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노총각을 자식으로 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보이지 않는 노란 실로 단단히 묶여 있는걸까? 대체 그들 연대의 끝은 어디인걸까? 결혼정보회사에 처 넣어 버리겠다는 엄마에게 싫다는 말은 이만오천번쯤 하고 났더니 어제는 대뜸 선자리를 물어왔다고 선을 보라고 하신다. 이런. -_-
업무적으로는 사고를 친 목요일을 보냈고, 개인적으로는 우울의 극을 달렸던 금요일을 보낸지라 그런 얘기가 반가울리 없었다. 싫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동네에 있는 산에 오른 어제.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인지 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산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코스도 완만하고 왕복 시간도 길지 않은 그 길을 걷는 어제,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떠날줄을 몰랐다. 어찌나 생각들이 쏟아지는지.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또 생각을 하면서 산 속에 있는 계단을 오르다가 잠깐, 뒤를 돌아 보았다. 내가 올라온 계단이 보였다.
이만큼이나 걸어왔구나, 하고서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아직도 이만큼을 더 올라가야 하는구나! 내가 딱 멈춰 선 곳이 마치 지금의 나 같았다. 삼십대 중반. 인생의 절반을 걸어왔고, 앞으로 또 살아온 만큼을 살아가야 하겠지.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없었다. 햇볕에 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목을 타고 등으로 가슴으로 또르르르, 땀이 흐르고 있었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기 시작하면서 독서는 멈췄다. 몇장 읽었다 관둘까 말까를 생각하게 되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작가는 내 신경을 몹시도 건드린다. 일요일인 오늘, 비가 내리고 있고 나는 갑자기 『달을 먹다』에서 작가가 가을에 대해 어떻게 썼더라, 싶어 뒤적여 보았다. 이 작가가 계절을 말할 때마다 나는 아! 하고 감탄했었는데.
또 밤이었고, 가을이었다. 버리기에 좋았다. (p.194)
버리기에 좋았다, 버리기에 좋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가을에 내가 가진 몇 개를 버렸다. 가을은 정말 버리기에 좋은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 가을에 버려야 할 다른 몇가지의 것들을 가지고 있다. 잘 버려야지, 잘 버릴거다.
휘리릭 넘겨 여름을 찾아본다.
한낮이었고, 여름이었다. 넘치기에 좋았다. (p.136)
넘쳤던가? 내게 여름에 무언가가 넘쳤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가가 말하는 봄은 딱, 내가 겪은 봄이었다.
깊은 밤이었고, 봄이었다. 미치기에 좋았다. (p.74)
봄을 떠올렸더니 미친 내가 덩달아 떠오른다. 그랬다. 봄은 미치기에 좋았다. 미치지 않으면 대체 어째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저 미쳐있었던 것 같았다. 봄에, 나는 미쳐있었다.
사실 현실속에서의 지금 이 계절은 내게 비염이 찾아온 계절이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고, 비염이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몹시도 고통스런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몇번이고 코를 훌쩍이면서, 그리고 목소리가 바뀌어 가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먼저 눈치 채는건 내 몸이나 마음이 아니라 내 코다. 너, 가을온다, 조심해, 라고 코가 얘기해주고 있다. 나는 아직 긴팔로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가을이 오는 걸 용케 안다. 코가 말해주니까. 내 모든 감각은 언제나 예민했다. 내 모든 촉수도 예민했다. 코라고 다를 리 없다. 가을, 비염이 오고 있다.
그냥 확, 선봐서 콱, 결혼해 버릴까? 결혼하면 최소한 결혼하라는 잔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잖아? 그리고 사실, 뭐, 남자, 별거 없잖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거기서 거기지.
가을이다. 버리기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