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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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책은 서대문 국제우체국에서 찾아와야 한다. 국제우체국은 책을 전달하는 일 외에 통관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 업무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미스 아무개'의 소관이었다. 우체국에서 보낸 통지서와 주민등록증을 가로지를 시멘트 대 위에 내밀면, 그녀는 한번 힐끗 얼굴을 들어 거들떠보고는, 마지못한 듯 입을 연다. "이거 서적이지요? 다음 주일에 한번 더 와보세요." 다음 주일이라고 책을 내준다는 확답이 없으니 발길이 더욱 처참하다.
어느 날 나는 그렇게도 읽고 싶은 책을 눈앞에 두고도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도리어 그쪽에서, 서적 통관이 쉬운지 아느냐,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책이라도 있으면 어쩔거냐고 공격한다. 이 책들은 그런 책하고는 거리가 멀며, 문학에 관한 이론서일 뿐이라는 내 설명을 무지르고 다시 돌아오는 대답이 이렇다. "책 내용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책은 사세요?" 나는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창구의 가로대를 뛰어넘었다. 다행히 그녀의 뒷자리에서 나이든 직원이 달려나와 내 팔을 붙들고는 책 꾸러미를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나왔다. -11쪽

전쟁은 바보짓이다. 분쟁의 해결책 가운데 전쟁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은 없다. 전쟁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떤 명분도 이 비극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핍박받는 미족의 독립전쟁 같은 것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핍박하는 일도 실은 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다. 이 5월에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소년들은 어느 골목을 헤맬까. 지금 축제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소식을 어느 골짜기에서 듣게 될까. 공부하고 일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그들이 훈장을 뽐내며 돌아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젊은 날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음의 상처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을 볼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민족의 절망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 능력을 스스로 멸시하고, 우리가 이 민족이었던 것을 저주할 것이다.-48쪽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나무와 풀과 돌을 그 자리에 놔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제값을 한다. 그것들이 없으면 이 나라 땅이 없고, 이 나라 땅이 없으면 이 나라의 삶이 없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것들은 황금 알을 낳는 닭과 같다. 황금은 한때의 황금이고 자연은 수수만년 세월의 황금이다.
그래서 나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바위를 깨뜨리지 말라. 내 고향의 순박한 농부와 어부들이 내내 후회하고 있는 일을 지금 당신들은 어마어마한 명분을 내걸고 저지르려 하고 있다. 쳔년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살려 하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하라.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라. 나라를 사막으로 만들고 무엇을 지키려는가.-121쪽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밖에서 기호를 구해 의미의 자리를 메울 때 우리느느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밖의 기호 속에는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진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191-192쪽

지금 나이가 마흔이 넘은 사람들은 저 불행한 유신시대에 아침 6시면 확성기를 타고 울리던 새마을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어느 외진 곳의 수두원에 은둔해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 요란한 노래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형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저녁형 인간도 못 되어 심야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그 시간을 견디어내야 했던 고통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던 일을 접어두고 새벽 잠자리에 기어들어가 설핏 잠이 들만하면 그 '합법적인' 고성방가가 베갯맡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나야 생활 습관이 야릇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교대근무를 마치고 새벽잠을 자야 하는 노동자들이나, 밤새 병마와 싸우다 어렵사리 잠이 든 환자들은 또 어떠했을까. 모든 사람이 한 믿음을 가지고 한가지 형태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전제주의가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폭력이 폭력인 줄을 알지 못한다.-231쪽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문장이 새겨진 돌덩이를 보고)설령 그 문장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돌에 새겨 공공장소에 세워둘 권리는 없다. 그 돌이 특정한 장소에 세워져 그 관계자들의 윤리적 실천의지를 다지는 정도에서 이용된다면 결코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설치물이라도 거리 한복판에 군림할 때는 그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정신을 무차별하게 위압할 수밖에 없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한 단체가 공공장소를 점유하여 자신들의 도덕률을 온 천하에 호령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같은 호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 장의 플래카드로 걸려 있을 때와 돌에 새겨져 있을 대는 그 의미의 무게가 다르다. 돌에 새긴 글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안을 넘어서서 모든 시대에, 다시 말해서 영원히, 그 진리성을 과시한다. 한 시대에 어떤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덕성과 학식으로 어떤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의견을 공공장소에 영원히, 그것도 토론이 가능하지 않은 형식으로, 내세울 권리는 없다.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232-233쪽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 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낸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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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14-01-2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글 잘 쓴다 싶은데, 정이 안가는 느낌적 느낌 ! 다시 손이 안갈 것 같은...ㅎㅎ

다락방 2014-01-29 14:29   좋아요 0 | URL
왜그런지 모르겠어요. 아름다운 문장이고 메세지도 있는데 왜 마음에 쏙 들진 않을까요?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