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어제 이 영화를 보았다는 친구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좋았다고, 무척 좋았다고. 이 영화속에서 주인공이 내쉬는 공기도, 이 영화속에서 주인공이 감명받던 그림도 다 좋았다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좋다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내가 있어서 좋았다고. 주변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나 뿐이라고 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이 영화를 그 친구도 같이 좋아해줘서. 어쩐지 으쓱해진달까. 그 친구보다 먼저 보고 먼저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주 까무러치게 좋다.
그 친구의 말대로, 우리가 이 영화를 같이 봤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뭐, 우리는 [밀크]를 같이 봤으니까. 괜찮다.
그 친구는 이제 이 영화의 감독, 필립 클로델의 소설을 읽어보겠노라고 했다.
두달전이었나,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나는 이 영화가 주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이건 어쩐지 고백용으로 적당하지 않은가 싶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빌어서 문자메세지로 고백하는 시나리오를 멋대로 한번 상상해보았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의 장면은 이런거였다.
[나 오늘 영화봤어요. 무척 좋았어요.]
[뭐 봤는데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아! 너무나 완벽하지 않은가! 난 아직 보내기도 전부터 막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살짝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됐다. 이를테면, 만약 상대가 [뭐 봤는데요?] 라고 묻는게 아니라, [아, 좋았다니 다행이에요.] 라든가 [나도 영화보고 들어가는 길인데] 라든가 뭐 그런 답들. 나로 하여금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답들. 그래서 나는 다시 각본을 짰다. 상대가 반드시 뭐냐고 물어주게끔. 그건 이런거였다.
[나 오늘 영화봤어요. 무척 좋았거든요. 뭐 봤는지 물어봐줘요.] (이러면 안 물어볼 수 없잖아?)
[뭐 봤는데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아 완벽하다, 완벽해! 더할나위 없이 완벽해! 그래서 나는 실행에 옮겼다.
[나 오늘 영화봤어요. 좋았거든요. 뭐 봤는지 물어봐줘요.]
아, 그런데 .... 그런데................... 그 친구는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의형제요?]
orz
의형제가 뭐야. 나 의형제 안봤어. 의형제 보고 싶어하지도 않았어. 나 강동원 관심도 없어. 의형제가 뭐야. 아니 왜 내가 뭐 봤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는데 자기 멋대로 대답하고 난리야. 의형제는 왜 튀어나와.
안되는건, 역시 안되는거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