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줄로 늘어선 자작나무들, 움직임이 없는 노란색과초록색 잎사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나무껍질을 바라보았다. ‘죽다니, 내일 내가 죽임을 당하다니, 내가 존재하지않게 되다니...... 이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되다니.‘ 그는 이 삶 속에 자신이 없는 것을 생생히 그려 보았다. 그러자 빛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이 자작나무들, 이 뭉게구름, 이 모닥불 연기,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앞에서 느닷없이 변하여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무언가로 보였다. 싸늘한기운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헛간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 P403
게다가 마리야 공작 영애를 더욱 두렵게 한 것은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이후(심지어 그 이전부터, 그녀가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버지 곁에 남았을 때부터가 아닐까?)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스스로도 잊고 있던 모든 개인적인 갈망과 희망이 그녀 안에서눈을 떴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 즉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생각, 심지어 어쩌면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악마의 유혹처럼 끊임없이 그녀의 상상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그 일 이후 이제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악마의 유혹이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도 그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것에 저항할 유일한 무기가 기도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도를 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기도하는 자세로 서서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낭송했지만 도저히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순간 다른 세계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느꼈다. 고단하고도 자유로운 활동이 있는 세속적인 세계, 자신이 이제까지 갇혀 있었고 기도가 최고의 위안이던 정신적인 세계와 정반대인 세계였다. 그녀는 기도할 수 없었고 울 수도 없었다. 세속의 고민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P273
75) 포킨은 예카테리나 대제의 정부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쥐었다. 예카체리나 대제의 애정이 시들해진 뒤에는 자신이 직접 젊은 귀족들을 골라 대제와이어 줌으로써 권력을 이어 갔다고 한다. 노공작의 회상 장면은 그가 젊은 시절에 예카테리나 대제의 정부였음을 암시한다. - P223
스스로에게는 자기 의지에 따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각행동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모든 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태초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 P21
나폴레옹이 권력에 집착해서, 알렉산드르가 단호해서, 영국의 정책이 교활해서, 올렌부르크 대공이 모욕을 당해서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죽이고 괴롭혔다는것은 우리로서 납득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살인과 폭력이라는 사실 자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어째서 대공이 받은 모욕 때문에 수천 명이 유럽의 다른 쪽 끝에서 쳐들어와 스몰렌스크현과 모스크바현 사람들을 죽이거나 유린하고 그들 자신도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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