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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야말로 소설의 정통, 클래식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 감탄하고 감동하곤 하는데, 희곡을 읽을때면 다르다. 지난번 읽었던 시나리오 작품 《카운슬러》도 뭔가 읽고나서 '……' 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 유독 희곡에서 코맥 매카시는 지독하게 철학적이 되는 것 같다. 그게 나쁘지 않고 또 잘 씹어 읽다보면 고개도 끄덕이게 되곤 하는데, 어렵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뭐 확실한 건 그거다. 소설이든 희곡이든, 나는 결코 코맥 매카시처럼 쓸 수는 없을 거라는 거.
(흑) 하고 싶은 말은 변하지 않지. 하고 싶은 말은 늘 똑같아. 전에도 했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늘 다시 말할 방법을 찾게 될 얘기지.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14)
(흑) 다른 건물에 산다 해도 그게 그거겠지. 여기도 괜찮아. 혼자 처박혀 있을 수 있는 침실도 있고. 저기 사람들이 죽때릴 수 있는 소파도 하나 있고. 대개 약쟁이에 코카인에 절어 있는 놈들이지만. 물론 놈들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죄다 들고 가버리니까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진 않아. 그게 좋지. 제대로 된 사람들과 어울리기만 하면 늘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이 결국은 다 치료가 된다니까. (p.39-40)
(백) 더 어두운 그림이 늘 정확한 그림이지요.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의 대하소설을 읽는 겁니다. 그 의미는 아주 분명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해요.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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