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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ㅣ 김소진 문학전집 5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평점 :
김소진의 팬들에게는 이런 비교가 턱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김소진과 유재하는 비슷한 점이 많다. 난 그 둘을 모두 저세상에 간 후에야 알았고, 그들의 작품을 뒤늦게야 읽으면서 일찍 감을 아쉬워했다. 유재하의 명곡 '지난날'의 일부다.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일까
가슴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덧없는 듯 쓴웃음으로 지난온 날들을 돌아보네]
그는 이 노래에서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이며, "다시 못올 그날들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김소진은 단편성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어찌보면 그리 아름다울 것도 없는 옛 추억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다른 면도 있다. 난 유재에게서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성을 느끼지만, 김소진은 천재로 군림하기보다는 마치 다정한 이웃 같은 생각된다. 유재하의 노래들이 애절하기 그지 없다면, 김소진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따뜻함'을 노래한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있자면 각박한 이 사회 속에도 희망이 살아 숨쉬는 듯하다. 전집 두권을 통해 '탁월한 단편작가'임을 내게 입증해준 김소진의 세 번째 소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도 그런 따스함에 기초해 씌어진 듯하다. 거기 실린 짧은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소설이 안팔린다고 고민하는 소설가에게 '필화사건'을 일으켜 2쇄를 찍게 해준 후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들을 잔뜩 끼워놓고 "그 책 좀 읽으라"고 닥달하는 남편 등 우리 사회의 민초들이 엮어내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에이, 이게 뭐야?"라고 하는 소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내사랑 또또'가 그랬다-소설 하나하나가 워낙 재미있어서 맘잡고 읽다보니 하룻밤만에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점은 있다. 큰맘 먹고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을 산 게 작년께인데, 벌써 세권을 읽어버렸다는 것. 한권은 산문집이니 작가 김소진을 느낄 수 있는 책은 이제 겨우 두권이 남았다. 그리고 그의 책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잽싸게 다 읽고 그를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남은 책들을 아껴 읽음으로써 오래도록 그와 만나야 할까. 한권 한권 읽어갈수록 그의 죽음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