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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 정규 1집 주변인
이진우 노래 / 파스텔뮤직 / 2013년 5월
평점 :
가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가끔은 그게 너였으면
가끔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가끔은 그게 너였으면
우리는 반갑다는 말도
못한 채 돌아서겠지
어젠 네 생각이 많이 나서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를
온종일 들으며
홀로 너와의 추억에 잠겨
하루 종일 혹시 하는 맘을
간직한 채 있었지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참 많이 좋아했었어 너를
오늘도 네 생각에 잠겨서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를
온종일 들으며
홀로 너와의 추억에 잠겨
하루 종일 혹시 하는 맘을
간직한 채 있는 나 - 새벽 정류장 中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역시 그런 추억이 있다. 이 땅 아래 함께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어디에서 우연히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진채로 일상을 보냈던 날들. 우연히 만났을 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늘 예쁘게 입고 싶었고 예쁜 구두를 신고 싶었다. 혹여라도 그가 나를 부르면 달려나갈거라고 준비했던 그 때의 나는, 매우, 피곤했다.
그래서 그 일을, 그를 사랑하는 일을 끝내자고 생각했다. 이거 이래가지고서야 원, 사람 사는게 사는 게 아니다 싶었던거다. 그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훨훨 날아갈 수 있을것 같았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날 수 있을만큼 가벼운 육체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어쨌든 그 힘든 시간들에 작별을 고하고자 나는 그에게 이별의 편지를 썼고, 당연하게도 그 편지를 부치지 못한채로 그 뒤로도 한동안 그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도 내내. 그댈 잊는것보다 그댈 인정하는 게 조금 더 쉬운 것 같아요, 라고 박정현 언니도 노래했듯이. 아, 떠올리자니 머리가 아프구나.
누가 뭘 어쩌든간에 시간은 흘렀고 파도치듯 했던 격렬한 감정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나는 이제 그를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그가 만나자고 해도 거절할 만큼의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 제일 처음 이 곡을 재생시켰을 때, 그래, 이 노래가 내가 이진우의 앨범 중에서 가장 처음 듣게 된 노래였다, 아, 그래 내게도 이런 적이 있었지, 하고 슬며시 웃었다. 누구나 다 그렇구나, 이건 보편적인 감정이야, 하면서. 그렇게 설핏 웃고는,
그게 다였다.
이 앨범이 딱 그만큼이다. 격렬하게 추억을 끌어내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 하고 무시할만큼의 멍청한 앨범도 아니다. 아, 그 때는 그랬었지, 하고 웃게 됐던 딱 그 만큼의 앨범. 나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노래들을 불러주다니 완전 땡큐야 할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드는 그런 앨범도 아닌 것이다. 그저 보통의 앨범. 그저 보편적인 노래들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한숨이 늘었어'를 불렀던 가수라고만 그를 기억하던참에, 그 목소리와 느낌에 끌려 그의 솔로 앨범을 듣게 됐는데, 아쉽게도 내게는 좋다고 팔짝 뛸 만큼의 앨범이 되지 못했다. 뭔가가 부족한 데,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고, 그러면서도 뭔가가 더 있다면 이대로 넘쳐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적당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나로서는 딱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거다.
한 사람을 알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비밀을 감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수키김, 「통역사」pp.462-463)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게다가 그 사람안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모습이 숨겨져 있는가. 그러니까 나는 지난주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다가 게스트로 나온 이진우를 본 것이다. 그가 수줍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리고 그가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춤 춘거에요' 하던 그 말을 들은 것이다. 그 순간 내게는 뭐랄까, 그에 대한 애정이 조금, 아주 조금, 쏘옥- 하고 싹텄고, 그래서 그의 앨범을 그 뒤로 다시 한 번 들어보게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시 들어도 딱히 그 전보다 더 좋아지거나 하진 않았고, 역시나 그저 보통의 보편적인 노래들이었지만, 그의 수줍은 모습은 역시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이 앨범에 별을 셋 밖에 줄 수 없지만, 이름 때문에, 그의 이름 때문에, 이름이 너무 멋져서 별을 하나 더 준다. 이진우, 라니. 이름이 참 남자답고 멋지잖아?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별을 넷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리뷰란, 역시 편파적이며 주관적이며 순전히 내 마음대로 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이번 앨범에 내가 딱히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해도 그가 또 앨범을 낸다면 나는 또다시 들어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