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난 장정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소설은 딱 하나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독서일기>도 재미있게 읽었고, 우리 사회의 금기와 싸우는 것에도-마음 속으로만-지지를 보냈다. 읽을 책이 꽤 밀려있었음에도 ‘장정일 단상’이란 소제목을 단 <생각>을 출간되자마자 주문을 했고, 단숨에 읽어버린 것도 다 장정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책 역시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이나 공부는 어떤 권리를 얻기 위한 패스포드일지는 몰라도 결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38쪽)”며 김희선과 최지우를 변명해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이하늘과 베이비복스와의 싸움을 그린 대목은 나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하늘이 당당히 막말을 하게 된 근저에는 남성/여성이라는 차별 구도 외에 장르 간의 우월의식도 개입되어 잇다. 흔히 래퍼는 기성질서에 반항적이며 지적인 아티스트고, 댄스음악은 머리가 빈 애들이나 하는 질 낮은 음악이라고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162쪽)]

바람 피우는 배우자가 상대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 죄책감의 발로라는 세간의 속설에도 저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억눌려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마음껏 뛰놀며 물을 마시고 풀을 뜯었으니, 지금 그 사람은 행복한 거다. 그래서 부드러워지고 여유만만해진 것이다”


저자의 여러 주장들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 책을 읽은 느낌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예전에 ‘행복한 책읽기’라는 곳에서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이하 ‘화두’)>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의 1부인 ‘아무 뜻도 없어요’의 상당부분이 거기 나왔던 것을 재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286쪽 중 무려 85쪽이 그 책의 재탕인데, 저자로서는 <화두>는 자신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책을 읽은 독자인 나는 책의 30% 가량을 손해본 거다. 여러 잡지에 실은 걸 모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글을 다른 책에서 보는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저자가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재확인한 것 이외에, 원래 안사려고 마음먹은 <장정일의 삼국지>를 사기로 했다는 점이 이 책의 수확이다. 저자는 책 마지막 부분, 무려 서른쪽에 걸쳐 자신이 삼국지를 쓰게 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그의 다른 주장처럼 장정일이 새로 삼국지를 쓴 이유에 공감하고, 그의 새로운 해석이 어떨지가 궁금해졌다. 재탕 80쪽에 자기가 쓴 책선전이 30쪽,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내가 장정일의 팬이기 때문일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01-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삼국지.. 저도 고민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점수를 얻네요.

happysf 2005-01-2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뜻도 없어요"의 1/3 가량이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겹치는 것을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에 나왔던 "아무 뜻도 없어요"의 단상이 너무 좋아서 한권의 독립된 단행본으로 내자는 독자와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출간된 책이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가 없었다면 <생각>도 없었던 것이지요. 장정일의 단상만을 따로 모은 책에서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중복된 부분만 빼버린다면 그것도 모양은 조금 이상해지겠지요. 원래는 책의 앞부분에 "전영잡감"이나 "삼국지 시사파일"과 마찬가지로 일부의 원고가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중복되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만, 그 부분을 삭제하고 단상이 씌어지게 된 과정을 단상 속에 포함시킨 것은 저자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릴케 현상 2005-01-2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어쨌든 화두를 안 읽었으니 이 책을 사는 데 무리는 없겠군요...^^

코마개 2005-01-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내게 거짓말을 해봐 아주 좋아해요. 전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거하러 오기 직전에 빼돌렸답니다. 발칙한 상상력과 가부장에 대한 개무시가 맘에 들더군요

happysf 2005-01-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뒤늦긴 했지만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와 <생각>의 "아무 뜻도 없어요" 중에서 상당 부분의 원고가 중복된 점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지만,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으신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부리 2005-01-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sf님/앗 페이퍼도 읽으시나봐요? 막상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미안하네요.... 저야 뭐 중복된 부분 외의 내용이 너무 훌륭해서, 책값이 아깝진 않습니다.
강쥐님/사실 저는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때리는 대목에서... 독서일기를 통해 왜 그런 글을 썼는가를 이해했습니다만, SM은-제 이니셜이기도 하지만-제겐 좀 안맞습니다....
자명한산책님/그럼요. 아주 재미있답니다^^

꾸움 2005-07-0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대체 뭐하고 살았나 그 동안..ㅡㅡ
장 정일 이라는 이름을 사실.. 요기서 지금에서야 처음 보았습니다.
민망스러움을 금하지 못하며
조용히.. 총총총... 사라집니다.
아흐..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