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샤 이어우드 판을 걸었다. <사랑은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라는 곡이었다.
노래가 좋아서 두 번 연속으로 들었다. (p.31)
이 책의 남자 주인공은 꽤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컨트리 가수인 '트리샤 이어우드'의 노래를 좋아서 두 번이나 들었다고 하니 뭔가 신선했다. 두 번이나 들을 정도로 좋다니, 도대체 어떤 노래인걸까, 궁금해서 유튭에 트리샤 이어우드를 넣고 검색해 보았다. 일단 저것은 번역 제목이니 원제를 모르지만, 그래도 그정도 영어쯤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트리샤 이어우드의 이름을 넣고 치니 노래가 오십여개정도 떴고, 그 영어 제목들을 죽죽 훑어가다가 나는 이런 영어 제목을 만난다.
Love wouldn't lie to me
응. 이거구나. 그런데 이 노래는 트리샤 이어우드의 노래로는 없고 어쩐 일인지 'Terry Radigan'이란 가수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게 뭐여..그래서 결국 나는 트리샤 이어우드의 <사랑은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란 노래를 들어보질 못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쩝...
책, 《런던 대로》를 읽기 전에 나는 몇 년전, 영화 《런던 블러바드》를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좀 놀랐다.
내 나이 마흔다섯.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고, 몸무게는 82킬로그램 정도 나간다. (p.11)
으응? 나는 영화속에서 콜린 파렐을 보았는데, 콜린 파렐과 딱히 매치가 되는 것 같지가 않다. 콜린 파렐이 마흔다섯..으로 보이진 않았었는데? 그런데 여배우 릴리안의 모습은 더 놀랍다.
난 사람 나이를 맞히는 데 익숙하진 않지만, 여자가 돈을 많이 들인 육십 대일 거라고 짐작했다. (p.54)
육십대...라고? 영화속에서 여배우의 역할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책의 줄거리는 영화의 줄거리가 달랐다. 굳이 어느쪽이 더 낫냐고 물어보면, 반전이나 이야기의 흐름상 나는 책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세상엔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그 사람들은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통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니까. 그러니 책 속의 내용이 더 있을 법하다. 영화 속의 내용이 훨씬 더 로맨틱하지만.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둘 다 딱히 재미는 없다. 영화가 되게 재미없었다면 책은 딱히 재미있지는 않은? 줄거리가 재미 없는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하지, 문장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야하나.
영화를 볼 때도 남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되게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도 우울했고 책에서도 우울했다. 왜 어떤 재능들 혹은 어떤 성격들은 특히나 더 범죄에 노출이 쉽게 되는걸까. 왜 범죄의 좋은 타겟이 될까. 본인이 나쁜짓을 저지르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데도 끊임없이 어둠의 손길이 달라붙어 협박하니 대체 그럴 때는 어떻게 피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일전에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스타킹 훔쳐보기》란 책에서 그런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났다. '과거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라는.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과거를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폭력의 역사》도 생각났다.
영화속 남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족을 꾸리고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식당에 찾아온 건달을 혼내주게 되고, 이 일로 텔레비젼에 얼굴이 알려져 과거에 몸담았던 폭력배들이 찾아오는 일이 생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아내에게 숨기고 있었고, 또한 앞으로도 폭력일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아 자신을 찾아온 폭력배를 죽이지만,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그 한 명뿐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꾸만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아, 도대체 이 과거는 왜 도무지 그의 삶을 놓아주지 않고 발목을 잡고 있을까. 파괴된 그의 가정 앞에 나는 엄청 안타까웠던 거다.
《런던 대로》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지나치게 자주 폭력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보는 거였다. 폭력을 행사하고 또 폭력을 당하기도 하는 소년들.
"애들이 있잖아. 신경 쓰이지 않냐?"
"그러니까 애들은 일찍 철이 들겠지. 강해질 거야." (p.75)
아, 이게 너무 우울했다. 애들은 좀 냅두지. ㅠ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찍 철이 드는 아이는, 가슴이 아프잖아. 애들이 신경쓰이지 않냐고 묻는게 남자 주인공 미첼이긴 하지만, 그는 축구 신동인 소년의 무릎을 총으로 쏘기도 한다. 그 소년은 노숙자를 사망에 이르도록 폭력을 휘둘렀고..폭력은 '복수'라는 이름을 다는 순간 돌고돈다. 멈추지를 못한다. 문득, 어린 나이에 폭력을 눈앞에서 고스란히 맞닥뜨려야 했던, 그래서 이제 저 아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을 품게 했던 남자 아이가 나오는 영화 《러닝 스케어드》도 생각났다. 아, 폴 워커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ㅠㅠ
이 영화속에서 폴 워커와 베라 파미가의 세탁기 정사씬...이 아주 강렬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무섭고 우울했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고 피를 보고 묻고 하는 것들이 이 책 속에 가득하다. 미첼에게 찾아온 '정상적인 삶' 혹은 '행복한 미래'는 잠깐동안만 그 맛을 보여줬다. 왜 다른 보통 사람들이 사는 그대로 사는게 누군가에겐 특히나 더 어려운걸까. 또한, 왜곡된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을 거침없이 희생시키는 그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그건 아마도 '사랑'이 시킨게 아니라 '사랑이란 감정의 착각'이 시킨 것일게다. 최근에 읽은 벨 훅스의 책을 돌이켜보건데,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암튼 《런던 대로》를 읽는 시간은 '울적한 독서의 시간' 쯤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아 우울해...이 책 다 읽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읽을라고 했는데, 다른 책으로 골라봐야겠다.
어젯밤에는 앞집에서 도토리묵을 주었다. 시골에 있는 형부가 직접 만든거라며 같이 먹자고 나눠준건데, 밤이었지만 묵은 살이 안찌니까 엄마에게 빨리 짜지 않게 양념하라고 한 뒤에 아빠랑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세숫대야에 담아 놓은(응?) 도토리묵을 흡입했다. 그리고는 너무 차가워 몸을 따뜻하게 하자 싶어 따뜻한 물을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와 소변이 급한거다. 그래서 다녀와서 자려는데 잠이 들려는 찰나 또 소변이...진짜 피곤해서 너무 자고 싶은데 이십분마다 한번씩 화장실을 가느라 자정이 넘어서까지 잠을 못잔거다. 그래서 너무 피곤한데, 오늘 아침에 엄마랑 서로 잘잤냐고 인사하다가, 어제 화장실을 이십분마다 한번씩 가느라 잠을 못잤다, 고 말하자 엄마가 '나도 그랬는데!' 하시는거다. 아빠도 계속 화장실 들락날락 했다는 거다. 물을 한 잔밖에 안마시고 잤는데 어쩜 그렇지? 도토리묵 때문인가? 얘기하고 출근했는데,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검색을 해 결과를 알려줬다. 맙소사. 도토리는 방광염 치료에 쓰일 정도로 엄청난 이뇨작용을 한다는 거다. 맙소사 맙소사.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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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어젯밤 나에게 무슨짓을 한걸까...하아- 졸려 ㅠㅠ
그런데 버거킹의 갈릭스테이크 버거를 먹으면 화보 찍는 것과는 거리가 열걸음쯤 더 멀어지겠지? 그래도 짜장면을 먹고 생기는 거리보단 가깝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