갈수록 그의 죽음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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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1-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전 원래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는 경우가 없답니다. 늦게 책읽기를 시작해서 앞으로 가는 것도 바쁘거든요^^ 예외) 삼국지, 소설 동의보감.

연우주 2005-01-1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안 읽는 편인데, 김소진은 다시 읽을 법 해요~^^

로드무비 2005-01-1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소진도 유재하의 '지난날'을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비로그인 2005-01-1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마태님은 연애중이라 안오시나요? ^^

클리오 2005-01-1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하... 저도 죽고난 후 알았지만. 추모 음반이 나왔을 때 한창 가을이었는데, 그 검은색 테이프를 들으면서 혼자 울곤 했답니다.(저답지 않은 일이었죠.--) 신기한 것은, 그 가을이 지나고 봄이 오니 아무렇지 않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