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을 가볍고 빠르게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기운을 사랑했다. 오직 나만의 기록을 향해 달리는 데서느낄 수 있는 환희와 내가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이된 것만 같은 기분이 좋았다. 새벽녘의 출발선 앞에서, 카운트다운 속에서, 작은 레이스 배낭을 메고 이마에 헤드램프를 두른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길 위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내가 달린 산, 그 산을 달린 나를 생각하면 뿌듯했다. 계속 달리고 싶었다. - P73
사랑하는 산 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늘도 작아진다. 세상에 잘 달리는 사람은 너무 많다. 나만큼 달리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래서 긴장될수록, 불현듯 불편한 마음이 내안에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애초에 사회가 아닌 산에서조차 타인과 경쟁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산을 달리는 모습을 과시하려던 것도, 그로부터 존재감을 찾으려던 것도 아니었다. 자연을 상대로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산은 인간의 욕망의 전시장이 아니니까. - P84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내 심장과 다리가 따라와준다면, 이 모든 걸 그 자체로 인정하며 최선을 다해 기꺼이 즐기고 싶다. 그건 그만큼 내가 이 스포츠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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