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동을 싫어한다. 그 뚱뚱한 면발이 싫다. 우동과 칼국수와 수제비의 그 '밀가루 덩어리'의 느낌이 싫다. 그렇다고 그 음식들을 안 먹는건 아니다. 가끔 먹고 싶고, 그래서 먹는다. 그러나 한그릇을 채 다 먹지 못한다. 밥은 머슴밥으로 먹을 수 있고, 고기는 혼자서 몇인분이고 먹을 수 있지만, 우동은 좀 다르다. 우동은 남기게 된다.
어제 집에 들어가는 길, 한정거장 전에 내려 우동집에 들렀다. 밤 열시였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나는 그저, 좀 위로가 필요했고 허전했다. 내가 어제 간 우동집은 기사님 분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밤 열시의 우동집에는 그래서인지 기사님들로 가득했다. 그 우동집에서 여자는 나 혼자였고, 젊은 사람도 나 혼자였고, 결국 예쁜 사람(?)도 나 혼자였다. 게다가 나는 심지어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사장님, 우동 면발은 절반만 주세요!"
아!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더 주세요, 도 아니고 많이 주세요, 도 아니고. '절반만 주세요' 라니! 아저씨들만 가득한 곳에서 예쁜 여자(응?) 혼자 앉아 우동 면발 절반만 주세요, 를 외치다니. 뭔가 새초롬하다. 아, 뭔가..뭔가...나랑 어울리지 않는데,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비로소 여자가 된 느낌? 여자로 완성된 느낌?
우동 면발을 절반만 줬다고 해도 그곳의 우동은 양이 아주 많아서 결국 몇가닥 또 남겼다. 그곳의 메뉴는 다섯가지밖에 안된다. 우동, 짬뽕, 짜장, 짜장밥, 그리고...하나는 생각이 안난다. 아, 어제 외울라고 했는데...맥주를 마셔가지고....기억력이...orz
고단한 며칠을 보냈다. 뭐, 오늘도 역시 고단한 하루가 될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정말로 지쳤고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막 떼를 쓰고 싶었다. 며칠전에는 친구와 강남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 계단에서 나를 밀어줘'라고 했다. 더 슬픈 건 그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는 사실이다. '그 기분이 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요.' 왜 이런 기분을 내가 느끼고, 또 당신은 이해하는걸까? 우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사는걸까?
어제의 따뜻한 우동은, 그런 내가 내게 주는 위로였다. 그곳의 우동 면발이 다른곳보다 얇았기에 가능했다.
- 나의 후버까페와 데이트를 했다. 그는 일년만에 한국에 들어왔고, 그래서 우리의 만남도 일년만이었다. 그는 내게 잘 지냈냐고 물으면서 일년간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늘 그랬듯이 회사 다니고 친구들 만나 술먹고 그렇게 살았다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그러자 그는 내게 만약 인생을 80으로 놓고 본다면, 80살이 되어 자서전을 쓴다고 했을 때, 그때 2009년에는 아무것도 기록할 게 없느냐고 했다. 나는 0.2초간 눈알을 굴리며 있다고 대답했다.
"있어요. 그런데, 말하기 뻘쭘해요. 그래서 일기에도 못썼어요."
그렇다면 그는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일은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냐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해프닝 같은것이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미래는 예측불허라더니, 맞다고, 그 일을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고, 그랬다고. 그렇다면 그 일은 이제 상황이 종료된거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 일은 여전히 예측불허인채로 내게 있다고. 나는 그 상황안에 여전히 있다고.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거라고.
나의 경우, 어떤 일들은 반드시 지나야만 말해지는데, 이것이 이미 지나버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어쩌면, 한 2년쯤 지나면 내가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때쯤이면 일기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최근 일년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러니까 80이 되어 자서전을 쓴다고 했을 때, 2009년 05월에서 2010년 05월까지 특별한 일은 무엇이 있었을지, 어떤 일들을 기록할지.
당신은 무얼 기록할건가요? 당신의 최근 일년, 자서전에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어떤일이 당신에겐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