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 외 지음 / 그린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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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이 '무뇌아적 페미니미스트'에 대한 언급을 할때만 해도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내 자신을 정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페미니즘은 내 관심밖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단 한순간에, 뭔가 잘못됐다, 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잘못됐다는 인식은, 내 주변의 어떤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속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남성들 때문이었는데, 왜 이렇게 여자들이 불공평한 삶을 살아냈지, 이거 왜이러는거지, 이거 너무 화나는데, 혹시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면, 그러면 이 답답함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될까? 했던 거다. 그리고 그 책은, 몇 번 언급했지만, '최명희'의 《혼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김태훈의 칼럼 때문에 또 누군가는 장동민의 발언 때문에 분노했을텐데, 나는 혼불 속의 강모 때문에 이미 딥빡침이 왔던 거다. 아아, 독서는 이렇게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른다. 최명희는 그 글을 쓴 의도가 어찌했든간에, 나를 페미니즘으로 이끌어버린 것이여. 어쩌면 그것은 최명희가 의도한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말에는 한 남자사람이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내 생각을 물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남자사람이었고, 혼자 책을 읽다가 머릿속에 고민이 쌓이고, 그러다보니 내게 말을 걸게 된 것이었는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고, 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 내게 의견을 묻는다는 것은 조금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명징한 답을 주기보다는, 그 답을 알았다기 보다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점 더 답에 근접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어떤 방향을 잡게 된다고 할까. 페미니즘에 대해 물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고, 내가 그것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페미니스트가 어떤 정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에게도 계속 얘기해야 겠다고, 그 대화 후에 생각했다. 확정된 답,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그 방향을 계속 보면서 그러나 수시로 '잘 가고 있나', '맞게 가고 있나'를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한 거다. 



여섯명의 공저자가 쓴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들, 이렇게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말하고 쓰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워졌다. 그리고 나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진짜 내가 그런거 싫어하지만, 또 잠깐동안, 대학교를 다시 들어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안돼... 나 학교 다니고 숙제 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괜히 등록금 날리지마. 이십년전에 대학 다닐 때 등록금 날린 거로 이미 내 생애 등록금은 다 날린 거야...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욕심내지 마....



지금처럼만 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어떠한 물음에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고, 더 확장된 사고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지는 거다.


아니야, 학교갈 생각하지마. 방통대 자퇴한 거 떠올려봐...




'되돌아갈 길은 없다'는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는,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내게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되돌아갈 길은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페미니즘의 세계로 들어와버린 이상, 나는 다시 예전의 내가 될 수가 없어. 그렇지만 멈춰 있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내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지금처럼 하는 공부지만, 본격적인 공부랄 수도 없지만, 멈추지 말아야지,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 여섯명의 공저자가, 이미 페미니스트로 책을 쓸 수도 있는 이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는 게 너무 좋았다. 페미니스트는 고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과거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 알았다고 반성하고 후회하며,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어떤 것일까를 또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계속 나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려야겠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라면 친구들이, 연인이라면 연인이, 페미니즘을 향해 걷고 있는 길에 함께였으면 좋겠다.



2015년, '코르셋'을 벗어 던진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만연한 여성혐오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이 딴지 거는 방식이 과격하다고 진단 내리는 중이고 이들이 말하는 핵심(몰래카메라 근절, 성차별 금지, 성폭력 근절 등)을 버릇처럼 외면한다. 어떤 이들은 메갈리아를 '여자일베'라고 부르는 일('여자'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 성에 따른 차별이 난무한 사회구조를 뭉개고 '상호혐오'로 퉁쳤다. 언론은 메갈리아를 남성혐오 집단으로 몰아가는 일에 톡톡히 기여 중이다. 이런 걸 보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분노를 기각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나의 스무 살때보다 더 세련됐고 더 고약해졌다. '그 정도로 화가 나 있었구나. 그동안 여성혐오를 이렇게까지 방치했다니. 이제부터라도 같이 바꿔 보자'라는 정도의 공감과 이런 수준의 연대를 기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메갈리안이 한국사회에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 단 몇 분만이라도 이분법적 젠더 위계로 구획된 세계에 대해 숙고해 볼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들은 여성들의 분노를 기각하고 '여성이 (감히)분노했다'는 것에 더 격하게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1997년의 응답이 '어리둥절'이었다면, 2016년 한국사회는 분노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 답한다. 누가 너희에게 분노해도 된다고 허락했느냐며 버럭 하는 모양새다.

2015년 5월 메르스 갤러리의 문이 열린 후 여기저기 페미니즘에 눈뜬 이들이 메갈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성차별적 사회를 알아 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메갈리아로 채 몰려들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메갈리아를 비난하지 못해 안달난 이들이 즐비했다. '메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에서 시작해서 혐오로 망할 것'이라는 진단 속에서, 사람들은 '분노해도 될지 말지'를 생각하고, 설사 분노하기로 결정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메갈리아로 몰려들지 말지를 두고 머뭇거렸다. 메갈리아가 일평생 미러링(만)을 할 건지, 성-비하(만)를 쏟아 내다 망할 건지, 어떻게든 결국 망할 건지, 아니면 움직이는 시도들 속에서 분화하고 논쟁하고 숙고하고 변화할 것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아에 대한 사망선고는 생후 3개월을 넘기지 않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던 건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모든 것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이동하는 것일 텐데 사람들은 왜 메갈리아의 필멸(必滅)을 탄생 한 달 후부터 줄기차게 예측하고 있었던 걸까. 마치 메갈리아의 죽음을 선언하기 위해 처음부터 죽이기로 결정한 것처럼, 그렇게 세상은 작정한 듯 한통속으로 메갈리아를 궁지로 몰아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대로, 혹은 목표한 바대로 '메갈리아'는 그 이름을 잃어 가는 중이다. 우르르 몰려들어 함께 분노하고, 그 분노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그 공간은 오명에, 오명에, 오명을 뒤집어썼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네트워크이자, 언어를 갖지 못해 입 없이 살던 이들이 언어를 찾은 공간이고, 지지받지 못해 온 이들이 힘 받는 공간이면서, 먼저 코르셋 벗은 이들이 알려 주는 소소한 노하우로 키득거리던 공간은 이쯤에서 변태를 꿈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홍미리, p.155-158)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는 질문은 참 의미 없지만, 굳이 물어 오고 또 굳이 답해야 한다면, 그렇게 묻는 이의 의도에 맞추어 '물론 그러하다'라고 답해야겠다. 메갈리안은 특정되지 않는다. (메갈리안은 누구이고, 페미니스트는 누구란 말인가?) 메갈리아를 방문하거나 메갈리아에 관심 있는 모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자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반대로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도 아니다. 때문에 그 질문은 메갈리안과 페미니스트 둘 다를 물화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할 뿐 아니라 그 둘의 분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는 인증을 통해 확인받는 자격증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젠더로 구획된 세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 질문하기를 시작한 이상 삶의 장소로서 세상이 나를 향해 던져 오는 질문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나는 페미니스트 맞나?'라는 질문 속에서 산다. 질문을 시작한 이상 누군가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르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정하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페미니스트 '이다/아니다'라는 타인의 진단이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홍미리, p.164-165)

여성심리학자의 창시자인 카렌 호나이(1885-1952)는 성차별적 환경의 영향으로 남자들은 업적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고 하는 반면, 여자들은 사랑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 한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대문에 여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꿈을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주변의 평가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같은 시기 영미문학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헨리 제임스는 조르주 상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상드의 재능이 천재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여성에게 천재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심스러운 것은 상드가 정말 여자인가 하는 사실이다."
당시 상드의 친한 친구였던 그는 자신이 상드에게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고 생각했지만 이 말은 여성의 천재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어 하는 대표적인 문장으로 두고두고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조지 엘리엇은 "나는 확실히 여자들이 어리석다는 걸 안다. 신이 여자를 (어리석은)남자에게 어울리게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라며, 여자들이 어리석은 존재라면 남자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라며 여자를 폄하하는 남성비평가들을 비웃었다. (권김현영, p.23-24)

인도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의 표현대로 무지는 그 자체로 ‘특권‘이다. 누가 이 상황을 참아 내고 있는지 모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서 있는 위치를 바꾸어 보기면 하면 얼마든지 다른 질문이 만들어지고, 다른 질문은 다른 지식으로 우리를 안내하 간다. 때로는 질문이 문제가 아니라 대답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 여성철학자는 없지?‘라는 질문에 천재성은 남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헨리 제임스가 있었는가 하면,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미술 단체 게릴라걸스와 여성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추적하던 중 기존 미술사에서 대가로 칭송받은 남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딸과 애인의 작품을 가로챘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권김현영, p.39)

이 글의 모든 참고문헌은 여자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졌다. 분리주의나 자매애 때문이 아니다. 내게 필요했던 대부분의 지식은 여자들이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권김현영, p.44)

여하튼, 덕분에 여성학과에 진학하고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병행했던 약 5년여 동안 아버지와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인생에 남자가 주요 인물로 전혀 등장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성들만으로도 충분했고, 완전했다. (전희경, p.201)

(대담중에서)
권김: 그러면 덧붙여서 잠깐, 미디어 비평을 하시기도 하니까, 김태훈 같은 칼럼니스트가 ‘무뇌아적 페미니즘‘에 관해 쓴 칼럼에 대한 코멘트를 들어보고 싶기도 한데요. (웃음) (p.238)

손: 사실 그 칼럼의 의미는 2015년까지의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이랄까, 아니면 문화적 지형이랄까, 여혐 지형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징후적 칼럼이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 사회. 그게 한국사회이자, 한국 사회의 페미니스트 혐오였던 거고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염증을 느끼고 있던 여성들이 드디어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글을 써도 남자들은 부끄럼 없이 지면을 쓰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부끄러워하지 말자‘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글은 안쓰잖아요. (웃음) 그리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지면은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서 누그든지 내가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활개를 치게 놔두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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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2017-06-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려드리면 여성의 의무군복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분 가운데 여성의 군복무, 최소한 공익근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분은 한 분도 없는게 페미니즘 발전의 가장 큰 장벽이예요.

다락방 2017-06-15 10:17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1도 모르는 댓글이네요.
공부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최소한 제가 페미니즘 관련 책 리뷰 쓴 것만 읽었어도 이렇게 댓글 쓰진 못할텐데요.
실망입니다.

제이슨 2017-06-15 17: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이 거의 같은 반응을 하는것 같아요
컨텐츠에 대해서는 함구...

다락방 2017-06-15 18:19   좋아요 1 | URL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헌법소원 제기한 게 여성이라는 사실은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페미니스트들을 다 만나보셨어요?
페미니즘 책 조금만 읽어도 군대에 대해 얘기하는 페미니스트들 좌르륵 나오거든요?
그리고 어디 페미니스트한테 페미니즘 인정받는 방법 얘기를 해요... 지금 뭘 잘못한건지 감이 전혀 안잡히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맨스플레인 하고 계십니다 지금.

2017-06-15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