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바빌론.
금요일 밤. 샤워를 마치고 욕실의 거울을 보면서 머릿속에 갑자기 저 문장이 떠올랐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제목.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들을 구경하다가 이 책, 『BABYLON REVISITED』을 보게 됐는데, 머릿속에서는 다시 찾은 바빌론 이라는 한국 제목이 금세 떠올랐던 거다. 내가 읽은 책은 당연히 번역서였고, 그 책의 제목이 그러했으니까.
여러가지 일들로 꽤 복잡하고 심란했고 금요일에는 결국 그 지친 몸과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집에 돌아오니 곧 쓰러져 잘 것만 같았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는데, 다시 찾은 바빌론, 이 소설을 갑자기 너무 읽고 싶어지는거다. 그래, 이것만 읽고 자자, 이것만. 지금 당장은 내게 그게 필요하다. 그리고 책장 앞으로 갔다.
쉬이 눈에 띄질 않아서 초조하고 답답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천천히 찾자, 있다는 건 확실해. 그리고 찾았다.
목차를 보니 다시 찾은 바빌론은 맨 처음에 있었는데, 오, 제목이 다시 찾은 바빌론이 아니라 『다시 찾아온 바빌론』이었다. 아, 잘못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어쩌면 제목도 이렇게 문학적일까. 나는 책장 앞에 털썩 주저 앉아 읽기 시작했다. 아, 좋다, 좋다. 나한테는 이게 필요했어.
나는 어떻게 피츠제럴드를 알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됐을까. 단편소설의 으뜸인 그를. 내 책장에 그의 소설이 꽂혀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가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렇게 되게 했다는 것. 내가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고 책을 사고 거기에 꽂아 두었다는 것. 이 모두가 다 내가 한일이라는 게 뿌듯했다. 기특했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사서 내가 꽂아둔 책이 결국 나를 위로하게 되었으니, 거기에서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니 그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내친김에 내가 피츠제럴드의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컷글라스 그릇』도 읽을까?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잠이 필요해, 자야해.
그리고 토요일 밤, 나는 외출후의 피곤한 몸을 침대에 의지한채 컷글라스 그릇을 읽기 시작했다. 이 단편은 진짜 최고다. 엄청나다. 소설속의 한 남자는 자신이 관심을 보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더랬다.
'이블린, 난 당신에게 당신과 마찬가지로 딱딱하고 아름답고 속이 텅 비어 있고 쉽게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물건은 선물로 보내겠어.' (P.149)
그가 보낸것이 바로 컷글라스 그릇이었는데, 그것은 꽤 커서 이블린의 장식장에 무용한 듯 놓여져 있다. 그런데 이블린의 딸은 그 컷글라스 그릇때문에 상처를 입고 패혈증에 걸려 손목을 절단하게 되고, 남편은 그 컷글라스 그릇에 칵테일을 한가득 담고 사람들을 초대했다가 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이블린의 아들이 군대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도 제일 처음 그 컷글라스 그릇에 놓여져있게 된다. 그리고 그 컷글라스 그릇의 저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외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처럼 보이는, 그러니까 그 편지가 거기에 있을거라는 걸 이블린이 어쩔 수 없이 짐작했던 것처럼, 이블린과 컷글라스 그릇이 결국 어떤 종말을 맞이할지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짐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다시 찾은(나는 찾아온 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지질 않네) 바빌론에서의 결말은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한숨이 나오게 하는데, 컷글라스 그릇에서 인생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싶어지기도 한다. 인생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것들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아주 작고 작은 것들이 연결되어져 있을 뿐인데, 그것이 큰 불행을 부르기도 하고 큰 절망을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 모든것들이 훗날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 피츠제럴드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인 것 같고, 그것을 또 누구보다 잘 써내기도 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말해주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중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도 진짜 완전 울트라 나이스한 소설인데 자꾸 얘기하면 길어지니까 이제 그만.
사실 소녀시대가 컴백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에 텔레비젼 앞에 앉아 기다렸다가 봤는데, 하아-, 실망했다. 그녀들은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환했지만, 여전히 긴 다리를 매혹적으로 움직였지만, 미스터 택시라는 그 노래는, '심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돌가수들이 성적으로 어필하는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고, 나 역시도 그런 모습들을 넋놓고 보기는 했었지만, 이번 그 택시 노래는 '이건 너무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들이 맞춰입은 제복과 그 무대가, 이번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저녁에는 여동생이 조규찬 보고 있냐고 문자를 보내와서 아, 오늘 나가수 하는 날이구나 하고 텔레비젼을 틀어보니 조규찬의 무대는 이미 끝나있었다. 그래서 다시 껐다가, 어 그런데 어떤 가수가 나오지? 싶어서 잠시 후에 다시 틀었더니 김윤아가 나오고 있었다. 와- 너무 예쁘더라. 긴 생머리를 그토록 잘 소화해내는 나이 많은 여자는 정말이지 별로 없을거다. 게다가 옷을 입는 것도 엄청나게 예쁘고. 웃는것도 너무 예쁜거다. 나는 강산에의 노래를 즐겨 듣지 않는 편이고, 그의 노래가 내 가슴을 움직인적도 없었기때문에 그녀가 강산에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때 텔레비젼을 끌라고 했었는데, 오와, 김윤아가 부르니까 그 노래도 좋은거다. 나는 김윤아를 별로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그녀가 그녀의 남동생과 부른 'blue Christmas'는 좋아하지만),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와, 예쁘다.
예뻐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예뻐지고 싶다. 예쁘고 싶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웃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예뻐지고 싶은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도 빛나고 있다는 걸 확신하기 위해서 예뻐지고 싶다.
일요일 밤이고, 침대에는 여전히 피츠제럴드 단편선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